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65화 (65/120)

누구나 왕을 꿈꾼다 (6)

“끄으으― 끄으으윽―”

학생회관 4층에 겹쳐 울리는 남자들의 앓는 소리.

난 굼벵이처럼 바닥에 몸을 말고 끙끙거리기 바쁜 남자들과 복도에 모여 오돌오돌 떨고 있는 여자들을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툭―! 툭―!

“끄윽―! 끄으윽―!”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올 때마다 저 앞의 남자들과 똑같은 신음을 내지르는 팽현재.

그 역겨운 신음에 패잔병들을 관리하던 조원들이 일제히 계단으로 고개를 돌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나를 확인한 조원들이 서둘러 끙끙거리는 남자들을 조금 더 중앙으로 툭― 툭― 밀어넣었다.

난 팽현재를 복도 바닥에 질질 끌어당기며 유일하게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은 남자를 응시했다.

유서준은 끙끙거리며 울고 있는 남자들의 조금 더 왼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검게 그을린 자국과 작은 언덕.

환 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다닥다닥 일어난 수포 덩어리를 달고 있는 남자들과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머리가 으깨진 남자들의 시체.

난 한데 모인 시체를 잠깐 일별하곤 모두의 시선이 잘 모일 수 있는 중앙에 멈춰섰다.

툭―!

그제서야 힘을 뺀 오른손에서 스르륵 미끄러내리는 팽현재의 머리카락.

거의 반절 이상이 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내 손바닥을 떠나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난 갑작스레 등장한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4층의 시선을 느끼며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팽현재를 앞으로 툭― 굴렸다.

“끄윽― 켁― 켁―”

구멍이 송송 뚫린 아가리로 연신 기침을 내뱉기 바쁜 팽현재.

난 내 앞에 딱 차기 좋게 굴러온 팽현재의 배때기를 그대로 후려 찼다.

퍼어어억―!

“……꺼어어어억―!”

한 박자 늦은 반응으로 숨넘어갈 듯 꺼억대는 팽현재.

놈이 손과 발이 맞닿을 만큼 몸을 말아대곤 이리저리 급하게 몸을 굴리기 시작했다.

“케엑―! 켁―! 켁―!”

급하게 쿨럭이는 놈의 아가리에서 세차게 비산하는 붉은 핏방울.

“…….”

어떻게든 고통을 분산하려 필사적인 팽현재의 오두방정에 학생회관 생존자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들의 동공에 아주 처참하게 망가진 팽현재의 얼굴이 계속해서 흔들거렸다.

난 간식을 꺼내는 주인을 앞에 둔 강아지처럼 앞뒤로 발광 중인 팽현재를 무시하곤 손가락을 까딱― 흔들었다.

내 지시에 서둘러 다가오는 조장들.

“수색조장은 애들 몇 명 데리고 3층에 남아있는 생존자들 데리고 오고, 타격조장은 5층에서 질질 울고 있는 여자 한 명 데리고 와.”

“예, 관장님.”

툭―! 툭―!

난 다시 오른손으로 옮긴 쇠 파이프를 허벅지에 치대며 조금 전과 똑같이 고개를 빙― 휘둘렀다.

서둘러 지시를 이행하러 떠나는 캠프원들과 자세를 뒤바꾼 유서준.

놈의 동공이 한데 모인 시체에서 이리저리 구르기 바쁜 팽현재로 옮겨져 있었다.

진자운동을 하듯 아주 바쁘게 움직이는 놈의 눈동자와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

“…….”

난 아무 말 없이 놈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곤 유서준 옆에 아주 눈치 좋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춘식이와 눈을 맞췄다.

내가 지시를 내린다고 생각했는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는 춘식이에게 곧바로 고개를 내저어 주었다.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돌아가는 춘식이에게 가볍게 웃어주며 앞을 응시했다.

춘식이는 나름 이번 일에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한 일등 공신이었다.

돌아가게 된다면 그에 합당한 상을 줘야겠지.

툭―! 툭―!

쇠 파이프가 계속해서 허벅지를 두드리던 와중에 슬슬 요란한 발걸음이 계단을 타고 흘러들었다.

5층에서 계단 손잡이를 더듬거리며 잡는 여자를 부축해오는 방대화와 아주 불안하게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올라오는 여자들.

