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73화 (73/120)

공주 강탈 (3)

끼에에에엑―!

아직도 애타게 나를 찾아 헤매는 좀비들.

아니, 나를 찾아왔다기보다는 무작정 내가 사라진 방향으로 내달리는 좀비를 내려보다 시선을 거뒀다.

뚝―! 뚝―!

옥상 난간에 기대고있는 내 바지 끝단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물방울.

난 이미 빗물에 흠뻑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옷가지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내지었다.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었다.

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했는지를 여실히 알 것만 같은 모습.

바스락―!

난 다시 초콜릿 바를 입 안에 가져가며 지금 내 위치를 가늠했다.

우드득―! 우드득―!

입 안에 한가득 담겨오는 견과류와 당분 가득한 초콜릿의 달콤한 조화.

……미대? 아니다, 음대였나?

난 농과대로 떠나기 전 도서관에서 숙지했던 대학 지도를 떠올리며 초콜릿 바를 계속해서 씹어댔다.

넓기는 더럽게 넓은 반석대학교 부지.

조금만 걸어가도 무슨 산책로에 무슨 광장, 무슨 분수대, 기념관 등등―

아주 드넓은 부지를 낭비하지 못해 안달이 난듯한 시설물들이 저절로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덕분에 단과대와 단과대 사이의 평균 거리가 지나칠 정도로 멀었다.

특히나 제법 건물들이 모여있는 남쪽에 비해 북쪽은 더더욱.

우드득―!

난 초콜릿 바를 한 움큼 씹어먹으며 예술대학 중 한 건물의 옥상으로 짐작되는 곳 너머를 차분히 응시했다.

드문드문 점으로 나를 반겨오는 큼지막한 단과대 건물들과 슬슬 내게 모습을 드러내는 나의 목적지.

난 흐린 날씨에도 녹음을 뿌려대는 작은 산 앞에 자리 잡은 농과대를 바라보며 초콜릿 바의 마지막 조각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끼에에에엑―!

아직도 여전히 나를 찾으며 사방을 방황하고 있는 좀비들의 포효.

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쇠 파이프가 아닌 텅 빈 초콜릿 바 봉지를 들고 있는 내 손을 들어 올렸다.

단과대 안에 잔존하던 좀비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무수한 수의 좀비.

반석교회를 중심으로 마치 띠처럼 이어져 나를 쫓아오던 좀비 웨이브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분명 아직도 셀 수 없는 좀비들이 그곳에 뭉쳐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 예대까지 달려온 좀비들의 포효가 아까처럼 그리 박력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건 분명했다.

허나, 내게 위협적인 건 셀 수도 없는 숫자로 내게 몸을 들이미는 파도가 아니었다.

일반 좀비와 겉모습을 구별할 수 없는 평범한 좀비.

하지만 죽은 뒤에야 주변의 모든 좀비를 끌어당기는 집결 신호를 터트리는 새로운 변종.

벌룬.

놈은 죽음으로서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는 새로운 유형의 변종이었다.

게다가, 쉴 새 없이 켁켁거리며 얼토당토않은 가래를 내뱉던 변종.

일종의 원거리 사수 역할을 도맡은 가래충의 출현까지.

내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이었다.

평범한 무능력자들이 버텨가기엔 너무나도 크게 좆된 세상.

띠링―!

[잔여 포인트 : 223]

“……허.”

허나, 그 지옥에서 순식간에 벌어들인 포인트에 나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이 악물고 지능 대신 육체계 스탯에 올인하고― 쓸데없이 상점과 인벤토리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식량엔 포인트를 일절 투자하지 않으며 알뜰하게 모은 포인트와 필적하는 잔여 포인트.

순수하게 방금의 좀비 파밍에서만 얻어낸 포인트였다.

띠링―!

[스탯 ‘30’부터 스탯 상승에 필요한 잔여 포인트가 갱신됩니다.]

[스탯 상승 시 필요한 잔여 포인트 : 10]

[힘 스탯 상승을 계속 이어가시겠습니까?]

농과대에 진입하기 전, 육체계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하려던 나는 안내 메시지에 잠깐 멈칫거렸다.

“……이런 개 같은―”

날강도 새끼들을 봤나.

20-30 구간에서는 얌전하던 필요 포인트가 또다시 갱신되었다.

이제는 하다못해 스탯 1을 올리는데 포인트 10을 요구하는 메시지.

띠링―!

[힘 : 30 -> 40]

[민첩 : 30 -> 40]

[잔여 포인트 : 223 -> 23]

[힘 : 84(40+44)] [민첩 : 84(40+44)]

“……씨발.”

도합 160을 돌파한 육체계 스탯을 확인하고도 먼저 튀어나오는 욕지거리.

