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5)
뚜벅― 뚜벅―
적막에 물든 로비를 울리는 작은 메아리.
이유진은 점점 가까워지는 시선에 미소 지으며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툭―! 툭―!
시계 초침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허벅지를 치대는 쇠 파이프.
그 쇠 파이프를 든 남자의 뒤로 도열한 십 수명의 남녀들.
“안녕~ 관장님.”
도서관 로비를 더 크게 울리는 메아리를 끝으로 발걸음이 멎었다.
서로를 지근거리에 둔 채로 먼저 보내는 부드러운 인사.
살랑살랑― 옅게 흔든 손을 내린 이유진이 방긋 웃으며 관장의 뒤편을 손가락질했다.
“그럼― 들어가는 문은 그쪽인가?”
관장과 도열한 남녀들의 뒤편에 자리 잡은 내부 계단 문을 톡― 톡― 두드리는 가녀린 손가락.
“…….”
계속해서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관장이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잔웃음인지, 헛웃음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옅은 호선.
툭―! 툭―!
그런 와중에도 일정한 리듬으로 흐르는 두드림을 따라 관장의 뒤편에 도열한 남녀 쪽이 작게 일렁였다.
천천히 공간을 여는 남녀들을 통과해 대치하고 있는 그들의 중간에 놓이는 테이블.
쿵―!
“……흐음―.”
이유진은 관장의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테이블에 이어 의자를 내려놓는 광경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둥근 테이블에 놓인 의자 세 개.
도서관 안쪽이 아닌 로비에 차려진 급조된 협상 테이블.
이유진은 이 테이블이 관장의 마지막 앙탈인 것만 같아 더 진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아주 치기 어린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센 척.
끼이익―!
이유진은 여전히 원래의 자리에서 못박혀있는 관장에게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준비된 테이블에 앉았다.
끼이익―!
함께 앉은 장덕구가 멍하니 관장의 뒤편에 선 여자들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더 여유로운 미소로 정면을 응시했다.
저벅―! 저벅―!
이유진과 장덕구가 협상 테이블에 착석한 것을 확인한 관장의 발걸음.
도열한 남녀를 벗어나 홀로 테이블로 다가온 그가 이유진과 장덕구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쿵―!
그리곤 살짝 내던지듯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회색빛의 쇠 파이프.
“……푸흣―”
이유진은 결국 참지 못한 풋웃음을 흘리며 탁자에 놓인 쇠 파이프와 관장을 번갈아 응시했다.
끝단에 지워지지 않는 검붉은 혈흔이 선명한 쇠 파이프와 특유의 무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관장.
“……으음― 상황 파악을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조금 헷갈리게 하네?”
꽃받침을 한 양손으로 턱을 괴곤 살짝 숙이는 상체.
이유진은 조금 더 가까워진 관장의 눈을 바라보며 호선을 그리던 눈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이러면 우리도 그쪽과 대화할 생각이 조금 없어지는데?”
툭―!
이유진이 꽃받침을 하던 손을 풀고 가볍게 중지를 튕겼다.
스르륵― 부드럽게 관장 쪽으로 미끄러지는 테이블 위의 쇠 파이프.
이후 더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댄 이유진이 관장을 향해 얼굴을 찡긋거렸다.
“장소는 우리 관장님이 정해도 이 중요한 대화를 꼴랑 저 애들만 듣는 건 조금 말이 안 되지 싶은데―?”
여전히 뒤편에 도열하고 있는 남녀를 가리킨 이유진이 눈썹과 어깨를 으쓱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여기 도서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잖아. 그럼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대화를 들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게다가―
길게 말을 끄는 이유진에 입가에 맴도는 장난스런 미소.
“내가 좀 관심이 고픈 여자라서 말이야. 사람이 적으니까 대화할 힘이 안 나네?”
“…….”
또다시 조용히 이유진의 말을 듣고 있던 관장이 짓는 미소.
끼이이익―!
이유진은 내부 계단 문을 열고 사라지는 도서관 캠프원의 뒷모습을 확인하곤 그 미소에 화답해주었다.
“그런데 여긴 손님이 왔는데 서비스가 영 엉망이네. 커피는 몰라도 물이라도 내주는 게 기본 예의 아냐?”
이유진의 투덜거림이 끝나자마자 테이블에 투박하게 놓이는 생수 페트병과 종이컵.
“……올~.”
이유진은 생수병과 종이컵을 내려놓고 물러나는 캠프원과 관장을 번갈아 바라보다 생수를 종이컵에 따랐다.
쪼르륵― 종이컵에 흘러내린 생수를 부드럽게 입가에 머금는 이유진.
쌔액―!
그 순간, 날벌레를 내쫓듯 가볍게 주변을 휘젓는 관장의 손바닥이 불러일으키는 바람.
이유진은 앞머리를 간지럽히는 바람을 느끼며 조용히 앞을 응시했다.
