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 준비 (2)
끼이이익―!
닫혀있던 기념품점을 열자마자 반겨오는 그리 반갑지 않은 바람.
난 그 안에 가득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지금쯤 밖에서 방대화가 어제 죽인 시체들을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
기념품점 앞에서 내가 나오자마자 옅은 미소이며 굽신거리는 고장훈.
난 고개를 돌려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나오는 차설희를 확인한 뒤 다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복사실, 문구점, 약국 등에서 쓸만해 보이는 건 전부 상자 안에 집어넣고 있는 캠프원들.
마치 일개미처럼 줄을 이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그들을 지나쳐 다음 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끝에― 끝에 좀 잘 잡아 봐.”
“하나― 둘― 셋! 끄응―!”
보건진료소에 구비되어있던 침대를 들고 내려오는 캠프원들.
이마에 굵은 땀을 흘리면서 오리처럼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서는 그들을 바라보다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계단을 오르는 것을 멈추고 지금도 한창 학생회관의 모든 물자를 노획하는데 열중인 캠프원들의 행렬을 조용히 훑어보았다.
“……다 남자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나지막이 튀어나오는 혼잣말.
“타격조장에게 캠프원들 더 차출하라고 이를까요?”
난 서둘러 내 의중을 묻는 고장훈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성 캠프원들만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유서준과 방대화가 물자를 도서관으로 옮길 때 여성 캠프원들을 차출해 데리고 오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건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였다.
그냥 남성 캠프원들로 물자를 옮기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난감하네.”
난 작게 읊조리며 다시 계단을 내디디는 발걸음을 재개했다.
뚜벅― 뚜벅―
뒤이어 울리는 차설희와 고장훈의 발소리를 들으며 이마를 제법 신경질적으로 긁적였다.
조금 전 고장훈과의 대화가 다시금 머릿속을 울려왔다.
‘사람은 늘었는데, 식량은 늘어나지 못했다.’
난 그렇게 늘어난 캠프원들의 불균형적인 성비를 다시금 되뇌었다.
어느새 100여 명에 달하는 도서관 캠프의 생존자들.
그 중 과반수를 훌쩍 넘긴 70여 명 정도의 생존자가 여성 캠프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학생회관 물자 노획에 동원된 이들은 반대로 대부분이 남성 캠프원들이다라…….
“……허.”
그렇게 생각하니 이거 그냥 쉽게 넘어갈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캠프의 성비가 기형적인 구조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툭―! 툭―!
계단을 오르는 순간에도 습관처럼 허벅지를 두드리는 쇠 파이프.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은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코끝에 맴돌고 있는 기분 나쁘게 고소한 내음.
학생회관에서 망설임 없이 패 죽였던 남성 생존자들의 면상을 천천히 되뇌었다.
그리고 그저 그러고 싶어서 살려준 여성 캠프원들까지.
“……너무 막 죽였나?”
……남자들을 너무 막 죽였다.
난 좆대로 하다가 진짜로 좆될 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아 더 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 광경을 보면서 다시금 확실히 느끼는 거지만, 이런 세상에서 건장한 남자 하나는 정말 너무너무 소중한 캠프의 자산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여성 캠프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애초에 그 사실을 아주 잘 명심하고 있었기에 인문대 남자들을 살렸던 거였다.
살려두면 분명 후환이 될 성종현만 깔끔히 제거하고 남학생과 여학생들 모두를 내 캠프에 편입시켰다.
그때도 여학생들이 울고불며 복수를 원했던 건 똑같았지만, 학생회관에서와 달리 그녀들의 울음을 깡그리 묵살했었다.
그 차이를 부른 건 인문대와 달리 학생회관 놈들은 선을 심하게 넘었다는 것.
하지만 그 차이를 부른 일종의 ‘선’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난감해진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선을 안 넘고 살아가는 남자 새끼들이 흔할까?