난 순식간에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잔여 포인트를 눈짓하며 작게 혀를 찼다.

순식간에 알부자에서 거지가 된 것 같은 불쾌한 느낌.

지금이라도 다시 반석교회에서 포인트를 쓸어 담고 싶은 욕망을 조용히 꾹― 눌렀다.

단순한 좀비들의 무리라고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좀비들의 파도.

그 하이리스크에서 얻을 수 있는 하이리턴이 꼭 포인트만은 아닐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생각한 건, 그 좀비 웨이브를 농과대까지 끌고 가는 수였다.

그렇게 지옥이 된 농과대에서 아주 손쉽게 차하얀을 빼내는 방법.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그건 도리어 잃는 게 더 많은 악수였다.

사람.

이 무너진 세상에서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자원은 바로 사람이었다.

내 왕권, 내 노동력, 그리고 내 또 다른 왕권을 만들어낼 생성기들.

난 욕을 한 바가지 쏟아부으며 투자한 육체계 스탯보다 이미 더 많은 포인트를 상승시켜주는 천박한 품위 상승 스탯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분명 저 좀비 웨이브를 농과대까지 끌고 간다면 농과대는 무조건 끝난다.

혹시나 살아남는다 해도 보금자리로서의 역할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겠지.

그럼 농과대 생존자들의 생존 확률은 아주 드라마틱하게 바닥을 내리꽂을 것이다.

안 그래도 학생회관에서의 일로 조금 피곤해진 내게는 더 피곤한 문제를 안겨주는 상황.

그렇다고 거리라도 조금 가까웠던 학생회관에 비해 농과대는 도서관과 끝과 끝의 거리를 자랑했다.

학생회관의 생존자들과 물자를 옮기는 것도 짜증 날 정도로 손이 많이 갔는데, 농과대?

아직 남쪽 구역도 다 확보하지 못한 내겐 굳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는 계륵 그 자체의 땅이다.

그러니, 저 좀비 웨이브는 다른 목적에 이용할 생각이었다.

“……차하얀.”

난 슬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보석을 읊조리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남자의 아주 깊은 욕망을 건드려대는 몸과 얼굴.

어젯밤 내게 안겨든 차설희의 몸을 마음껏 주무른 나이기에 더더욱 그 욕망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차하얀을 도서관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또한 얼마나 빨리 데려가냐가 아니라 어떻게 데려가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냥 데려가는 걸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내기 힘들어진다.

도서관에 간다면 차하얀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차설희와 나의 관계를 자연히 알게 될 것이고―

그럼 당연히 착하디 착한 차하얀은 나와 거리를 두려 노력하겠지.

물론 형부와 처제사이의 가족애는 생길지 모르나,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다.

형부와 처제 사이의 불륜이면 또 모를까.

“……오.”

방금의 상념에 또다시 화수분처럼 솟아오르는 쓸만한 영감들.

그 영감들을 천천히 가다듬으며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 바 봉지를 바닥에 떨구었다.

툭―!

옥상 바닥에 몸을 뉘는 봉지를 내려다보며 그 옆에 놓여있던 배낭을 다시 인벤토리로 옮겼다.

그리곤 허공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쇠 파이프를 다잡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인벤토리에 구비해두었던 스페어 쇠 파이프였다.

부웅―! 부우우웅―!

살짝 손에 익지 않은 촉감에 여러 번 휘둘러 보는 둔기질.

두꺼운 쇠가 바람을 뭉개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뚜벅― 뚜벅―

다시 오른손에 쇠 파이프를 움켜쥔 채 맞은편 난간을 향해 걸어갔다.

좀비 웨이브는 아주 극적일 수밖에 없는 위협이다.

이 무대 장치로 꽤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

그러니, 돌아가는 동안 해야 할 약간의 뻘짓을 고려하면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다른 곳을 탐색하며 움직이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이다.

속전속결.

난 그리 읊조리며 저 멀리 나를 기다리는 농과대를 바라보며 난간 위에 발을 올렸다.

***

투둑― 투둑― 투둑―!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두드림으로 창문을 연주하는 빗소리.

“그래서 제가 하얀 씨 부탁대로 불이란 불은 모조리 끄고 왔습니다, 헤헤.”

차하얀은 아직도 거친 숨을 다 고르지 못한 채로 내뱉어지는 말을 향해 창문에서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방울방울 맺힌 땀방울을 서둘러 소매로 훔치고 있는 이유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꾀병을 부리며 의무실을 방문하는 남자였지만, 차하얀은 아무렇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내보였다.

“정말 고마워요, 유준 씨.”

“……아, 아닙니다. 여자애들 방까지 확인하느라 그 애들이랑 한바탕할 뻔하긴 했는데― 그래도! 하얀 씨 부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헤헤―!”

