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8)
“형, 어디 가세요! 이제 곧 해져서 어두워질 텐데.”
“기분 전환으로 바람이나 쐬려고.”
“에이~ 진짜 기분 전환은 이 안에 있는 게 기분 전환이고요.”
거의 홀딱 벗은 몸으로 짓궂게 웃는 과 후배.
방대화는 질린다는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열린 문을 마저 닫았다.
“다녀오세요~ 교수님에게는 제가 말해―”
쿵―!
제법 큰 소리로 닫히는 문덕에 끊겨버린 후배의 말.
방대화는 슬슬 어둠에 젖어가는 인문대 2층을 훑으며 오른손을 들었다.
우우웅―!
그의 손에 피어나는 옅은 불씨.
방대화는 그 일렁이는 광원을 손에 들고 조용히 옆에 붙어있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시야에 담겨오는 아래쪽의 의자로 가득 쌓인 바리케이드와 벽면에 여전히 짙게 새겨진 누군가의 핏자국들.
그래―
차라리 이런 걸 보는 게 훨씬 나았다.
어차피 안에 있으면 후배 새끼들의 추한 신음과 이상하게 보기 싫은 얼굴을 대면해야 하니까.
방대화는 저 안에 오래 있을 때마다 묘하게 울렁이는 머리가 생각나 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냥 혼자 자리에서 빠져나와 옥상을 방문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법 괜찮아졌으니까.
계속 반복되는 울렁임 덕에 이 어지러움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누구의 짓인지 명확한 심증도 있지만―
방대화는 굳이 티 낼 생각도, 그걸 밝혀낼 생각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생각할 겨를도, 확신도 없었으니까.
지금 이 상황이 그들로서 그나마 나은 상황인 것이 확실했다.
저벅― 저벅―
일렁이는 불씨에 의지하며 차근차근 오르는 계단.
방대화는 군데군데 검게 일그러진 벽면을 바라보며 4층의 전원이 나간 엘리베이터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위치한 텅텅 빈 매점까지도.
“…….”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풍경을 지나며 옥상의 철문을 부드럽게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힘차게 들이마시는 코에 감겨오는 신선한 공기.
그 안에 제법 따가운 매캐한 탄내까지도 감미로웠다.
쿵―!
방대화는 아무렇게나 문을 닫으며 잠시간 눈을 감고 멍하니 고개를 위로 꺾었다.
정말 이제야 겨우 살 것 같았다.
그는 제법 맑아진 정신으로 어느새 검게 칠해진 하늘을 조용히 응시했다.
하아아아―
깊게 숨을 내쉬고 또 들이마시며 옥상이 주는 시원한 풍경을 감상하다 조용히 발걸음을 꺾었다.
그가 2층에 보내지 않고 일부러 남겨둔 군것질거리.
이젠 그것마저도 얼마 남지 않은 과자 중 하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허리를 숙였다.
“……오, 스윙칩.”
빠아악―!
의자에 놓인 스윙칩을 집다가 갑자기 머릿속을 번쩍이게 하는 거친 섬광.
저절로 몸을 비틀비틀 흔드는 방대화의 다리에 무언가 젖혀 들었다.
퍼어어억―!
저항할 틈새도 없이 그 힘에 바닥을 구르는 방대화.
“케엑―!”
바닥을 나뒹굴며 뒤통수가 부딪혔는지 다시금 스파크가 번쩍였다.
머리에 인 충격 때문인지 숨이 막히며 코가 미칠 듯이 따가워졌다.
반응할 새도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고통에 도리어 번쩍 뜨이는 눈.
“……!”
뜨인 눈 덕분에 방대화는 어느새 자신의 코 앞에 다가와 있는 회색빛 물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타르같이 진한 검은색이 바짝 말라붙어있는 쇠 파이프.
당장이라도 자신의 머리를 깨부술 듯이 멈춰있던 쇠 파이프가 스르륵― 자신과 멀어졌다.