그런 선을 기준으로 놈들을 죽여버리면 이 기형적인 구조를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남자들을 절대로 죽이지 않고 모두 편입시키거나, 그 남성 생존자들의 빈자리를 여성 생존자들로 메우거나.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전자이겠지만―, 난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어느새 살짝 찌푸려진 얼굴을 자각했다.
어떤 외부요인이 내 행동 패턴을 고정시키는 것 자체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보자마자 죽여버리고 싶은 새끼들이 있는데, 그걸 꾹 참고 버텨야 한다고?
그런 짓은 정말 절대로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후자였다.
여성 캠프원들을 보다 쓸모 있게 사용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가면 학생회관 생존자들 중에 수색조에 지원할 의향이 있는 생존자가 있는지부터 파악해.”
“예, 관장님.”
“지원하는 여성 캠프원이 없으면―”
난 잠시 고개를 돌려 고장훈과 눈을 맞췄다.
“강제로 만들어서라도 수색조 하나는 여자들로 채운다.”
“……예, 관장님.”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과 그 옆에 얌전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차설희.
……아.
난 차설희와 눈을 맞추고 나서야 무언가를 떠올리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보니 세미나룸 여자들 중에 수색조에 지원하고 싶다는 여자는 없어?”
전체 점검날 세미나룸 앞에서 모두에게 공언했었던 규율.
“……없어요.”
차설희가 내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한 명도?”
“네. 한 명도.”
그녀의 확답에 다시금 이마가 간지러워진다.
난 쇠 파이프를 든 손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토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그러고 보니 요즘 6층 여성 캠프원들이 라운지에서 티타임 비슷한 걸 가진다는 고장훈의 보고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설희가 중전마마로 군림한다는 보고도.
“……당신이 그렇게 유도하라 했잖아요.”
이마를 긁적이는 나를 보며 눈가를 좁히는 차설희.
불만을 항의하듯 살짝 튀어나온 입부리에 작게 웃음을 흘리며 요즘 잘 보이지 않던 여성 캠프원 한 명을 떠올렸다.
“구예리도?”
“네.”
제법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던 학생회 소속 여대생.
나와 박태하의 수렁에 빠져 평소의 활발한 성격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래도 요즘 많이 나아졌어요.”
구예리를 생각하느라 대화를 잇지 못했던 내게 들려오는 꽤 많은 것을 함축한 차설희의 대답.
그 대답에 이어지는 모든 생각을 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차피 캠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난 그런 소위 ‘여자’들의 문제에 끼이고 싶은 생각조차도 없었다.
“잘했어.”
“으으― 뭐, 뭐 하는 거예요.”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기겁하며 옆을 눈치 보는 차설희.
그녀가 고장훈을 힐끗 바라보며 내 손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살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몸짓에도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내 손.
난 열심히 내 손을 피하는 척하고 있는 그녀의 볼을 계속해서 쓰다듬다가 손을 거뒀다.
그제서야 천천히 살짝 기울어졌던 허리를 다시 세우는 차설희.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을 살며시 피하며 뭐라 뭐라 꿍얼거리고 있는 모습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난 여전히 옅은 미소가 남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전등이나 어둠이 아닌 햇살이 비추는 학생회관 4층.
난 덕분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선명히 보이는 검게 그을린 자국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직도 4층 복도를 흥건히 적시고 있는 혈흔과 바닥에 말라붙은 살점.
그리고 주요 생활 공간이었던 동아리방을 오가며 쓸만한 물자를 탐색하고 있는 내 캠프원들.
어제와 전혀 다른 풍경이 된 4층을 휘둘러보는 머릿속에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이 학생회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다시 휘둘러보아도 캠프의 본거지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는 공간이었다.
애초에 내 본거지인 도서관보다 더 많은 생존자들을 수용하고 있던 공간이기도 하고.
하지만 학생회관은 본거지로 사용하기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진 공간이기도 했다.
전단지.
난 복도 구석에 검은 발자국이 마구 찍혀 찌그러진 전단지 한 장을 응시하며 읊조렸다.