이유준에게 여학생들의 기분 나쁜 눈빛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차하얀에게 이유준 정도의 팬은 꽤 양반에 속하는 팬이었다.

차하얀은 그녀가 경험했던 팬 사인회에서의 다양한 진상들을 떠올리며 더 부드러운 미소를 내보였다.

매니저님들의 케어와 블랙리스트 등록으로도 쉽게 막을 수 없었던 조금 과한 관심의 팬분들.

항상 뒤에서 매니저님이 매의 눈으로 예의주시했지만, 사람의 속은 그 누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차하얀은 더 편하게 그에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워요. 이럴 때일수록 저희도 작게나마 캠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편하게 앉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다른 분들에게 죄송해서…….”

“아…….”

다시 흐린 날의 창문으로 돌아가는 차하얀의 얼굴.

잠시 멍하게 그 얼굴을 바라보던 이유준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으― 다 괜찮을 겁니다. 도윤 형이랑 준기 형님이 같이 간 일이고, 무엇보다 공대가 도윤 형이랑 대화할 뜻이 있으니 사람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그럴까요?”

“다, 당연하죠! 게다가 그 새끼들이 한 번 깝쳤다가 형님들한테 처발리고 나서 사람을 보낸 거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꼬랑지를 내린 거죠.”

“……또 나쁜 말 하셨어요, 유준 씨.”

그것도 아주 여러 번.

마치 화를 낸다는 것을 표현하듯 작게 가늘어진 차하얀의 눈.

이유준은 그 모습에 화는커녕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죄, 죄송― 그래도―!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항복을 받으러 갔을 텐데 뭔 일이―”

콰앙―!

이유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맹렬한 기세로 열리는 의무실 문.

화들짝 놀라 그곳을 바라보는 두 명의 시선에 문을 열고 죽을 듯이 숨을 내뱉는 한 남자가 들어선다.

“헤엑―! 헤엑―! 헤엑―! 하, 하얀 씨― 헤엑―!”

양손으로 겨우 무릎을 받치며 젖은 머리카락에 물방울을 똑― 똑― 흘리는 남자.

그가 시뻘게진 얼굴로 다급히 차하얀을 바라보며 문 뒤쪽을 가리켰다.

“준기 형님― 헤엑― 준기 형님이 빨리 하얀 씨 불러오라고― 하악― 재하가, 재하가 조금 이상해서― 하악―!”

다급히 찾아온 남자의 말이 끝나기보다 차하얀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이 더 빨랐다.

우당탕거리며 바닥을 구르는 의자에 관심조차 없이 서둘러 의무실 구석의 들것을 가리키는 차하얀.

“유준 씨!”

“어― 네, 네―!”

뒤늦게 이유준이 차하얀이 가리킨 들것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헤엑―! 씨, 씨발― 나도 몰라― 헤엑―! 갑자기 재하가 쓰러지고― 우리는 반으로 나누어져서 다시 농대로 복귀하고― 도윤 형이랑 공대 새끼들이랑―”

이유준은 끝나질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황설에 얼굴을 와락― 찡그리며 들것을 낑낑대며 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급하게 서랍을 뒤적거리며 의료 가방에 응급 도구들을 챙기는 차하얀.

그녀가 붕대와 가위, 에어 파스 등을 가방에 서둘러 구겨 넣으며 남자와 눈을 맞췄다.

“어딜―! 재하 씨가 어딜 다쳤어요?”

“모, 모르겠어요, 그, 그냥 갑자기 몸을 덜덜 떨고― 입에 거품을 물고― 준기 형님이 일단 하얀 씨를 불러달라고 해서― 제가 먼저 달려온 건데…….”

몸을 떨고, 입에 거품을 문다.

……절대로 가벼운 증상이 아니었다.

차하얀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소염제 등이 수납된 책장을 바라보다 손에 잡히는 모든 약병을 최대한 가방에 쑤셔넣었다.

그리곤 빠르게 의무실 문밖을 뛰쳐나갔다.

“일, 일 층―! 지금쯤이면 아마 일 층에 왔을 수도 있어요―!”

“뭐해, 너도 빨리 들고 따라와!”

“헤엑―! 하아― 뒤지겠네, 진짜―!”

그녀의 등 뒤에서 뒤늦게 들것을 들고 그녀를 따라오는 남자들의 고함.

차하얀은 의료 가방을 꼭 쥔 채로 이어지는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넘었다.

“하아― 하아―”

갑작스러운 격한 움직임에 깜짝 놀란 심장이 터질 듯이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전력으로 내달렸다.

이윽고 도착한 로비 유리창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서둘러 입을 벌리는 남학생들.

