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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9화 (9/148)

〈 9화 〉 회귀 (4)

* * *

“... 할배, 내려줘.”

그 뒤로 2일이 더 흐르고, 자작령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쯤, 강현은 부상을 당해 푸스탄트의 등에 업혀있었다.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다.

회귀한 이후, 키와 몸의 크기가 작아졌다.

그로 인해 바뀐 걸음걸이와 시야 높이에 적응하지 못한 강현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발목이 삐었다.

그래서 현실 25년, 이 세계 20년, 도합 45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그는 남의 등에 업혀있던 것이었다.

“부끄러운 게냐?”

“할배같으면 안 부끄럽겠어? 지금 내가 몇 살인데.”

“끌끌... 다쳤으면 충분히 쉬어서 회복해야 하는 것을.”

“그냥 치유 마법 사용해주면 되잖아. 왜 굳이 나를 업어주려 하는 건데. 허리 삐끗하면 어쩌려고.”

“이 놈, 내 나이가 일흔을 넘겼다 해도 아직 팔팔하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에휴...”

결국 강현은 푸스탄트의 등에서 내리기를 포기했다.

늙으면 고집이 세진다던데, 이만큼 정확할 수가 없으리라.

어릴 때 다친 상처는 회복되면서 더욱 튼튼해지기에, 치유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나 뭐라나.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뭐... 그래도...’

쪽팔리긴 하나,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옛날에, 자주 푸스탄트의 등에 업히곤 했었다.

하도 몸을 막 굴린 탓에 자주 다쳤으니까.

물론 그때도 쪽팔리긴 매한가지였지만.

“내가 너를 업어줬으니, 저녁은 네가 사야겠구나.”

“뭐? 내가 돈이 어디 있...”

“나 몰래 약을 팔고 다녔던 거 모를 거 같으냐?”

“...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네게 거짓말하는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참나. 어차피 다 좋은 데 쓰일 약들일텐데.”

누가 업어달라고 했던가.

툴툴거린 강현이었지만 이런 마음 편한 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다.

“벌써 괜찮아진 거냐?”

“응, 이제는 하나도 안 아프네?”

꽤 심하게 접질려진 탓에,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제자리에서 뛰어도 발을 굴려도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네...”

적어도 하루 동안은 걷지 못할 거라 예상했던 강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의 너는 평범한 6살짜리 꼬마 아이가 아니지 않더냐.”

“아, 그렇긴 하지.”

그에게는 전에 없던 스텟이 생겼다.

강현은 체력 스탯이 생긴 덕이라고 생각했다.

체력 스탯에는 체력과 생명력뿐만이 아니라 재생효과도 있었으니.

점점 이전과는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체감되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부상도 완전히 회복했으니, 더욱 서두르자꾸나.”

“응.”

해가 서서히 시기 시작하고 세계는 주황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황혼의 시간이 찾아왔다.

밝은 빛을 내뿜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드디어 칸트루스 자작령 외각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드넓은 평원 위, 황금색으로 물든 곡식들은 자신을 수확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들을 수확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붉은 역병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응, 다 기억나.”

푸스탄트는 자신이 사망한 이후, 강현의 삶을 꿈으로 본 거다.

당연히 붉은 역병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고.

강현은 기억하고 있다.

죽기 전의 삶 또한, 플레이어라는 능력의 효과 덕인지 생생히 기억났다.

아마 튜토리얼이라 했으니 게임 판정을 해준 것이겠지.

“전생에선 할배가 마을에서 거주하는 모든 주민을 치료해줬다가 다시 역병이 퍼져서 한동안 고생했었지.”

단순한 전염병이기에 전염될 병을 없애버리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전염병 또한 맨처음 감염된 이유가 존재하는 법.

전생의 푸스탄트는 외지를 다녀온 마을 주민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원인은 따로 있었다.

“이 마을에 있는 우물 속에 적갑충이 문제야.”

“적갑충? 으음... 우물 속에 벌레가 들어간 건 확실히 문제가 맞긴 하다만, 역병을 퍼트릴 만한 벌레는 아닐 텐데.”

장수풍뎅이와 유사하게 생긴 적갑충의 뿔의 끝에서는 아주 극소량의 독이 1달 주기로 분비된다.