이미 손쓸 새도 없이 학생회관 주변에 흩뿌려졌을 무수한 수의 전단지.
그 전단지들이 바람에 흩날려 어디까지 날아갈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영역의 문제였다.
바람을 타고 도서관 정문까지 흘러든 전단지처럼 언제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초대장.
때문에 굳이 본거지를 도서관에서 학생회관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 간절히 초대에 응하고 싶은 손님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손님들은 캠프의 안정적인 인원 공급책이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일종의 검문소 역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
“수색조원 몇 명을 여기 상주시켜서 하루마다 유서준이 학생회관에 모여든 생존자들을 운반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 예,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난 찰떡같이 알아들은 고장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응시했다.
슬슬 급해 보이는 불은 모두 껐으니 가장 중요한 문제를 처리할 시간이었다.
띠링―!
[잔여 포인트 : 150]
어느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모인 잔여 포인트.
난 언제나 그랬듯 가장 투자가 필요한 곳에 포인트를 몰아넣기 시작했다.
무용과 여대생의 몸 안의 이능을 시원하게 몰아내지 못했던 내 이능.
띠링―!
[부분무능 Lv.2 -> 부분무능 Lv.5]
[스킬 레벨업에 90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잔여 포인트 : 150 -> 60]
띠링―!
[목표 스킬 레벨 달성으로 당신의 전용 스킬에 첫 번째 전문화가 개방됩니다.]
[폭군 전용 스킬 ‘부분무능’의 전문화를 선택하세요.]
[1. 부분잔존]
[당신의 무능이 조금 더 오랫동안 세상에 남게 됩니다.]
[2. 부분증폭]
[당신의 무능이 조금 더 강하게 세상을 물들이게 됩니다.]
“…….”
언제나처럼 세상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읽어내리는 글자들.
난 빠르게 눈을 위아래로 굴려 메시지들을 한 번 더 정독했다.
부분잔존과 부분증폭.
잔존과 증폭.
“…….”
처음으로 전문화 선택에 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부분무능의 두 갈래를 보자마자 이미 머릿속에 가득한 활용 방법.
띠링―!
[폭군 전용 스킬 ‘부분무능’의 전문화로 ‘부분잔존’을 선택하셨습니다.]
[부분무능 Lv.5]
[당신은 무능의 군주입니다.]
[당신의 무능이 조금 더 오랫동안 세상에 남게 됩니다.]
[적용 중인 전문화 : 부분잔존 (항상 숨기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난 상태창 상단에 위치한 스탯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능 : 10 -> 20]
[잔여 포인트 : 60 -> 10]
우우웅―!
상승한 지능과 함께 더 선명하게 내 몸 안에서 박동하는 왕권.
난 천장을 바라보며 나른하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했다.
동아리방에서 나와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던 캠프원.
툭―!
“과, 관장님.”
그 캠프원의 어깨를 붙잡는 내 손길에 놈이 깜짝 놀라며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난 놈이 든 택배 상자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소주병 중 하나를 꺼냈다.
달그락거리며 유리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들리는 초록색 소주병.
난 그 소주병 입구에 부드럽게 오른손을 얹었다.
우우웅―!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한 음색으로 가동하는 왕권.
내 오른손을 찬란히 밝히는 왕권이 소주병 입구를 따라 천천히 병 안으로 흘러내렸다.
소주병의 본래 색인 초록빛 안에서도 제 존재감을 온전히 토해내는 찬연한 황금빛.
갑작스레 벌어진 신비한 광경에 4층을 오가던 모든 캠프원들의 시선이 소주병에 집중되었다.
난 조용히 왕권이 사그라든 오른손을 거두며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 손짓에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캠프원과 서둘러 복도로 달려가는 고장훈.
고장훈이 바닥에 넘쳐나는 소주병 뚜껑 하나를 집어 들고 서둘러 내 손 위에 얹어놓았다.
난 그 소주병 뚜껑을 돌려 입구를 꽉― 막았다.
