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회귀 (1)
* * *
뜨겁다, 꿰뚫린 곳이 가슴이 마치 불타오르듯 고통스럽다.
심장을 관통한 날붙이가,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강철이 너무나도 차갑다.
“무, 무슨...!”
생명의 빛이 급속도로 꺼져가기 시작하고, 강현은 털썩 주저앉았다가 엎어지고 말았다.
“쯔읏, 우리도 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러게 말 좀 잘 듣지 그랬어?”
“... 감당할 수...!”
“걱정 마, 우리가 아니라 산적이 죽인 걸로 하면 되니까.”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강현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미친놈들이라도 황실의 브로치를 가진 사람을 건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을 텐데.
‘산적...!’
자신들이 죽이고 산적이 한 것처럼 꾸밀 생각이라는 건가.
확실히 그러면 답도 없다.
나의 억울함을 입증해줄 증인이 없었으니.
안일함이 불러온 참상이었다.
푸스탄트가 죽고 이 오두막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악행이라곤 전혀 연관 없는 삶을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역시 레이를 들이지 말아야 했던 걸까.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오니 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가, 강현씨...!”
방 안에서 숨어있던 레이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섬뜩한 소리.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잘리며 피가 흐르는 소리.
평생 칼로 먹고 살아온 레이가 모를 수가 없었고 급하게 문을 여니, 강현의 심장에 구멍이 뚫려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아... 드디어 찾았네, 핏빛 칼날, 아가씨가 잡아오란다, 순순히 따라와라.”
레이를 발견한 기사는 이 개고생을 드디어 끝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제 아무리 검귀라고 하지만 막대한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읏...!’
드디어 이 개고생을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떠있던 것도 잠시.
등줄기를 타고 온 몸으로 뻗어나간 소름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엄청난 농도의 살기.
숨이 막히고 입이 열리지 않았다.
“무, 무슨...!”
“...”
레이는 죽어가고 있는 강현을 바라봤다.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상냥한 사람.
자신에게 유일하게 대가 없는 선의를 보여준 사람.
처음으로 자신을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를 준 사람.
다시 살아갈 이유를 준 사람.
그가 죽어가고 있다.
착해빠진 남자이자 자신의 은인이자 사랑... 하는 이가.
고작 자신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하, 하하...”
이뤄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자신은 버려졌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은인에게 유일하게 보은 할 방법이었으니.
그의 옆에서 평생 속죄와 보은의 삶을 살고 싶다.
주제에 맞지 않는 얄팍한 욕심으로 인해 또 한 번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째서. 왜 죽였어.”
지독할 정도의 무표정.
그 밑에 깔린 거친 파도와 같은 분노를 느끼지 못한 기사는 없었다.
“... 왜, 왜긴 네년을 숨겨주는 탓에 이 꼴이 난거지.”
“고작 그런 걸로. 차라리 날 죽였어야지. 강현 씨는 고작 그런 이유로 죽으실 분이 아니라고!”
표독스러운 외침.
이런 기분이었을까.
푸스탄트를 잃은 강현의 분노가.
아니, 몇십 년과 함께해온 스승이자 아버지를 잃은 분노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거다.
그런데도 이런 감정이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 죄송해요.”
강현은 저들을 용서할까.
푸스탄트는 저 기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까.
자신에게 준 것처럼.
모르겠다.
하지만 레이는 그럴 수 없었다.
혹시 몰라 강현이 마을에서 사다 준 조잡한 롱소드를 손에 들었다.
“하, 우릴...!”
기사가 단 2글자를 말하는 사이.
푹, 슈욱...!
그의 목이 절단되어 피로된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레이가 든 롱소드는 푸른색의 검기가 아닌, 생력을 사용한 붉은색의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안되는데...’
꺼져가는 생명의 불.
흐릿해져 가는 시야.
그 안에서 강현은 망가진 생력을 소모하고 있는 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레이의 얼마 남지 않은 명줄이 타들어가는 것이 더욱 가속되었다.
레이가 두 번, 칼을 휘둘렀다.
너무 놀란 탓에 굳어있던 기사들도 먼저 간 기사와 똑같이 목이 절단되고 즉사했다.
“... 강현 씨...!”
