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119화 (119/120)

은평구의 왕 (1)

[39 : 11 : 50 : 01]

임시 보호 기간이 20여 일 지날 동안―

그리고 남은 40일의 임시 보호 기간 동안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곧 다가올 재벌집 도련님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

또한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도 하나였다.

내 나라가 놈의 나라보다 더 강하면 되는 것이다.

나라가 강해지는 방법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틀에 박힐 만큼 명확하고 간단했다.

더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 그리고 강한 병사.

그렇게 상승하는 국력이 곧 왕권이 되어 왕 본연의 힘까지 함께 올려줄 테니.

그러니 남은 40일 동안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또한 아주 명확했다.

연시우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영토와 백성 그리고 병사들을 늘려야 했다.

이미 명확한 적이 특정된 이상, 임시 보호 기간 초반의 꼼꼼한 내부 기강 다지기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다.

국가의, 캠프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전격적인 속도전.

띠디디딕―!

“여기는 몰이 1조. 지시하신 좀비 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이대로 작업장까지 끌고 가겠습니다.”

선명한 전자음 뒤에 들려오는 몰이조의 무전 소리.

경찰서를 확보한 후 노획한 무전기를 통해 기다렸던 신호가 들려왔다.

“확인했습니다. 끝까지 수고해주세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고장훈이 무전기를 통해 답신하는 동시에―

부우우웅―!

운전석에 있던 수색조원이 더 강하게 액셀을 즈려밟았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을 빠르게 주파하는 차량과 그 차량의 뒤를 잇는 수많은 차량들.

잠시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차량들을 바라본 후 수색조원이 옆으로 핸들을 틀며 도로에 놓인 장애물을 피하는 정면을 응시했다.

급하게 치운다고 치워도 혼잡했던 과거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도로.

부우우웅―!

다시금 진하게 울리는 엔진음에 반짝이는 계기판 중 연료 계기판을 살폈다.

차량이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아주 천천히 붉은색 눈금으로 가까워질 흰 막대가 눈에 선명했다.

지금도 마땅한 절약 없이 아주 열렬히 소모 중인 연료들.

순간 매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휘발유 등의 차량 연료의 보관 기간은 길어도 6개월 정도.

아끼다 똥이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쓸 수 있을 때, 마땅한 쓸 곳에 전부 소모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휙― 휙― 빠르게 지나가는 백색의 아파트 단지들과 점차 가까워지는 목적지.

“끼에에에엑―!”

꽤 크나큰 소음을 내지르며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을 인식한 좀비가 몸을 세차게 뒤흔들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좀비 몰이 조가 미처 주의를 끌지 못한 듯한 여분의 좀비.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량에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마주 달리는 좀비를 바라보는 수색조원의 어깨가 한껏 위로 곤두섰다.

작업장에 배치한 수색조의 호위를 받으며 몰이 1조가 달고 온 좀비들을 죽이고 있을 유서준의 대타.

따로 포인트를 파밍 할 필요가 없는 일반 수색조원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밟아.”

부우우웅―!

내 지시에 수색조원이 달려오는 좀비를 향해 더 깊게 엑셀을 즈려밟았다.

“끼에에엑―!”

쿠웅―!

한순간에 달려오는 차량의 앞 범퍼에 박혀 하늘을 나는 좀비.

끼기기긱―!

난 스키드마크를 길게 그으며 급정거한 차량에서 가볍게 내려 좀비를 향해 걸었다.

“끼에에에―”

아주 노골적으로 작정한 교통사고에도 질긴 목숨줄을 이어가고 있는 좀비.

기괴하게 어그러진 몸뚱어리로도 필사적으로 다가오는 내게 손을 내뻗는 좀비에게 발을 들어 올렸다.

퍼억―!

대가리를 내려찍은 발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물컹거리는 찝찝한 감각.

바지 밑단에 후두둑― 튀어 오르는 질척한 뇌수를 무시하며 정면을 응시했다.

주황색 계열의 외벽이 눈에 띄는 대형 마트.

외벽 상단에 자리한 거대한 알파벳을 바라보다 그 위의 자그마한 대가리에 시선을 옮겼다.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헐레벌떡 고개를 집어넣는 대형마트의 생존자.

