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회귀 (2)
* * *
강현이 겨우 눈물을 멈춘 뒤, 푸스탄트가 물었다.
무슨 꿈을 꾸었냐고.
강현은 답했다.
푸스탄트가 죽고 그를 죽인 여인을 만나 치료해주던 중 그녀를 쫓던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살해당했다고.
“...”
그 이야기를 들은 푸스탄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어차피 꿈인데 뭘 그리 심각해하십니까. 개꿈입니다, 개꿈.”
꿈이 아니다.
강현은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푸스탄트가 살아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를 잃지 않을 거다.
“너는 내가 알고 있는 강현이 아닌 거 같구나.”
“...!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푸스탄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봤으며 그의 입은 모든 이를 매료시켰다.
특수한 마법이나 성흔, 권능이 아닌 오로지 푸스탄트라는 인간이 가진 힘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강현은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대답해보거라. 너는 지금의 강현이냐, 20년 후의 강현이냐.”
“허어...”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색한 존댓말은 괜찮으니 편히 말해라. 우리 사이가 아니더냐.”
“... 어떻게 안거야, 할배.”
“너와 마찬가지로 꿈을 꾸었지. 내가 죽고 강현이 네가 열심히 살아가는 꿈이었단다.”
“할배도 회귀한 거야?”
“...”
푸스탄트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말 그대로 꿈이지. 아무래도 내 인고의 시간을 신께서 알아주신 모양이다. 앞으로 암살당해 죽을 일은 없겠어. 끌끌...”
하늘은 이 얼마나 상냥하면서도 잔인한 것일까.
죽을 미래를 알려주어 살 기회를 주었지만, 강현처럼 후회를 주워 담을 수 있는 과거로는 보내주지 않았구나.
푸스탄트는 생각 했다.
“뭐...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어쨌든... 많이 보고 싶었다고, 할배.”
“아니, 강현아, 너는 이미 나의 가르침이 필요 없어진 모양이구나.”
“... 할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가르침이 필요 없다니.”
“뭘, 이미 너는 원수를 용서하고 기회를 주지 않았더냐.”
“레이까지 알고 있는 거야?”
하늘에서 푸스탄트가 자신을 지켜봐주길 바랬던 강현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비록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전부 보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맞는 짓을 한 건지. 그렇게 호구같이 살아서 뭘 얻을 수 있는 건지.”
“그래, 그렇겠지. 너는 왜 나를 죽인 원수를 용서해준 것이냐?”
“그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그럼 그 여인을 용서해주면서 너는 얻은 것이 없느냐.”
“... 뭐, 조금 뿌듯하기도 했는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럼 이미 모두 깨달은 것이 아니더냐.”
무슨 뜻일까.
강현은 고민했다.
푸스탄트는 이런 점이 항상 강현에게 있어선 불만이었다.
무엇을 알려주던 간 게 정확한 정답을 절대 말해주지 않고 항상 추상적인 힌트만 줄 뿐이다.
그렇기에 강현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 그냥 내가 알아서 하라는 거야?”
“뭐, 쉽게 말하자면 네 말이 맞겠구나.”
“하늘이 점지해준 운명은?”
“자신이 추구하는 선을 행하면 되는 것이지.”
15년 동안 강현은 푸스탄트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 세계를 방랑했다.
그가 사람을 고쳐쓸 수 있게 하는 힘이 무엇이며 그가 말했던 하늘이 점지해준 운명이란 것이 뭔지 알고 싶었기에.
그런데 이렇게나 간단한 거란 말인가.
신의 예언이라던가.
그런 판타지적인 요소를 기대했던 강현이었기에 솔직히 실망감이 없다 하면 거짓말 이리라.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선이라는 기준은 항상 제각각이다. 어떤 이에게는 악이, 어떤 이에게는 선이 될 수 있지. 내가 성인군자라는 과분한 칭호로 불리게 된 건, 그저 많은 이들의 입맛에 맞는 선을 나의 선으로 삼았기에 그런 거일뿐이지.”
“미래의 너는 나의 선을 호구 같은 짓이라고 자주 표현했더구나. 네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너에게 있어서는 나의 선은 완벽한 것이 아니겠지.”
항상 푸스탄트의 선을 봐왔던 강현은 종종 호구 같다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푸스탄트는 인자한 미소로만 대답했었고.
“그러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행동을 하라는 거잖아. 어차피 다 다르니까, 줏대 있게.”
“그래, 역시 나의 제자야. 총명하니 이 스승은 만족스럽구나.”
“총명은 개뿔.”
틱틱거린 강현이였지만 오랜만에 듣는 스승의 칭찬에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이미 나의 원수를 용서함으로써 제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지.”
“... 아니, 할배가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걸.”
그냥 푸스탄트의 뒤를 잇겠다고 했다가 평생 호구로 살았을 수도 있다.
강현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가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그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너는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자신만의 정의를 바로 세운 모양이구나.”
“... 응.”
“이 스승에게 말해보려무나.”