학생회관 남자들이 지껄인 말로 표현하자면 오늘 ‘대여’가 안 되고 3층에 남아있던 여성 생존자들일 터였다.

“꺄아아아악―!”

완벽히 시야에 들어선 4층의 참상을 보며 그대로 자지러지는 여성 생존자.

그 뒤를 따른 여성 생존자들이 도미노처럼 힘 빠진 다리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기겁을 토하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에 서둘러 그녀들에게 달려가던 캠프원들에게 손을 들었다.

내 제지에 캠프원들이 조용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로 복귀했다.

총학생회실에서의 대화로 추정하자면 무용과일 확률이 다분한 여성 생존자가 방대화에 이끌려 복도에 뭉쳐있는 여성 생존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동선을 따라가는 3층 생존자 무리.

난 그중 여성 생존자들보다 조금 뒤에서 따라오던 남성 생존자들을 눈에 담았다.

지금 중앙에서 제 몸의 한 부위를 붙잡고 끙끙거리기 바쁜 남자들과는 조금 다른 남성 생존자들.

며칠을 굶었는지 아주 삐쩍 마른 몸과 퀭한 얼굴.

온몸 구석구석에 구타의 흔적이 가득한 남성들이 조용히 복도에 주저앉았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회관 생존자가 자리 잡은 4층 복도.

그 중 유일하게 아직 합류하지 않은 여섯 명의 여자들이 삐걱거리며 시체 언덕과 계단을 번갈아 응시하기 바빴다.

툭―! 툭―!

그 순간, 다시 울려 퍼지는 쇠 파이프의 두드림.

벌써부터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던 그녀들의 눈망울이 내게로 향했다.

아주 조용히 쇠 파이프를 두드리며 그녀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내가 그녀들의 눈에 그대로 반사됐다.

나와 쇠 파이프를 바라본 그녀들이 삐걱거리는 몸으로 서둘러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지팡이 삼아 여성 생존자 무리에 합류했다.

이런 지옥에서 그녀들이 유일하게 는 것은 눈치뿐이었다.

툭―! 툭―!

여전히 시계 초침처럼 복도를 울리는 두드림에 학생회관 생존자 전원의 동공이 파르르 떨려왔다.

대략 50명.

난 복도를 빽빽이 채운 생존자들을 가볍게 휘둘러보며 셈을 마쳤다.

학생회관을 점령하며 수십 명의 남자를 죽였는데도 도서관 생존자들의 총합과 비슷한 수의 생존자들이 남아있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내 통제에 따른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울려 퍼지는 단조로운 목소리.

그들로서는 처음 듣게 되는 내 목소리에 저절로 모든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그러니 오늘까지 있었던 모든 규칙은 그대로 잊어라.”

규칙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비아냥을 잔뜩 담은 끝말에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생존자들.

내 비아냥을 받아치는 목소리는 생존자들이 아닌 밑에서 들려왔다.

“킥킥킥― 쿨럭―! 킥킥― 미친 새끼.”

바닥에 몸을 잔뜩 만 채로 어깨를 마구 들썩이는 팽현재.

놈이 핏물이 줄줄 흐르는 입을 열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딱 봐도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쿨럭― 새끼가― 킥킥― 말투 존나 띠겁네. 씨발 새끼야― 중2병이냐? 킥킥―!”

“…….”

놈이 아무런 대답도 내뱉지 않는 나를 계속해서 핏줄 터진 눈알로 올려다보았다.

“보니까― 존나 운 좋게 스킬 가챠 좀 기깔나게 뽑았나 본대― 쿨럭―! 존나 대책 없는 새끼가 좆도 모르면서 나대는 거 보니까 진짜 찢여 죽여버리고 싶네―.”

“…….”

“어디 니네 애비랑 바람난 옆집 아줌마가 사준 티비에 나오는 군바리 코스프레라도 하나 본데― 그래서 그런지 대가리도 군바리가 됐네― 뷰유융신― 킥킥―!”

팽현재가 헛웃음을 터트리는 나를 따라 하듯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겁을 주려면 적당히 줘야지 쿨럭―! 이 정도로 대책 없이 지랄하면 나도 삔또가 나가지 새끼야, 쿨럭―! 쿨럭―!”

난 배때기를 움켜쥐고 다시 헛기침을 시작한 팽현재를 발로 굴렸다.

