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2)
예상보다 훨씬 화기애애한 잡담이 잠시 끊긴 차량 안.
차창에 흐릿해지는 풍경 중 유독 흉물스러운 광경에 창문을 내렸다.
“잠깐만.”
짧은 명령에 곧바로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즈려밟는 유서준.
잠시간 멈춰 선 시야 속에 엉망으로 망가진 예술대학이 담겨왔다.
남도윤의 염력에 처참하게 부서지고 갈라진 건물 외관과 그 주변 대지.
특히나 작은 크레이터가 거미줄처럼 퍼진 중앙 공터를 바라보자마자 며칠 지나지도 않은 생생한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추, 충서어어엉―!”
도읍 쟁탈전을 회상하던 뇌리를 깨우는 우렁찬 고함 소리.
조용히 예대 공터를 바라보고 있는 고급 세단을 알아본 캠프원들이 서둘러 허리를 곧추세웠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마구 헤집어진 땅과 건물들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보수하는 작업을 맡은 캠프원들.
서둘러 들고 있던 삽을 반대쪽 손으로 옮기고 경례를 하는 캠프원들, 부동의 차렷 자세로 차량을 바라보는 캠프원들 너머로 한 캠프원이 아직도 삽으로 땅을 평탄화하던 캠프원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빠악―!
조금 먼 거리에서도 선명히 들리는 타격음과 함께 캠프원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뻘게진 얼굴로 무언가를 속삭이는 캠프원과 그 캠프원의 속삭임에 기겁을 하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캠프원.
“피이이일스으으응―!”
어디서 군 복무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캠프원들 제각각의 경례들이었다.
모든 작업 캠프원들이 정신을 차린 것을 재확인한 중앙의 캠프원이 헐레벌떡 세단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난 다급한 얼굴로 전력 질주 중인 캠프원의 얼굴을 확인하곤 잔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차창 밖으로 휘적거리는 손짓에 서둘러 뜀박질을 멈추는 김민준.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중간 관리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두 쩌리들이었다.
김민준은 여기서 보수 작업을 관리하고, 박우진은 점검의 첫 목적지인 농과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출발해.”
“예, 총장님.”
난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다시 돌아가라는 손짓을 보낸 후 차창을 닫았다.
이제 그리 멀지 않은 농과대를 향해 다시금 바퀴를 굴리는 고급 세단.
멀어지는 고급 세단을 향해 우렁찬 인사로 허리를 푹― 숙이는 김민준을 바라보며 그 너머의 예술대학을 응시했다.
여전히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대략 10명 정도의 작업 캠프원들.
분명 저 10명이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움직인 작업량보다 나나 린네아가 한 시간 대충 움직인 작업량이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고 캠프원들을 그대로 놀릴 순 없으니 일단 그들이 할 수 있는 작업에 투입하고 있지만, 그게 효율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평범한 민간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성실해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이능력자라는 벽.
그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아주 선명히 다가왔다.
지금 제일 첫 번째 점검 대상으로 고른 농과대 또한 그러하다.
언제, 어떤 상황으로 변모할지 모르는 식량이라는 변수.
생존을 가능케 하는 가장 큰 축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급자족을 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런 자급자족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 축산업, 어업 등 1차 산업의 활성화였다.
그중 그나마 접근성이 쉬운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에 첫 번째 점검지도 농과대겠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농사의 효율 또한 수백 명의 농부보다 적합한 능력을 가진 한 명의 이능력자가 압도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런 쓸모 넘치는 이능력자라도 갑자기 뒤져버리면 모든 것이 끝이었지만, 그건 농부들 또한 뒤지면 끝인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그런 농사 관련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를 찾고 또 포섭하는 건 이렇게 쉽게 입에 올릴 확률이 아니다.
그에 반해 농부는 그나마 양성이 가능할 테니 지금부터 농부를 양성하며 자급자족을 대비하는 게 옳겠지.
물론 관련 이능력자를 얻는다면 일이 수월하다 못해 쉬워진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능력자.
난 새롭게 등장한 사회 유지의 그 어느 축보다 거대한 기둥을 되뇌이며 차창 밖을 응시했다.
어느덧 농과대에 도착해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차량과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캠프원들.
고급 세단을 바라보며 마른 입술을 축이는 박우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둘러 문을 열고 하차한 고장훈이 차 문을 열어왔다.
“농과대에 방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총장님!”
열린 차문으로 바닥에 땅을 내디디자마자 들려오는 박우진의 인사.
“총장님에게 농과대를 안내해드릴 수 있는 중책을 맡아 영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총장님!”
내 가벼운 미소에 더 활짝 핀 웃음으로 화답한 박우진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차량에서 내린 후에 조용히 내 양옆에 도열하는 린네아와 고장훈.