“난 할배랑 다르고 할배처럼 할 수도 없어. 죽어 마땅한 놈은 법대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길 바에는 죄인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할배가 틀렸다는 건 아니고. 할배는 사람을 고쳐쓸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지만 나한테는 없으니까.”
“끌끌... 그래, 그러면 됐다.”
“근데 이건 원래부터 내가 했던 말이잖아.”
“아니, 너에게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더냐. 확신의 유무,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지.”
그리고 푸스탄트는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여행은 같이 안 할 거야?”
“이 할배랑 더 같이 있고 싶은 게냐? 과거로 돌아와서 그런지 몸이 어려진 만큼 응석꾸러기가 된 모양이야.”
“뭔 헛소리야. 어이가 없네...?”
과거를 떠올린 강현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푸스탄트밖에 없던 이 세계에서의 어린 시절은 응석꾸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일을 의지했다는 건 사실이니.
“맷돌 손잡이를 말하는 게냐? 크크...”
푸스탄트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항상 위태롭고 순백의 백지장처럼 무슨 색으로도 쉽게 물들 수 있던 강현이 자신의 색으로 백지장을 물들였으니.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훌륭한 어른이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 참나.”
과거, 강현이 영화 속에서 봤던 대사를 따라한 걸, 이제는 푸스탄트가 하고 있었다.
인자하고 사려 깊은 노인네였지만 은근히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그였기에, 강현은 정겨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뭐, 할배가 또 어디 가서 암살당하면 안 되잖아? 내가 편히 늙어 죽을 때까지 지켜줘야지.”
“네가 나를? 그럴 힘이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거 같구나.”
고작 약제학 말고는 제주가 없는 강현이 반박할 수가 없었다.
노년의 몸으로도 삼십의 도적을 홀로 가뿐히 상대하던 푸스탄트였기에.
“... 진짜, 할배, 기분 좋은가 봐?”
“그럼. 무릇 제자의 성장은 언제나 스승을 기쁘게 하는 법이지.”
성장은 무슨, 강현이 불만스러운 듯, 툴툴거렸다.
그래도 무려 5년이다.
푸스탄트를 잃고 이 세계에서 그의 이름에 먹칠하는 제자가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성장한 것이 없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그래... 이제 슬슬 너에게 알려줘도 될 거 같구나.”
“알려준다고? 뭐를?”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지켜준다 하지 않았더냐. 당연히 검과 마법을 알려주는 것이지.”
“응...? 할배가 나한테 재능이 더럽게 없다면서 그냥 포기하라며, 그래서 안 했더니...”
푸스탄트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강현을 바라봤다.
변한 그의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뭔가 있음을 직감한 강현은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너에게 딱 한번 거짓말을 했었지. 미안하구나.”
푸스탄트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사과를 받은 강현은 당황하여 잠시 어쩔 줄 몰라했으나, 그의 거짓말이 무엇인지가 먼저였다.
“거짓말이 뭔데?”
“사실 너에게는 검과 마법에 꽤 재능이 있다, 나를 뛰어넘는 무서울 정도의 재능이.”
“... 진짜?”
20년 동안 동네 양아치보다 약했던 내가 사실은 재능충?
강현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래.”
20년 동안, 검과 마법의 판타지 속 세계로 와서 판타지다운 거라고는 하급 힐 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강현은 충격에 빠졌다.
“하늘에 맹세코 진심으로... 아니 어쨌든, 그럼 왜, 거짓말한 건데?”
“그건...”
푸스탄트가 말했다.
강현은 항상 위태로웠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며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는 자신의 정의를 확립시키지도 못한 채 힘을 갈망하기 시작했고 힘에 취해버린 강현이 잘못되는 것을 걱정했다고.
“... 할배 설마, 그 첫 번째 제자가...”
푸스탄트의 삶 속 유일한 후회.
“그래... 나는 두려워했었지.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보이는구나. 너는 이미 정의를 확립했고 용서하는 법과 참는 법을 깨달았으니. 그리고 새로운 힘도 얻지 않았더냐.”
“... 응.”
푸스탄트와의 재회로 인해 잊고 있었다.
스탯 창과 스킬창, 인벤토리까지.
“나한텐 힘이 필요해,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힘이.”
“무엇을 위한 힘이더냐.”
“그건...”
약자.
억울한 자.
후회하는 자.
나와 나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힘.
강현이 답했다.
“멋진 목표를 가진 힘이구나. 그럼 일단 너의 새로운 힘부터 확인해봐야 할 거 같구나.”
“아, 맞다. 그래야지.”
스탯 창, 스킬창, 인벤토리.
이 세계에 막 빙의하여 겪은 온갖 고생 속에서 희망을 담은 채, 하늘에 부르짖던 단어들.
그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 스텟 창.”
하지만 진지하게 외치려던 중, 순간 몰려오는 쪽팔림 때문에 말을 더듬은 강현.
다행히도 두 번 외칠 일 없이, 그의 눈앞에 스탯 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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