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죄인과 약사 (1)
* * *
길바닥에 웅크려있던 추한 몰골의 여인은 강현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 맙소사.”
그녀의 상태를 살펴본 강현은 경악했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태였다.
‘고문의 흔적...’
몸 곳곳에 있는 상처는 고문에 의한 상처인 것을 확인한 강련은 덮어주었던 로브를 들치고 뒷목을 확인했다.
뫼비우스의 띠가 연상되는 모양의 낙인.
‘도망 노예...’
아무래도 질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서 도망쳐 나온 노예임이 분명했다.
도망 노예는 발견한 즉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상처 입은 자를 보고도 지나친다면 하늘에 있는 푸스탄트에게 미안할 일이겠지.
강현은 곧장 그녀를 들쳐 매고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어디 보자...”
여인의 맥을 짚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맥박이 약하고 마나 순환이 너무 느려.’
맥을 짚어봄으로써 여인의 체력이 거의 바닥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별초랑... 심장이... ”
천장에 보관해뒀던 약초와 메밀 미노타우로스의 말린 심장을 꺼낸 강현은 절구에 3가지의 재료를 모두 넣은 뒤 곱게 빻기 시작했다.
노란색의 별 모양이 특징인 금별초.
원기회복과 진신 대사를 촉진시키며 미노타우로스의 심장은 체력을 북돋아준다.
삐쩍 마른 몸을 봤을 때, 한동안 제대로 식사도 못한 모양.
위가 놀라지 않도록 가능한 부드럽게 먹이기 위해 최대한 곱게 빻은 뒤, 아주 살짝 끓인 따듯한 물과 섞어 그녀의 입속으로 조금씩 흘려보냈다.
“힐.”
마법에 재능이 아예 없는 강현.
사용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하급 수준의 힐이 전부였지만 약의 흡수를 돕고 잔 상처들만은 치료할 수 있었다.
“피도 부족하네.”
수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수혈팩도, 보관할 냉장고도 기술도 없었기에 다시금 약초를 찾기 시작했다.
피선화.
피를 머금은 채 피어난 꽃으로 혈액 생성에 도움을 주며 출혈되는 혈액의 응고를 도와주는 꽃.
생으로 먹었다가는 독에 중독될 수 있다.
5분간 끓는 물에 데친 후, 10분 동안 건조시켜 먹어야 한다.
침에 한번 녹은 후, 위액에 한번 더 녹아야 제대로 된 효과를 줄 수 있으니.
“... 살려주려 하는 거니까 원망하진 마세요?”
하지만 척 보기에도 피선화를 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깨달은 강현은 직접 피선화를 자신의 입에 넣어 잠시 동안 씹은 후, 그녀의 입에 넣고 생수를 조금 흘렸다.
목울대가 움직이며 꿀꺽꿀꺽 삼시 큰 소리에 약을 모두 삼킴을 확인했다.
일단 바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해두었다.
이제 몸 곳곳에 입은 상처만 치료해주면 응급처치는 완료.
“할배, 이런 놈들은 갱생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라니까. 이걸 보면 뭐라고 했을까. 에휴...”
강현은 푸스탄트와 달랐다.
모든 이들은 선하며 상황으로 인해 악해진다는 성선설을 믿는 푸스탄트는 용서와 기회로써 선한 사람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지겹도록 말했다.
하지만 이 꼴을 봐라.
피부를 도려내고 칼로 찌르고 손톱과 발톱, 이빨을 뽑았으며 피부가 녹아내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놈들이 고작 용서와 기회로 선한 사람으로 갱생된다고?
웃기지도 않았다.
붕대를 꺼내와 출혈된 곳을 감싸는 동안 오른 다리와 왼쪽 팔의 뼈가 부러진 것을 확인 한 강현은 부목을 꺼내 팔과 다리에 고정시켰다.
“뼈,.. 뼈는 뭐가 좋더라...”
골절, 탈골, 염좌, 골다공증.
증상마다 더 좋은 효과를 보이는 약초는 재각각이다.
