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확립 (2)
끼이이익―!
철문이 삐걱대며 제 2열람실에 햇살을 흩뿌렸다.
암막 커튼에 의해 어두컴컴한 상태를 유지하던 식량 창고를 조용히 밝히는 빛.
툭―! 툭―!
난 차설희의 엉덩이가 아닌 쇠 파이프를 든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치대며 말 그대로 식량으로 가득 찬 창고를 천천히 휘둘러보았다.
그저 보기만 해도 배가 자동으로 불리는 아주 흐뭇한 광경.
“6, 6층 식량 창고는 관장님의 말씀대로 유통기한마다 구역을 정해 아주 철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보고 계시는 가장 안쪽 구역은―”
누가들어도 이미 긴장감으로 얼룩진 뻣뻣한 목소리.
난 고개를 돌려 외운 티가 역력한 대사를 읊는 안세준에게 손을 휘저었다.
내 지시에 서둘러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키는 안세준과 그 옆의 정세리.
그동안 비축해뒀던 지하수로 단체 샤워를 실시한 효과가 있었는지 몰라볼 정도로 멀끔해진 커플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물은?”
꽤 많은 구역을 차지할 생수들의 부재를 찾는 물음.
안세준이 내 물음에 서둘러 입을 열며 문밖을 가리켰다.
“생수와 음료수는 남녀 수면실에 보관하며 아주 철저히 관리되고 있습니다, 관장님!”
‘아주 철저히’라는 말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창고지기.
난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주며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창을 응시했다.
이곳은 우리 캠프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가장 중요한 구역이었다.
그렇기에 따로 창고지기까지 배치하고 내가 가장 빨리 대처할 수 있는 곳에 위치시켜 엄중히 지키고 있지만, 그거론 그리 충분하다 여겨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적으로서 도서관 캠프를 무너트릴 작정이고, 그들의 식량을 약탈하고 싶다면―
툭―! 툭―! 툭―!
난 인문대 벽을 타듯 도서관 벽을 타고 오르는 나를 상상하며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쨍그랑―
가볍게 벽을 타고 유리창을 깨버린 후 식량 창고에 진입하는 내 모습.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 있는 식량을 너무나도 쉽게 확보하는 내가 상상되었다.
단순한 육체적 능력이 아닌, 온갖 기상천외한 능력이 넘치는 이능력자들이라면 그 허들은 더욱 낮아지겠지.
일반인으로서의 보안과 이능력자로서의 보안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궤를 달리했다.
띠링―!
[인벤토리(Lv.1)를 업그레이드하여 더 무겁고 많은 물품을 보관하겠습니까? (50p 지불)]
그렇기에 시스템이 이런 뭐 같은 배짱 장사를 하는 거겠지.
난 꽤 부유해졌다고 느끼는 지금에서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게 하는 가격에 서둘러 시스템 창을 치워버렸다.
“식량 창고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 좀 생각해 봐.”
“예, 관장님.”
내 지시에 서둘러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하는 고장훈.
난 내 표정만 하염없이 보던 안세준의 얼굴이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는 걸 확인하곤 헛웃음을 내지었다.
툭―!
인벤토리 가격에 찌푸려진 미간을 보며 잔뜩 얼어있는 안세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담배 피냐?”
“……예, 예?”
“담배 피냐고.”
“아―! 죄. 죄송하지만 다, 담배는 안 핍니다, 관장님!”
난 고개를 휙― 휙― 저어대는 안세준 뒤의 정세리를 턱짓했다.
“세리는?”
“……아, 안 핍니다, 관장님.”
“그래?”
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안세준을 응시했다.
“6층 세미나실은 지낼 만하고?”
“물론입니다! 세리와 함께 지내기 너무 아늑하고 무엇보다 수색조원분들과 가까이 있기에 항상 안전한 느낌을―”
이 질문은 예상했는지 또 외운 티가 역력한 대사가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난 또다시 손을 휘저어 놈의 입을 막고 고장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내 손바닥에 바스락― 거리며 내려서는 비닐의 감촉.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어? 고자 말로는 꼼꼼하게 잘 지키고 있다면서.”
“가, 감사합니다―!”
무언갈 내미는 내 손길에 서둘러 꾸벅― 허리를 숙이고 그걸 양손으로 받는 안세준.
그렇게 바스락거리며 양손으로 집은 물품을 확인한 안세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왜, 더 줘?”
장난스레 빙그레 웃는 내 미소에 어색하게 화답하는 놈의 미소.
난 고장훈에게 손을 뻗어 콘돔 하나를 더 얻은 후에 놈의 손에 넘겨주었다.
“아,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그런 내 손길에 기겁을 하면서 중얼중얼거리는 안세준.
