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의 시대 (3)
굳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언가라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되는 건 파괴력 자체가 다르다.
병신 삼인방에게 누구보다 특별하고 강해 보였을 방대화.
그 방대화의 얼굴이 말 그대로 피떡이 되어 돌아왔고 그렇게 만든 당사자는 몇 번의 대화 끝에 그들의 우두머리인 교수를 격살했다.
지금도 그들의 눈동자에 콱― 틀어박혀 있는 교수의 시체.
어쩌면 아주 당연하게도 지금 내 앞에 선 병신 삼인방의 눈에는 단 한 조각의 저항 의지도 엿보이지 않았다.
“저 앞에 일렬로 서.”
쇠 파이프가 사라져 제법 허전한 손으로 교수가 박혀있는 벽 앞을 가리키는 손짓.
놈들이 헐레벌떡 책상을 지나 교수 시체 앞에 도열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손히 두 손으로 모은 반나체의 남학생들.
“어이, 라이터.”
툭―!
내 발길질에 교수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던 방대화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일어나.”
내 지시에 빛보다 빠르게 바닥에서 일어나는 방대화.
난 놈의 퉁퉁 부은 얼굴을 바라보며 삼인방과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앞에 서.”
내 턱짓에 빠르게 책상 옆에 서는 방대화.
난 병신 삼인방을 마주 보게 된 방대화에게 다음 지시를 건넸다.
“태워.”
“…….”
조금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뒤늦게 선명히 튀어나오는 떨림.
천천히 고개를 돌린 방대화가 아주 흐릿한 음색으로 내게 되물었다.
“……예?”
제발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물음.
방대화가 고개를 돌린 시야 너머로 어울리지도 않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내는 병신 삼인방이 보였다.
“태우라고.”
그의 기대를 배반하고 다시금 확실히 내리는 명령.
난 방대화의 눈을 바라보던 눈동자를 돌려 병신 삼인방과 눈을 맞췄다.
자신들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도망치지 못하고 내게 처절한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남학생들.
그들 또한 이미 내 눈에 든 이상 도망은 불가능하다는 걸 자연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내 눈빛에 눈물샘이 고장 난 듯 서럽게 눈물을 흘려대는 반나체의 남자들.
그 모습이 사뭇 보기 역겨워 대놓고 미간을 사납게 찡그렸다.
그런 내 표정에 삐거덕거리는 고개를 간신히 병신 삼인방에게 다시 돌리는 방대화.
방대화가 뭔 지진이라도 난 듯 달달달― 떨리는 오른손을 그들에게 내미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턱―!
놈을 압박하기 위해 놈의 오른 어깨에 가볍게 내려앉는 내 오른손.
다시 지근거리에 들어온 내 존재감에 더 위태롭게 놈의 오른손이 흔들린다.
“…….”
아마 지금 이 짧은 순간에도 몇백, 몇천 번의 연이은 고뇌로 가득 차 있을 놈의 대가리.
그렇게 쉴 새 없이 오돌오돌― 떨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삼인방을 바라보던 그가 빛살처럼 몸을 돌렸다.
아주 급작스럽게 몸을 뒤돌며 동시에 몸을 바짝 엎드리는 방대화.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제발―”
방대화가 내 바짓가랑이를 꽉―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거 말고 하라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을 죽이는 건 제발―”
바로 아래에서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놈의 퉁퉁 부은 얼굴.
이미 한참을 질질 짠 얼굴이 서둘러 나를 올려다보며 성종현의 시체를 가리켰다.
“원래 아주 착한 동생들입니다! 그런데 교수님― 아니 저 새끼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서,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저, 정말 말 잘 듣고 착한 동생들입니다―!”
간절함 때문인지 전혀 뭉개지지 않고 또렷이 들려오는 그의 애절한 발음.
딱 봐도 친동생도 아닌 녀석들 같은데 같은 지옥을 겪으며 전우애라도 생긴 건지 아주 지극정성도 이런 지극정성이 없었다.
그런 방대화의 애원을 보던 병신 삼인방 또한 헐레벌떡 내 남은 바짓가랑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제발― 진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하라는 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에발―!”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가까이 붙자마자 확연히 느껴지는 구린내.
눈물 자국만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놈들의 땟국물 넘치는 얼굴에 계획하지도 않았던 이가 갈렸다.
아주 간절하게 내게 빌어대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게 이런 시커먼 남정네들이라는 것에 아주 몹시 기분이 나빠진다.
퍼억―!
