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죄인과 약사 (3)
* * *
강현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가 즐겨하던 페론티아 온라인이라는 이름의 야겜이다.
플레이타임, 4600시간.
2년 동안 4600시간을 플레이하며 그는 게임 속 모든 정보들을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중요도가 있는 정보들을 기억하고 있다.
처음 레이의 이름을 물어본 강현은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놀랐다.
핏빛 칼날이자 대륙 최강의 검, 검귀라고 불리던 여인이 있었다.
그가 했던 야겜 속에서 등장하는 중간보스.
그녀와 동료가 되거나 격파했을 때 본명을 알 수 있게 되는 캐릭터였다.
레이.
성은 없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강현은 혹시나 싶었다.
하지만 레이라는 이름이 희귀란 것도 아니고 흔해 빠진 이름이다.
혹시나 싶었지만 가능성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확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가 말한 삶을 들었던 강현은 그녀가 핏빛 칼날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속 스토리에서 봤던 레이의 삶과 정확히 일치했으니.
“너, 핏빛 칼날이지?”
레이의 동공이 격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강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감각을 느낀 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매스꺼움을 간신히 참아냈다.
“네, 제가 푸스탄트를 죽인 핏빛 칼날이에요.”
담담하게.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든 전부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레이가 대답했다.
“하, 하하... 이게 말이 돼? 기껏 사람 하나 살리겠다고 데려왔더니, 그게 우리 할배를 죽인 씹새끼라고?”
차오르는 매스꺼움과 두통, 분노, 원한, 원망, 살의.
어두운 감정들이 쉴 틈 없이 부풀어 오르며 한 곳에 뭉쳐 섞이기 시작했다.
강현의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레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난 눈물 흘릴 자격조차 없어.’
자신의 죄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레이다.
용서를 구할 생각도 없고,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더 이상 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다.
버려주길, 아니면 직접 죽여주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 왜 그랬어. 왜 우리 할배를 죽였냐고. 착해 빠져서 원한 살 곳이라고는 없었던...!”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 세계에서 노예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죄를 지은 노예.
전쟁에서 패하여 사로잡혀온 노예.
불법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노예.
앞에 2개는 합법적인 노예다.
하지만 3번째,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노예가 된 이들을 구하고자 한 푸스탄트는 황실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어느 날, 탄원서에 대해 따지기 위해 찾아왔던 노예를 취급하는 한 상단의 상단주가 있었다.
“노예상이 의뢰했냐?”
원한 살 곳이라고는 그곳밖에 없었다.
그리고 레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고, 강현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지금 백작가에게 쫓기고 있으니 그들에게 돌려주어 보상금을 받으셔도 괜찮습니다. 길거리에 버려도 괜찮고 직접 죽이셔도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격해지는 감정과 흘러넘치려는 눈물을 최대한 삼킨 레이가 천천히 말했다.
“아니지... 혹시 그런 거야? 너도 노예니까 그들이 억지로 시킨...”
“아뇨, 돈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노예도 아니었고 의뢰를 받았던 암살자였죠.”
“완전 개새끼네? 그래 놓고 뻔뻔하게 내 치료를 받고 있었던 거야?”
“...”
뻔뻔하다.
정확한 표현이다.
말하고자 했지만 선뜻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 그를 기만했다.
“... 돈은 왜 필요했는데.”
“...”
“대답해. 너한테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그리고 레이는 대답하기 시작했다.
굶어 죽기 싫어 먹었던 벌레들과 쥐, 음식물 쓰레기가 역해서.
매일같이 자신의 몸을 노리던 뒷골목의 거지들이 무서워서.
추운 겨울, 추위가 따스함으로 느껴질 때마다 몰려오는 피곤함이 두려워서.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어서.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돈을 위해선 그 어떤 악한 만행이라고 물불 가리지 않았다고.
“...”
그녀의 말은 강현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
추운 겨울.
푸스탄트의 돈을 훔치다 걸린 날, 그가 강현에게 왜 돈을 훔치려 했냐는 물음에 답했던 말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복수를 해야 할까.
그녀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지금 당장 독을 먹이고 칼로 찌르면 저항조차 하지 못할 거다.
직접 손을 쓰기 싫다면 밖에다 내다 버려도 된다.
이 추위 속에서 하룻밤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일단 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강현은 레이에게 항상 그랬듯이 수면제를 먹여주며 말했다
“... 네.”
레이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한 채.
∴
다음 날 아침이 찾아왔다.
수면제 덕에 잠들었던 레이는 눈을 뜨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자신이 침대 위에 그대로 누워있단 사실에 놀란 그녀는 한심하게도 쓸쓸함을 느껴버렸다.
항상 자신이 눈을 뜨기 전에 옆 의자에 앉아 일어나길 기다려주던 강현이 없었기에.
‘뻔뻔하네요.’
양심을 갖다 팔았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리라.
따듯한 목소리로 몸은 어떠냐고, 물어봐주는 그의 한마디가 너무나도 그리웠으니.
‘인기척.’
오두막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강현의 인기척.
그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이는 기쁘다는 감정을 느껴버림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잠시 뒤 방문이 열리고 강현이 들어왔다.
“... 어째서죠.”
“... 뭐가.”
그의 손에는 떫은 냄새가 나는 나무 그릇이 들려있었다.
“저는 당신에게 있어서 찢어 죽이고 싶은 스승의 원수가 아닌가요. 그런데 어째서 평소처럼 약을 들고 오시는 건가요.”
“... 불만이냐?”
“아뇨...”
차가워진 목소리는 폭풍전야 같았다.
