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116화 (116/120)

이방인 (2)

“먼저 오해를 방지코자 한 말씀 올린다면, 어차피 저는 그쪽 왕님 본거지로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축 처진 눈꼬리로 반석대학교 정문을 눈짓하는 쥐새끼.

“제가 저 문을 넘는 순간 왕님에게 아주 즉각적인 알람이 가거든요. 쥐새끼의 출입을 허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

놈이 이 험악한 분위기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평탄한 어조로 연이어 말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감정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짧은 미소와 어깨의 으쓱임.

난 아무런 대답 없이 놈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럼― 그쪽 분이 이 구역의 왕님이 맞으시는 것 같으니까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우우웅―!

놈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신을 물들이는 찬란한 황금빛.

아주 자연스럽게 부분무능이 넘실대는 쇠 파이프가 까딱― 흔들리는 광경에도 놈은 아무런 동요 없이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툭―!

“어차피 임시 보호 기간 덕분에 서로 털끝만치도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내 손에 들린 쇠 파이프와 내 얼굴을 번갈아 응시하는 쥐새끼.

“지금 제가 뒤로 물러선 건 제 전용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뒤로 물러선 겁니다.”

짝―! 짝―! 짝―!

“지금 제가 이렇게 박수치는 것도 아무 스킬도 아니고요. 정말 그쪽 분들의 주의를 잠시 모으기 위해 짧게 하는 분위기 환기 같은 겁니다.”

보세요.

놈이 황금빛에 둘러싸인 내 몸과 자신의 몸을 번갈아 손짓하며 말했다.

“저는 지금 위험한 스킬을 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제 전용 스킬을 발동하기 위한 조건도 아니고요.”

뭐― 그렇게 오해하시는 분도 계셔서.

짧게 중얼거리며 보충 설명을 덧붙인 놈이 다시 한번 더 자신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제 이름은 이도준이고 속칭은 배달꾼입니다. 딸배가 아니고 배달꾼입니다. 사실 어떻게 부르셔도 상관은 없는데 웬만하면 그냥 배달꾼이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저한테도 더 편합니다. 전용 스킬은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가 마커로 설정한 두 공간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뭐 그런 능력입니다. 속칭 그대로 배달꾼이죠.”

갑자기 뭔 자백제라도 목에 때려 부은 마냥 제 정보를 술술 불기 시작하는 쥐새끼.

“지금 제가 잠시 손을 뻗을 건데 이거 정말 왕님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니까 제발 오해하지 마셨으면 좋겠네요.”

지껄이는 말에 비해 너무나도 건조한 음색의 부탁.

난 몸 밖으로 피어오르는 부분무능을 거두지 않으며 계속해서 놈을 주시했다.

그런 내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게 아주 천천히 오른팔을 내뻗는 배달꾼.

우우웅―!

배달꾼의 오른팔을 타고 피어오르는 푸른 빛과 함께 놈의 손바닥 아래에 적당한 길이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놈의 오른팔에 피어오르는 푸른빛과 완벽히 똑같은 빛깔로 번쩍이는 푸른색의 기둥.

“뭐야, 혹시 알람 가신 거 바로 칼수락하신 겁니까, 왕님?”

놈이 불쑥 솟아오른 기둥을 바라보다 아주 조금 더 큼지막해진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 아직 여기까진 왕님의 영토가 아니었나 보네요.”

놈이 아무 반응도 없는 나 대신 자문자답하며 대학로를 빙― 휘둘러보았다.

“어쨌든― 보셨죠? 이게 제가 말씀드린 마커입니다. 능력 안 속인 거 방금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그 능력 그대로 마커가 솟아오른 거 확인하셨습니다, 왕님.”

배달꾼이 솟아오른 마커를 가리키며 아주 여러 번 묻지도 않은 사항을 재확인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제 앞에 서 계신 왕님을 찾아뵌 이유는 저희 고용주께서 왕님을 조금 조촐하지만, 정성을 들인 식사 자리에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고용주?”

“예 뭐― 이쪽이 제 입에 더 쫙 달라붙어서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저희 고용주와 다른 왕님들은 이미 식사 자리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고 계십니다. 제 앞에 계신 왕님도 초대를 수락해주시는 즉시 제가 안전하게 식사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자신이 설치한 마커를 가리키며 말을 끝맺는 배달꾼.

허나, 여전히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나를 바라본 배달꾼이 아― 작은 탄식을 내뱉으며 다시 입을 벌렸다.

“제 말투가 이런 건 그냥 제 몸이 너무 피곤해서고요. 눈을 이렇게 뜨는 건 그냥 이렇게 생겨서입니다. 지금 이 변명조차도 건방졌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고요. 이 사과도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시 한번 더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뭔 매크로 로봇처럼 쭉 읊어대는 기계적인 사과.