툭―!
가볍게 손바닥에 묻은 무언가를 털어내는 관장.
이유진은 그의 손바닥에서 떨어지는 벌레 사체를 바라보며 더 진해지는 미소를 숨기듯 들고 있던 종이컵을 조금 더 위로 치켜올렸다.
끼이이익―!
잠깐의 기다림 끝에 다시 열리는 내부 계단 문.
이유진은 끝도 없이 문을 통해 이어지는 행렬을 바라보며 조금 멍하니 눈을 크게 떴다.
뚜벅― 뚜벅―
조금 오랫동안 로비를 울리던 발소리를 끝으로,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은 로비.
이유진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 캠프원들을 휘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마치 배심원들을 연상하듯 빽빽이 협상 테이블을 둘러싼 도서관의 캠프원들.
“아주 좋은 능력을 뽑았나 봐, 관장님? 아니면 수완이 좋던가.”
잠시간 벌레를 내쫓았던 행동 말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도서관장.
이유진은 그를 향해 배시시― 환한 미소를 보내다 불쌍한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올렸다.
“관장님에 비해 우리 능력은 너무 후져서 이렇게 다소 하기도 싫은 불편한 과정을 거처야 하거든.”
관장 한 명에게 속삭였다기엔 조금 큰 그녀의 목소리.
계속해서 여유로운 미소로 자신을 무장한 이유진이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독이야. 그동안 너희 캠프원들이 병든 닭마냥 픽픽 쓰러졌던 이유는.”
조금은 뜬금없는 그녀의 이능력 공개.
이유진은 살짝 가늘어지는 관장의 눈가에 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갑자기 들고 있던 패를 까는 모습이 무척이나 수상쩍겠지.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사람이 죽는다는 것보다 어떻게 죽었냐가 중요하듯이 독도 중독됐다는 것보단 어떻게 중독됐는지가 더 중요하잖아?”
톡―!
조금 멀리 있는 관장을 두드리듯 허공을 쿡― 찌르는 이유진의 손가락.
“물론 그건 너희한테 안 알려줄 거지만―.”
찡긋― 다시금 콧잔등을 찡그린 이유진이 활짝 웃으며 테이블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이미 너희들 중 일부의 몸엔 며칠 뒤에 발병할지 모르는 소량의 독이 잠들어 있어.”
“뭐― 이미 너희들도 주변의 친구들이 발작하는 걸 봐서 잘 알겠지만, 그거 진짜 아픈 독이거든―.”
“사람이 울 여유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가시로 온몸을 찔러대는 고통. 그렇게 울지도 못하고 온몸을 비틀다가 한순간에 꽥―!”
이유진이 자신을 바라보는 캠프원들에게 우스꽝스런 목소리를 내며 목을 홱― 옆으로 꺾어댔다.
잠시간 비틀어진 시야에 아주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백의 눈동자들.
“물론― 그냥 너희들을 놀리려고 이런 말을 꺼낸 건 아니야. 독이 있으면 당연히 해독제도 있겠지.”
난―
툭.
은근한 미소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그녀가 그들의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그 해독제를 너희에게 팔고 싶은데.”
그렇게 조용히 이어지는 눈맞춤의 종점.
이유진은 관장을 바라보며 아주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우리도 양심이 있지, 그렇게 큰 걸 바라진 않아.”
이유진은 아주 은근하면서도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음량으로 속삭였다.
“그냥 우리 두 명이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식량과 쉴 수 있는 방 두 개?”
캠프원들의 목숨과 비교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무게추.
“게다가 우리도 식충이처럼 계속 공짜로 받아먹을 생각도 없어. 지금부터 너희들이 하는 일에 우리 두 명이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탤게. 이제부터 같은 밥을 먹는 한 식구가 되는 거잖아?”
이유진은 가뜩이나 가벼운 무게추를 더 가볍게 만들었다.
그녀의 말을 따라 점점 극단적으로 기우는 무게추.
“그래도 혹시나 모를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캠프원들은 미안하지만 그대로 중독시켜두겠어.”
“물론 우리가 책임지고 중독된 캠프원들이 죽지 않게 제때제때 해독제를 배부할 생각이야.”
안전장치를 명목으로 자신의 무게추에 몰래 달아놓은 또 다른 무게추.
관장이나 소수의 사람이 숨겨진 무게추의 무게를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듣는 이들 중 대부분은 아주 극단적으로 기운 저울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올려진 저울을 앞에 두고 거래하고 있는 자신의 리더.
“……어때?”
이것이 그녀가 모두가 바라보는 협상 테이블이란 무대를 만든 이유였다.
“꽤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캠프원들이 그를 압박하는 도구로 변모한다.
“따지고 보면 그냥 간단한 식량과 보금자리로 귀하디귀한 이능력자 두 명을 거저먹는 거래잖아?”
