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81화 (81/120)

영원히 (2)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좁은 의무실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급한 발걸음.

조용히 농과대 밖을 응시하고 있던 남도윤이 결국 옅게 표정을 찡그렸다.

“……시끄럽다니까, 준기야.”

남도윤의 핀잔에 빠른 속도로 의무실을 맴돌던 발걸음이 뚝― 멎는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흉신악살처럼 모든 주름을 찡그리고 있는 얼굴.

“이런 개 씨발!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가만히 있게 생겼어?!”

성준기가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침을 분사했다.

“하얀이가 납치됐다니까, 하얀이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태평하게 노가리나 까고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이 새끼야―!”

“…….”

그 활화산 같은 분노에 남도윤은 말없이 창문 턱에 기대 다시 농과대 밖을 응시했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정확히 특정할 수가 없잖아.”

“야 이― 개 씨발놈아―! 특정은 씨발― 좆이나 까잡수라 그래―! 일단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봐야 하는―”

“……준기야.”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성준기를 가로막는 그의 이름.

“아직 도망친 두 사람을 잡지도 못했고, 그 애들이 버리고 간 공대 생존자들도 온전히 수습하지 못했어.”

“하아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것보다 사라진 하얀이가 훨씬 더―”

“준기야.”

이내 다시 한번 더 그의 말을 끊은 남도윤이 지그시 가라앉은 두 눈으로 성준기와 눈을 맞췄다.

“하얀이도 남은 생존자들도 다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이야.”

“…….”

“사람의 목숨에 특별한 우위 따윈 없는 거 잘 알고 있잖아.”

“…….”

무언가를 꾹― 참아내리듯 쉴 새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성준기의 턱.

하아아―

이내 그 피나는 노력에도 쉽게 내리지 못한 여분을 한숨처럼 내뱉은 성준기가 남도윤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농과대는 네가 지켜. 내가 대학 전체를 싹 뒤져서라도 하얀이는―”

“안돼.”

“아 진짜― 왜애애애―!”

“준기 네가 공대 생존자들이랑 우리 애들이 잘 섞이게끔 계속 도와줘야지. 아직 못 일어나고 있는 애들이 많아서 공대 생존자들에게 벼르고 있는 애들이 많을 거야.”

“……씨발 좀 벼르고 텃세 좀 부리면 안 되냐? 우리가 당한 통수를 생각해 봐.”

“당연히 안 되지.”

“……하아― 왜?”

“직접적인 원인은 이유진이랑 장덕구고 남은 생존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

“이유진이나 장덕구나 남은 생존자들이나 다 같은 공대 생존자들인데 뭔 잘못이 없어.”

“이유진과 장덕구는 선택할 수 있었지만, 남은 생존자들에겐 선택권이 없었잖아.”

남도윤은 긴 대화 끝에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힌 성준기에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

“……씨발 그래― 생존자놈들은 그렇다 치고 그럼 이유진, 장덕구 이 쌍년놈들은 왜 그런 건대? 애들 얘기 들어보니까 네가 또 그 쌍년놈들 말 믿어주다가 통수 맞아서 도망간 거라던데?”

“우리에겐 그 사람들의 해독제가 필요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아 씨바아아알―! 도윤아, 애초에 애들이 쓰러졌던 것도 그 새끼들이 뿌린 독 때문이잖아―! 그럼 그 새끼들만 죽이면 그 좆같은 이능력도 풀리는 거 아냐?”

“확신할 수 있어?”

“뭐?”

“확신할 수 있냐고, 그 두 사람을 죽이면 쓰러진 애들에게 남아있는 독이 사라진다고 확신할 수 있냐고.”

“…….”

“우린 지금 홀짝 맞추기 같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성준기.”

하아아―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해소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쌓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더 좆같은 건, 성준기 또한 남도윤의 말이 안전하고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한두 번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야.”

“아― 제발 도윤아―”

“알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고, 그 생각으로 한 말도 절대 아니야. 이게 끝으로 가면 분명 더 나은 방법이기에 그러는 거야.”

조금만 더 오래 생각해 봐, 준기야.

“네가 생존자라면 어떤 캠프를 고르겠어? 한두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대로 모든 게 끝날 수 있는 캠프와 다음 기회가 있는 캠프.”

“…….”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대한 사회를 원해. 누구나 최악의 상황에 빠진 자신을 상상하고 그 이후를 두려워하거든. 그런 사람들에게 한 번의 잘못으로 누군가 목숨을 잃는 걸 보여주는 건 아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거야.”

그걸 본 누군가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겠지.

“……아― 잘못을 저지르면 절대로 안 되는구나. 그럼 혹시나 잘못된 일이 생겨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야지.”

혹독한 법과 벌은 오히려 더 큰 위협과 부조리를 야기시키는 거야.

“……존나 복잡하네.”

쿵―!

등허리를 의무실 벽에 바짝 붙인 성준기가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벽에 부딪쳤다.

“……하아― 존나 어렵네, 진짜.”

이내 천장을 바라보며 기나긴 한숨을 내쉰 성준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좆망했으면 넘쳐나는 좀비들만 존나 열심히 죽이면서 사람은 같은 사람들끼리 뭉치고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도대체 왜 이런 좆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건데…….