“그럼―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총장님!”
양손을 활짝 펴고 허리를 살짝 숙여 농과대 안을 가리키는 박우진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둘이 먼저 들어가서 점검 시작해.”
원래의 농과대 캠프원들이 모두 빠진 농과대 전체 점검과 농사 부지로 활용할 땅 재확인, 본래 동아리 활동에 쓰였던 비닐하우스 재확인 등등―
산적한 점검 거리보다 내겐 더 중요한 점검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선선히 내뱉는 지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린네아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
“옙, 알겠습니다, 총장님―!”
눈치 좋게 내 지시를 알아들은 박우진이 활짝 웃으며 고장훈을 농과대 안으로 안내했다.
“덕구야.”
그들을 함께 따르는 캠프원 중 내 부름에 크게 어깨를 움찔거리는 캠프원.
내 호명에 그제서야 껄끄러운 얼굴을 띈 린네아가 고장훈과 박우진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금방 갈게.”
“…….”
다시 처음과 비슷해진 조금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린네아.
난 그녀를 향해 밝은 미소를 유지하다 고장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꼼꼼히 잘 살피고 있어라, 고자야!”
“옙―! 저만 믿으십시오, 총장님 헤헤―!”
내 고함에 서둘러 몸을 돌려 굽신거리는 박우진과 고장훈.
난 우르르― 로비로 돌아가는 캠프원들을 바라본 후 손을 까딱― 흔들었다.
내 손짓에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있던 장덕구가 헐레벌떡 내게 달려왔다.
툭―!
난 아무 말 없이 내게 달려온 장덕구에게 어깨동무를 걸며 앞으로 걸었다.
터벅― 터벅―
쨍쨍한 햇볕 아래 때아니게 시작된 장덕구와의 산책.
난 바짝 얼어붙은 채로 나와 발걸음을 맞추는 장덕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살만하냐, 덕구야?”
“예―! 큼― 예, 옙―! 저는 총장님의 은혜 덕분에 지금 아주 잘―”
“아니 네가 모셔온 여왕벌 잘살고 있냐고 새끼야.”
낮은 읊조림에 가다듬던 목을 자라처럼 쭉― 당기며 내 눈치를 보는 장덕구.
“예, 옙―! 그때 보고드린 대로 벌집 한 군체를 목숨을 걸고 확실히 길들였습니다!”
제법 만족스러운 확답에 고개를 끄덕이자, 내 눈치만 보고 있던 장덕구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내걸었다.
이내, 입가에 걸어두었던 미소를 빠르게 거두며 목울대를 꿀렁거리는 장덕구.
“……여왕벌이랑 그 군체를 길들였긴 길들였는데 그으― 아, 아직 문제가 많습니다, 총장님!”
“…….”
“그으― 꿀을 채집하려면 그으― 제가 알아보니까 여왕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벌통도 있어야 하고― 채밀기랑 이런저런 도구가 조금 많이―”
“덕구야.”
툭―!
농과대를 빙빙 돌던 산책이 일순간이 끊겼다.
난 장덕구의 중얼거림을 끊으며 놈의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내가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쓰고 싶어서 널 살린 게 아니잖아, 덕구야.”
“…….”
“도윤이랑 준기는 잘 묻어줬어?”
나지막한 물음에 장덕구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몸뚱어리와 쉴 새 없이 내 눈치를 보며 데구루루 구르는 눈깔.
이내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응시하던 장덕구가 버벅거리는 입술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예, 총장님.”
“정 힘들 것 같으면 농과대 애들이랑 같이하라고 했었잖아. 같이 했어?”
“예― 가, 같이 했습니다, 총장님.”
“그래?”
난 장덕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터벅― 터벅―
다시금 재개된 농과대를 빙빙― 도는 가벼운 산책.
“뭐 시체 묻으면서 서로 부딪치거나 싸운 건 아니지?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닙니다― 그냥― 그냥 서로 아무 말 없이 시, 시체만 같이 묻었습니다.”
“어디에?”
“저기― 농과대 뒤편 야산에…….”
“아하. 깊게?”
“예, 예― 깊게. 뒤처리도 완전히 깔끔하게 끝냈습니다.”
“잘했네.”
난 고개를 작게 주억인 후 다시 놈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땠어?”
“……예?”
“아니― 농과대 캠프원들. 자신들의 옛 형님들을 묻어줄 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냐고, 덕구야.”
터벅― 터벅―
이어지는 발걸음에 장덕구가 함께 발걸음을 옮기며 쉴 새 없이 목울대를 꿀렁댔다.
“……그, 그냥 무표정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총장님.”
