〈 10화 〉 마법 수련(1)
* * *
다음 날, 아침의 해가 떠오르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할 때쯤, 강현과 푸스탄트는 촌장에게 마련받은 집에서 나왔다.
이 마을에서부터 약 30분 정도 떨어진 울창한 숲으로 가기 위해서.
숲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마나 농도가 유지되고 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선 아카데미로, 마나를 쌓기 위해선 숲으로 향하라는 것이 마법에 대한 이 세계의 지론이었다.
“크르릉... 크륽!!”
물론 마나 농도가 높은 숲인 만큼, 포악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몬스터의 근간이 되는 마석.
그 마석은 대기 중의 마나가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으로 뭉쳐져 생성되는 것이니.
그들의 앞을 막아선 몬스터는 8급 몬스터 레드 보어.
엄청난 덩치를 지닌 붉은색의 멧돼지로 마법과 검을 배우지 않은 성인 남성 50명이 간신히 상대할까 말까 한 몬스터였다.
“크르릉...! 크륵!”
하지만 레드 보어는 푸스탄트를 보자마자 어디론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동물의 본능이 데미갓, 푸스탄트에게서 도망치라고 말해주었다.
“할배 저거 잡아다가 마을 사람들이랑 점심으로 먹는 건 어때? 레드보어 고기 맛있다고 소문났던데.”
레드 보어의 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넘쳐흐르기로 유명하다.
식재료로 상당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기에 낮은 등급의 모험가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고는 한다.
“음, 좋은 생각이구나.”
푸스탄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한차례 두들겼다.
달아나고 있던 레드 보어가 갑자기 털썩, 쓰러졌다.
[10 위계 빛 속성 마법, 안락사를 습득... 실패했습니다.]
[현재의 플레이어가 습득할 수 없는 마법입니다.]
“오... 무슨 마법인가 했더니, 안락사였구나.”
세계를 방랑하던 도중, 몬스터들을 만나는 건 꽤나 자주 있었던 일이다.
그럴 때마다 푸스탄트는 안락사라는 10 위계 빛 속성 마법을 사용했지만 강현이 그걸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참 편한 마법이다.
몬스터들 상대한다면 싫든 좋든 상처가 생길 수도 있으며 옷에 피가 튈 수도 있으니까.
“여기가 좋겠구나.”
레드 보어 사냥을 끝낸 뒤, 시간을 들여 장소를 고르던 푸스탄트가 말했다.
작은 공터였다.
짧게 자란 수풀들 사이로, 앉기 좋은 높이의 평평한 돌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일단 저 바위 위로 올라가서 앉은 다음 편히 앉아봐라.”
“응, 알겠어.”
강현은 푸스탄트의 지시대로, 낮고 평평한 돌 위로 돌아가 앉았다.
“가장 먼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으음... 역시 마나가 아닐까? 아무리 이론에 빠삭해도 마나가 없으면 마법을 못쓰니까.”
“그래. 네 말대로다. 마나가 존재하기에 인간들을 마법이라는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만큼의 문명을 발전할 수 있게 되었지.”
푸스탄트는 강현의 등 뒤로 다가가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너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미 너의 몸속에는 상당한 양의 마나가 순환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강현, 네가 할 것은 너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느끼는 거다. 마나를 의식하고 직접 움직이는 것, 그것이 마법사를 향한 첫걸음이다.”
“으음...”
혹자들은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혈액이 온몸을 순환하는 것을 평생 동안 느끼지 못한다고.
마나또한 마찬가지다.
그 누구에게나 있는 체내의 마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느끼지 못하며 그 마나를 느끼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고.
누군가는 마나를 느끼기 위해 평생을 바치더라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강현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마나를 느끼지 못할까 봐.
하지만 그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푸스탄트가 말했다.
강현은 검과 마법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고, 그것도 데미갓의 경지에 도달한 자신을 뛰어넘는.
또한 모든 학습에 보정이 붙는 플레이어 능력까지.
그 덕에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 요령 같은 건 없어?”
“없다. 마나를 느끼는 것은 오로지 명상을 통한 수양 밖에 없지. 하지만... 누군가는 순환하는 마나를 거대한 파도라고 했으며 넓은 초원을 달리는 말이라고도 하더구나.”
“으음... 알겠어.”
딱히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느낌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눈을 감아라, 집중해야 한다. 너의 몸속에 있는 마나의 순환을 읽어내야만 한다.”
“응.”
강현은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앞으로 3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다, 강현아, 깨닫기만 하면 된다.’
푸스탄트는 확신 했다.
그는 강현의 재능을 자신을 뛰어넘는다고 평가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이미 자신의 마나를 느끼고 제어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 하급이라고는 하나, 어떻게 힐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강현은 마나를 제어하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인 제어.
푸스탄트는 그렇게 정의했다.
누구나 직접 배운 것이 아님에도 팔과 다리를 움직일 줄 알고, 눈을 깜빡일 줄 안다.
