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93화 (93/120)

운명 충돌 (3)

여전히 태생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다.

난 사회과학대 옥상에서 중앙의 좀비 웨이브를 응시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변종 ‘벌룬’의 연이은 폭발로 한데 뭉친 기나긴 선.

조금 멀리서 본다면 마치 지렁이처럼 꿈틀꿈틀거리고 있다는 착시마저 불러일으키는 무수한 검은 점들의 집합.

끼에에에―

제법 먼 거리를 타고 어렴풋이 들려오는 놈들의 괴성에 더 깊게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이번에는 혐오감으로 얼굴을 찌푸린 것이 아니었다.

대학 전체에 흩뿌려져 있던 좀비들이 저렇게 징그러울 만큼 한자리에 뭉쳤기에 대학 점령에 탄력이 붙었다.

오히려 저렇게 놈들이 뭉쳐버렸기에 남측 점령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그 점이 내게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껄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좀비 한 마리 잡기 힘들던 옥상에서 매점을 위시로 한 인문대 과방 층.

그렇게 6층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에서 그 주변의 단과대 그리고 대학 남측.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성장과 확장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그 방향을 무언가가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도서관을 완전히 점령했을 때와, 암군이라는 참칭자를 죽였을 때 갱신된 메시지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더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더 많은 병력을 거느려라.

그리고―

현재 반석대학교에 잔존하는 참칭자는 총 두 명이다.

……경쟁 혹은 전쟁.

무언가가 아주 대놓고 다른 참칭자와의 충돌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영토를 늘리다 보면 아주 자연스레―

극― 극―

“…….”

갑작스레 고요한 상념을 방해하는 거친 긁적임.

난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내 옆에 나란히 선 장덕구를 바라보았다.

이마가 시퍼렇게 퉁퉁 부은 멍청한 얼굴과 습관처럼 바지춤을 긁적이고 있는 더러운 손.

툭―!

“그거 진짜 한 번 떼줄까?”

“으헤에에엑―!”

어깨동무하며 속삭인 말에 놈이 지랄발광을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켁― 켁― 켁―

눈알이 빠져나올 만큼 크게 치켜뜬 눈으로 급하게 걸린 사레를 콜록이는 몸짓.

“…….”

급하게 호흡을 정리하던 놈이 아무 말 없이 놈을 내려다보는 내 눈빛에 서둘러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필사적으로 다시 몸을 일으켜 내 어깨동무에 몸을 꾸겨 넣는 장덕구.

“아, 아닙니다아아―! 죄송합니다, 관장님―!”

난 제 얼굴에 난 멍처럼 시퍼렇게 물든 놈의 얼굴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안 그래도 고분고분하던 놈이 사과대에 위험한 변종들과 좀비 무리를 미리 정리하는 내 모습을 강제로 관람한 후 더 저자세로 낮아졌다.

툭―! 툭―!

놈의 어깨를 두드릴 때마다 전기가 통한 듯 들썩거리는 장덕구.

“지금 우리가 여기 놀러 왔냐?”

“……아, 아닙니다, 관장님―!”

“위에서 보면 벌레 좀 더 잘 찾을까 해서 데리고 왔더니 이 새끼가 자기 고추나 긁고 있네.”

“…….”

“왜? 슬슬 심심해?”

툭―!

놈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에 착― 감겨오는 쇠 파이프.

“…….”

장덕구는 새로이 어깨에 닿아오는 쇳덩이에 고양이 같은 눈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왔다.

자연히, 더 험악해지는 분위기와 훨씬 더 진하게 구겨진 얼굴.

장덕구는 더 악화된 상황에 볼살이 파르르 떨릴 만큼 더 빠르게 고개를 휙― 휙― 내저었다.

……쯧!

오히려 저 새끼의 면상을 보고 있는 게 더 손해였다.

난 크게 입천장을 차며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빨리 벌레력인가 뭔가 하는 것도 올리고 여왕벌도 잡아야 해독제를 주지, 이 새끼야.”

“……그으― 그 제 전용 스탯을 올리려면 이, 이런 옥상보다는 풀숲이나―”

“…….”

“여,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관장님!”

점점 가늘어지는 내 눈가에 식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장덕구.

난 제발 알아봐달라는 듯이 고개를 1초마다 휙― 휙― 돌리며 주변을 바라보는 장덕구를 조용히 응시했다.

놈의 말대로 이대로 옥상에 가만히 있는 건 그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이 자리 또한 놈이 아닌 나를 위한 자리였다.

장덕구에게 서열과 공포를 끊임없이 되새기기 위한 자리.

이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장덕구는 내가 아주 특별히 관리할 대상이었다.

“…….”

난 여전히 요란하게 고개를 움직이는 장덕구를 바라보다 다시 좀비 웨이브를 응시했다.

어쨌든 사과대 점령을 끝마치면 남측의 주요 건물들을 모두 확보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다음 목표는 무조건 저 좀비 웨이브가 되겠지.

저 좀비 웨이브를 방치한 채로 대학 북측으로 넘어갈 순 없으니까.

띠링―!

이번에도 내 상념을 방해하는 외부의 소음.

