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회귀 (3)
* * *
“길드장님.”
“음? 왜?”
“그게... 한 거지가 찾아왔는데 1시간째, 길드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나를? 구걸은 사양인데.”
“구걸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모험가가 되고 싶다면 등록금으로 은화 한 닢만 지불하면 그만이다.
“그럼 모험가 시켜달래?”
종종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거지들 중, 상당수가 모험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법으로 정해져 있다.
모험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화 한 닢을 지불해야 한다고.
잃을 게 없는 거지들이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 허다했으니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었다.
“아뇨.”
“하아... 바빠 죽겠는데, 그래서. 용건이 뭐라디?”
“자신한테 투자해달라고 하더군요.”
“투자? 내가 어린 거지한테서 뭐를 보고?”
“... 모르겠습니다.”
“참나.”
누구를 호구로 보는 것도 아니고.
거지들에게 한두 번 당했던 길드장이 아니었다.
그냥 무시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1주일이 지나도 어린 거지는 모험가 길드 정문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농성을 펼치는 중이었다.
“... 메르시.”
“예, 길드장님.”
“그냥 들여보내. 따끔하게 혼내고 돌려보내야겠다.”
길드 정문 앞에서 1주일째 움직이지 않고 있다.
자신이 담당하는 지부의 악영향을 끼치게 둘 수는 없는 노릇.
일단 해결하기로 결심한 길드장은 어린 거지를 들여오라고 했다.
잠시 기다린 뒤, 문이 열리고 비서, 메르시와 이쁘장하지만 꼬질꼬질한 소녀 한 명이 들어왔다.
“꼬마야, 이상한 짓 그만하고... 음...?”
실력자는 실력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투기.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무엇이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부터 투기란 것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장의 위치까지 오른 그가, 투기를 느낄 수 없을 리가 없었다.
어린 소녀한테서 투기가 느껴졌다.
그것도 투박한 투기가 아닌, 완벽하게 제어 중인 정제된 투기가.
그로 인해, 길드장은 위화감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 메르시, 비어있는 연무장으로 안내해줘.”
“연무장입니까? 갑자기?”
“하라면 해.”
일순간에 뒤바뀐 길드장의 분위기에잠시 의아해했던 메르시였지만 어차피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더 이상의 흥미를 거두고 비어있는 연무장을 찾아본 뒤, 어린 소녀와 길드장을 안내해주었다.
“아무래도 거창한 대화보다는 합을 겨루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그렇지, 꼬마야?”
어린 소녀, 레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는... 그 단검?”
다시 한번 더,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공권은 넘겨줄게. 나는 가만히 서서 방어만 하고 있을 테니까.”
레이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길드장은 어린 소녀가 범상치 않은 인물 이리라, 확신했기에 기대감을 품은 채 레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레이의 다음 행동은 길드장의 기대감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녹슬고 짧은 단검에서부터 푸른색의 검기가 미약하지만 일렁이고 있었으니.
길드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갈게요.”
단검을 쥔 채, 길드장에게 달려든 레이.
하지만.
털썩.
어려진 몸은 검기의 사용을 버텨주지 못했고 맥없이 엎어진 레이는 기절해버렸다.
“무, 무슨...”
“허어...”
메르시와 길드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껏 해봐야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검기를 사용하다니.
언제부터 검기를 쓸 수 있게 됐었더라.
길드장은 생각했다.
25살이었다.
25살에 부족하게나마 검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천재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투자... 투자할 만하네.”
신이 내린 천재.
그 수식언이 길드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이름: 이강현
종족: 인간
선(?) 카르마: 5112
체력: F 근력: E+ 민첩: F+ 내구: F 기교: E 마나: C 마력: C+
강현이 본 스탯 창은 그가 즐겼던 게임 속 스탯 창과 완벽히 똑같은 디자인이었다.
강현의 몸은 어린아이였지만 스탯은 평범한 성인 남성과 비슷하다.
힘이 상당히 강한.
또한 마나와 마력만 놓고 보자면 2 서클의 마법사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신의 스탯을 확인한 강현은 꽤나 기뻐했다.
이제야 게임 속 세계로 들어왔다는 실감이 들기도 했으며 마법과 관련된 수련은 전혀 하지 않은 몸인데도 마나와 마력 수치가 상당했으니.
거기에 선(?) 카르마.
선과 악의 카르마가 있다.
각각 선행과 악행을 행할 때마다 수치가 올라간다.
선 카르마는 게임을 즐겼던 유저들 사이에선 또 하나의 스탯인 행운으로 불렸고 악 카르마는 불행으로 불렸다.
어린 시절로 회귀한 시점.
아무리 열심히 선행을 행했다 한들, 이만큼 막대한 수치의 카르마를 쌓기란 불가능했다.
보상의 일부분으로 봐야겠지.
“스킬창.”
일반 능력: 약제학(Master)
특수 능력: 플레이어(?) 대현자의 눈(?)
일반 스킬: 하급 힐.
특수 스킬:
총 4가지로 분류된 스킬과 능력들은 쉽게 보면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버프 스킬로 나눌 수 있다.
