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의 왕 (2)
그럼, 그렇지.
설마 개가 똥을 끊을까.
수색조원들에게 인계되는 대형마트의 생존자들.
그중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여성들을 훑으며 비명이 쏟아져 나왔던 방을 눈짓했다.
문화센터의 굳게 닫힌 수많은 강의실 중 하나.
다시 전등이 복귀된 이후 인기척으로 요란해진 방을 바라보며 가까이 있던 수색조원 한 명에게 손짓했다.
“일단 제어실부터 찾아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전기부터 꺼. 애들 시켜서 혹시나 화장실 같은 곳에서 줄줄 새고 있는 물도 전부 잠그고.”
“예, 총장님!”
내 지시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곤 몇 명의 수색조원과 함께 문화센터를 나서는 수색조원.
난 남성 생존자들을 구속한 뒤 여전히 문화 센터에 남아있는 수색조원들과 함께 인기척을 느낀 강의실 문을 열었다.
“꺄아아아악―!”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환영 인사처럼 튀어나오는 찢어질 듯한 비명.
난 갑작스런 조명에 눈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여성 생존자들을 빙― 휘둘러보았다.
상황의 열악함을 절로 알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검디검은 얼굴의 땟국물과 마구 헝클어진 머리.
서로 한데 뭉쳐 벌벌 떨고 있는 나신의 여성들이 강의실에 빼곡히 모여있었다.
“일어나.”
그녀들을 향해 내리는 짧은 지시에도 요지부동인 여성 생존자들.
잔뜩 겁먹은 창백한 얼굴과 그녀들의 몸 곳곳에 남아있는 사용의 흔적들.
분명 보는 것만으로도 동정심이 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지만,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
더 이을 말도 없이 그녀들을 향해 까딱거리는 손짓.
그 손짓을 기다리고 있던 수색조원들이 서둘러 강의실에 웅크리고 있는 여성 생존자들에게 다가갔다.
“꺄아악―! 이거 놔아―! 이거 놔아아―!”
“흑흑― 흑흑흑―!”
단지 남성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발광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여성 생존자들.
허나, 수색조원들을 그녀들의 기겁에도 아무렇지 않게 뭉쳐있는 그녀들을 하나씩 하나씩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텅 빈 눈동자로 얌전히 수색조원의 인도에 따르는 여성들과 아주 최선을 다해 있는 힘을 모두 쏟아부으며 저항하는 여성들.
저항의 몸짓이 심한 여성일수록 왜 당했는지 알 것만 같은 멍 자국이 검은 땟국물 사이에도 아주 푸르딩딩하게 선명했다.
“싫어―! 싫어― 꺼지라고오―!”
탱― 탱― 탱―!
수색조원이 끌고 가려는 손짓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여성 생존자의 발에 걸리는 무언가.
아주 밝은 쇳소리를 내며 강의실을 구르기 시작한 개 밥그릇에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노끈에 묶여있는 남성 생존자들을 향해 웃은 뒤 다시 강의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개 밥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그리 풍족하진 않았는지 남성 수색조원의 완력에 어떤 발악을 하든 가볍게 끌려 나오는 여성 생존자들.
그 중 알게 모르게 자신의 배에 손을 얹는 여성 생존자들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크게 부풀지 않은 복부이지만 그 몸짓 하나로 알 수 있는 최악의 상태.
피임, 아니 굳이 피임할 필요도 없이 그저 성욕을 해결하는 데 급급했던 남성 생존자들이 만든 참사에 혀를 차며 얼굴을 찡그렸다.
띠링―!
[폭정의 은혜]
[사막 위의 오아시스 Lv.4]
[근대화의 첫걸음 Lv.3]
[인간 자체의 건강함 Lv.2]
[탄생이 축복받는 땅 Lv.1]
4명의 왕을 만난 이후로 아주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왕권.
그 솟구치는 왕권 덕에 [인간 자체의 건강함] 이후로 또다시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에 시선을 집중했다.
[탄생이 축복받는 땅 Lv.1]
[폭군이 통치하는 영토에 한하여 출산 이후 영아와 산모의 생존율을 아주 약하게 증진시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유의미한 버프를 주는 은혜.
예상했던 것보다 탄생이라는 단어의 범주가 ‘인간’에 한정되어있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나에겐 아주 중요하고 필요했던 은혜였다.
점점 더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백성을 수급하는 방식은 지금 같은 이런 부랑자 파밍보다는 캠프원의 출산이 효율적으로 변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수색조원에게 깔린 채로 다리를 동동 구르며 발광하는 여성 생존자들에 비해 얌전히 팔을 뒤로 돌려 구속을 받아들이는 임산부 생존자들.
그 본능과도 같은 대처에 잔웃음을 흘리며 손을 까닥― 흔들었다.
쿠웅―!
문화센터 바닥을 찍는 쇠 파이프의 굉음에 일순간 조용해지는 문화 센터 로비.
난 나에게 집중된 여러 개의 동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벌렸다.
“여기서 자기가 세상이 망하기 전에 의료 쪽에서 일하던 종사자다, 거수.”
다소 뜬금없는 물음에 눈만 끔뻑거리는 대형 마트의 생존자들.
이를 악물고 오두방정을 떨며 반항하던 여성 생존자들마저도 잠시간 반항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해코지를 하려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코지는커녕 특혜를 주려고 묻는 거지. 여기서 의사나 간호사였던 생존자 없어?”
“…….”
연이은 보충 설명에도 쌀쌀한 적막만이 내리는 문화센터 로비.
얼추 합쳐 20, 3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생존자 무리에도 전무한 의료계 종사자에 그럼 그렇지라는 심정으로 또다시 혀를 차려던 찰나―
“……저.”