잠시 기억을 되짚은 뒤, 선반에 보관해둔 백갈치의 잔뼈를 꺼내와 다시 한번 곱게 다져 물에 희석한 환각 나무 수액과 섞었다.
백갈치는 온 몸이 백색이며 성인 남성보다 거대한 갈치의 한종류로 그의 뼈는 단단하여 화살로 애용되며 곱게 빻아 먹을 시, 뼈가 다시 붙는 데에 도움을 준다.
환각 나무 수액은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열매를 맺는 나무에서 재취한 수액이다.
미량의 수액을 물에 희석시키면 진통제로 사용하기 알맞다.
다시금 그녀의 입으로 흘려보낸 뒤, 기본적인 응급 처치가 끝났음을 확인한 강현은, 오두막이 자리 잡은 산에서 약초를 채집하기 위해 집에서 나섰다.
손톱과 피부가 다시 돋아나는 것을 돕는 약초를 찾기 위해서.
아마 이 산에선 전부 구할 순 없을 테니, 마을에도 다녀올 예정이다.
∴
너 때문이야.
다 네 업보라고.
넌 당연히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쓰레기잖아?
이제는 아무도 네 옆에 있으려 하지 않을걸.
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웅크려고 수없이 많은 목소리가 질타해온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미안, 미안해요. 그, 그만...!’
어두운 공간 속에서 소리를 치며.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내 쉬며 꿈에서 깨어났다.
“으윽...”
그와 동시에 전신을 엄청난 고통이 덮쳐왔다.
모든 손가락과 발톱.
얼굴과 피부.
부러진 뼈와 베인 상처들까지.
“... 여긴...”
흐릿한 기억과 툭툭 끊기는 사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그녀, 레이는 주변을 살폈다.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무엇이지.
약초 냄새였다.
온몸을 감은 흰 천은 무엇이지.
붕대였다.
그리고 여긴 어디지.
창문 너머로 무성히 자란 나무와 나른한 햇빛이 이따금씩 흘러들어오는 오두막이었다.
흐릿한 기억을 되살려봤다.
분명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쫓기다 간신히 살아나 눈이 쌓여있던 골목길 사이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 으윽...”
레이는 자신에게 가죽 코트를 덮어주었던 남자가 이곳에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목을 돌리던 중, 엄청난 고통이 다시금 몰려와 침대에 쓰러졌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오랜 고문과 추격전, 수없이 많은 전투.
그 여파는 고스란히 몸에 전해졌지만 그는 검귀라는 칭호로 불리던 여인.
자신의 몸상태가 정신을 잃기 전보다 훨씬 나아졌음을 직감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던 몸에 다시금 체력이 돌아왔고 부러진 뼈에서 느껴지던 고통 또한 훨씬 줄어들었다.
“숨어있다면 나와라... 끄윽...! 날 치료해준 목적이 뭐냐...!”
대륙 모든 땅에서 추격을 받던 때에 생겼던 현상금도 사라진 지 오래다.
백작가의 기사에게 붙잡힌 거라면 날 이렇게 치료해줬을 리가 없다.
당연히 남은 경우의 수는 그 낯선 남자 말곤 없었다.
하지만 레이의 외침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강현은 약초를 구하기 위해 오두막에서 나간 상태였으니.
“... 어째서... 왜...”
죽는 게 더 낫다.
혹한의 추위가 따스함으로 느껴지던 눈밭 위에서 잠들 수 있었다면 편히 죽을 수 있었을 텐데.
레이의 녹아내린 피부 위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죽지 못했다는 좌절감.
모순적인 두 감정이 한 대 뒤엉켜 그녀의 마음을 어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돌려 오두막에 들어온 이가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레이에게 그만큼 움직일 힘이 없었다.
“하아... 진짜 드럽게 힘드네. 무슨 절벽 한가운데에 있다냐.”
들려온 것은 한 남자, 강현의 목소리였다.