“뭐 질질 운다던가― 오만상 찌푸리면서 후회하던 새끼 없었어?”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가까이 있던 네가 보기에도 확실히 우리 편으로 보였단 말이네?”
“……예.”
짧은 확답을 쏟아낸 삐쩍 마른 입술이 이번엔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그런데 다른 말은 어렴풋이 들은 것 같습니다, 총장님.”
“뭔데?”
“그으― 남도윤하고 성준기가 죽은 이후에 농과대 쪽이었던 여성 생존자들이 만날 때마다 발광을 하면서 배신자라고 소리친다고― 그 애들끼리 속닥거리는 말은 들은 것 같습니다.”
……배신자.
그 단어를 읊조리며 내짓는 옅은 미소를 바라보던 장덕구가 말을 이었다.
“그 농과대 쪽이었던 여성 생존자 년들이 아주 대놓고 불만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총장님이 계속 층을 옮겨주며 분리시켜도 제들끼리 뭉쳐서 안 떨어지려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놈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몸짓에 장덕구가 더 눈을 크게 치켜뜨고 소리쳤다.
“총장님이 공훈 보상으로 한 명씩 고르라 했는데 솔직히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눈에 살기가 가득한 년들이랑 자신을 쓰레기 보듯 보는 년들 중에 누굴 골라야 하냐고 난감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옙―! 아, 안 그래도 할 일이 산더미 같으신데 미리 그년들에게 조치를 취하시는 게 어떨까 해서― 조금 주제넘은 말을 올렸습니다, 총장님.”
기회를 주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장덕구.
난 놈이 말이 끝나자마자 헛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조치?”
서둘러 간사한 웃음을 지어대는 장덕구의 입을 막으며 재차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뒤진 남도윤으로 보이냐, 덕구야?”
“…….”
“따지고 보면 적국의 포로인 년들 복지까지 생각해주게?”
덕구야.
난 놈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대며 놈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왜 농과대였던 여성 생존자들만 따로 모아서 계속 층을 옮겨대고 있을까?”
하루도 채 지나지 않게 6층에서 2층을 강제로 오가는 여성 캠프원들.
눈에 숨기지 못하는 적개심을 보인 채로 똘똘 뭉치는 적국의 포로들.
“내 모든 캠프원들에게 인사시키면서 보여주고 있는 거야. 어떤 일을 해서든 캠프에 도움이 되는 행동은 안 하고 농과대에서처럼 밥만 축내려는 모습을.”
“…….”
“덕구 너 같은 새끼의 화려한 업적에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항상 이해해주고 챙겨주던 소중한 오빠가 나한테 죽어버렸다는 이유로 대놓고 반항하는 년들을 캠프원들에게 보여주는 거지.”
이다음 계획이 뭔 줄 알아?
조용한 물음에 장덕구가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었다.
“전향자들의 지목에 얌전히 따르면 별다른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또 농과대에서처럼 처받아 먹기만 하려 하면 난 그중 제일 심하게 반항하는 한 년을 고를 거야.”
그리고 캠프원들에게 공지하는 거지.
“그 여성 캠프원은 불안한 정신상의 문제로 충동적인 행동이나 폭력적인 행동으로 캠프에 위해를 가할 확률이 다분하다. 그러니― 그 여성 캠프원만 특별히 케어할 수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겠다.”
그럼― 그 공지를 본 캠프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몇몇 캠프원들은 아주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겠지. 인문대, 학생회관 등등― 이곳엔 그년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도 꿋꿋이 캠프에 공헌하는 캠프원들이 많거든.”
“몇몇 캠프원들은 그년을 이해하고 동정하겠지.”
“또 몇몇 캠프원들은 아마 수상쩍어하고 의심할 거야. 하루아침에 한 사람이 갑작스레 사라진 거니까.”
그리고 어떤 반응이든 상관없어.
결국 모든 캠프원들이 알게 되는 건―
“그년이 갔다는 특별관리센터가 어딘지도 모르고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거야.”
그 여성 캠프원들은 하루아침에 캠프에서 증발하여 아무도 볼 수가 없는 거지.
“그렇게 그 여성 캠프원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리고―
“또다시 전향자들의 지목이 시작되는 거지.”
“한 번으로 안 되면 그년들이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특별관리센터로 거주지를 옮기는 여성 캠프원들이 늘어날 거야. 그렇게 특별관리센터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여성 캠프원들이 늘어나고 그녀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년들은 무조건 지목에 순응하게 되어있어.”
그 어떤 명령도 자신이 상상하는 최악의 결말, 특별관리센터보다는 나을 테니까.
“누군가의 불행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지만, 자신의 행운에 감사할 테니.”
덕구야.
툭―!
