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3)
“자― 편하게 앉아주세요, 편하게!”
부드러운 미소로 원탁의 마지막 자리를 가리키는 고용주.
끼이익―!
난 고용주의 안내를 따라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원탁까지 걸어와 의자에 앉을 때까지 거둬지지 않는 시선들.
그 중 유난히 신경을 툭툭 건드리는 시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많이 재수 없는 놈.’
이 중에서 그나마 나와 나잇대가 비슷해 보이는 젊은 남자.
놈이 아주 대놓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픽― 웃어댔다.
그리 호의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은 웃음을 끝으로 고용주를 향해 돌리는 고개.
“아무래도 시작은 클래식하게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게 좋겠지요― 어렵게 자리에 모신 분들이 서로 야, 너 거리는 것도 우스우니 말입니다.”
짧은 스캔 이후 아예 고개 자체를 내 쪽으로 돌리지 않는 젊은 놈.
시작부터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노골적인 적의에 눈가가 저절로 좁혀졌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름이나 속칭을 공개하는 건 조금 껄끄럽다 여기실 분도 계실 것 같으니 이참에 저희 서로를 부를 가명 같은 걸 만들어볼까요? 안 그래도 좀 딱딱하게 굳어있는 분위기도 풀 겸.”
날카로운 분위기 속 홀로 자신의 주최한 식사를 주도하는 고용주.
놈이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는 제안에도 태연스레 자신을 손짓했다.
“전 지금부터 수전노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자신의 가명을 정한 뒤 정면으로 배턴을 넘기는 수전노.
그 수전노의 맞은편에 있던 나는 별 고민도 없이 입을 열었다.
“한세계.”
“……오―.”
내 이름을 말하자마자 작게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수전노.
“한세계라― 급조한 가명인데도 뭔가 상당히 상징적이네요.”
놈이 스스로 제 눈깔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환한 미소로 나를 응시했다.
“이런 가명을 지어내는 데 상당한 재능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한세계 씨.”
그럼―
수전노가 제 부하를 똑 닮은 립서비스를 남긴 후 고개를 돌린다.
“……전 애초에 가명 같은 걸로 뭘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수전노의 시선에 아주 젠틀한 미소로 어깨를 으쓱이는 남자.
확실히― 놈의 너스레대로였다.
‘매너만 좋은 척하는 놈’, 아니―
‘강해성.’
놈의 뺀질거리는 면상을 보자마자 저절로 입가에 맴도는 놈의 이름.
미디어나 커뮤니티에서 아주 질리도록 보았던 면상이었다.
성공한 대한민국의 벤처 사업가.
청년들의 워너비를 투표하면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벼락부자.
저 뺀질거리는 외모와 듣기 좋은 중후한 목소리 그리고 넘치는 재력 등등― 자신의 장점을 아주 잘 활용하던 SNS 활용의 귀재.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엔 반석대학교에도 청년 창업이니 스타트업 성공 신화니, 뭐니 하며 초청 강연을 왔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연 사장님 먼저 하시겠습니까?”
그런 강해성이 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바라보는 이.
“연 사장은 무슨― 내가 그때 진짜 사장은 아니라고 말했었잖아. 그냥 재미로 부르라 했던 거지, 재미로.”
놈이 자신보다 연장자인 것이 분명한 강해성을 피식대는 웃음과 함께 타박했다.
“그리고 이미 연 사장이라 말했는데 뭐 귀찮게 가명을 써. 대한민국에 연 씨가 흔한 성도 아니고.”
“하하― 그런가요?”
“그래, 우리 아주 위대하고~ 위대하신~ 연 씨 할애비가 워낙 유명하셔야지.”
연 씨라는 성, 저놈들이 지껄이는 대화, 나이가 역전된 듯한 대화에도 아무렇지 않은 강해성의 태도.
서로 부드럽게 맞물리는 상황을 통해 튀어나오는 단어는 오직 하나였다.
‘백산과 연백기.’
대한민국의 거대기업 ‘백산’과 그 창업자인 연백기.
연 씨 성을 가진 기업 총수를 생각하자마자 바로 생각나는 이름에 조금 새삼스런 눈으로 ‘재수 없는 놈’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의 싹퉁바가지와 거만함의 원천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재벌가 도련님이셨군.
짝―!
“자― 그럼 자기소개는 끝난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제가 여러분들을 이 조촐한 식사 자리에 초대한 이유와 앞서 말씀드린 4국 동맹.”
박수 한 번으로 다시 주위를 끌어모은 수전노가 모두를 빙― 휘둘러보며 두 팔을 벌렸다.
“이미 전에 회사를 경영하셨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국가를 경영하셨던 여러분들이라면 모르실 수가 없을 겁니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할 순 없다는걸.
