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 강아지 (5)
오늘도 여지없이 도서관을 들썩인 축제가 끝난 아주 늦은 밤.
차하얀은 새카만 어둠에 젖은 도서관과 밤을 밝히는 차량의 전조등을 번갈아 응시했다.
농과대 캠프원들과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침실로 올라와 뒤집어쓴 이불.
항상 절대로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기던 옥상의 밀회마저 건너뛴 채로 침실에 박혀있던 자신을 깨우던 정중한 노크.
차하얀은 형부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 한마디에 군소리 없이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지독한 어둠에서 유일하게 시야를 분간할 수 있는 차량의 전조등 불빛.
차하얀은 그녀에게 그리 익숙치 않은 정면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얌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도착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침묵을 유지하던 유서준의 첫 마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주행 시간에 차하얀의 고개가 자연스레 차창으로 돌아갔다.
모든 조명이 꺼진 채 잠이 든 도서관과 달리 아직도 환한 불빛을 머금고 있는 커다란 건물.
달칵―!
그 건물이 학생회관임을 깨닫는 동시에 천천히 열리는 차 문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부드러운 웃음을 내짓는 고장훈.
차하얀은 조용히 자신의 하차를 기다리는 고장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차 밖으로 다리를 내디뎠다.
항상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 과할 정도의 아부와 환한 미소를 머금었던 고장훈.
특히나 계속되는 축제에 볼 때마다 헤실헤실 풀려있던 얼굴이 아닌 다소 정적인 표정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툭―!
고장훈이 천천히 차 문을 닫은 뒤 부드럽게 학생회관을 양손으로 손짓했다.
“모시겠습니다.”
차량을 운전했던 유서준과 똑같이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고장훈.
차하얀은 여전히 모든 게 얼떨떨한 채로 고장훈의 걸음을 뒤따랐다.
앞서 안내하는 고장훈 이외에는 인적 자체가 없는 학생회관의 복도.
터벅― 터벅―
오직 그들이 계단을 타고 오르는 발소리만 울려 퍼지는 싸늘한 정적에 절로 고장훈을 뒤따르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학생회관 4층에서 안내하던 발걸음을 멈추는 고장훈.
차하얀은 고장훈이 조용히 가리키는 4층의 한 방을 마주하며 문에 달린 명패를 읽었다.
[BUBS 반석교육방송국]
아주 늦은 밤, 한세계의 부름, 대학방송국.
도저히 연결고리가 연상되지 않는 뜬금없는 조각들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역할은 이대로 끝이라는 걸 알려주듯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고장훈.
그가 차하얀의 잘게 떨리는 눈빛에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방송국 문을 눈짓했다.
끼이이익―
고장훈의 재촉 아닌 재촉에 아주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리는 차하얀.
활짝 열리는 방송국 문 너머로 복잡한 기계들 앞에 앉아있던 한세계가 고개를 들어왔다.
“아― 왔어, 하얀아?”
환하게 웃는 한세계와는 별개로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쿵―!
그녀가 방송국 안으로 들어온 직후, 큰 소리를 내며 닫히는 방송국 문.
깜짝 놀라 몸을 크게 움찔한 그녀의 어깨에 따뜻한 손길이 스며들었다.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방송국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는 차하얀.
“한창 자고 있을 시간에 갑자기 깨워서 많이 놀랐지?”
한세계는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방송국 안으로 인도했다.
그가 차하얀을 기다리고 있던 자리까지 부드럽게 그녀를 이끄는 한세계.
그가 여러 대의 모니터와 복잡한 버튼으로 이루어진 기계들 너머의 투명한 유리창을 가리켰다.
“그래도 당사자 의견부터 묻고 시작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차하얀은 그의 손짓을 따라 조용히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휘둥그레진 눈을 더 크게 치뜨며 온몸을 굳혔다.
서서히 벌려지는 입 안으로 쉴 새 없이 들이키는 들숨.
방송국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망울에 유리창 안의 광경이 파르르― 떨리며 반사됐다.
유리창 안 스튜디오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하나.
그리고 그 의자에 온몸이 결박된 채로 묶여있는 한 사람.
밝은 조명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축축이 젖은 눈가리개와 살짝 벌려진 입을 꼼꼼히 싸맨 재갈.
의자 뒤로 돌려진 양팔과 빈틈없이 구속된 양다리.
어떻게든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몸짓을 따라 벌린 입에서 턱까지 흘러내린 침과 긴 머릿결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네?”
차하얀은 한세계의 물음에 다소 멍청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깨동무를 한 채로 살짝 몸을 숙이는 한세계 덕에 가까이서 마주하는 서로의 눈빛.
한세계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유리창 너머를 턱짓하며 다시금 말했다.