이미 꼬리가 튀어나와 개봉을 완료했다는 걸 알리고 있지만, 어차피 완전히 밀봉할 생각도 없었다.
대충 뚜껑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걸 확인하곤 소주병 안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왕권, 내 무능을 확인했다.
우우웅―!
병 안을 메아리치며 선명히 제 존재감을 토해내는 황금빛 왕권.
허나, 그 신비의 주인이기에 알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조금씩 그 선명한 빛줄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까득―!
난 제법 꽉― 돌려놨던 뚜껑을 다시 열고 내 앞에 멍청히 서 있는 캠프원의 팔에 소주병 입구를 대었다.
“…….”
갑작스레 다가온 소주병에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피하지 않는 캠프원.
그 캠프원의 팔에 소주병 입구에서부터 흐른 왕권이 스며든다.
우우웅―!
놈의 팔을 빛내다 천천히 사그라드는 부분무능.
내가 직접 주입한 무능보다는 확실히 열화된 빛이었지만, 부분무능이 캠프원의 팔에 작용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달그락―!
다시 상자 안에 달그락거리며 들어가는 초록색 소주병.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그저 가만히 있던 캠프원의 등을 고장훈이 서둘러 토닥였다.
그의 손길에 다시 계단을 향해 내려서는 캠프원의 발소리에도 난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내 동공에 여전히 남아있는 소주병 안의 왕권.
평소에 그렇게나 바라던 능력이기에 전문화 선택에 단 한 순간의 고민도 없었다.
“……드디어.”
짧게 읊조리는 중얼거림에 옅은 흥분이 새어 나왔다.
드디어 수색, 타격조의 보모 노릇에서 해방이다.
물론 아직도 변종이라는 거대한 위협이 남아있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다름 아닌 ‘감염’이다.
어쩌면 매우 사소한 공격에도 그대로 좀비가 되어야하는 불합리한 리타이어.
그 괴랄한 감염을 막는 것만으로도 생존자들의 생존율은 아주 급격히 상승할 것이 자명했다.
우우웅―!
난 다시금 내 손을 타고 피어오르는 부분무능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내 의지에 따라 일정 시간 동안 세상에 남을 수 있는 왕권.
이제 나는 ‘감염 치료제’의 일종의 카피 아이템을 양산할 수 있었다.
전투조들의 어이없는 리타이어는 이제 우리 캠프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적기였다.
“……고자야.”
“예, 관장님.”
“그래서 우리가 가진 식량으로 총 며칠 정도 버틸 수 있다고?”
고장훈이 내 질문에 서둘러 주머니에 든 수첩을 꺼냈다.
“……비축해둔 식량과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의 사용으로 다시 소비할 수 있는 식량을 합치면―”
볼펜으로 무언가를 콕― 콕― 집으며 쉴 새 없이 위아래로 굴러가는 놈의 눈동자.
“대략 10일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양입니다.”
10일.
“……애매하네.”
그때 동안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저어― 관장님.”
미간을 찌푸리며 이어지는 혼잣말에 조용히 흘러드는 고장훈의 물음.
“……가능할지 애매하다고 말씀하시는 게 혹 무엇을―”
지금껏 귀신같은 눈치를 보였던 고장훈에게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되물음이었다.
그만큼 내 말이 뜬금없었다는 말이겠지.
난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장훈에게 옅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고장훈의 옆에서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별빛 같은 눈동자.
“슬슬 약속한 것을 지킬 때가 온 것 같아서.”
이어지는 내 말에 멍하니 벌려지는 그녀의 분홍빛 입술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죽인 참칭자와 아직 대학 내에 남아있는 또 다른 참칭자.
농사와 가축 사육이 불가능한 현 상황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약탈.
지금부터 아주 치열하게 달려야 할 순간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뒤도 안 보고 달리기 전에―
먼저 귀중한 보석을 가장 안전한 금고로 옮겨야겠지.
“이제 슬슬 차하얀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와야겠어.”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