검을 내팽개친 레이는 강현의 앞에 무릎 꿇었다.
쉬지 않고 피가 뿜어져 나오는 상처를 양손으로 짓눌렀지만 꿰뚤린 심장이 돌아올 수는 없었다.
“선반... 편지랑 쪽지를 가지고... 커헉... 셰르니아 공작가로...”
“마, 말하시면 안 돼요...! 제가, 제가 어떻게든...!”
레이의 다급한 외침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살아, 무조건... 커헉... 속죄... 하면서 산다며.”
“강현 씨! 강현 씨...!!”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내 모든 말을 전한 강현.
그의 눈 속 빛이 점차 사그라들었고 점차 눈이 감겨 갔다.
레이는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외쳤지만.
그는 죽었다.
“아, 아아... 안돼...! 강현 씨..! 일어나요...!”
눈물을 쏟은 레이.
죽어야 했던 건 자신이었음에도 강현이 죽어버렸다.
역겨운 몰골을 봐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았던.
분노를 참아내고 상냥하게 대해주었던 성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다니.
그의 선행은 이 세계 모든 이들이 알고 푸스탄트처럼 칭송받아야 마땅한데.
“셰리일...! 셰릴!!!”
강현.
간신히 찾은 삶의 이유.
전부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레이에게 남은 유일하게 남은 것은 분노였다.
그녀는 곧장 셰릴이 있는 백 작가로 향했다.
핏빛 칼날을 토벌하려 했던 검성은 말했다.
그녀와의 전투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제정신을 차리기도 버거운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그녀의 진정한 힘은, 생명을 포기한 순간 붉은빛으로써 나타난다고.
그것이 레이.
핏빛 칼날이자 검귀라고 불렸던 이유였으며.
그날, 하우로스의 백작가의 명맥이 끊겼다.
∴
백작가의 저택 모든 기사들을 죽이고 셰릴까지 죽여버린 뒤, 오두막으로 돌아온 레이.
“죄송해요...”
다짐했다.
다시는 검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고.
소망했다.
허락만 해준다면, 평생 강현을 위한 삶을 살고 그를 위한 검과 방패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준 기회와 삶을 절대 헛되이 쓰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전부 무너졌다.
강현이 죽음으로써.
“... 어째서...!”
모든 생력을 소모하고.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1분조차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레이는, 통곡했다.
“죄인인 나에겐 그가 기회를 줬는데...!”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이는 아무도 없는 건가.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
나쁜 놈이 더 잘 산다.
흔해빠진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하늘에 신이 있다면 그런 잘못된 세상은 고쳐야 하는 게 아닌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흐윽, 흑... 강현 씨... 죄송해요... 죄송, 해요...!”
그에게 고맙다는 말 한번 전하지 못했다.
항상 그의 노력을 비관해오기만 했다.
그에게 받은 것에 비해, 아직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레이는 싸늘한 주검이 된 강현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연신 사과의 말을 뱉었다.
할아버지가 말했어. 자기도 과거를 후회하고 새로운 기회를 원한다고. 그래서 남들한테 먼저 베푸는 거래. 자신이 먼저 베풀면 신이 알아주고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해서. 농담으로 한 말인지 진심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웃기지도 않아, 안 그래?
문득 아까 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과연 신을 강현을 알아줬을까.
그리고 그에게 기회를 줬을까.
“만약...”
신이 그에게 기회를 줬다면, 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을 찾아주길 소망했다.
“그러면 제 모든 삶을 당신께 바칠 거예요. 당신은...”
상냥하고, 멋진 분이니까.
하지만 그 말을 모두 하기 전에 레이는 강현을 끌어안은 채, 차갑게 죽어갔다.
∴
“착하게 살았는데, 이게 뭔 꼴이냐.”
억울해 뒤지겠네.
강현은 생각했다.
20년 동안 착하게 살겠다고 개고생만 했는데 결국 죽어버렸다.
“것보다 여긴 어디지.”
검은 공간이었다.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어둡고 드넓은 공간.
이상한 감각이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지, 앉아있는지, 누워있는 지 분간이 되지 않고 고개를 숙여도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는 건지도,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검은 공간을 눈뜬 채로 보고 잇는 건지도.