능력들은 상시 발동이 가능한 능력들이며 스킬들은 말 그대로 사용하는 스킬. 보통 검술과 궁술 등등, 육체적인 전투법은 능력으로 분류되며 파이어볼과 힐 같은 마법들은 스킬로 분류된다.
거기에서 일반과 특수의 분류 기준은 간단하다.
오로지 배움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특수한 조건, 또는 위업을 달성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 뭔 능력이지.’
게임을 즐겨했던 강현에게도 자신에게 생긴 특수 능력들이 생소했다.
‘능력 설명 같은 거는 없나.’
그리고 그 앞에 설명 창이 나타났다.
[특수 능력: 플레이어(?)]
[능력 1. 모든 거래와 의사소통, 계약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게 됩니다.]
[능력 2. 모든 학습에 보정이 붙습니다. 학습 속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능력 3. 여태껏 학습해온 게임 속의 정보를 기억합니다. 잊어버렸던 정보들 또한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능력 4. 미개방]
[능력 5. 미개방]
[특수 능력: 대현자의 눈(?)]
[능력 1. 상대방의 선악의 카르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능력 2. 상대방의 스탯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능력 3. 상대방의 스킬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능력 4. 미개방]
[능력 5. 미개방]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흐리해졌던 기억들이 다시금 뚜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신(?)급.
보통 어떤 방식으로든 게임을 후반에서 극 후반으로 넘어갈 때쯤 플레이어들은 처음으로 신급의 특수 능력, 또는 특수 스킬을 얻게 된다.
게임의 엔딩을 보든, 더 많은 신급의 능력을 얻기 위해 노가다를 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단 하나의 신급 능력만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강현인 이제 막 시작할 때, 신급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2개나.
지금까지 했던 고생의 보상쯤일까.
스킬창을 확인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인벤토리가 남아있었다.
죽은 뒤, 어두운 공간 속에서는 정산된 보상을 스텟 창과 스킬창, 인벤토리 창에서 확인하라고 했으니.
“인벤토리”
[인벤토리]
선물 (2)
인베토리는 휑했다.
하지만 선물이라고 적힌 흰색의 상자 두 개가 인벤토리창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으음...”
일단 이걸 어떻게 꺼내야 할까.
게임 속이 아닌 지라. 마우스 드래그로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강현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스텟 창과 스킬창, 인벤토리창을 열었던 것처럼 원하는 바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인벤토리 창에서 선물이 사라지더니 그의 앞에 나타나 공중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오...”
꽤나 신기한 광경.
염동력 같은 마법은 꽤 흔한 편이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선물을 받아 들고 이전에 했던 것처럼 설명을 확인했다.
[선물]
[사용자가 원하는 레전더리 등급 이하의 아이템, 또는 S급 이하의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선물]
[생력을 회복시켜주는 약초. 흑적초의 씨앗 10개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뭐...? 생력을...?”
“으음? 왜 그러느냐.”
선물의 설명을 읽은 강현이 벙쪄있자, 그의 모습에 의아한 푸스탄트가 물었지만 그의 말은 강현의 귀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 오직, 푸스탄트만이 치유할 수 있었던 생력이다.
그런데 그걸 치유해주는 약초를 얻게 해 준다고.
“... 미쳤다.”
강현이 무의식 중에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생력을 치유하는 법은, 푸스탄트가 사망한 뒤 그가 5년 동안이나 연구했던 분야였으니.
“... 확인 끝났어.”
“어떠하였느냐?”
“뭐... 1분 1초라도 빨리 검과 마법을 배우고 싶은 느낌?”
스탯 창이 생겼다.
강함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부족한 부분을 훈련을 통해 성장시킬 수 있다.
플레이어 스킬은 모든 종류의 학습 속도를 크게 상승시켜 준다 하였으며.
더 이상, 착하게만 살다 억울하게 죽을 이유 없다.
푸스탄트가 암살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힘에 상당히 만족한 모양이구나.”
“응.”
“하지만 잊으면 안 된다. 힘은...”
“당연히 알지. 남용하지 말라고? 내가 그럴 놈으로 보이진 않았을 텐데.”
“끌끌... 뭔 말을 못 하겠구나.”
푸스탄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는 강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래, 그랬었지.’
강현은 더 이상 가르침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훌륭하게 성장한 자랑스러운 제자였으니.
“그런데 기대하고 있는 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당장 너에게 뭔가를 알려주기는 힘들 거 같구나.”
“응? 아, 맞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칸트루스 자작가. 기억나느냐?”
“음... 아, 붉은 역병?”
“그래.”
일단 우리는 원래, 칸트루스 자작가의 영지에 속한 작은 마을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연히 어느 시점으로 회귀한 지 모르고 있던 강현은 푸스탄트가 알려준 덕에 정확한 회귀 시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기억난다.
사람들의 피부가 붉게 물들던 역병.
푸스탄트와 나는 그들의 마을에 방문하여 역병을 해결해주었고.
아쉽게도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 이상, 한시라도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훈련을 받고 싶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먼저였기에.
강현 또한 그 생각에 불만은 없었다.
앞으로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그의 나이는 정확히 6살.
조급해할 필요?
전혀 없었기에.
“괜찮아.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잖아.”
“그래, 그럼 빨리 움직이자꾸나. 시간이 없으니.”
“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