아주 조용한 목소리가 적막을 깨고 로비를 울렸다.
두 손이 묶인 탓에 손을 들진 못하고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성 생존자.
검은 땟국물이 가득한 얼굴 중 그나마 선명한 빛깔로 번들거리는 동공이 조심스레 나와 눈을 맞춘다.
“그, 그쪽 계열에서 일했었긴 한데요…….”
“의사?”
“……아, 아니요.”
“그럼 간호사?”
“……아니요.”
가장 주요했던 두 직업을 모두 부정한 거수자.
자연히 점차 가늘어지는 눈가에 여성 생존자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다급히 웅얼거렸다.
“……조, 조무사였는데 혹시…….”
“아― 간호조무사?”
“……예.”
간호조무사 생존자가 조심스레 내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녀의 긍정에 살짝 가늘어졌던 눈가를 풀며 그녀를 구속했던 수색조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하냐, 우정아.”
넌지시 읊조리는 말에 벌벌 떠는 몸짓으로 목울대를 꿀렁거리는 간호조무사.
“빨리 풀어드리지 않고.”
“예, 총장님!”
김우정이 파르르― 몸을 잘게 떠는 간호조무사 뒤로 이동해 그녀의 양손을 묶고 있던 노끈을 서둘러 풀었다.
노끈을 푸는 김우정을 향해 연달아 까딱― 까딱― 흔드는 손짓.
김우정이 내 지시를 따라 서둘러 발가벗은 간호조무사에게 준비된 장수건을 덮었다.
“대형마트니까 샤워 가운도 있겠네. 아무나 빨리 가서 샤워 가운부터 가져와.”
“예, 총장님!”
가장 로비 문 쪽에 가까웠던 수색조원이 서둘러 환하게 밝아진 복도를 내달리는 소리가 웅웅거렸다.
한순간에 달라진 대접에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간호조무사.
난 그녀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보낸 후 김우정에게 손을 휘적거렸다.
“빨리 간호조무사부터 정중하게 모셔. 밖으로 나가기 전에 방금 출발한 애가 들고 오는 샤워 가운부터 입히고.”
“예, 총장님.”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아무런 구속 없이 앞을 손짓하는 수색조원을 천천히 따르는 간호조무사 생존자.
그 얼떨떨한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다른 생존자들에게 연이어 물었다.
“또 없어?”
“…….”
다시 싸늘한 정적으로 둘러싸인 문화센터 로비.
난 당황스러움 반, 왠지 모를 억울함 반이 담겨있는 생존자들을 마지막으로 체크하곤 남아있는 수색조원들에게 말했다.
“뭐해? 없으면 빨리 밑으로 끌고 가.”
“예, 총장님!”
이제 슬슬 후발대인 버스와 트럭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이 대형 마트에 남아있는 물자들을 쓸어 담을 트럭과 생존자들을 이송할 버스.
그 버스가 대기하고 있을 정문 밖으로 생존자들을 끌고 가기 시작한 수색조원들.
그중 유일하게 로비 안으로 들어오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수색조원들을 반대로 헤치며 서둘러 내게 달려오는 고장훈.
“헤헤― 이번에도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총장님.”
“됐고. 이다음 목표는 어디야?”
고장훈의 입이 또 시동을 걸기 전에 서둘러 묻는 말.
“아, 넵―!”
내 물음에 고장훈이 서둘러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장의 지도를 꺼냈다.
“음― 여기 적힌 정보대로라면 B마트 다음엔 백산 백화점이 가장 가깝습니다.”
“……백산.”
“옙, 총장님.”
이젠 백산이라는 대기업 이름만 들어도 자동으로 연상되는 도련님의 싸가지 없는 얼굴.
난 그 뺀질뺀질한 면상을 되뇌며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트 물자 긁는 건 후발대에 맡기고 빠르게 다음 목표로 이동한다. 몰이조한테 연락 넣었냐?”
“예, 물론입니다.”
“잘했네. 백산 백화점까지 가는 도로 상황은 어떤데? 그 지도엔 뭐라 적혀 있어?”
내 연이은 물음에 고장훈이 다시 지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전노와의 동맹 후 배달꾼이 건네준 아주 유용한 은평구 전도였다.
“비교적 쾌적한 상태로 차량 이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있습니다.”
“딱 좋네. 귀찮게 도로 치울 필요도 없고.”
“……저― 총장님?”
내 대답을 듣고난 후 아주 조심스레 나를 부르는 고장훈.
“정말 건방지고 외람된 말씀이지만―”
놈이 오랜만에 목소리를 낮추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말해.”
“……그으― 이 지도의 정보를 전부 신뢰하시는 게 혹시 수전노라는 왕과의 동맹 때문이신지…….”
말끝을 질질 끌며 내 눈치를 연신 살피는 고장훈.
허나 그런 순간에도 온전히 전달받은 놈의 의문에 잔웃음을 흘렸다.
아무런 의심 없이 지도의 정보를 전부 믿고 있는 나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
“제가 생각하기에 수전노는 아직 제대로 된 동맹이라기엔―”
“나도 알아.”
난 고장훈의 말을 끊으며 놈의 물음에 답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이 동맹은 순수한 동맹이라기보단 수상한 꿍꿍이가 있는 동맹이겠지.”
하지만―
“이미 이중전선이 형성될지도 모를 전쟁을 굳이 삼중전선으로 늘릴 필요도 없잖아?”
도련님과 벤처 기업가를 먼저 상대해야 할 순간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든―
어차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난 고장훈이 들고 있는 배달꾼의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먹어.”
수전노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이득을 위해 동맹을 제안했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수전노보다 내가 먼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도련님이랑 벼락부자 다음은 수전노일 테니까.”
그전까지 수전노에게 빨아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빨아먹을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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