“앞에 모셨던 손님들이 꽤 까다로웠나 보네.”

“……조금?”

툭― 내던진 물음에 배달꾼이 숨길 생각도 없었다는 듯 곧바로 답해왔다.

“뭔 말만 꺼내도 전부 다 의심하고 어떻게든 죽이려 하셔서 모시기 힘들었죠.”

“저런― 듣기만 해도 안 될 사람들이네.”

옅게 혀를 차며 놈의 투정에 동의하자, 배달꾼이 동그란 눈깔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

“……예― 뭐.”

우우웅―

그런 놈의 동공에 환하게 반사되는 진한 황금빛.

“그렇게 좋은 자리에 기껏 초대해줬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은 꽤 중요한 내부 행사가 있어서.”

난 여전히 전신을 부분무능으로 무장한 채 나와 배달꾼을 중심으로 둥글게 자리 잡은 캠프원들을 눈짓했다.

이미 쥐새끼처럼 그 내부 행사가 무엇인지 엿들었던 배달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주께서 혹시나 초대를 거부하시는 손님이 계시면 이렇게 전해라 하셨습니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인 양 너무나도 태연히 내뱉는 다음 말.

“판에 끼지도 못할 겁쟁이면 나중에 작업당해도 징징거리면서 질질 짜지 말라고.”

“……뭐―?!”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배달꾼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보다 더 격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캠프원들.

난 쇠 파이프를 든 손을 빠르게 올려 그들을 제지했다.

……갑작스런 쥐새끼, 갑작스런 초대장.

이미 그 초대에 응한 다른 왕들과 놈들이 만드는 판.

“보통 여기까지만 말해도 엉덩이 무거우신 분들이 불에 데인 것처럼 일어서시던데.”

“난 이미 일어서 있는데?”

놈이 나지막이 지껄이는 경험에 어깨를 으쓱이며 지금의 위치를 되새기는 대답을 내뱉었다.

“……아하―.”

이미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배달꾼과 나.

전혀 놀람이 없는 무감각한 감탄사를 내뱉은 배달꾼이 연이어 말했다.

“고용주께서 첫 번째 말에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이 말도 전하라 하셨습니다.”

“초대에 응해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걸 얻게 되실 겁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

“정보.”

정보.

난 배달꾼이 내뱉었던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이며 쇠 파이프를 든 손을 까딱였다.

툭― 툭―

머릿속에서 생각을 이어갈수록 더 빠른 박자로 허벅지를 두드리는 쇠 파이프.

반석대학교.

내가 손수 지정한 내 나라의 도읍은 은평구를 기준으로 치자면 꽤 큼지막한 조각이었다.

허나, 그 범위를 강북으로 삼는다면 그리 넓거나 큼지막한 조각은 아니다.

더 나아가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굳이 전 세계로 확대하지 않아도 이미 점처럼 작아지는 구역.

도읍의 특별함과는 별개로 내가 점령한 영토는 대한민국에 떨어진 쌀 한 톨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쌀 한 톨의 영토 말고는 온통 미지에 둘러싸인 바깥.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비유하자면 내 영토를 제외한 전부가 온통 새카만 어둠으로 자욱한 상황이었다.

보통 이럴 땐 자신의 유닛을 사용해 그 어둠을 밝히기 위한 정찰을 실시하는 게 정석적이다.

하지만 내 캠프원들은 잃으면 아무렇지 않게 다음 정찰을 지시할 수 있는 게임 유닛이 아니기에―

혹시나 모를 불확실한 변수가 없는 안전한 방법을 택했던 것인데.

자신이 쥘 수 있는 가장 강한 패인 이능력자를 과감히 정찰을 위해 사용했다라.

“어쩌면 마음 놓고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적기이지 않습니까.”

임시 보호 기간.

그것도 꽤 가능성이 있는 패를 메이드하고선.

그렇게 심각하게 무모해 보이진 않지만, 나였다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았을 방법이다.

그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며 내 헛웃음을 유발했다.

정말― 세상은 이렇게나 요지경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너무나도 다양한 인간들이 살아있었다.

아니― 나와는 다른 왕들이 살아있었다.

“총 몇 명이 모이는 자리지?”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나처럼 내부 단속 및 단결보다 정찰에 더 무게추를 기울인 왕이거나.

“그렇게 큰 식사 자리는 아닙니다. 왕님까지 합류하신다면 총 네 분이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아니면 이미 내부 단속이 끝난 왕이거나.

“네 명.”