하지만, 이번엔 내가 기다리고 있던 알림이었다.

1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복종의 공물 다음으로 갱신되는 메시지.

[위협 수치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감소한 영토를 확보하셨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영토 : 반석대학교 사회과학대]

[왕권 : 305 -> 330]

대학 남측에 남아있던 마지막 단과대를 확보했다는 시스템의 공언.

목표를 달성한 성취감과 함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퍼어어어엉―! 퍼어어어엉―!

마치 남측 완전 점령을 축하하듯 갑작스레 울리는 축포.

……하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그것은 축포가 아니었다.

“……벌룬.”

“……예?”

끼에에에에에엑―!

커다란 굉음이 사라진 공백을 곧바로 채우는 좀비들의 포효.

두두두두두두―!

순식간에 대학을 울리기 시작한 좀비들의 발 구름에 눈가를 좁혔다.

남측과 북측을 가르던 좀비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찢어지고 있었다.

“과, 관장님 지금 이게 무슨―”

“닥쳐.”

난 장덕구의 호들갑을 미리 차단하며 계속해서 앞을 관찰했다.

두두두두두―!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하던 기나긴 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광경.

조금 전에 떠올렸던 껄끄러움이 다시금 목 안을 간지럽힌다.

쿠우우우웅―!

좀비들이 다른 곳에서 울린 집결 신호에 차단선을 해체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울리는 수상쩍은 굉음.

이번엔 서쪽과 동쪽이 아닌 대학의 북쪽이었다.

……콰앙―! 콰아앙―!

난 커다란 굉음 이후에 연이어 울려 퍼지는 은은한 굉음에 계속해서 소리의 진원지를 응시했다.

쿵―!

“관장님―!”

옥상 철문을 부수듯이 밀어젖히며 달려오는 박태하.

난 시뻘게진 얼굴로 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박태하를 조용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 당장 도서관으로 돌아가서 애들 다 집결시켜.”

“……예!”

난 마른침을 삼키며 서둘러 대답하는 박태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옆자리를 응시했다.

“…….”

불안에 가득 찬 눈깔로 데굴데굴― 눈치를 보는 데 여념이 없는 장덕구.

이 새끼는 이런 돌발상황에 아직 혼자 놔둘 수는 없다.

게다가 제법 중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내 옆에 두는 게 훨씬 더 안전하겠지.

“고개 숙여라, 덕구야.”

“……예?”

“뒤지기 싫으면 고개 숙이라고, 새끼야.”

갑작스런 변수에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여실히 느끼고 있는 장덕구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턱―!

난 그런 장덕구의 목을 꽉― 움켜쥐고 아직도 굉음이 쏟아져나오는 북쪽을 시야에 담았다.

아주 갑작스레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아마도―

남측의 마지막 단과대인 사회과학대 확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이후에 울린 벌룬의 집결 신호와 북측의 굉음.

이 일의 인과를 알아내기에 앞서 반드시 파악해야 할 단서의 조각들이었다.

툭―!

난 모가지를 틀어 잡혀 대롱대롱 흔들리는 장덕구를 들고 옥상 난간을 뛰어넘었다.

쐐애애애액―!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한 좀비들이 사라진 반석교회와 그 주변 일대.

쿵―!

“케헥―! 켁―! 켁―!”

난 착지의 여파로 불에 닿은 오징어처럼 꿈틀거리는 장덕구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쐐애애액―!

“으브읍― 으브으으으으으―”

빠르게 도로를 주파하는 내게 들려오는 장덕구의 괴음을 무시하며 더 빠르게 발을 놀렸다.

순식간에 통과하는 남측과 북측의 분기선이었던 공간.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진 4차선의 중앙 도로.

끼에에에엑―!

쾅―! 콰아앙―!

차하얀을 업고 돌파했던 도로를 되돌아갈수록 멀게만 들려왔던 굉음들이 더 선명히 들려왔다.

툭―!

점점 가까워지는 대학 북쪽의 예술대학.

내게는 아직도 익숙한 건물 외관이 가까워질수록 소리의 진원지 또한 가까워졌다.

“끼에에에엑―!”

예술대학 앞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좀비들과―

콰아앙―! 콰앙―!

그 좀비들을 내려찍고 있는 여러 대의 차량들.

난 도로에 즐비한 반파된 차량들과 뿌리 뽑힌 가로수들을 휘둘러보았다.

잔뜩 찌그러진 차량 밑에 깔린 좀비들과 천천히 도로에 번지고 있는 핏물들.

“죽어―! 죽어, 이 좀비 새끼들아아―!”

또한, 차량과 가로수가 미처 잡지 못한 좀비들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포효까지.

와아아아아―!

난 핏물에 가득 물든 무기를 다잡고 좀비들에게 달려드는 생존자들을 빠르게 살폈다.

쿠웅―! 쿠우우웅―!

내 수색조 이후로 야외에서 처음 보는 듯한 다수의 인파.

크게 두 무리로 나누어진 생존자들로 보였다.

그중 다소 왼쪽에 치우쳐진 생존자들을 살피던 와중 작은 이질감이 머리를 스쳤다.

