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64화 (64/120)

누구나 왕을 꿈꾼다 (5)

어둠으로 짙게 물든 밤을 밝히는 하얀 빛.

난 정말 오랜만에 건물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아닌 인공적인 빛.

밤이라는 자연의 섭리까지 거스르게 해주던 문명이라는 혜택.

전등에 밝게 빛나는 학생회관을 마주하는 기분이 몹시 이상했다.

내 도서관이 아닌 어떤 개잡놈의 학생회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기에 더더욱.

난 그중 유일하게 어둠에 물든 5층의 구석을 응시하다 유서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불안한지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유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계단을 올랐다.

놈이 호언장담한 대로 유리문을 잠그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문의 보초.

똑― 똑― 똑―

“빠, 빨리 문 열어. 나, 나야.”

“……으으으―! 뭐야, 유서준이야?”

유서준의 재촉에도 팔자 좋게 기지개를 켜며 잠긴 목소리로 답하는 보초.

“으으―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차는 또 어디 가고? 형님이랑 애들은?”

“……그, 급한 일이 생겼으니까 일단 빨리 문부터 열어.”

“응? 급한 일?”

보초가 전혀 급하지 않게 물으며 천천히 유리문의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얌전히 대기 중인 수색, 타격조에 눈짓하며 계단 옆의 작은 그림자에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뭔 급한 일? 또 누가 완기 형님 빡치게―”

툭―! 툭―!

졸린 눈으로 볼을 긁적이고 있는 보초의 목을 부여잡는덴 두 발자국이면 충분했다.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보초.

난 열린 문을 빠르게 통과하며 목을 틀어잡은 손을 가볍게 뒤틀었다.

끄드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철퍼덕― 바닥에 널브러지는 보초.

난 환한 불빛이 내려선 복도와 뒤진 보초가 앉아있던 의자와 그 앞의 책상을 조용히 훑어보았다.

뒤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서준과 빠르게 계단을 오르는 조원들.

난 그들을 일별한 뒤 다시 바닥을 박찼다.

팟―!

짧은 잔상을 일으키며 밖의 상황도 모르고 여전히 시시덕거리기 바쁜 공간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춘식이와 유서준의 말대로 활짝 열리는 화장실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두 명의 남자.

세면대에 몸을 한껏 기대고 초록 호스를 빙빙 돌리던 남자에게 지체 없이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빠각―!

급작스런 충격에 혀를 내뺀 채로 스르륵― 무너져내리는 남자.

그 옆에 있던 남자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옆통수에 쇠 파이프가 치달았다.

쿵―!

대변기 칸막이까지 날아가 그 안으로 사라지는 남자.

퍼억―!

난 세면대에서 그대로 무너져내린 남자의 머리를 한 번 더 가격한 뒤, 칸막이 안에 널브러진 남자의 머리를 확인했다.

더없이 움푹 패여 제 모습을 상실한 남자의 대가리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

눈 깜짝할 새에 시시덕거리던 잡담이 끊긴 남자 화장실.

난 적막이 내린 화장실 문을 열고 때마침 화장실 앞까지 도착한 조원들에게 턱짓했다.

뚜벅― 뚜벅― 뚜벅―

조금 빠른 속도의 발걸음들이 한데 겹쳐 울리는 복도.

각자의 둔기를 다잡고 나를 따르는 발걸음이 계단을 타고 올랐다.

편의시설이 밀집된 2층과 보건진료소와 동아리방이 있는 3층을 지나―

동아리방만 모여있는 4층.

와하하하하하―!

진한 웃음과 흐느끼는 여자들의 신음이 겹쳐 울리고 있는 역겨운 공간.

중간에 발걸음을 멈춘 내 앞으로 조원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으응?”

그 순간, 중간쯤에 위치한 동아리방이 열리며 튀어나오는 나체의 남성.

열린 문틈으로 남자들의 고함과 함성이 더 선명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뻘게진 얼굴로 다가오는 박태하를 보며 눈가를 찌푸리던 그에게 몽키 스패너가 잇달았다.

퍽―!

숙련된 둔기질에 그대로 바닥에 픽― 쓰러지는 남자.

박태하가 바닥에 널브러진 놈의 머리에 여러 차례 몽키 스패너를 내려친 후, 서둘러 열린 동아리방으로 급습했다.

“……뭐, 뭐야―! 너 이 새끼 뭐야―!”

“이, 이 씨바알―!”

박태하의 급습 이후로 우당탕거리는 소음과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툭― 데구르르르―

활짝 열린 동아리방 문으로 조심스레 굴러나오는 초록색 소주병.

“꺄아아아악―!”

난 한순간에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와 여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찬 4층을 조용히 응시했다.

열린 동아리방으로 급하게 튀어나오는 시뻘건 얼굴의 남자들.

이런 급박한 순간에도 취기를 몰아내지 못했는지 살짝씩 비틀거리는 놈들이 중앙에 버티고 선 나에게 시선을 모았다.

“이 개 씨발 새끼들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침을 분사했지만, 그저 역겹기만 했다.