“네가 생각하기에 어떤 벌을 주면 좋을 것 같냐고, 하얀아.”
저 김한별한테.
조금의 공백도 없이 그녀의 귓가에 빈틈없이 흘러드는 익숙한 이름.
차하얀은 한세계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해서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진하게 젖은 눈가리개에서 뚝― 뚝― 흘러내리는 눈물.
지금도 쉴 새 없이 무언갈 옹알거리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재갈 물린 입.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내지르는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 방음벽 너머에선 너무나도 기괴하게 느껴지는 몸짓일 뿐이었다.
차하얀은 절로 온몸을 타고 오르는 닭살을 느끼며 삐거덕거리는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한세계에게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저, 저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형부.”
“뭐가?”
“버, 버, 벌요. 저, 전 괜찮아요, 형부. 전 진짜 괜찮아요―! 한별 언니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형부. 그냥―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셔서 속에도 없는 말을 조금 내뱉으신 것뿐이에요. 한별 언니도 분명―”
다급히 대신해서 변명을 쏟아내는 차하얀을 지그시 바라보는 한세계.
그의 표정이 굳어갈수록 차하얀의 목소리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글쎄.”
한세계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눈가를 게슴츠레 좁혔다.
“다른 캠프원들 앞에서 아주 대놓고 너를 욕하는 것도 모자라 네 언니를 모욕하고 나를 모욕했어.”
차하얀은 한세계의 표정 변화를 인지하자마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대로 김한별을 놓아주는 선택지는 없어, 하얀아. 애초에 캠프 기강 유지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김한별을 이대로 놓아주는 일은 없다고.”
툭―!
어깨동무를 풀고 단단히 그녀의 양어깨를 움켜쥐는 한세계의 손길.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던 시선에서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두 사람 중 한세계가 먼저 속삭였다.
“하얀아.”
다정한 호명이지만, 그 안에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온기.
“정말 실망이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곧바로 차하얀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비수.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내가 아는 차하얀이 맞지?
“너로도 모자라서 네 언니와 나를 욕한 사람을 어떻게 이대로 보내자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
비수가 쏘아질 때마다 크게 몸을 움찔거리는 차하얀.
허나, 한세계는 그 움찔거림을 양손으로 꾹― 억누르며 그녀의 눈망울을 노려보았다.
“넌 네 언니와 내가 어이없게 욕을 처먹은 건 안중에도 없니? 그냥 아무렇게나 용서해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
“…….”
“대답해.”
“……아, 아니에요― 아니에―”
“그래― 설희를 욕한 것까지도 그렇다 쳐도 저년이 나를 욕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네 입에서 그만하자는 소리가 나와.”
“…….”
“나만 우리 사이를 오해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가 그 정도 사이밖에 안 됐어?”
한세계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고개를 휙― 휙― 내젓는 차하얀.
허나, 한세계는 누그러지지 않는 눈빛으로 차하얀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그런데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차하얀.”
“…….”
한세계의 나지막한 속삭임에 더 잘게 떨리기 시작한 차하얀의 동공이 서둘러 한세계의 시선을 피했다.
입술을 꾸물꾸물 씹으며 바닥을 향해 내리 깐 차하얀의 눈망울.
“나도 알아, 하얀아.”
“…….”
“이게 무섭고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인 걸 나도 잘 알고 있어.”
그치만 내가 하얀이 너에게만 털어놨었잖아.
“때론 나쁜 짓으로 얻을 무언가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나쁜 짓이 있다고.”
한세계는 잠시간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곤 다시 차하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는 캠프에 제대로 된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식량은 계속해서 축내는 캠프원들을 다그쳐야 해.”
“누군가는 불평불만만 쏟아내면서 캠프원들을 선동하는 주동자에게 따끔한 경고를 보내야만 해.”
“누군가는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을 내뱉는 년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야만 해.”
언젠가부터 아래로 깔린 눈망울을 다시 들어 올려 한세계와 눈을 맞추는 차하얀.
한세계는 그 멍한 눈망울을 지그시 응시하며 조금 더 가까이 더 눈망울에 따라붙었다.
“도대체 왜 네가 그 여자들한테 그런 모진 말들을 들어야 하는데? 넌 나와 남도윤을 화해시키려 그렇게나 도서관과 농과대를 오가며 노력했는데― 그 여자들은 도대체 무슨 노력을 했다고 너를 배신자 취급하면서 욕하는 거야?”
그 여자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네가 그렇게 했어야만 했던 이유는 알아볼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무작정 너를 욕하기 바쁘잖아.
“이건 아니야, 하얀아.”
고개를 휘― 휘― 젓는 한세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에 차츰차츰 물기가 일었다.