강현에게 있어서 마나의 제어란 그런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할 줄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마법이란 결국 마나를 이용한 술식전개와 성질 변환 같은 더욱 심화된 제어를 요구한다.
‘호랑이의 새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나.’
푸스탄트는 명상을 시작한 강현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조차도 마나를 제어하기 위해 2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었으니.
∴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한 강현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뺨을 스치던 선선한 바람도.
드넓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쨍쨍한 햇볕도.
자신의 어깨를 덮은 푸스탄트의 따듯한 손도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을 때쯤.
강현은 완전한 명상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상하지만, 낯설지는 않은, 오히려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 누워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고 고개를 숙여도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는 건지도,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검은 공간을 눈뜬 채로 보고 잇는 건지도. 무엇하나 확신하기 애매한 감각이었다.
이 감각, 얼마 전에 느낀 적이 있었다.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살해당한 뒤, 잠시 동안 머물렀던 사후세계라고 생각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라.’
저 멀리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빛이 아주 미약하게 보이고 있었다.
강현은 빛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달리는 것인지 걷는 건지, 빛이 다가오는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정의하기로 한 채.
붉은색, 푸른색의 빛은 점차 가까워졌고 그 빛의 근원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드래곤...?’
붉은색 드래곤 한 마리와, 푸른색 드래곤 2마리.
그 3마리의 드래곤이 나란히 앉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강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드래곤이 아니야.’
강현은 드래곤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붉은빛과 푸른빛이 각각 생력과 마나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게 나의 마나...’
강현이 손을 뻗었다.
푸른색의 드래곤, 마나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생력...’
반대 손을 뻗었다.
붉은색의 드래곤, 생력이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 앞에 엎드렸다.
∴
“무, 무슨...!”
강현의 마나를 살펴보고 있던 푸스탄트는 경악 했다.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강현의 마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과집중 상태, 빨리 기절시켜야 한다...!’
과한 집중으로 인한 마나의 폭주.
초보 마법사들이 자주 행하는 실수였다.
잘못했다가는 모든 마나를 잃고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강현을 기절시켜 강제적으로 과집중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다가는 생력에 손상이 생길 수도 있지만 푸스탄트는 생력조차도 치유할 수 있다.
6 위계 정신 마법, 기절을 사용하려던 순간.
‘아니...? 이건... 폭주 상태가 아니다?’
마나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푸스탄트는 이 상황이 마나의 폭주와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나는 날뛰고 있었지만 제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으로 비유하자면 신나서 날뛰는 것과 유사한 상태라고 할까.
“서클이...”
생성되고 있다.
마나들은 방방, 날뛰며 심장의 곁으로 점차 모이기 시작하더니 심장의 주위 두른 원형의 고리, 서클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 무슨...’
70년.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을 직접 목도한 푸스탄트는 경악 했다.
서클을 만들기 위해서는 체내의 모든 마나를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기량과 서클에 관련된 막대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마나가 움직여 서클이 형성되고 있다니.
‘호랑이의 새끼라...’
아니, 그런 칭호는 오히려 강현에게 있어선 멸칭일 수도 있으리라.
푸스탄트는 생각 했다.
호랑이가 아니다.
용, 신의 아이라 칭하는 것이 더욱 합당할 것이라고.
그렇게 2시간이 더 흘렀다.
“후우... 할배 오래 기다렸어?”
이상한 느낌이었다.
뭔가, 그저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그건 또 아닌, 야리꾸리한 느낌.
마치 피곤한 상태에서 자고 일어난 직후의 느낌이었다.
“3시간 정도 흐른 것 같구나. 명상을 하던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푸스탄트는 강현에게 물었다.
“으음... 엄청 어두운 공간 속에 내가 있었어.”
강현은 명상을 하는 동안 느끼고 봤던 것들을 푸스탄트에게 전했다.
“맙소사... 아무래도 내가 너를 얕잡아본 듯 하구나.”
“응? 그게 무슨 소리...”
“아직 마법을 배우기도 전인데, 자신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다니.”
“내면세계...? 이게 내면세계라고...?”
강현도 내면세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수습생.
하급 마법사.
중급 마법사.
상급 마법사.
정식 마법사.
대마법사.
현자.
대현자.
8개로 나뉘는 마법사의 등급들 중, 현자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최소 조건.
자신의 생력과 마나를 가시화시킬 수 있는 내면세계의 구축이다.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붉은색과 푸른색의 드래곤으로 하여금 생력과 마나를 가시화 시켰다고.”
“... 응.”
“하늘이 내린 재능이구나. 정말 무서울 정도야. 그래... 마나는 직접 움직일 수 있겠느냐?”
“응, 잠시만.”
내면세계에 다녀온 뒤로, 자신의 심장에서부터 마나가 회전하는 서클이 느껴지기 시작한 강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 위로 마나가 모여 뭉치는 모습을 떠올렸고, 그 생각대로 그의 손 위로 푸른색의 마나가 뭉쳐져 작은 구체가 완성되었다.
“어때?”
“완벽하다. 더할 나위 없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