적갑충의 독에 중독 될 경우, 짧으면 반나절, 길면 한나절 동안 약간의 근육통을 얻게 되고.

역병을 퍼트리기에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지라 푸스탄트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이 산란한 알이 물에 녹으면서 역병이 생긴 거고.”

적갑충은, 죽은 나무의 나뭇가지, 혹은 잡초들 사이에다가 산란한다.

하지만 우물에 빠진 적갑충은 물에 빠져 죽어버렸고 물에 의해 부패되는 동안 뱃속에 품고 있던 알들이 우물 속 물에 노출되어 녹아내렸다.

“흐음... 그렇구나. 그럼 어서 우물 속의 물부터 해결해야겠어.”

“응, 그리고 마을 주민들 치료 좀 해주면 역병은 해결되는 거지.”

마을로 들어간 우리는 마을의 촌장과 만난 뒤, 우물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푸스탄트는 중력 마법을 사용해 우물 속 물을 먼 곳에다가 버렸다.

버리기 전, 푸스탄트에게 따로 부탁한 강현은 적갑충의 사체를 따로 챙겨두었다.

나중에 약을 제작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재료기 때문에.

[3 서클 중력 속성 마법, 염력을 습득 중입니다.]

[2%]

물 마법을 사용하여 지하수가 매장된 곳을 찾은 뒤.

[1 서클 물 속성 마법, 물 찾기를 습득 중입니다.]

[5%]

흙 속성 마법을 사용해 지하수를 끌어올릴 우물을 파주었다.

[1 서클 흙 속성 마법, 땅파기를 습득 중입니다.]

[5%]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강현의 시야 한가운데에, 알림 창이 나타났다.

바로 마법을 습득하고 있다는 알림 창이.

‘아니, 그냥 보기만 한 걸로 마법을 습득할 수가 있다고...?’

마법은 고차원적인 학문이며,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자신의 마나를 이용하여 정교하고도 복잡한 술식을 짠 뒤 술식에 맞추어 마나를 사용하면 비로써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가진 마나를 움직이는 법과, 마나를 움직이고, 응축시킨 뒤, 성질을 변환시키는 술식을 모두 이해해야지 겨우 마법을 습득할까 말까인데.

고작 옆에서 본 것 만으로?

강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미쳤다, 미쳤어...!!”

환희했다.

“음? 왜 그러느냐, 네가 그렇게까지 놀랄 마법은 사용하진 않았을 터인데.”

“할배. 잘 들어.”

강현은 이 엄청나 사실을 진지하게 푸스탄트에게 전했다.

“허어... 그것 참, 놀라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할배. 그거 보여줘.”

“뭐를 말이냐?”

“마을을 한 번에 치유해줬던 그 마법...!”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강현이 잔뜩 흥분한 채, 푸스탄트에게 말했다.

너무 강렬했던 기억이라 잊을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사용한 치유 마법.

마을의 하늘을 뒤덮었던 아름다운 빛무리.

“흐음... 그래, 설마 이것까지 습득할 수 있을까, 궁금하구나.”

“... 응.”

푸스탄트는 얼마나 강할까.

강현은 항상 궁금했다.

항상 자신의 힘을 숨겨왔던 그였지만 치유 마법에 있어서는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던 그였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전생 전의 강현은 어느 정도인지 몰랐으나, 지금은 플레이어 능력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잘 보거라.”

탕탕.

푸스탄트가 항상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두 번 두들겼다.

그의 발 밑에 황금의 마법진이 생성되고 급속도로 넓은 범위의 땅을 뒤덮은 마법진은 곧 마을의 땅 전체에 깔렸다.

“신이시여,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따듯하고 밝은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빛의 구름이 마을의 하늘을 뒤덮었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잔잔한 가랑비처럼, 빛의 구름으로부터 아름답고 작은 빛무리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빛무리 들은 집들의 지붕과 벽을 뚫고 들어가 병든 자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었던 붉은 역병에 걸린 병자들의 피부가 점차,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10 서클 빛 속성 마법, 성지를 적시는 치유의 비를 습득... 실패했습니다.]

[현재의 플레이어가 습득할 수 없는 마법입니다.]

강현의 기대와는 달리, 습득에 실패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알림 창에서는 여전히 푸스탄트가 사용한 마법을 10 서클이라 표기하고 있었다.