난 조용히 속삭이며 농과대를 빙빙 돌던 발걸음을 멈췄다.
아주 큼지막한 눈으로 내 말을 경청하던 장덕구가 눈알을 천천히 굴려댔다.
“여기서 덕구 너한테 제일 중요한 건 하나야.”
난 놈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내지었다.
“그럼 그 특별관리센터로 사라진 여성 캠프원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
“캠프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하는 여성 캠프원들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
보상?
난 아주 낮은 목소리로 장덕구에게 물었다.
……꿀꺽.
아주 큼지막한 소리로 목을 꼴깍이는 장덕구.
난 반짝반짝 빛나는 장덕구의 눈깔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일단은 널 살려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끄드득―!
어깨를 세게 부여잡는 손길에 다른 감정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하는 놈의 눈깔.
“캠프에 이바지한 게 있어야 보상을 줄 거 아니야, 이 덕구 새끼야.”
“……끅―!”
“그러니까 벌통이든, 채밀기든 좆같은 변명들 다 때려치우고 어떻게든 내 앞에 꿀을 가져와.”
“……끄윽―!”
“아직 안 죽여줬으면 안 죽인 보람을 느끼게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새끼야.”
“……마, 맞습니다, 총장님―!”
어깨를 부여잡던 손을 놓고 나서야 제대로 튀어나오는 놈의 대답.
내 손이 벗어난 이후에도 잘게 경련을 계속하는 어깨를 바라보다 어깨동무를 풀고 놈을 가볍게 밀었다.
“꺼져. 지금 당장 시작해도 꿀을 모으는데 한세월일 거 아니야.”
내 밀침에 춤을 추듯 몸을 휘적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는 장덕구.
놈이 식은땀이 가득 맺힌 얼굴로 내게 고개를 돌려왔다.
“빨리 시작해.”
“……예, 예― 알겠습니다, 총장니이임―!”
목청껏 소리치며 농과대로 달려가는 장덕구.
띠링―!
[‘장덕구’가 당신에게 ‘아주 강하게’ ‘복종’합니다.]
[복종 요인 : 약속에 대한 ‘아주 강한’ 신뢰, 생존을 위한 ‘아주 강한’ 버팀목 ……]
놈의 뒷모습을 따라 허공에 출력되는 상태창 메시지.
“……진짜 여자에 미친 새끼네.”
가볍게 떡밥만 던졌는데도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복종 수치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능력자.
난 차량 안에서 했던 상념을 다시금 떠올리며 사회 유지의 새로운 축을 되뇌었다.
인재 관리.
그런 면에서 아주 피곤하고 귀찮지만 모든 지배자들에게 필수적인 덕목.
난 어쩌면 차하얀보다 훨씬 더 공들이고 있는듯한 장덕구를 생각하며 헛웃음을 내지었다.
그러니 이런 공통 권능이 생성된 거겠지.
띠링―!
[공통 권능]
[왕혈(王血)]
[고귀함을 하사하는 건 왕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포상입니다.]
[보유 수량 : 0개]
[Tip : 고귀함을 찾기 위해선 고귀함을 빼앗거나, 특별한 곳을 찾으세요!]
별다른 설명 없이 한 줄만 띡― 써 내려진 ‘왕혈’이라는 권능.
하지만 그 한 줄의 은유만으로 이 권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고귀함.
이 시대의 고귀함은 아마 이능력일 확률이 높겠지.
이능력을 하사하는 건 왕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포상.
즉, 누군가를 이능력자로 만드는 지배자들의 공통 권능일 것이 분명했다.
이 생각만으로 머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주 수많은 얼굴들.
고장훈, 박태하, 차설희 등등―
가장 신뢰하는 이들을 가장 유용한 신하로 세우라는 아주 노골적인 은유에 아직 왕혈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우선순위가 머릿속에 세워졌다.
고장훈과 박태하 중 첫 번째를 생각하던 뇌리에 떠오르는 화려한 이목구비.
남자들 사이에 새롭게 떠오른 차설희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일단 어떤 능력이 하사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게임이나 전투에 익숙해질 확률이 높은 남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지.
차설희에게 왕혈을 부여한다 해도―
그녀는 따지고 보면 아내이자 호위기사이자 간부가 되는 꼴―
“……어?”
가볍게 이어지던 너털웃음이 뚝― 끊기며 다소 멍청한 단음이 튀어나왔다.
뭐야―
그럼 차설희 다음은 차하얀이고 뭐 그다음은 다른 연예인인가.
아주 뭔 연예인 간부 군단을―
“……어.”
다시 한번 줄줄 흘러나오던 상념이 끊겨왔다.
난 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고 권능창을 다시금 응시했다.
“……이거.”
……그리 나쁘진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