언제든 거센 폭풍이 휘몰아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억누른 분노가 느껴져 왔다.
“일단 먹어.”
“아뇨, 먹을 수 없어요.”
“먹으라고.”
거칠게 레이의 입을 벌린 강현이 약을 그녀의 입으로 흘려보냈다.
결국 약을 삼켜버린 레이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죠...! 그냥 저를 버리고 죽여주세요. 저는 이런 상냥함을 받기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소리치는 레이의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죄책감.
오직 죄책감 단 하나였다.
“... 한 남자가 있었어.”
강현의 뜬금없는 말에 당황한 것도 잠시.
따듯한 손길로 눈물을 훔쳐주는 것에 이뤄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져 왔다.
“그 사람은 기사가 되고 싶었데, 어린 시절부터, 몬스터한테서 마을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있고 싶어서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항상 검만 휘둘렀다고 하더라.”
“그게 왜...”
“그리고 그 남자는 시간이 흘러서 마을의 자랑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검사가 됐다고 했어, 한 남작가에서 그를 눈여겨보고 자신의 기사로 삼고자 했고. 마침 그가 살던 마을을 지키던 기사가 공석이었거든.”
십여 년 전, 푸스탄트와 세계를 부랑하며 있었던 일을 말하는 강현.
그 와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나도 그리워져 목이 벅차올랐지만 참아냈다.
“마차를 타고 남작가 저택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에 놀란 말 때문에 그 남자가 타고 있던 마차가 뒤집혔고 그는 사고 때문에 한쪽 발을 잃었데. 그 뒤로 그 남자는 누구나 기피하는 쓰레기가 됐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아내를 때리고 그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술과 도박에 빠져 사는 쓰레기가.”
역겨운 사람이었다.
강현은 그런 놈들이 너무 싫었다.
“푸스탄트는 그 남자한테 말했어. 술과 도박을 끊고 올바른 청년이 되어 아내와 다시 화목한 가정을 꾸리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기사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렸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으로써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너는 어떻게 됐을 거 같아?”
“...”
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남자는 변했어. 자신이 사랑한 아내의 손에 박힌 굳은 살과 몸 곳곳에 생긴 멍을 보고. 옛날과는 달랐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분노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끼고.”
“농사일을 도우면서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했고 하루같이 귀족 집 아가씨 모시는 것처럼 아내를 모셨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지난날을 용서해주기로 했었지.”
“난 항상 이렇게 생각했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라고. 하지만 푸스탄트 할배는 나한테 결과로 보여줬어. 사람은 고쳐쓸 수 있다고.”
“... 그렇다고 저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제가 올바른 삶을 산다 해도 당신의 분노가 풀릴 일은 없지 않나요.”
당연하지.”
그 말대로, 강현은 당장에라도 레이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푸스탄트는 그에게 있어서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생명의 은인이자, 많은 것을 알려준 스승, 힘들 때마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돈을 노렸던 도적, 산적, 도둑. 전부 푸스탄트는 용서 했어. 그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어 올바른 삶을 살아갈 방법을 알려줬고.”
꽤 있었던 일이다.
푸스탄트는 힘을 숨기고 살았다.
검과 마법. 엄청난 수준의 실력자였던 그를 노렸던 도적과 산적들은 언제나 푸스탄트에게 소탕당했다.
이 세계에서 그런 놈들은 곧장 처형당했지만 푸스탄트는 그들을 풀어주고 용서해주었다.
“죄지은 자들에게 사과할 법과 속죄할 방법을 알려줬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절대 안 되지. 나는 그 놈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살 거라고 확신해서 사람들을 고용해 그놈들 뒷조사를 했어.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런데 푸스탄트한테 용서받고 기회를 받은 놈들이 제대로 살더라고, 막노동, 모험가, 농사. 번듯한 일을 하면서.”
“... 난 아직도 푸스탄트의 생각이 틀렸다고 확신하지만 내 생각이 맞았던 적은 없었어.”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레이가 물었다.
“난 너를 용서 못해. 하지만 할아버지였다면 너를 용서했겠지.”
“그래서 지금 저를 살려주신 다는 건가요?”
“... 그래.”
밤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푸스탄트는 말했다.
만약 눈앞에 곤경에 처한 이가 있다면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든 간에 반드시 도와주라고.
그런 사람들에게 절실한 건, 새로운 기회라고.
세상 편한 생각, 사상이었지만 푸스탄트만큼은 가능했다.
그는 사람들을 갱생시키는 정체불명의 신비한 힘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강현은 그와 다르다.
하지만 레이가 죄를 저지른 사람은 강현이 아닌 푸스탄트.
그러면 분명 레이를 용서해주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을 거라 확신했기에.
이 생각들을 레이에게 전했고 레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네가 어떤 사람을 죽인 건지 알겠어? 할배는 고작 돈 때문에 죽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라고.”
“죄송... 합니다...”
“이게 내 복수야, 어떻게든 살아. 그리고 평생 그 죄책감을 가지고 살라고. 죽음으로 편해질 수 없을 테니까.”
레이는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단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죽고 싶어 하던 그녀가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된 순간이었다.
‘이거면... 충분해.’
만약 푸스탄트와 만나지 못했더라면 레이 같은 삶을 살았을 거다.
그런 그에게 구원받고 뒤를 부탁받은 강현으로썬, 그의 의지를 실현시키기로 했다.
만약 자신이 레이를 용서한다면 그녀는 사악한 중간보스가 아닌 평범한 인생을 살지 않을까, 강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오두막의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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