하나 같이 홀딱 벗은 나체의 몸과 중앙에 축 늘어진 흉물에 번들거리는 무언가.

퍼억―!

덕분에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간 타격이 놈들의 머리를 으깨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

“씨발― 형님― 아, 아니 현재님―! 현재님 불러어어―!”

순식간에 머리가 움푹 패여 쓰러지는 동료를 보며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는 4층 복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놈들에게 기계적으로 쇠 파이프를 내려쳤다.

빠각―!

급하게 달리다 다리를 헛디뎌 복도에 미끄러진 한 놈의 머리를 후려치며 뒤를 응시했다.

내 뒤에 얌전히 대기 중인 세 사람.

이런 건물 점령에는 그리 큰 쓸모가 없는 방대화와 전투조가 아닌 춘식이.

그리고 섹스 파티가 한순간에 대가리 후리기 파티로 바뀐 참상에 눈을 파르르 떨고 있는 유서준.

난 내 주변에 머리가 으깨진 채로 널브러진 시체들의 숫자를 센 후에 방대화에게 손짓했다.

“지금부터 밖으로 나오는 새끼들 적당히 태워서 죽여.”

“……예, 관장님.”

온전한 점령을 목표로 한다면 꽤 성가실 수밖에 없는 불이라는 능력.

하지만 얼추 정리가 끝난 4층에 계속 묶여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툭―!

난 고개를 끄덕이는 방대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에 계단을 한 층 더 올라갔다.

지옥도로 돌변한 4층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한 5층.

팟―!

난 바닥을 박차며 길게 이어진 복도를 주파했다.

춘식이의 정보와 밖에서 확인했던 5층 총학생회실의 정확한 위치.

[여러분의 반석, 반석대학교 총학생회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분명한 증거를 달고 있는 철문을 발로 들이밀었다.

쿠우우웅―!

속도를 모조리 힘으로 몰아넣은 각력에 반으로 접혀 벽으로 날아가는 철문.

우우웅―!

그 순간, 활짝 그 속을 내보인 총학생회실에서 익숙한 가동음이 흘러나왔다.

어둠과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더 짙은 검정색으로 가득 찬 총학생회실.

총학생회실을 가득 먹어 치운 꺼림칙한 그림자가 바닥을 타고 내게 기어 왔다.

─────.

그 그림자가 내 그림자에 겹쳐든 순간부터 이어지는 묘한 감각에 작게 눈이 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게 맞긴 한 건지도 확신할 수 없는 그야말로 미지의 암흑.

사람의 오감 자체를 차단하는 소름 끼치는 암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였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던 여섯 번째 감각에 집중하는 것.

우우웅―!

육체에 깃들어 박동하던 왕권이 꺼림칙한 어둠을 내 몸에서 밀어냈다.

찬란하게 온몸을 빛내는 황금색 물결이 차단되었던 오감을 회복시켰다.

“…….”

다시 회복된 시야로 선명히 보이는 나체의 한 남자.

그저 가만히 서 있는 내게 암흑 속에서도 번뜩이는 무언가를 들고 팽현재가 빠르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 씨발 새끼!”

“…….”

진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식칼로 보이는 걸 내게 들이미는 팽현재.

난 여전히 오감이 차단된 체하며 그저 가만히 놈을 기다렸다.

“뒤져, 이 병신 새끼야아―!”

쐐애애액―!

정확히 내 심장을 겨냥하고 직선으로 젖혀 드는 식칼.

허나 오로지 공격만을 생각하고 있던 팽현재의 활짝 열린 상체에 더 빠른 무언가가 젖혀 들고 있었다.

퍼어억―!

짧게 끊어친 주먹이 놈의 인중과 코를 깊게 뭉갠 뒤 물러났다.

“케헥―! 켁―!”

찔러 들던 식칼을 땅바닥에 흘리며 서둘러 입가를 가리며 물러서는 팽현재.

이미 봇물 터지듯 흘러내리는 코피가 놈의 손등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팽현재가 앞으로 도약을 시작한 나를 보며 눈을 찢어질 듯이 크게 떴다.

마치 말이 안 되는 걸 목격한 듯한 놈의 눈빛.

난 놈이 물러난 거리를 빠르게 따라잡으며 오른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퍼어어억―!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던 놈의 면상을 그대로 후려치는 주먹질.

쿠우웅―!

놈이 중앙에 한껏 쌓여있던 음식들을 헤집으며 추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케헤엑―! 켁―! 켁―!”

바닥에 엎어져 헛기침을 시작한 놈의 핏물 섞인 침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놈이 내뱉는 헛기침을 따라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하얀색 파편들.

놈이 그 파편들을 보며 눈을 더 크게 뜨더니 서둘러 고개를 나에게 돌렸다.

왼손에 있던 쇠 파이프를 오른손으로 옮기는 나를 보며 내뻗는 양손.

우우웅―!

또다시 울리는 묘한 가동음과 함께 놈의 양손에 검은 물질이 넘실거렸다.