생존자들 중간중간에 눈에 확 띄는 다른 인종의 외국인들.

그 외국인들의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익숙한 얼굴의 여성.

급박한 방향 전환에 사방으로 휘날리는 금발과 검붉은 핏물이 유난히 부각되는 새하얀 피부.

다가오는 좀비만을 바라보고 있는 푸른 동공에 저절로 눈이 커다래졌다.

……린네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하이퀸즈 린네아의 출현에 커졌던 눈이 닫히기도 전에―

콰아아앙―!

그녀에게 달려오던 좀비들에게 망치처럼 내리꽂히는 큼지막한 차량.

린네아를 가려버리는 차량에 저절로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

린네아에게 달려들던 마지막 좀비들을 끝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중앙 도로.

툭―!

그 침묵을 뚫고 울려 퍼지는 발소리에 오른편의 남자가 고개를 돌려왔다.

“끄흑― 끅― 콜록― 콜록―”

착지를 마치고 앞으로 내던진 장덕구에게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반응.

서둘러 뒷목을 움켜잡고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장덕구에게 남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장덕구?”

마치 하늘의 중간에서 고정된 듯 공중을 부유하는 남자.

놈의 뇌까림을 시작으로 잠시 숨을 고르던 모든 생존자들의 시선이 장덕구에게 모였다.

갑작스런 장덕구의 출현에 깜짝 놀라 다시 서로 뭉쳐대는 생존자들.

그들의 선두에 부유하던 남자가 장덕구를 노려보며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어디로 도망쳤나 했더니 이런 곳에서―”

“끄헉―!”

철푸덕―!

남자의 목표물이 된 듯한 장덕구를 뒤로 잡아당기는 거친 손길.

추하게 벌러덩 넘어지는 장덕구를 가로막으며 공중의 남자를 응시했다.

“…….”

들어 올리던 손을 멈칫거리며 나와 시선을 맞대는 남자.

꽤 많은 전투 인원을 보유한 무리의 우두머리.

아주 파괴적이고 특출나 보이는 이능력의 보유자라는 사실을 제하고―

아주 가끔씩 추론보다 훨씬 정확한 직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반석대학교에 잔존하고 있는 마지막 경쟁자.

“너네. 참칭자.”

쇠 파이프를 다시금 다잡으며 작게 속삭이는 읊조림.

고요히 가라앉은 두 눈으로 나를 내려보던 놈이 화답했다.

“……당신이구나. 하얀이 납치범.”

내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다시 들어 올리는 놈의 손짓.

놈의 손이 까딱―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내 무릎이 도약을 위해 살짝 높이를 낮췄다.

띠링―!

그 순간, 뇌리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알림음.

[반석대학교 내에 잔존하던 마지막 참칭자들이 서로를 조우했습니다.]

[운명 충돌 발생.]

[왕위 쟁탈전 해금에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었습니다.]

[1. 양립할 수 없는 운명 보유자들이 서로 조우할 것.]

[2. 쟁탈지의 대부분이 참칭자들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것.]

길게 이어지는 메시지를 빠르게 훑어대는 나와 놈의 눈길이 동시에 가늘어진다.

[필요 조건 충족으로 왕위 쟁탈전을 해금합니다.]

[현재 반석대학교 내에 잔존하는 참칭자들의 세력도를 갱신합니다.]

[대학 북측 : 남도윤 & 린네아 (기숙사 구역 임시 리더) 동맹]

[대학 남측 : 한세계]

갑작스레 눈앞에 출력되는 반석대학교 지도.

이제는 사라진 좀비 차단선을 기준으로 남측에 칠해지는 검은빛과 북쪽을 칠해가는 하얀빛.

띠링―!

[첫 번째 왕위 쟁탈전, ‘도읍 쟁탈전’을 해금합니다.]

우우웅―!

쟁탈전이 해금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귓가에 울려오는 선명한 가동음.

그 가동음을 좇아 들어 올린 고개에 검은색 왕관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툭―!

부드럽게 내 머리 위에 안착하는 검은빛의 왕관과 남도윤의 머리 위에 안착하는 하얀빛의 왕관.

[지금부터 당신은 흑군의 왕입니다.]

[반대편 참칭자는 백군의 왕입니다.]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남측과 북측.

[첫 번째 왕위 쟁탈전, ‘도읍 쟁탈전’의 승리 조건을 공지합니다.]

[첫 번째 왕위 쟁탈전, ‘도읍 쟁탈전’의 승리 조건을 공지합니다.]

강조하듯 두 번 점멸하며 내 시야를 밝혀오는 상태창 메시지.

두 번째 메시지가 끝난 직후 한 줄의 메시지가 새로 번쩍였다.

[라스트 킹 스탠딩 (Last King Standing)]

그 짧은 문장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왕관을 응시하는 시선.

남도윤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하얀 왕관을 바라보던 내게 마지막 메시지가 출력됐다.

[마지막까지 서 있는 왕이 새로운 도읍의 주인입니다.]

[백군보다 먼저―]

[상대편 왕을 쓰러트리세요.]

운명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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