난 놈에게 콘돔을 하나 더 강제로 쥐여주며 놈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세준이 네가 우리 캠프에 아주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거 알지?”
“…….”
“네가 모르더라도 내가 알고 캠프가 안다. 너는 이걸 누릴 자격이 충분해.”
“…….”
“그러니 자기 혼자 겁먹고 벌벌 떨지 말고 지금처럼만 하자.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알겠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고개를 휙휙― 끄덕이는 안세준.
난 놈의 눈망울에 이미 그렁하게 맺힌 물방울들을 보며 천천히 어깨에 얹은 손을 거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새끼는 여자들만큼이나 감수성이 풍부한 게 특징이었다.
난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안세준에게서 등을 돌려 식량 창고를 나섰다.
“식량 창고 다음으로 가실 곳은 무기 보관 창고입니다.”
쿵―! 쿵―! 쿵―!
그런 나를 서둘러 따르는 고장훈과 수색,타격조원들.
난 사범대 신관 라운지 층에서 빼내 온 가구들로 가득한 중앙 휴게 공간을 가로질러 새로운 열람실 문 앞에 섰다.
식량창고가 노트북 등의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콘센트가 준비된 열람실이었다면, 여기는 콘센트가 구비되어있지 않은 열람실이었다.
그렇기에 식량 창고보다는 그 넓이가 그리 넓지 않고 따로 구별된 제 2열람실.
끼이이익―!
난 문을 열자마자 시야 한가득 나를 반기는 무기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쇠 지렛대, 야구 방망이, 망치, 렌치, 몽키스패너 등등―
무기라기엔 공구와 운동 도구로서의 색이 너무 짙은 도구들.
난 사범대 관리실과 공구 도구함 등에서 주로 얻은 둔기들을 눈에 담으며 짧게 혀를 찼다.
석궁, 마체테, 소방 도끼 하다못해 새총이라도.
지금 내 눈에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무기다운 무기의 모습에 저절로 이마가 간지러웠다.
“이게 끝이야?”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관장님.”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는 고장훈에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
이것 또한 가장 쉬운 해답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상점(Lv.1)을 업그레이드하여 더 많은 물품을 갱신하시겠습니까? (100p 지불)]
쯧―!
50포인트도 모자라 100포인트에 달하는 상점 레벨업 포인트.
저 포인트면 지금 당장 부분무능의 전문화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많은 포인트였다.
난 인상을 찌푸린 채로 뒤에 시립한 캠프원 중 방대화를 눈에 담았다.
내 명령에 복종하는 화염계 이능력자.
잠시간 혀를 굴리며 생각을 이어가던 나는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내 수중에 들어온 수하를 내 손으로 망치는 병신 짓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일단 새총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무기에 관해서도 캠프원들이랑 의견을 나눠 봐.”
“예, 관장님.”
고장훈에게 임시방편을 지시하고 둔기로 가득 찬 무기 보관 창고의 문을 닫았다.
저렇게 둔기로 가득하다고 둔기가 열등한 것은 또 아니었다.
오히려 날붙이나 다른 무기들에 비해 유지나 관리 면에서는 압도적인 상위 호환이기도 했고.
또한 굳이 피 같은 포인트를 낭비하며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단―
툭―! 툭―!
난 이제 너무나도 익숙하게 손에 착 감기는 쇠 파이프의 감촉을 느끼며 조용히 생각을 이어갔다.
상점에 포인트를 투자한 새끼를 복종시키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필요한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그 능력을 갖춘 이를 잘 부리는 게 옛날 옛적부터 이어진 위대한 군주와 제왕의 선제 조건이었으니.
그냥 개인의 성장이 아닌 단체의 성장을 염두에 두니 기하급수적으로 필요 포인트가 늘어난다는 게 조금 짜증 날 뿐이었다.
어쨌든 식량 창고와 무기 보관 창고를 점검했으니―
이제 6층에서 점검이 필요한 곳은 한 곳뿐이었다.
쿵―! 쿵―! 쿵―!
천장에 닿을 듯 크게 울리는 발 구름에 어깨를 잘게 떨어대는 여성 캠프원들.
세미나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성 캠프원들이 모습이 틀에 박힌 듯 똑같았다.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모습.
점점 가까워지는 발 구름에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곁눈질하던 여성 캠프원들이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몸을 잘게 떨어댔다.
수색조와 타격조의 선택을 받아 세미나실에 함께 입주한 여성 캠프원들.
뚜벅― 뚜벅―
그렇게 달달 떨어대는 여성 캠프원들의 선두에 익숙한 얼굴이 자리했다.