그리고 선두에서 빗물과 땀을 뚝― 뚝― 흘리는 남학생에게 업혀있는 남학생을 서둘러 응시했다.

이미 의식이 없는 듯 남학생에게 업혀 축― 늘어져 있는 박재하.

“하, 하얀 씨―! 재하가 조금― 하악― 조금 이상합니다!”

차하얀은 다급히 유리문을 열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아랑곳 않고 그들에게 달렸다.

“끼에에에엑―!”

“이 개새끼들아―! 그만 꺼져어어―! 씨발―! 분명 다 정리했었는데 어디서 또 오는 거야―!”

농과대 입구에서 푸른 빛을 휘날리며 좀비들에게 목검을 휘두르는 성준기와 차하얀에게 서둘러 업혀있는 박재하를 내보이는 남학생.

차하얀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박재하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그저 조용히 그녀의 손길에 모습을 드러내는 박재하의 동공.

차하얀은 스스로 하고 있는 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행동들.

“야―! 야― 왔다, 일단 눕히자―!”

차하얀보다 뒤늦게 숨을 헐떡이며 들것을 들고 오는 두 남학생.

박재하를 엎고 있던 남학생이 서둘러 주변의 남학생들에게 바닥에 놓인 들것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끄응―!

잔뜩 벌게진 얼굴로 조심스레 박재하를 들것으로 옮기는 남학생들.

그렇게 박재하를 들것에 옮긴 남학생들이 다급한 눈으로 차하얀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씨, 이제 어떻게 할까요―?!”

차하얀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남학생들의 눈빛에 뒤로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겨우 참아냈다.

진통제, 항생제, 상처 연고, 지사제, 주사기, 붕대―

지금도 의료 가방 안에서 잡혀 오는 도구들을 매만지며 파르르 떨리는 손을 필사적으로 숨겼다.

단순한 타박상이나 골절이 아닌 진짜 전문가의 진료가 절실한 상황.

그녀로서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박재하를 치료할 방도가 없었다.

“하얀아―!”

그 순간, 검붉은 피를 뚝뚝― 흘리는 목검을 들고 서둘러 달려오는 성준기가 그녀의 동공에 비춰왔다.

차하얀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뒤, 서둘러 농과대 안을 가리켰다.

“이, 일단― 안으―”

끼에에에에에엑―!

쉴 새 없이 바닥을 적시는 빗줄기와 일분일초가 촉박한 위기에서도 너무나도 선명히 들려오는 좀비의 포효.

들것을 낑낑거리며 들던 남학생들도, 다급히 좀비 처리를 마치고 달려오던 성준기도―

그리고 로비를 가리키며 다급히 소리치던 차하얀의 얼굴도 모두 포효의 행방을 쫓는다.

끼에에에엑―!

지상이 아닌 하늘에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좀비 한 마리.

아니, 자신들조차 지나치고 조금 더 멀리까지 날아가는 좀비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시야에 맺혀왔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지상에서 고개를 돌리는 자신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뻗으며 날아가는 좀비.

끄드드득― 쿠웅―!

“끼에에에엑―!”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빗물 가득한 바닥을 폭격한 좀비가 개의치 않고 다시금 포효를 내질렀다.

이미 심각할 정도로 뒤틀린 팔과 다리를 일으켜 들것을 향해 달려오는 좀비.

우우웅―!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한 좀비를 바라보던 차하얀의 동공에 푸른 목검을 들고 좀비에게 내달리는 성준기가 맺혀왔다.

그리고 갑작스레 그녀의 두 눈에 가득 담겨오는 커다란 손아귀.

턱―!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의 하관 전체가 커다란 손바닥에 틀어 잡혔다.

뒤이어 그녀의 엉덩이를 휘감는 우악스런 힘과 갑작스레 그녀의 몸 전체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습기.

“……으읍―”

차하얀은 저도 모르게 급한 숨을 토해내며 눈을 찢어질 듯이 동그랗게 치떴다.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좀비를 처치하기 위해 달리는 성준기와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 남학생들이 묘할 정도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으읍―!”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닿기 위해 내뻗는 손.

허나 빗물만이 스며드는 손길 너머로 좀비의 머리를 깨부순 성준기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담겨왔다.

아주 머나먼 거리지만 성준기의 눈이 자신과 똑같이 튀어나올 만큼 커지는 광경이 돋보기처럼 확대되어 비춰온다.

툭―!

물 웅덩이를 차는 가벼운 발걸음에 쐐애애액―! 단숨에 그녀의 시야를 가리는 그녀의 긴 머릿결.

“으으으읍―!”

차하얀은 머리카락이 가리운 시야를 대신해 더 간절히 그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얀아아아아아아아―!”

공주 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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