한세계는 점차 그렁그렁하게 물들어가는 차하얀의 눈망울을 마주하며 부드럽게 그녀의 양 어깨를 쓰다듬었다.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너를 욕한 김한별.”
“…….”
“그 김한별한테는 벌이 필요해.”
“…….”
“벌을 줘야 해, 하얀아.”
그렇지?
조용히 되묻는 한세계의 말에 그의 동공을 마주하고 있던 차하얀의 고개가 조심스레 움직였다.
“왜.”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차하얀에게 치미는 짧은 물음.
“……소, 소중한 식량을 축내면서도 캠프에 제대로 공헌하지 않았어요.”
“또―.”
“……이상한 거짓말로 다른 캠프원들을 선동했어요.”
“또―.”
“언니를 모욕하고 형부를 모욕했어요.”
“또―.”
“…….”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한세계의 물음.
계속되는 물음에 자신이 했던 대답을 상기하며 눈망울을 데구루루― 굴리는 차하얀.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잖니.”
그 눈망울에 대고 옅게 미소 짓는 한세계를 바라보며 차하얀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에게 나쁜 말을 했어요.”
“…….”
한세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웅얼거리는 답안지에 아무런 대답도 내뱉지 않는 한세계.
허나,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쓰다듬던 손을 놓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깨를 쥐고 있던 손으로 조금 넓게 벌리는 양팔.
그 익숙한 신호에 차하얀이 쭈뼛쭈뼛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제자리를 찾듯 단번에 한세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차하얀과 잇달아 그녀를 포근히 감싸오는 부드러운 포옹.
“그래, 하얀아.”
차하얀은 따스한 속삭임을 들으며 익숙치 못한 한세계의 모습에 철렁였던 심장을 다독였다.
“그게 바로 김한별이 벌을 받는 이유야.”
다시금 그런 순간이 오지 않게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
차하얀의 갑작스런 이탈로 마무리되었던 첫 번째 사서 사무실에서의 대화.
바로 그다음 날 다시 이어지는 대화를 엿듣기 위해 어제와 똑같은 자리의 벽에 천천히 등을 기댔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차하얀―!”
차하얀이 먼저 말을 걸었던 첫째 날과는 달리 차하얀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쩌렁쩌렁 울리는 여성 캠프원의 고함.
“갑자기 한별 언니는 어디로 사라진 거고― 여기 적힌 특별관리센터라는 건 또 뭐야―!”
긴박한 외침 속에 선명히 들리는 종이의 펄럭임.
“어제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멀쩡했던 사람한테 무슨 정신상의 문제가 있다고 이렇게 갑자기 일방적으로 툭― 통보하고 거주지를 옮기는 거야?! 이거 거짓말이지―?!”
“거짓말이 아니라 공지에 적혀있는 대로다, 고하나.”
“……태하 선배.”
김한별을 정신상의 문제로 특별관리센터로 옮기겠다는 공지를 펄럭이며 따지는 여성 캠프원을 저지하는 박태하.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차하얀과 함께 들여보낸 옛 학생회의 부회장이었다.
“정말 갑자기 차하얀이랑 같이 들어와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도윤 선배랑 준기 선배가 어떻게 됐는지 아시는 거예요?! 선배― 정말 선배까지 왜 이러세요, 진짜……. 선배 한별 언니가 사라졌다구요.”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로 여성 캠프원이 박태하에게 애원하듯 읊조렸다.
허나, 그 울먹임 뒤에도 아무런 사적인 말을 내뱉지 않는 박태하.
쾅―!
“아무것도 모르는척 하지마, 차하얀―! 다 네 짓이잖아아―!”
테이블을 세게 내려치는 굉음과 의자를 뒤로 끄는 소음이 동시에 울렸다.
“한별 언니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이유는 너밖에 없잖아―! 언니가 어제 너한테 몇 마디 했다고 이러는 거야?! 야― 너 정말 무서운 년이구나―?!”
“자리에 앉아라, 고하나.”
“……미쳤어―! 선배도 미쳤고― 저 차하얀도 미쳤고―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다 미쳤어어―! 그냥 다른 사람을 불러주세요! 선배랑 저 가증스러운 년 말고 예리 선배― 그래 예리 선배는 어딨어요?!”
큰 언니의 실종으로 단번에 패닉 상태에 빠진 듯한 농과대 여성 캠프원들.
난 그 중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
그녀의 이름을 다시금 되뇌었다.
고하나.
어제도 제일 먼저 차하얀을 다그쳤던 캠프원이자 김한별을 유독 잘 따랐다던 일종의 오른팔.
“……고하나.”
난 두 번째 이름을 속삭이며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