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죄인과 약사 (2)
* * *
“하아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아침이 찾아오고 따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기상 직후 공복을 느낀 강현 눈의 정령석을 사용하여 만든 간이 냉장고를 뒤졌다.
“수프나 먹을까.”
마을에서 포장해온 닭고기 수프.
아침으로는 제격이다.
통에 담아뒀던 수프를 냄비로 옮겨 불 위에 올렸다.
고소한 냄새가 점점 코를 간지럽히기 시작할 때쯤.
“아, 맞다.”
어젯밤에 주워온 한 여인을 기억해낸 강현은 황급히 불을 끄고 그녀를 재워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뭐, 뭐야...!”
분명 침대 위에서 곤히 잠에 들어있어야 할 여인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채로 있었다.
“와, 왔나...”
말을 하는 걸로 봐서는 살아있다.
그 사실에 안도한 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뭐해요. 아니, 어이가 없네. 당신 수면제 먹었잖아요. 그거 먹으면 24시간은 자게 되는 데 무슨 괴물이야?”
“괴물... 그래, 그 말이...”
괴물.
그 말이 이렇게나 어울릴 수 있을까.
평생 죄지은 삶.
추하기를 넘어서 역겨운 몰골.
괴물이라는 말이 적격이었다.
“하아... 분위기 잡지 말고, 일어설 수 있어요?”
“...”
스윽, 강현의 시선을 피한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 설마, 거기서 얼마나 있었던 거예요...?”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만, 새벽에 네가 잠시 나갔다 들어올 때 일어난 뒤로 계속 이 꼴이었다.”
“혹시 일어나려고 용쓰다가 굴러 떨어져서 지금껏 여기에 있던 거예요?”
끄덕끄덕, 레이가 대답했다.
귀가 살짝 붉게 달아오른 걸로 봐서는 부끄러움을 알긴 하는 모양이다.
“에휴.”
강현은 레이를 번쩍 들어 침대 위로 올린 뒤 다시금 맥을 짚었다.
‘... 겨우 이 정도라고...?’
금별초와 말린 미노타우로스의 심장의 효력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다.
죽음의 문턱에 걸치고 있던 이도 살려낼 정도의 효과가 입증된 재료들인데.
“혹시, 서클을 파괴당한 거예요...?”
약을 먹어 좋아지긴 했다만 원래 보여야 할 결과에 비해 반의 반도 못 미친다.
마나는 불안정하여 불규칙적으로 신체를 순환하고 있으며 심장에서 느껴지는 생력이 더욱 약해진 것이 느껴진다.
“... 난 어차피 죽는다. 네가 아무리 실력 있는 의사라 해도 서클이 망가진 이상 어쩔 수 없지. 큽... 지금이라도 나를 갖다 버려라...”
서클이 파괴된 이상, 강현도 손 쓸 방법이 없다.
마나의 저장소 역할을 해주는 서클은 기본적으로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힘인 생력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즉 서클이 파괴되었다는 건, 심장의 생력에도 지장이 갔다는 뜻, 이건 약으로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기적이라 불리는 마법, 그것도 최상급의 치유 마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강현은 마법엔 재능이 없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노예의 신분으로 서클이 있고 이런 꼴이 된 거예요...?”
“... 말해줄 수 없다.”
자신이 누군지 말한다면 강현은 당장 자신을 내버릴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답하려는 순간.
혹시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하아... 진짜로 죽고 싶어요?”
“... 그래.”
질문에 망설였다.
강현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 치고 있네.”
“거짓말이 아니...!”
“됐어요. 당신이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데, 전 죽어가는 사람을 내칠 만한 용기가 없어서요.”
“객기다. 오만이다.”
“이 사람 봐라. 안 되겠네. 이거 봐봐요.”
그가 자신의 옷 밑에 넣어뒀던 펜던트를 꺼냈다.
금색에 에메랄드가 박힌 아름다운 펜던트.
그리고 그 위로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푸스탄트.
성인군자라 칭송받던 이.
의뢰를 받은 레이가 암살했던 이.
“후후... 놀랐죠? 뭐 다들 보여주면 놀라더라고요. 그분한테 제자가 있었냐면서.”
“서, 설마...”
“예, 제가 그 잘난 푸스탄트 할아버지 제자거든요? 그러니까 조금만 버텨봐요. 죽기 싫잖아. 내가 어떻게든 살려 들릴 테니까.”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된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돈을 위해 암살했던 푸스탄트의 제자가 지금 와서 나를 살려주려 하다니.
레이는 절망했다.
“아, 아니. 난 죽어야 한다. 어차피 시간만 질질 끌뿐, 결국 불가능한 걸 알고 있지 않나.”
속죄다.
염치다.
일말의 양심이다.
푸스탄트의 제자인 그에게 은혜를 입어선 안된다.
그에게 은혜를 입는 것 자체가 추악한 죄악이기 때문에.
“제가 살던 곳에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따듯하고 굳은살이 느껴지는 손이 머리 위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마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테니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상냥한 말에 따듯한 손길에.
결국 레이는 죄를 저질러 버렸다.
∴
“뭐, 좀 멋지긴 했나 보네.”