10 서클.

인간을 초월하여 신의 경지에 올라서는 반신, 데미갓의 경지에 다다라서야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엄청난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심지어 10 서클이나 되는 마법을 사용했다면 상당한 마나를 소모하여 지쳐야 하는 게 정상인데, 지친 기색은커녕,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말을 이 순간을 위해서 태어난 말임이 분명했다.

“어떻게 되었느냐.”

“... 당연히 그런 걸 어떻게 습득해, 그것보다 할배, 그거 뭐야. 아니, 그것보다 할배는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이 스승은 스스로 인간이라 생각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지. 그러면 사람이 아니겠느냐.”

“참나...”

어이가 없었던 강현이었지만 그에겐 있어서 딱히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푸스탄트가 인간이든.

인간을 초월하여 필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초월자, 데미갓이든, 푸스탄트는 푸스탄트이기에.

그래도 이런 사실을 여지껏 몰랐다는 사실에 배신감, 아니 배신감이라기보다는 서운함을 느꼈다.

“왜 그런 표정이 짓는 게냐. 네 스승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자랑스러워하면 좋지 않겠느냐.”

“에휴, 그런 표정은 무슨. 아무렇지도 않은데.”

책과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래된 설화.

그 속에는 몇몇의 데미갓이 등장하여 인류를 구원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전설 속의 데미갓이 자신의 스승이었다니.

푸스탄트의 말마따나 자랑스러워할 만했지만...

‘그럼...’

그런 푸스탄트를 어떻게 암살했다는 말인가.

데미갓의 경지에 도달한 그를.

검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핏빛 칼날이자 검귀라고 불렸던 레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녀는 중간보스가 될 때까지 데미갓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연속되는 사고 속, 의문은 해결되지 못한 채, 새로운 의문만을 남기고 점점 깊어져만 갔다.

‘잠시만, 그러고 보니까...’

잊고 있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은 즉, 죄인이 되기 전의 레이 또한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내가 찾아버리면...’

그녀를 찾아 보살펴준다면 중간보스가 될 일도 없다.

하지만 이 드넓은 땅 속, 무수히 많은 거지들과 죄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그녀를 찾는다는 말인가.

불가능하다.

강현은 확신했다.

게임 속, 중간보스 클리어 후, 감상한 스토리에서도 정확한 사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으니까.

“아... 머리 아파.”

강현은 억지로라도 사고를 끊어내야 함을 직감했다.

몰려오는 두통 속에서 머리를 쥐어짜 내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

“그래도...”

다시 한번 만난다면 그녀는 전생처럼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되어줄까.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구나. 너에겐 꽤 충격적이었겠지.”

“뭐... 충격적이긴 했는데, 괜찮지. 어차피 할배는 할배니까. 내 스승이고, 흠흠... 아버지고?”

“... 쪼깐한 게 말하는 재주는 좋구나.”

흠흠.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강현과 푸스탄트는 사이좋게 헛기침을 나눴다.

“푸스탄트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촌장이 찾아왔다.

“교회의 사제들조차 해결하지 못한 역병을 이렇게나 간단히... 역시 푸스탄트님이십니다...”

“과찬이십니다. 모든 것이 인자하신 신의 은혜지요. 보은 같은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그 무엇보다 은혜로운 일이지요.”

“아아... 역시, 성인군자라고 칭송받으시는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의 마을에서 푸스탄트님과 제자분을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끝난 지라, 시간이 붕 떠버렸습니다.”

“네, 그러면 안내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강현과 푸스탄 트는 촌장에게 한동안 머물 빈 집을 안내받았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집인지, 거주 중인 사람이 없음에도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할배, 시간이 붕 뜬 거 맞지?”

“그래, 한동안 황실에서 지원을 요청하진 않겠지.”

“그럼...”

푸스탄트는 강현을 바라봤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한동안은 수련에 힘쓰도록 하자꾸나. 검과 마법 중에 무엇부터 배우고 싶으냐?”

“으음...”

강현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

그리고 고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마법. 마법부터 배우고 싶어.”

신비한 힘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마법.

방금 전, 푸스탄트의 10 위계 마법을 직접 목도해서 그런지, 마법에 대한 갈망이 더욱 거대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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