하긴, 도로에 산적한 좀비들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끌고 가랴, 미리 도로 대충 정리하랴― 아주 생난리를 떨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게 오히려 더 말이 안 되겠지.

“총장님.”

조금 흉하게 전면부가 일그러진 차량 뒤에 줄이어 정차한 차량들.

차량에서 서둘러 튀어나오는 수색조원들을 바라보며 정문을 눈짓했다.

턱―!

인벤토리에서 꺼낸 쇠 파이프를 움켜쥐며 빠른 걸음으로 앞을 내걸었다.

원래라면 다가오는 손님을 환영하며 부드럽게 열렸어야 할 자동문.

허나 지금은 온갖 잡동사니를 내세워 모두의 출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 잡동사니들의 틈으로 훤히 드러나는 생존자들의 눈깔.

다가오는 나와 수색조원들을 바라보며 파르르― 떨고 있는 그 눈깔을 마주하며 어깨를 튕겼다.

콰앙―!

앞으로 들이민 어깨에 풍비박산이 나며 흩어지는 바리케이드.

난 얕은 먼지들을 헤치며 바닥에 나뒹구는 생존자의 머리를 후려찼다.

퍼억―! 퍼억―!

정확히 넘어진 놈들의 턱을 가격하는 발길질에 다시 일어날 틈도 없이 바닥과 하나가 되는 생존자들.

“뒤에 애들한테 챙기고 들어오라 해.”

“예, 총장님.”

난 뒤따르는 고장훈에게 지시하며 지체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었다.

날 뒤따르던 걸음을 멈추고 기절한 생존자들을 가리키며 내 지시를 수행하는 고장훈과 운행을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밟는 분주한 발소리.

난 내 뒤를 바짝 따르는 수색조원들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시선을 따라 서둘러 위를 비춰오는 수색조원들의 손전등 불빛.

아직은 우리를 제외하면 개미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대형마트였지만, 생존자 놈들이 있는 곳은 뻔해도 너무 뻔했다.

이런 대재앙에서 인간이 선호하는 은신처는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최상층으로 간다.”

문화 센터.

층별 안내도에 따르면 옥상을 제외한 최상층, 9층에 위치한 생존자 놈들의 은신처.

그곳을 향해 계속해서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랐다.

[컬처클럽]

창을 통해 햇볕이 닿지 않는 어두운 문화 센터를 오랜만에 밝혀오는 손전등 불빛.

그 환한 불빛 사이로 한데 뭉쳐 있는 마트 생존자들이 들어섰다.

“우, 움직이지 마―!”

생존자 무리 한 가운데에서 우리를 향해 소리치는 한 남자.

아마 이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생존자가 불빛에 번쩍이는 도구를 우리에게 겨냥한 채로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니들― 니들 뭐야―?! 니들 뭐야 이 새끼들아―!”

리볼버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 위에서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는 익숙한 권총.

경찰서를 노획하며 눈에 익을 수밖에 없었던 리볼버를 바라보며 앞으로 걸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이 새끼야―!”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내 걷는 내게 발작하는 우두머리와 그 옆의 생존자들.

우두머리의 경찰 권총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한 무장 수준을 체크하며 계속해서 놈들을 향해 걸었다.

“이, 이 씨이바아알―!”

타앙―!

순간적으로 환하게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위로 들썩이는 우두머리의 양팔.

텅―!

[현재 임시 보호 기간이 적용 중입니다!]

허나, 놈이 반동을 채 이겨내기도 전에 빛살처럼 날아든 총알이 투명한 벽에 막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어?”

총구의 허연 김 사이로 선명히 보이는 우두머리의 찢어질 듯이 커진 눈깔.

난 우두머리와 다를 바 없는 눈깔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생존자들을 보며 다리를 박찼다.

턱―!

한 번에 우두머리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손아귀가 단숨에 뜨겁게 달구어진 총신을 움켜잡았다.

“그만 쏴.”

난 내 손아귀에 함께 잡힌 놈의 손을 점점 더 세게 움켜쥐며 속삭였다.

끄드드득―!

“총알 아깝잖아, 새끼야.”