가볍게 터는 양쪽 다리에 그대로 땅바닥을 뒹구는 남정네들.
난 필사적으로 다시 바닥에서 일어나 내 바짓가랑이를 향해 돌진하는 놈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얼굴이 구겨졌다.
“야 이― 씨발―!”
기겁하듯 열린 입에서 쏟아져 나온 원색적인 욕설.
덕분에 내 바짓가랑이를 잡으려던 몸짓 그대로 얼어붙은 놈들은 재빠르게 행동을 바꿨다.
아주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파리처럼 열성적으로 비벼대는 양손.
지금 하는 짓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여겼는지 간절하게 빌어대는 양손의 속도가 사뭇 남달랐다.
중앙에 나뭇가지를 꽂으면 당장이라도 불씨를 피울 수 있을 만큼.
“제발― 진짜 제발― 한 번만―”
“선생님―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진짜 맹세하겠습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
“교수 새끼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제가 아닌 것같이 이상하게 몸이 너무 뜨거워서―! 진짜 제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난 놈들의 똥줄을 태우며 차분하게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내가 고민을 한다 여겼는지 더 필사적으로 손을 비벼대는 새끼들.
난 놈들의 물기에 번들거리는 눈알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병신새끼들.
죽일 거라면 교수 새끼 죽일 때 진작에 죽였겠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식량만큼 중요한 게 바로 인적 자원이다.
게다가 그게 아주 쓸만한 성인 남성 세 명과 한 명의 이능력자라면…….
“…….”
난 그들에게 보란 듯이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 보급품들을 차분히 훑었다.
“그래― 떨팔이새끼 약에 취해서 그런 짓을 한 거면 죽이기 조금 애매하긴 하네.”
약간 떨떠름해진 내 음색에 희망을 찾아 광분하는 놈들의 눈빛.
“맞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약, 약에 취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저희가 미쳤다고 저, 저런 불쌍한 여자들을 그, 그랬겠습니까― 이, 이게 다 교수 새끼가 저희를 대놓고 부추겼다니까요―?!”
그런데 듣다 보니 조금 이상하네.
난 놈들의 변명에 가늘게 눈을 좁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새끼들이 아직 약에서 덜 깼나? 전정기 들고 깝치던거랑 여자들 따먹은 거랑 무슨 상관인데?”
“…….”
내 말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새끼들.
난 그중 가장 건방졌던 새끼의 얼굴을 발로 밀었다.
“벙어리라고 욕하던 새끼가 도리어 벙어리가 됐네.”
우당탕― 거리며 넘어진 몸을 서둘러 일으켜 다시 무릎을 꿇는 남학생.
가장 재빠르게 바지를 추스르고 내게 소리쳤던 모습답게 행동이 아주 신속했다.
“그냥 면상만 봐도 싹이 누레서 정리하려 했는데 그게 교수 새끼 약에 취한 거면 경우가 조금 다르지.”
툭―! 툭―! 툭―!
전정기를 내게 들이밀었던 새끼부터 차례대로 얼굴을 거세게 밀어버리는 발길질.
내게 얼굴이 밀린 놈들이 서둘러 바닥에 나뒹구는 몸을 일으켜 다시 자세를 고정시킨다.
우우웅―!
짧은 울림을 끝으로 내 몸에서 사그라드는 밝은 황금빛.
난 부분무능이 사라진 상태로 다시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까 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머리를 멍하게 만들던 그 특유의 기분 나쁜 감각이 사라진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동력원이 사라진 듯 그저 달콤하기만 한 향기 초의 향기.
나는 그런 나를 연신 침을 꼴깍이며 지켜보는 놈들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좋아, 살려줄게.”
대신.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한국어의 끝말에 환하게 미소가 번지려던 그대로 다시 멈춘 놈들의 얼굴.
난 여전히 공포 영화처럼 강의실에 앉아있는 여학생들을 천천히 휘둘러보았다.
“저년들 중 한 명이라도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순간 너희는 죽는다.”
“…….”
아직은 완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청하게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를 올려다보는 새끼들.
어차피 조금 뒤에 더 말하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될 사실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난 그들 중 가장 앞에서 내 말을 듣고 있는 방대화를 눈에 담으며 옅게 미소 지었다.
내 손에 반쯤 들어온 이능력자를 내가 미쳤다고 죽일까.
아마 지금쯤 얌전히 도서관 캠프로 돌아갔을 박태하와 수색조원들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운 첫 번째 조직 수색조.