나를 향해 내뻗은 양손에서 순식간에 분사되는 검은 물질.

그 검은 물질들이 마치 뭉게구름처럼 총학생회실 전체를 뒤덮었다.

난 부분무능을 휘감은 몸으로도 전혀 분간되지 않는 시야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꽤 특출난 능력 활용이었지만, 대세에는 전혀 연관이 없는 잡기술이었다.

지금도 내 몸을 통과하는 검은 뭉게구름에도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오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차피 놈에게 도망갈 구멍은 없다.

그리 좁지도 않지만, 그리 넓지도 않은 총학생회실에서 펼치는 이런 잔기술은 놈의 죽음을 몇 초 정도 늦출 뿐이었다.

푸화악―!

그 순간― 뭉게구름을 헤치며 내 앞으로 튀어나오는 살색 인형.

그 나체를 포착하는 순간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곧바로 놈에게 내리쳤다.

쐐애애애―

바람을 가르며 내 몸을 파고드는 인형에 내리치던 쇠 파이프가 이상함을 느낀 내 지시에 우뚝― 멈추어 섰다.

툭―!

“아,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제,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현재님― 또 왜, 또 갑자기 왜애―”

내게 안긴 줄도 모르고 사방으로 손을 헤집으며 울먹이는 나체의 여성.

타다다닥―!

갑작스레 내게 안긴 여성의 옆으로 누군가의 다급한 달음박질이 그대로 들려왔다.

“오, 오늘 시키시는 일은 다 했잖아요― 왜, 왜애애―”

난 질질 울기 시작한 여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여자의 머리에 부분무능을 쑤셔박으며 복도를 빠르게 내달리는 팽현재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제발― 제발― 현재…….”

필사적으로 주변을 허우적거리던 손을 서서히 멈추는 여자.

마치 시야가 회복되듯이 흐리멍텅한 눈에 초점이 잡혀가고 있었다.

“꺄아악―!”

난 부분무능을 주입한 여자를 복도에 내던지고 놈의 뒤를 추격했다.

탁―! 탁―!

육체계 스탯의 차이로 점차 좁혀지는 놈과 나의 거리.

난 더 강하게 바닥을 박차며 오른손에 든 쇠 파이프를 등 뒤로 쭉― 당겼다.

“허억― 허억―!”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서둘러 고개를 뒤로 돌리는 팽현재.

놈의 등허리를 향해 점차 가까워지는 거리를 더 좁힐 둔기를 투척했다.

쐐애애애액―!

빛살을 가르듯 쭉 이어지는 쇠 파이프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팽현재.

“씨―”

퍼어어억―!

놈이 욕지거리를 다 내뱉기도 전에 놈의 등허리에 쇠 파이프가 적중했다.

탱태대댕―!

놈의 등허리를 깊게 가격하고 바닥과 공명하는 쇠 파이프.

난 낙하의 충격에 작게 떨리고 있는 쇠 파이프를 바닥에서 집어 들고 우당탕―거리며 추하게 넘어진 팽현재 앞에 섰다.

“이, 이 씨이이바아아아알―!”

엎어진 몸을 서둘러 반대로 세우며 나를 올려다보는 팽현재.

놈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군데군데 빈 공간이 생긴 아가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난 바람 빠진 발음으로 진하게 욕을 하며 뒷걸음질치는 놈의 몸을 깔아뭉갰다.

“이이익―! 이― 이이이이익―!”

우우웅―!

한순간에 움직임이 제한당한 팽현재가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검은 물질.

하지만 난 놈의 몸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지고 있는 검은 물질을 무시하곤 주먹을 쥐었다.

퍼억―!

위에서 아래로 직선으로 내리꽂은 주먹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팽현재.

단지 그의 머릿속에 가득한 섬광을 피하기 위해서인 듯 놈의 동공이 살짝 위로 치켜올려지고 있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난 계속해서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꽂았다.

무자비한 타격에 반응하는 것처럼 놈의 주변에 넘실거리던 검은 물질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퍼억―! 퍼억―!

또다시 터진 놈의 코피에 주먹이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핏방울을 사방으로 비산시켰다.

우우웅―

계속되는 타격에 천천히 안으로 사그라드는 놈의 검은 물질.

난 검은 물질이 다시 사라지고 나서야 주먹질을 멈추고 놈을 내려다보았다.

“…….”

벌써부터 퉁퉁 부은 얼굴과 아까보다 더 빈 곳이 즐비한 놈의 아가리.

추하게 온 얼굴을 코피로 분칠한 놈의 면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놈을 깔고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시체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팽현재.

콰직―!

“으윽― 으으으으윽―!”

허나, 놈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몸을 질질 끌기 시작하자 몸을 아등바등 흔들며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을 풀기 위해 발악했다.

“으으으윽―! 씨, 씨이, 씨이바아알―!”

잔뜩 샌 발음으로 수 차례 욕지거리를 내뱉는 팽현재.

난 슬슬 정리가 끝났을 4층으로 놈을 질질 끌어당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