“그리고 그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점점 더 광범위하게 늘어날 겁니다. 밑에 딸린 부하들에게 시킬 수 없는 왕 자체의 업무 또한 마찬가지겠죠.”
딱―!
수전노가 맑은소리로 손가락을 부딪치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때― 여러분과 함께 연대할 또 다른 왕이 분명 필요하실 겁니다. 여기 있는 저희 4명이 서로의 또 다른 왕이 되어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중요한 비밀을 말하듯 살짝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서로 연합해서 새로 솟아오르는 새싹도 같이 밟아주고― 먹음직한 옆나라 케이크도 더 수월하게 잘라서 보기 좋게 나누고―”
“어떻게 특별 보상 구역도 같이 공략하고?”
“역시― 재벌가 도련님이라 그런지 계산이 빠르시군요.”
“……허. 그 말도 존나 오랜만에 듣네, 야.”
“……예?”
“그냥 너도 연 사장이라 하던지 연시우라고 불러. 그 좆같은 도련님 소리 집어치우고.”
삐걱― 삐걱―
연시우가 의자를 건들건들― 뒤로 꺾으며 삐딱한 고개로 수전노를 노려봤다.
“그리고 뭐 얼마나 대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건방진 말을 하나 했더니 고작 이거였어? 아니― 이 자리에서 그런 기본적인 생각도 못 하는 새끼가 어딨어?”
아―
연시우가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내게로 돌렸다.
“저 애새끼는 모를 수도 있겠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려 수전노에게 건들댔다.
“또 동맹을 제안하려면 먼저 서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지 않았냐? 난 그것 때문에 내 아까운 시간을 버려가면서 여기 온 거거든.”
어이, 수전노.
연시우가 삐걱― 삐걱― 흔들던 의자를 멈추곤 수전노에게 읊조렸다.
“날 어떻게 찾았냐? 네 똘마니가 어떻게 내 도읍을 찾아올 수 있었냐고.”
“…….”
“어떻게 튜토리얼을 아주 빨리 끝냈나 봐? 남은 임시 보호 기간이 얼마야?”
30일? 20일? 아니면 10일?
뱀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 연시우.
그 쉭― 쉭― 거리는 물음에 한 마디도 답하지 않은 수전노가 연한 미소와 함께 프라이빗 룸을 빙― 휘둘러보았다.
“이런 세상에서도 돈은― 아니 포인트는 아주 좋은 거래 수단이죠.”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돈돈 타령을 하는 거야.”
“글쎄요. 아무리 백산이라도 이런 범지구적인 하드 리셋은 어쩔 도리가 없을 텐데요.”
“아~ 이제야 진단이 나오네.”
연시우가 환한 미소로 수전노를 손가락질했다.
“딱― 말하는 게 졸부 새끼처럼 말하네.”
까닥― 까닥―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멸시를 담아낸 연시우가 연이어 말했다.
“꼭 저렇게 돈만 많으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고 착각하는 졸부새끼들이 있어요. 꼭대기에 있는 건 그런 게 아니거든.”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부리는 사람이 많은 거야.
“돈이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돈으로 부리는 사람의 퀄리티가 인간의 신분을 결정하는 거야, 천것아― 라고 할애비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던 게 기억나네.”
“과연 회장님다우신 깊이 있는 말씀이시네요.”
정말로 감탄했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맞장구치는 강해성.
그 노골적인 아부에 연시우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뭐해?”
“…….”
“이미 뒤졌는데.”
낄낄낄―
아무도 웃지 않는 분위기에 제 혼자 원탁을 두드리며 웃어대는 연시우.
그렇게 한바탕 기분 나쁜 웃음을 쏟아낸 놈이 다시 수전노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신분 세탁을 하려면 좀 제대로 해라. 딸랑이 냄새가 여기까지 나잖아, 딸랑아.”
“…….”
연시우의 뇌까림에 처음으로 수전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구겨진 얼굴 주름을 조용히 바라보던 연시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여하간 세상이 요지경이 되어도 바뀌는 건 없다니까. 머리도 써본 놈이 더 잘 쓰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 건데― 웬 좆같은 협박을 하길래 와봤는데 동맹의 구성원이 강 사장은 그렇다하더라도 웬 딸랑이 졸부랑 애새끼라니―”
이번에도 수전노를 거쳐서 나를 흘겨보는 연시우의 멸시 가득한 눈길.
“어디 자랑할 게 돈이랑 나이밖에 없는 새끼인가 본데―”
난 그 눈길을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그 아가리처럼 머리도 가벼워서 이걸 일일이 말해줘야 알아듣나 봐?”
난 내게 시선을 고정한 연시우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손으로 만들어내는 손가락 총.
“이젠 미국이나 어디 소말리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손에 총을 가지고 다니는 시대야, 도련님 새끼야.”