그 수색조로는 차마 이룰 수 없는 영역에 관해 다시금 생각했다.
조금 광범위한 수색 및 관리를 도맡을 ‘수색조’.
그런 수색조가 있다면 오직 적대 세력을 공격하는 데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조직 또한 필요해지는 법이다.
일단 ‘타격조’라고 이름 지은 새로운 조직의 수하들.
한 명의 이능력자와 그를 보조할 세 명의 잡일꾼 및 짐꾼.
첫 번째 조직원들로 아주 적합한 군상들이었다.
터벅― 터벅―
아무 말 없이 중앙 복도를 걷는 나를 따르는 다급한 발소리가 강의실 천장을 울렸다.
턱―!
난 복도와 교단을 구별하는 턱에 가볍게 엉덩이를 붙이곤 여학생을 가리켰다.
“일단 저년부터 데리고 와.”
교수가 나를 유혹하는 데 썼던 김아름.
나름 교수가 자신 있게 언급한 대로 나쁘지 않은 미모의 여학생이었다.
대충이나마 느낌을 말하자면, 살면서 남자친구가 단 한 번도 끊기질 않았을 얼굴?
남자들이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을 이목구비와 몸매였다.
하지만 김아름과 비교하는 게 굴욕인 여자를 밤마다 마주하는 내겐 그리 큰 감흥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내 지시에 서둘러 김아름을 질질 끌고 오는 예비 타격조.
남자들에게 양어깨를 내주며 바닥에 발을 질질 끄는 그녀가 내 앞에 도달했다.
철퍽―!
인형처럼 무너지며 바닥에 무릎을 꿇는 그녀에게서 새어 나오는 물소리.
난 내 다리에도 튄 촉촉한 물방울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김아름 아래에 여전히 선명한 작은 웅덩이와 그 주변에 아직도 쓰러져있는 뒤진 개구리들.
“야― 저것들 감기 걸리겠다. 일단 뭐라도 입혀라.”
짜증 나게 이마를 긁적이며 반대 손을 휘적이는 지시에 타격조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옷 소매로 서둘러 개구리들이 싼 웅덩이를 닦는 방대화와 교단 앞 통로에 널브러진 여자들을 챙기는 타격조.
놈들이 그 여자들 옆에 난잡하게 버려진 옷들 중 자기 옷을 챙겨입으며 서둘러 여자들의 옷을 입혀댔다.
난 그나마 나아진 환경을 휘둘러보며 다시 김아름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병신 같은 얼굴로 헤― 입을 벌리고 있는 맛이 한참 간 동공과 얼굴.
이왕이면 이 상태를 해제하고 교수를 죽이고 싶었지만, 놈이 해독제가 없다고 공언했으니 별수 없는 일이었다.
우우웅―!
내 부분무능을 믿는 수밖에.
그리고 이 뼈아픈 사실이 내가 예비 타격조를 죽일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직 이 강의실에 자리한 20명의 여학생들은 확실히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예비 타격조까지 무대포로 죽이면 내가 이곳까지 와서 얻어가는 게 하나도 없는 좆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일단 부분무능으로 어디까지 무효화할 수 있는지가 너무 애매했다.
완전한 감염 상태의 좀비를 무효화하지 못하듯, 약의 여파나 금단 증상까진 무효화하지 못할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은 사람 하나하나가 아쉬운 이 판국에도 절대로 캠프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그런 놈들은 캠프에 들여봤자 잠재적인 트롤러 새끼들을 보호해주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내가 주는 공포보다 더 거대한 약에 대한 갈망을 가진 폭탄을 굳이 공들여 얻을 필요는 없었다.
턱―!
부드럽게 그녀의 정수리에 얹은 오른손.
이미 내 손을 환하게 밝히던 황금빛이 부드럽게 그녀의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우웅―!
잡일을 끝내고 멍하니 이 광경을 지켜보는 타격조들의 동공에 누런빛이 가득했다.
“…….”
아무런 말 없이 점점 하늘로 치솟는 그녀의 고개.
덕분에 그녀의 동공에 혼탁한 빛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우우웅―!
내 왕권이 스며들수록 그런 혼탁한 눈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백지가 되어가는 김아름의 얼굴.
그 백지 같은 얼굴이 아주 천천히 생동감 있게 온 사방으로 찌그러졌다.
“……어?”
그리고 내뱉는 아주 많은 걸 내포한 단 한 글자의 탄식.
난 맑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조용히 정수리에서 손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