무엇하나 확신하기 애매한 감각이었다.
“사후세곈가? 아무도 안 계세요?”
방금 전, 칼을 맞고 죽었으니 사후세계 같은 건 없을 거라 믿었는데, 아마 사후세계라고 생각하는 게 그나마 합당한 판단 이리라.
강현은 자기가 천국으로 가지 못하면 신이랑 생사결의 결투까지 벌이기로 결심했다.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장난 섞인 망상과는 달리, 글씨가 적힌, 순백의 창이 나타났다.
흡사 게임 속이나, SF영화에서 볼법한 홀로그램과 같은.
“이건...”
이 세계에 막 전생했을 때, 그렇게 간절히 외쳤던 게 아니던가!
강현이 잠시 기뻐했던 것도 잠시.
다시 우울해졌다.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나타나면 뭐하냐.”
이 세계에서 20년 동안 살았고 이제 막 뒤져서 여기로 왔다.
근데 튜토리얼이 지금 끝난 거면...
“응? 설마...”
지금까지의 인생이 튜토리얼이고 이제부터 본 게임의 시작이라는 뜻일까?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 진짜로?”
그 말은 즉, 다시 살아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당연히 해야지.”
[새로운 게임이 시작됩니다.]
[튜토리얼 보상이 정산됩니다. 이후, 인벤토리와 스텟 창, 스킬창을 통해 확인하십시오.]
[※주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 뒤, 사망할 시, 게임오버가 되어 사망합니다.]
다시 한번 더 알림 창이 나타나고 그 알림 창의 내용을 전부 읽은 순간, 강현의 의식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눈을 떴다.
하늘에서는 따듯한 햇빛이 내리쬐여 자신을 감싸주고 있었고 뒤통수에서는 딱딱하지만 포근한 피부의 감촉이 느껴졌다.
“일어났느냐.”
익숙한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상냥하면서도 중후한 목소리.
“세상 편한 표정으로 자더군. 어서 일어나거라. 갈 길이 멀었으니.”
“하, 할배...!?”
천천히 눈을 뜬 강현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길게 자란 흰색의 턱수염과 자글자글한 주금이 내려앉은 얼굴.
검은 동공과 백색의 머리카락.
마치 동화 속 신선이 떠오르는 노인네.
“하, 할배...! 살아있어, 할배가...!”
몇 년만일까.
5년 정도다.
5년 동안 단 하루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할배...? 그게 무슨 말버릇...”
“그,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스승님...!”
“...”
반가움. 행복함과 기쁨. 죄송함.
벅차오르는 감정은 결국 억누르지 못해 강현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깨닫고 푸스탄트에게 인사했다.
5년이나 밀렸던 인사.
“어찌 그리 슬피 우는 것이냐. 간밤에 무서운 꿈이라고 꾼 게냐?”
“예...! 너무 외롭고 힘들었던 꿈이었습니다...!”
자신의 은인이자, 아버지, 스승이었던 푸스탄트를 다시 만나게 된 강현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의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쏟았다.
“슬피 울지 않아도 된다. 내가 옆에 있지 않느냐. 외로워하지 말고 두려워할 거 없다.”
∴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차가운 땅바닥과 맞닿은 발에서는 냉기가 느껴졌고 왼손에는 무거운 단검이 들려져 있었다.
“자, 잘못했어...! 다시는 안 건들 테니까, 제발 살려줘...!”
누추한 꼴을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채 삶을 구걸하고 있다.
“여긴...”
익숙한 장소였다.
끔찍한 어린 시절을 선사해준 어두운 뒷골목이었으니.
그리고 레이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소년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자기보다 1살 많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자신을 때리던 소년.
이 장면, 레이는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살인을 한, 처음으로 죄를 저지른 순간이었으니.
‘설마, 과거로 돌아온...’
낮아진 눈높이.
단검 하나 들기도 벅찬 저질체력.
과거에서 봤던 장면.
레이는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음을 확신했다.
그 말은 즉.
‘아직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건가...?’
레이는 마음속으로 환희했다.
후회했던 과거의 죄들을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과거로 돌아온 것이니.
‘그렇다는 말은.’
푸스탄트를 죽이지 않았다.
강현이 분명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