남도윤은 잔뜩 흐려진 성준기의 속삭임에 쓰게 웃으며 답했다.

“……사회에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거름망이 모조리 정지됐잖아. 그래서 아무런 기준도 없이 무분별한 힘을 가진 놈들이 제 세상인 양 날뛰는 거겠지.”

하아아―.

다시금 천장에 무거운 숨을 흘려보낸 성준기가 힘없는 눈으로 남도윤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뭔데?”

“……공대를 완전히 수습한 다음,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있을 확률이 높은 구역부터 차근차근 확보하자.”

“……기숙사?”

“그래, 기숙사.”

남도윤은 다시 농과대 밖을 비추는 창문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렇게 하나하나 뒤지다 보면 하얀이를 납치한 놈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런데 혹시 그놈도 공대 연놈처럼―”

“준기야. 나도 하얀이를 납치한 놈을 가만히 둘 생각은 절대 없어.”

“……그래.”

끼이이익―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의무실 문을 연 성준기가 나가던 몸을 멈칫거리며 다시 정지했다.

“……미안하다, 도윤아.”

“…….”

“내가 그때 하얀이를 잘 지키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데 그때 없던 너에게 존나 꼴사납게 징징거리고 있네.”

“……아니야. 네가 있어서 오히려 그놈이 그냥 하얀이만 납치하고 도망갔을 수도 있지. 네 덕분에 그때 함께 있던 다른 애들이 무사한 거야.”

“……존나 짜증 나는 새끼. 씨발 너는 나중에 이걸로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라. 씨발 내가 너만 존나 찍어줄게.”

“……꺼져, 병신아. 존나 오글거리니까.”

“……병신.”

쿵―!

남도윤은 옅은 잔웃음을 끝으로 완전히 닫힌 의무실 문을 바라보다 창문 턱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스윽―

조심스런 손길로 의무실 책상을 쓰다듬던 그가 차하얀이 항상 자신을 기다리던 의자에 조용히 몸을 실었다.

끼익―

낡은 스프링 소리와 함께 잠시간 낮아지는 시야.

그리고 그 낮아진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는 책상 위의 작은 컵 하나.

부스럭―

남도윤은 그 컵에 잔뜩 들어있는 커피 믹스 봉지 하나를 조심히 들어 올렸다.

우우웅―

낮은 가동음과 함께 그의 손에서 옅게 떠오르는 커피 믹스 봉지.

이내 허공을 부유하던 커피 믹스 봉지가 천천히 공중에서 자전을 시작했다.

“…….”

남도윤은 스스로 빙빙 돌고 있는 봉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안일했다.

단지 안일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행하고 말았다.

좀비가 점령한 대학에서, 그리고 공대에서.

그토록 진한 인간의 잔인함을 보았으면서도, 그는 인간의 악함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했다.

“……씨발.”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남도윤의 파르르 떨리는 욕지거리.

남도윤은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는 커피 믹스를 꿰뚫듯이 노려보며 사라진 그녀를 생각했다.

이름도, 얼굴로 모르는 그 납치범을 생각했다.

‘꺄아아아악―!’

단지 생각만으로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의 귓전을 때리는 차하얀의 비명.

그 이후에 이어지는 너무나도 더럽고 분한 생각에 저절로 턱이 부르르― 떨려온다.

그 분노를, 방심하는 순간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은 분노를 정말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생각했다.

……최대한 말이 안 되는 가정을 빼고― 담백하게 생각해보자.

먼저 첫 번째, 놈의 목적은 오로지 차하얀 뿐이었다.

애초에 농과대에 온 것도 차하얀이라는 확실한 목적 때문이겠지.

즉, 놈은 반석대학교 농과대에 차하얀이 생존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놈이다.

두 번째, 놈은 차하얀을 납치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인질을 무기 삼아 보금자리나, 식량을 뺏지도 않고 그저 차하얀 하나만 납치한 뒤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건― 조금만 가정에 살을 붙인다면―

놈에겐 이미 식량과 따뜻한 보금자리가, 즉― 지근거리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이 그럴듯한 가정들을 모두 합친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놈은 아직 반석대학교, 아니―

이 안에 있다.

“…….”

그 사실을 되뇌이자마자 자전을 멈추고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는 커피 믹스.

아니―

이 안에 있어야만 한다.

펑―!

계속해서 이어지는 속삭임 끝에―

부르르 떨던 커피 믹스가 갑작스레 갈색 가루를 사방으로 내뱉으며 그대로 터져 올랐다.

──────.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사방으로 비산하던 폭발을 멈추고 허공에 고정되어있는 수많은 갈색 가루들.

남도윤은 어느새 온몸을 감싼 붉은 기운을 느끼며 그 가루들 하나하나를 조용히 눈에 담았다.

무조건― 이 안에 있어라.

그래야―.

부스스스―

사그라드는 붉은 기운과 함께 천천히 박제된 몸을 나풀거리는 갈색 가루들.

남도윤은 그 갈색 가루들을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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