총신이 우그러지기 전에 먼저 살벌한 소리를 내지르는 놈의 오른손.

난 놈의 손에 들린 리볼버를 강제로 뺏으며 놈을 뒤로 밀쳤다.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지는 우두머리와 잔뜩 얼어붙은 남자 생존자들.

새로운 예비 수색조원들을 차분히 훑고 있던 와중에 또다시 멍한 목소리가 흘려들었다.

“……어떻게, 끄으― 어떻게 총알이?”

부, 분명히 총을…….

내 손아귀에 으그러진 손을 파들파들 떨며 나를 올려다보는 우두머리.

난 놈의 멍청한 물음을 무시하며 뒤에서 대기 중인 수색조에게 가까이 오란 손짓을 보냈다.

“조, 좀비다―! 이, 이 새끼도 좀비야―! 이 새끼도 사람이 아니야―!”

손짓을 보내던 와중에 목소리를 찢으며 발광하는 우두머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모두 도망쳐, 이 병신들아―! 괴물이다, 이 씨발 괴물 새끼, 좀비 새끼이―!”

퍼억―!

그리곤 엉덩이를 질질 끌며 힘겹게 도망치는 우두머리에 턱을 후려갈기며 읊조렸다.

괴물이라니.

“좀비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마당에 그게 뭐 대수라고.”

히이익―!

내 속삭임에 뒤늦게 계집애 같은 비명 소리를 내며 기겁하는 우두머리 주변의 생존자들.

괴력, 염력, 순간이동 등 이능력에 비교적 친숙한 대학 내의 생존자들에 비해 오랜만에 보는 아주 날 것의 반응들이었다.

확실히 수전노의 정보대로 대학 밖의 생존자들은 좀비는 몰라도, 스킬과 이능력자들에 관해선 완벽히 무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튜토리얼에 관해 완벽히 무지했다.

‘제가 다른 왕들의 도읍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요? 음― 생각보다 그리 대단하거나 비밀스러운 정보는 아닙니다. 배달꾼이 모아오는 정보들로 거의 확실해진 가설을 따른 것뿐이죠.’

그 가설이 뭐냐 묻는 말에 답하는 수전노의 음성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되뇌어진다.

‘튜토리얼은 비교적 특별한 장소에서만 발생한다.’

서울이나, 지역구를 대표하는 일종의 랜드마크에서만 튜토리얼이 발생한다는 수전노의 가설.

‘그래서 은평구는 아무래도 한세계 씨의 도읍을 찾는 게 아주 수월했죠. 은평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반석대학교 아닙니까?’

또 그 가설을 기반으로 한 우리 동맹의 아주 유의미한 청신호가 있죠.

‘은평구는 반석대학교를 제외하면 딱히 랜드마크라 불릴 시설이 없다는 것. 즉, 지금 은평구는 어쩌면 한세계 씨 당신의 독무대일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어쩌면 함께 임시 보호 기간이 적용되고 있는, 걸리적거리는 경쟁자가 없는 은평구.

누군가의 견제가 없는 그리고 우리는 임시 보호 기간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 지금.

바로 지금이 은평구 전체를 빠르게 집어삼켜 몸집을 불릴 절호의 찬스였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 다 버리고 지금 당장 꿇어, 이 새끼들아―!”

내 손짓에 서둘러 달려온 수색조원들이 남성 생존자들을 꿇어앉히는 소리가 울려 펴진다.

총알을 막은 임시 보호 기간의 보호막과 단숨에 축지법을 쓰듯 거리를 좁힌 내 무력 시위에 벌벌 떨며 수색조원들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생존자들.

띠링―!

[위협 수치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감소한 영토를 확보하셨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영토 : 은평구 B마트]

[왕권 : 700 -> 730]

놈들의 등 뒤로 돌려진 팔목에 노끈이 묶이자마자 기다렸던 메시지가 허공에 떠올랐다.

팟―!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는 동시에 환하게 문화 센터를 밝히는 전등.

“꺄아아아악―!”

대형마트가 완벽히 내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확인 도장 뒤에 갑작스레 여성들의 비명 소리가 웅웅거리며 문화 센터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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