난 차설희가 앞에 서자마자 눈에 띄게 떨림이 줄어든 여성 캠프원들을 보며 잔웃음을 흘렸다.
그것만으로 차설희가 저 캠프원들에게 어떤 의미인 줄 알게 됐으니까.
난 생각보다 더 잘 해내고 있는 차설희에게 옅은 미소를 내보이며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뚜벅― 뚜벅―
길게 이어진 세미나실을 천천히 훑어보는 선명한 발소리.
툭―! 툭―!
책상과 의자가 빠지고 간이침대 등이 자리한 세미나실을 하나씩 살필 때마다 습관처럼 쇠 파이프가 흔들렸다.
그렇게 쇠 파이프가 허벅지를 두드릴 때마다 고개를 더 푹― 숙이는 여성 캠프원들.
난 마지막 세미나실까지 살펴본 뒤 몸을 빙― 돌아왔던 길을 다시 걸으며 여성 캠프원들을 눈에 담았다.
누구 하나 고개를 드는 이 없이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간절한 떨림들.
내가 각인시킨 공포가 그녀들의 아주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툭―! 툭―!
난 내 허벅지를 치대는 쇠 파이프만이 울려대는 적막에 자그마한 헛웃음을 머금었다.
이렇게나 확실한 증거 또한 그 효력을 다하는 날이 온다는 게 이상하게 우스웠다.
인간은 계속되는 무언가에 반드시 무뎌진다.
그게 목숨을 위협받는 공포라 해서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공포가 무리를 다스리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만능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집단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은 공포와 폭력만이 아니다.
“너희들을 이해한다.”
난 세미나실을 천천히 걸으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이십여 년의 세월. 아니 너희들의 일생에 걸쳐 세워진 가치관과 상식을 갑자기 뒤바꾸라니. 그것보다 더 괴롭고,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없지.”
“어쩌면 사람 고유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그 모든 것들을 갑자기 바꾸란다고 그게 다 바뀌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건물은 반석대 도서관이 아니라 서울대 도서관이겠지.”
툭―! 툭―!
난 계속해서 세미나실 복도를 왕복하며 선선히 말을 이어갔다.
“급작스런 가치관의 충돌, 강압적인 명령, 그걸 따라야 하는 아픔, 괴로움, 어쩌면 자괴감까지도.”
“모두 다 이해하고 그걸 감내하는 너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좀비.
난 이 일의 원흉을 조용히 읊조리며 다시금 모두를 휘둘러보았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내 말을 듣고 있는 캠프원들.
“세상은 말 그대로 예고 없이 망해버렸고, 지금 이 구조가 내가 생각한 최선의 구조다.”
“만약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누구든지 언제든 내게 말해라. 진심으로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구조를 바꿀 용의가 있다.”
난 여성 캠프원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희들 중 몇몇은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겠지. 아니, 너희 전부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겠지.”
어쩌면―
“할 수만 있다면 밑층의 캠프원들처럼 격한 노동을 하거나 수색조나 타격조에 속하는 것이 더 낫겠다 생각하는 자들이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들 모두에게 말하자면―
난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며 모두에게 말했다.
“수색조나 타격조에 지원하겠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캠프에 이바지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너희들이 누릴 권리 또한 당연히 늘어날 테니까.”
툭―!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우스운 말이다.”
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전부 눈에 담았다.
세미나실의 반대쪽 끝 방향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나와 캠프원들.
난 나를 바라보는 여성 캠프원들과 뒤에 도열한 수색조와 타격조원들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 내 앞에 선 너희보다 캠프에 이바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너희들은 그 누구보다 이미 캠프에 헌신하고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 새로운 가족들이다.”
쿵―!
가볍게 내려찍은 쇠 파이프가 6층 바닥을 가리키며 모두에게 울려 퍼졌다.
“그렇기에 너희는 지금 6층에 있다.”
“이건 너희가 내게 보여준 헌신과 정성에 대한 감사이며, 보답이고, 약속이다.”
난 6층에 도달한 모든 캠프원들에게 다시금 말했다.
“너희는 더 많은 것을 누릴 것이다.”
“굳이 더 나아지지 않고 지금처럼만 이어져도 캠프의 여건과 상황이 좋아질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릴 것이다.”
쿵―!
이번엔 바닥을 찍어 내리는 발 구름이 쇠 파이프보다 더한 공명을 일으키며 모두에게 퍼진다.
“이것만 명심해라. 너희는 지금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가장 나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걸.”
난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휘둘렀다.
그런 내 눈빛에 천천히 담겨오는 6층의 모든 캠프원들.
그리고 난―
난 그들 하나하나와 아주 오랫동안 눈을 맞추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걸 절대로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