거친 호흡과 깊은 한숨을 내쉴 걸로 보아 고된 일을 하고 온 모양이다.
“어디보... 어...?!”
강현은 레이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1중일 동안은 계속 의식을 잃고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청난 회복력.
순간 강현은 레이가 평범한 노예가 아님을 직감했다.
“깨셨어요?”
“누구...”
삐적 갈라지고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목소리.
“누구긴, 당신 생명의 은인이죠.”
“은인...”
역시 이 남자가 날 구해준 거구나.
이 남자가 편히 죽을 기회를 앗아간 거구나.
레이는 생각했다.
“발목부터 무릎까지 싹 다 골절. 갈비뼈 11대 골절, 왼쪽 어깨뼈 박살에 심한 출혈, 내출혈, 그리고 각종 고문의 흔적에다가 깊게 베인 상처까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고.”
“알아봤자... 쓸데없어... 그냥 날 밖에다 버려...”
백작가의 추격을 받고 있는 몸.
이곳저곳에서 수도 없이 원한을 쌓아온 인생.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명에 위협이 생길 수 있다.
척 보기에도 세상 살기를 평화롭게 보는 남자, 생명의 은인에게 폐를 끼치며 삶을 마감했다가는 더 찝찝해질 뿐이기에.
“뭔 개소... 아, 못 들은 걸로 하세요. 지금 저보고 환자를 버리라는 거예요? 뭔 말 같지도 않은...”
무슨 객기를 부리는 거냐고 욕이라고 한번 하고 싶었지만 푸스탄트와의 약속을 떠올린 강현은 욕을 삼키고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너까지 위험... 읍...!”
“말하실 체력 있으시면 몸이나 회복해요. 헛소리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강현은 마을에서 구매해온 수면제를 레이의 입을 잡고 벌려 흘려 넣었다.
“으읍...! 읍...!”
나에게 뭘 먹인 거냐.
묻고 싶지만 입안에 고인 액체 때문에 말할 수가 없었다.
“혹시 몰라서 사 왔는데, 잘했네. 수면제예요. 쓸데없이 체력 낭비하지 말고 푹 자요.”
환자는 수면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
수면상태에서는 몸의 마나가 안정화되면서 체력 회복이 빨라진다.
치료하기 또한 편해지고 이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악몽에 시달려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온 수면제.
잘 사 왔다, 강현은 생각했다.
“안 삼키면 제 입으로 직접 먹여드릴 거니까. 삼켜요. 어서.”
레이가 지금까지 죄를 저지르며 살아온 이유.
살고 싶다는 욕구가 무엇보다 강했다.
이렇게 죽어가는 와중에도, 죽는 게 더 편할 거라 생각하는 중에도 살고 싶다는 욕구를 이겨내지 못한 레이는 결국 입안에 담긴 수면제를 꿀꺽꿀꺽 삼킨 뒤, 잠에 들었다.
∴
“하아...”
탁, 치이익... 탁.
산과 마을에서 구해온 약초를 달여 만든 약을 먹인 후 오두막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빌 물고 직접 제작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지뢰를 밟아버린 거 같은데.”
이번에 데려온 여인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몸 곳곳에 있는 심각한 고문의 흔적과 말도 안 되는 회복 속도.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사건에 휘말린, 아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에휴, 뭐 어쩌겠냐.”
강현은 떠올렸다.
자신을 갖다 버리라는 레이의 말을.
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강현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두 개 다 일 거 같긴 하다.
분명 그 꼴이 되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무언가에게 추격당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강현은 약사다.
이 세계로 와서 푸스탄트의 밑에서 약자와 병든 자, 상처받은 자를 돕는다는 신념을 지니고 살아왔다.
지금 와서 그녀를 내쳤다간 꿈자리가 흉흉해지겠지.
“뭐하는 짓이냐 이게.”
야겜 세계 속으로 들어왔으면 동정이라도 때던가.
자학적인 생각을 한 강현은 ‘큭큭’ 웃으며 담뱃불을 끄고 오두막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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