계속해서 살살 관장을 간지럽히는 속삭임에 그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상체를 움직이며 테이블 위에 올리는 손.
톡― 톡― 톡―
그리고 허벅지를 두드리던 쇠 파이프처럼 조용히 테이블을 두드리는 손가락.
톡― 톡― 톡―
시계 초침처럼 부드러운 리듬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검지가―
톡― 톡―.
작게 어깨를 들썩이는 웃음과 함께 천천히 멎었다.
“협박이군.”
처음으로 입을 연 관장에게서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
“아니, 협박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 급작스러운 거래인―”
“굳이 다 아는 사람들끼리 말장난할 필요가 있나.”
관장은 이유진의 말을 끊으며 지그시 그녀와 눈을 맞췄다.
“지금 너는 내 캠프원들의 목숨을 인질로 나를 협박하고 있는 거잖아.”
으르렁거림도, 분노도 없이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그의 목소리.
“……캠프원들의 목숨?”
하지만 이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더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캠프원들의 목숨만 인질이라고 생각해?”
우우웅―!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타고 흐르는 보랏빛 액체.
뚝― 뚝―
치이이이익―!
테이블에 닿자마자 작은 구멍을 내버리는 액체의 연기 사이로 그녀가 관장을 향해 묘한 미소를 내보였다.
“……어쩌면 너도 이미 중독되었을 수도 있잖아?”
톡―!
이유진의 묘한 미소에 화답하며 다시금 테이블을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
“협박 맞네. 조금 미숙한 협박.”
마치 이유진을 따라 하듯 묘한 미소를 머금은 관장이 눈가를 좁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너흰 왜 사람 헷갈리게 그런 미숙한 협박을 하는 거지?”
정말 궁금하다는 듯 살짝 기울어진 얼굴.
이내, 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 앞에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이 올라왔다.
“협박에 필요한 세 가지 중에 너흰 두 가지만 지켰잖아.”
활짝 펴진 세 개의 손가락에서 두 개로 접어드는 손가락.
“내가 생각하기에 협박에 필요한 요소는 총 세 가지거든.”
다시 세 개로 펴진 손가락이―
“우선, 첫 번째.”
조용히 하나로 돌아간다.
“협박할 상대를 관찰해야겠지. 상대가 누구인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약점을 내가 틀어쥘 수 있는가 등등.”
그리고 두 번째.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는 그녀들에게 펴지는 두 번째 손가락.
“그렇게 협박할 상대와 마주해야겠지. 뭐, 편지나 음성 메시지나, 영상이든 뭐든 상대에게 내 협박을 알려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직접 나온 건 아주 대담했어.”
마치 그녀들을 칭찬하듯 그의 입가에 옅게 맴도는 미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건 아주 큰 메리트지. 실시간으로 변수에 대응할 수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아주 유의미한 압박을 줄 수 있으니.”
그러니―
“성공으로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실패의 리스크도 감수해야겠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대화.
관장을 바라보는 이유진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허나, 그런 이유진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게 세 번째 손가락을 펴는 관장.
그는 그녀들을 향해 살랑살랑 세 개의 손가락을 흔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협박에 필요한 세 번째 요소가 뭔 줄 알아?”
쾅―!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굉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능력을 가동하려던 장덕구의 눈에 비치는 수 많은 물체들.
장덕구는 하늘에 붕 뜬 테이블과 엎어진 채로 사방으로 비산하는 생수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크게 치떴다.
퍼억―! 퍼어억―! 퍼억―!
그리곤 그의 귓전을 때려오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장덕구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오른쪽 뺨을 적시는 뜨거운 액체를 느꼈다.
주르륵― 천천히 흘러내리는 액체의 뜨거움에 저절로 닭살이 돋는 소름 끼치는 감각.
철퍼덕―!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하기도 전에 그의 발치에 쓰러지는 무언가.
장덕구의 커다란 눈망울에 머리가 함몰된 시체가 들어선다.
미처 감지도 못한 눈과 벌려진 입이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무대는 너만 필요했던 게 아니야, 독쟁이.”
아주 조용히 스며드는 목소리에 장덕구의 몸이 저절로 파르르― 떨려왔다.
“…….”
무언갈 말하려 해도 쉽게 벌려지지 않는 입과 이유진의 시체에 고정된 눈길.
툭―!
그렇게 발치에 쓰러진 이유진을 바라보던 장덕구의 볼을 무언가가 툭― 당겨왔다.
이미 그의 볼에 흥건한 액체보다 더 뜨거운, 마치 불에 달궈진 것 같은 뜨거운 액체로 흥건한 쇳덩이.
“야, 벌레 관련 이능력자.”
장덕구는 쇳덩이의 인도를 따라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들어서는 한 얼굴.
자신의 얼굴과 똑같이 핏물이 주르륵― 흐르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름 끼치는 얼굴.
그는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아주 옅게 웃었다.
관찰, 만남.
그리고―
“죽을래?”
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