“……총장님. 위험해요.”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던 얼굴을 간지럽히는 숨결.

난 상황의 심각성에 다시 존댓말로 복귀한 린네아와 눈을 맞췄다.

“와― 연예인이다.”

린네아를 바라보기 위해 옆으로 돌린 고개에 들려오는 기계적인 반응.

난 그 한마디만 내뱉고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배달꾼을 힐끗 바라본 후 린네아에게 미소 지었다.

“……설마 정말 저 사람을 따라가실 건 아니죠?”

“먼저 들어가서 고자랑 같이 환영회 세팅하고 있어.”

고자야―!

엔진음을 털털― 내뱉는 트럭 옆에서 대기 중이던 고장훈이 내 고함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빨리 정리하고 들어갑시다―!”

손뼉을 치며 우렁차게 외치는 고장훈과 그 외침을 기점으로 둥근 원을 해체하는 캠프원들.

난 다시 뒷정리를 시작하는 캠프원들 중 유일하게 제자리에 못 박혀 있는 캠프원을 응시했다.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뒷정리를 시작하는 자신의 조를 따라가는 외국인 캠프원들 중 홀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린네아.

툭―!

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배달꾼을 향해 걸었다.

이미 가까웠던 거리만큼 몇 발자국 만에 놈의 어깨에 내걸 수 있게 된 내 팔.

마치 놈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아무런 저항 없이 놈의 어깨에 두를 수 있게 된 내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말고 다른 세 명은 어떤 놈들인데?”

“어― 쉽게 말씀드린다면, 조금 많이 재수 없는 놈, 매너만 좋은척 하는 놈 그리고 고용주시죠.”

“생각보다 손님들을 조금 거칠게 표현하네.”

“그냥 느낀 그대로 말하는 겁니다.”

“그럼 고용주가 나에 관해 물으면 어떻게 답할 건데?”

“총장님은 그냥 총장님이시죠. 다른 두 분보단 훨씬 신사적이셨습니다.”

“오― 그렇게 대답 안 할 거면서. 립서비스가 좋은데?”

“기본 서비스죠.”

아주 담담히 내 물음에 답하는 배달꾼.

어깨동무를 통한 간접적인 압박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배포.

나를 부르는 호칭을 단번에 캐치하는 센스와 그냥 듣기만 해도 이미 유용해 보이는 능력까지.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이능력자였다.

우우웅―!

난 놈이 자신의 마커를 내려보는 순간에 맞닿은 손끝으로 부분무능을 일으켰다.

이 무효화가 통한다면 놈을 구속한 뒤에 천천히 구슬려볼 생각이었다.

터엉―!

손끝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뒤로 휙― 젖혀지는 오른팔.

“…….”

난 그제서야 마커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응시하는 배달꾼과 눈을 맞췄다.

“왜.”

내 물음에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은 배달꾼이 집게와 엄지손가락으로 내 옷자락을 잡았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총장님.”

“어떻게 눈이라도 꾹 감고 있으면 되나?”

“꾹 감는다기보단 그냥 눈을 한 번 깜빡이시면 끝납니다.”

우우웅―!

내 옷자락을 쥐고 있는 놈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푸른 빛.

그 푸른빛에 공명하듯 함께 가동음을 토해내는 마커를 흘겨보다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린네아와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시선을 이쪽으로 두는 캠프원들.

그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깜빡― 아주 잠깐 어둠에 젖었다 밝아지는 순간―

한 순간에 달라진 풍경이 나를 반겼다.

툭―!

아무 말 없이 옷자락을 놓으며 멀어지는 배달꾼.

난 자연스레 문을 향해 내 걷는 배달꾼을 바라보며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밝은 조명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고급 음식점의 프라이빗 룸을 연상시키는 실내에 놓인 커다란 나무 원탁에 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참석자인 나에게 모인 시선과 놈들의 면면을 살필수록 내 귓가에 다시금 재생되는 배달꾼의 목소리.

아주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젊은 남자.

‘조금 많이 재수 없는 놈.’

눈빛이 마주치자마자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 익숙한 얼굴.

‘매너만 좋은 척 하는 놈.’

그리고―

짝―! 짝―! 짝―! 짝―!

“드디어 제가 바랐던 모든 분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군요!”

‘고용주.’

사람 좋은 미소를 내짓는 놈의 눈가에 옅게 이는 주름.

청년의 끝자락과 중년의 시작에 서 있는 듯한 얼굴의 남자.

“여러분!”

그가 손뼉을 치던 손을 활짝 벌리며 더 진한 미소를 내지었다.

“제가 구상했던 4국 동맹의 마지막 축이 자리를 빛내주러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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