난 그 손가락 총을 털털― 흔들며 말했다.
“애새끼든 늙은이든 다리나 손이 없는 장애인이든 방아쇠만 당기면 누구 대가리든 대가리에 구멍이 뚫리는 총.”
“……새끼가 씨발 뭔 비서 엉덩이나 쓰다듬던 우리 할애비처럼 날 가르치려 드네.”
연시우가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 뭐 편견을 가지지 말아달라 뭐 그런 거냐? 씨발 면접장에서 꼭 학력 딸리는 새끼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을 여기서 듣네. 제발 편견을 가지지 말고 능력으로 봐주세요~.”
놈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내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그 편견을 따르는 게 잘 먹고 잘사는 비결이야, 이 거렁뱅이년아.”
“그 편견이라는 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새끼야. 깊은 숲은 육식동물이 많아 들어가면 안 된다. 깊은 바다는 발이 닿지 않아 위험하다. 저학력자는 일을 존나게 못 한다. 애새끼랑 늙은이가 제일 만만하니 그 새끼들을 먼저 노리는 게 수월하다.”
예외가 있으면 뭐 해?
“어차피 한 가지 예외가 있다해도 다른 아홉 개는 그 편견이 맞는데. 그리고― 너도 내가 보기엔 예외보단 아홉 개에 속하는 애새끼 같은데.”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편견 하나가 생각나네.”
난 연시우의 눈깔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꼭 너처럼 나대는 새끼들이 제일 먼저 죽더라. 그렇게 깝산 새끼한테, 처참하게.”
“……허.”
연시우가 헛웃음을 너털웃음처럼 흘리며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애새끼가 누가 애새끼 아니랄까 봐 아주 존나 패기있고 당당하시네.”
“넌 나잇값 못하는 천박한 입을 달고 있고. 뭔 말을 비서 엉덩이나 만지던 할애비 밑에서 자란 것처럼 말하냐.”
“……재밌네.”
그 한마디를 읊조린 연시우가 수전노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 상황에서 뭐 다른 대화가 더 필요해?”
끼이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난 연시우가 모두를 빙―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아사리판 만든 범인이 먼저 나갈 테니 잘 쿵짝거려보쇼. 애새끼랑 졸부끼리.”
아 그리고―
무언갈 잊었다는 듯 다시 수전노를 바라보는 연시우.
“다음엔 이런 졸부들 돈 빨아먹는 가짜 룸 말고 좀 진짜 룸으로 준비하쇼. 인테리어가 이게 뭐냐, 졸부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너무 짜치잖아.”
프라이빗 룸을 빙 휘두른 연시우가 쯧― 크게 혀를 찼다.
저벅― 저벅―
잔뜩 찡그린 얼굴을 돌리며 문을 향해 걷는 연시우.
그렇게 곧장 프라이빗 룸을 나서던 연시우가 문을 연 채로 잠깐 멈칫거렸다.
“어이.”
연시우가 몸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눈깔에 담았다.
“얼굴 기억해뒀다.”
“다음부터 이렇게 아사리판 낼 거면 뒤진 할애비나 데려와. 애새끼처럼 굴지 말고, 새끼야.”
“……그래, 조만간 다시 볼 때도 꼭 지금처럼 펄떡거려라, 새끼야.”
쿵―!
강하게 바람을 일으키며 닫히는 문.
“어― 돌아가는 건 배달꾼 씨가 또 수고해주시는 건가요?”
연시우가 문을 닫자마자 강해성이 정중하게 수전노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아― 너무 아쉽습니다. 파트너 정신이란 건 마음이 맞을 때 시너지를 나오는 건데 말입니다.”
끼이익―!
강해성 또한 천천히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기회 있으면 다음에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특유의 젠틀한 미소로 원탁을 바라보던 강해성이 연시우가 지났던 길을 똑같이 내걸었다.
나 또한 강해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자를 뒤로 끌었다.
“…….”
허나, 의자를 뒤로 끌기 전 바라본 원탁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눈길.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수전노의 눈빛에 천천히 눈을 좁히며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쿵―!
연시우에 이어 다시 한번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닫히는 문.
그제서야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수전노의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참나.”
의자에 한껏 몸을 기대며 프라이빗 룸을 빙― 둘러보는 시선.
“짜친다는 건 또 뭐야? 그냥 고급스럽기만 하구만.”
프라이빗 룸의 인테리어를 살피며 연신 내뱉는 헛웃음.
“세기말 감성에 맞게 뭐 타이타닉이라도 대절했어야 하나, 더럽게 까다롭네.”
투덜거리던 시선이 종착지처럼 내게 멈춰섰다.
맞은편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내지었다.
“안 그래요, 한세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