“쿨럭―! 적당히 해라고, 이 씨발 새끼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똥폼은 진짜 존나게 잡네, 이 씨이바아알―!”

슬슬 여유가 생겼는지 놈의 얼굴에 고통이 아닌 분노가 가득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아가리가 나를 조준하고 그대로 거친 욕지거리를 쏘아냈다.

“내 몸에 한 번만 더 손대면 협조는 니미 좆이나 까 잡수는 게 좋을 거다, 이 씹쌔기야―!”

난 내 시선에 들어서는 역겨운 강아지 새끼를 조용히 내려보았다.

내 발밑에 쉼 없이 아가리를 벌리며 짖고 있는 놈에게 다리를 올렸다.

“물과 전기 없이 말라 뒤지고 싶으면 한 번만 더―!”

콰직―!

4층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

난 열심히 내게 목소리를 높이다 한순간에 모든 움직임을 멈춘 팽현재의 얼굴을 응시했다.

서서히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놈의 입가에 피거품이 부르르 떠올랐다.

“끄르르르르륵―!”

심각할 정도로 제 몸을 한껏 떨어대는 역겨운 진동에 서둘러 놈의 추악한 흉물을 찍어 내렸던 발을 들어 올렸다.

“꺽―! 꺽―! 꺽―! 꺽―!”

진정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이어지는 숨넘어갈 듯한 이상한 숨소리.

난 검은 동공이 보이지 않게 된 팽현재와 눈을 맞추며 조용히 읊조렸다.

“고맙네, 나도 모르는 애비가 바람까지 폈다는 것도 알려주고.”

“꺽―! 꺽―! 꺽―! 꺽―!”

지금껏 이어지던 신명 나던 욕지거리는 모두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소리로 대체되었다.

난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르― 몸을 떨고 있는 팽현재에게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

입가를 양손으로 가리며 경악하는 여자들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팽현재를 바라보는 남자들.

난 조원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입가를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을 바라본 뒤 다시 모두에게 입을 열었다.

“내 통제를 받는 너희들이 명심해야 할 건 딱 두 가지다.”

난 그들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절대로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생긴다는 것과 잘한 놈에겐 상을 주고 못 한 놈에겐 벌을 준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해라.”

하지만―.

“이것도 그냥 말로만 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지. 지금껏 경험한 바로는 본보기가 없으면 내 경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난 아직도 피거품을 물고 경련 중인 팽현재를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터 잘못한 놈이 어떤 벌을 받는지 보여주겠다.”

팽현재를 향해 쇠 파이프를 들어 올리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제지했다.

“과, 관장님!”

다소 어색하게 나를 부르며 서둘러 내 앞에 서는 유서준.

놈이 끄르륵거리며 경련하는 팽현재를 바라보곤 다시 내게 속삭포처럼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약속하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현재를 죽이겠다는 말까진 안 하셨잖아요―!”

“…….”

“게다가 분하지만, 현재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저희에겐 현재의 능력이 필요해요. 아니,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이 정도면 충분히 현재도 반성했을―”

“너한테만 충분하겠지.”

난 유서준을 바라보면서도 그가 아닌 다른 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이 대치를 보고 있을 학생회관의 피해자들.

“너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구조됐다고 느끼겠지만,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

“너보다 더 고통받고 괴로워한 이들 앞에서 충분하다고 말하는 건 너무 주제 넘는 거 아닌가?”

이어지는 내 말에 놈의 눈이 다시금 파르르― 떨려왔다.

내가 아닌 복도에 주저앉은 생존자들을 휘둘러보는 눈빛.

그녀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춘 유서준의 눈이 더 가파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비켜.

난 나를 막고 있던 유서준을 가볍게 치우고 다시 쇠 파이프를 들었다.

“끄르르르륵―!”

여전히 끝나지 않는 격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팽현재.

난 놈의 머리를 향해 쇠 파이프를 들고 모두에게 말을 이었다.

잘 봐라.

“이게 너희한테 없던 규율과 벌이니까.”

쐐애애애액―!

살짝 굽힌 무릎과 허리를 통해 앞으로 내지르는 쇠 파이프가 바람을 갈랐다.

퍼어어억―!

그리고 이어지는 머리의 처참한 파쇄음.

────────.

팽현재의 머리가 박살 나는 것과 동시에 건물을 밝히던 모든 불빛이 일제히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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