메밀 죽을 먹은 뒤 레이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방에서 나온 강현은 스스로 만족했다.
얼마나 감동했길래 저렇게 눈물을 펑펑 쏟는 걸까.
딱 봐도 기가 더럽게 세 보였는데.
이 맛에 착한 일 하고 사는 거라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하아... 어떻게 해야 하냐.”
일단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생력을 치유하는 법은 계속 연구 중이었지만 그렇다 한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던 중.
“앞으로 길어봐야 1달일 텐데.”
지금처럼 약을 먹이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다 보면 1달은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녀의 괴물 같은 회복력과 생명력까지 계산해서.
하지만 생력에 관한 연구는 벌써 5년째다.
그동안에도 그렇다 할 성과가 없었는데.
1 달이라는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 일단 약부터 다시 팔아야겠네.”
과한 제물을 탐하지 말라했지만 레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값비싼 약초들과 약에 사용할 부산물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으음... 여기가 제일 잘 쳐주니까.”
강현은 서랍장 안에 보관해뒀던 마법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통신 스크롤.
당장 금화 50닢이 가볍게 넘어가는 이 세계 버전 문자 메신저다.
연결된 상대는 수도 근처의 넓은 초원을 다스리는 공작가의 가주였다.
혹시라도 약을 판매할 생각이 있다면 얼마든지 연락을 달라며 강현에게 이 스크롤을 건네주었었다.
강현은 짧고 간결하게 스크롤에 글씨를 적어 내렸다.
약 팝니다. 비싸게 부르면 독점적으로 판매해드림.
답장은 1분조차 지나지 않았다.
공작가의 가주는 당연히 수락했다.
그리고 강형은 최선을 다해 레이를 치료해주었다.
그녀의 본명을 듣기 전까지.
∴
1주일이 흘렀다.
“먹어봐요.”
자신을 강현이라 칭한 남자는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사람이었다.
끈질김만큼은 어디 가서 절대 밀리지 않는 다 자부하던 레이도 그의 앞에서는 한수 접어야 할 거 같았다.
하루 세 번.
매일같이 새로운 약을 달여왔다.
목을 넘기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약에 사용된 재료가 값비싼 재료들이라는 것을.
“뭐 때문에 내게 이렇게 까지 해주는 건가요.”
아직 날이 서있긴 하나, 이전의 딱딱한 말투가 아니다.
조금 더 편해진 말투.
의사소통이 수월해져 강현은 기뻤다.
“나도 몰라.”
“그게 무슨...”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푸스탄트 할배의 제자가 됐던 거거든. 결국 알지 못하고 할배가 죽어버렸지만.”
“읏...”
“참나. 난 진짜 괜찮다니까? 계속 그렇게 괴로운 표정 지으면 내가 죄지은 거 같단 말이지.”
“그, 그게...”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하지만 선뜻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대가 없는 선의.
마지 악마의 유혹만큼 달콤했기에.
“실은...”
“약효는 좀 어때.”
항상 이런 식이다.
말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뭇거리다가 결국 때를 놓쳐버린다.
레이는 자신을 자책하고 지난날을 후회했다.
동시에 안도했다.
“힘이 좀 돌아오는 거 같지만...”
말을 끊은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강현은 그녀의 맥을 짚었고 생력은 전혀 치유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 그냥.”
“시끄러워. 또 포기하라는 말 하려고 그러는 거지? 진짜 질리지도 않냐?”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당신이 더...”
“... 아직 몰라.”
생력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을 법한 약초와 부산물들은 이미 전부 실험해봤지만 결국 효과가 없었다.
생력,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근원.
고작 제약술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인 걸까.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네요.”
“응, 그러니까 날 포기시키려는 건 포기해. 그게 편해. ”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강현이다.
푸스탄트를 처음 봤던 골목길에 쓰러져 있던 것이 레이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푸스탄트가 그녀를 부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는, 너무 많은 죄를 저지르며 살아왔어요.”
“... 대충 예상은 했어. 이 세계에서 도망치는 놈이 죄지 은 놈 말고 더 있나.”
“후후... 크읍... 그렇죠.”
“아프면 무리해서 말하지 마. 조금만 기다려봐, 진통제 가져다줄 테니까.”
레이는 환각 나무 수액을 달이기 위해 병상 옆 의자에서 일어난 강현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 으니까, 들어주실래요?”
“하아... 잠깐이면.”
레이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차마 푸스탄트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노예였지만 도망쳤다.
뒷골목의 거지로 살아가던 중, 온갖 범죄에 손을 댔고 동료들을 팔아넘겼으며 도망자가 되었다.
역겹고 따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도 죽였어?”
“예, 선량한 사람. 악한 사람, 모두 죽였어요. 돈을 위해서. 지금도 절 살려주고 싶으신가요?”
“하아...”
강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난 너 같은 놈들이 역겨워.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고.”
“...”
이런 반응이 나와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했던 말.
하지만 충격은 더욱 컸다.
지독하리만치 이기적이고 독종이었다.
하지만 상냥하고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던 그였기에
“너, 핏빛 칼날이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지고 눈에 보이던 세계가 암전 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