뚜벅― 뚜벅―
그제서야 너무나 선명히 들리는 누군가의 발소리.
엎어진 자신의 바로 앞에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
남자였다.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은 평범한 남자.
허나 그 남자를 바라볼수록 이상하게 머리가 울렁거렸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월광에 비쳐오는 피 칠갑과 트레이닝복에 달라붙어 있는 살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놈을 바라보기 껄끄러웠다.
툭―! 툭―!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조용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
그 무기질적인 눈과 도발하듯 일정한 박자를 타고 허벅지를 두드리는 쇠 파이프에 멍했던 정신이 깨어난다.
첫 번째로 느꼈던 감정이 당황이라면, 두 번째는 분노였다.
“이, 이 씨발새끼가아아―!”
우우우웅―!
방대화는 서둘러 자리를 박차며 양손을 놈에게 내밀었다.
온몸에 박동하던 마력이 그의 의지에 답하며 이능을 불 뿜는다.
화르르르륵―!
길게 뻗은 손을 통해 일직선으로 분사되는 고열의 화염.
방대화는 본능처럼 쇠 파이프로 화염을 막아서는 남자를 보며 진하게 미소지였다.
화르르르륵―!
이내 목표물을 덮치며 크게 번지는 불길과―
탱태태탱―!
바닥을 구르는 놈의 둔기.
짜아아악―!
그다음 또다시 그의 머릿속에 섬광이 터졌다.
“케엑―!”
다시금 뒤로 주춤거리면서도 찢어질 듯 커진 눈동자.
인과를 파악하지 못한 그의 얼굴에 시퍼런 의문이 바보 같은 표정을 만들어냈다.
서둘러 앞을 응시하는 그의 시야에 떨어진 쇠 파이프를 집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남자가 있었다.
치이이익―!
그의 손아귀에서 들려오는 자글자글거리는 잡음.
“…….”
어떤 말도 없이 지끈거리는 뺨에 손을 얹은 방대화의 눈알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 남자는 그저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이이이익―!”
그 여유만만한 모습에 오기처럼 말로 정제되지 못한 악바리가 튀어나왔다.
방대화는 핏줄이 번진 눈알로 다시금 손을 뻗었다.
이번엔 양손이 아니라 한 손.
오로지 화력에만 집중한― 놈이 움직일 반경 자체를 휘감을 고온의 화염을―
화르르르륵―!
방대화의 오른손에서 확― 번져가는 불씨를 마주한 남자가 따라 하듯 오른손을 내민다.
우우웅―!
그의 손에서 찬연히 피어나는 황금빛이 자신의 화염을 가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짜아아악―!
다시금 가까이 다가와 뺨을 후리는 남자.
이번엔 뺨을 맞은 고개로 한참을 땅바닥만 바라보던 방대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는 또다시 원래의 위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툭―! 툭―!
저 허벅지를 두드리는 쇠 파이프의 리듬에 머리가 울렁거린다.
흠씬 두들겨 맞은 뺨은 이미 뜨겁기만 하고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방대화는 그저 본능처럼 다시금 양손을 내밀었다.
화르르르륵―!
그의 손에서 피어나는 발악의 불씨.
그 남자는 이번에는 슬며시 발을 내밀었다.
우우웅―!
그의 발에서 피어나는 황금빛에 흔적도 없이 사그라드는 불씨.
그는 내밀었던 발을 회수하더니 불길을 향해 부드럽게 어깨를 내밀었다.
황금빛으로 감싸진 어깨와 기괴할 만큼 멀쩡한 트레이닝복을 집어서 살펴보는 손짓.
“…….”
방대화는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를 그저 얼이 빠진 채 쳐다볼 뿐이었다.
짜아아악―!
이번에는 일어서지 못했다.
방대화는 넘어진 채로 고개만 살짝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를 응시했다.
“……예상은 했는데 막상 손에서 불을 뿜는 걸 보니 엄청 신기하네.”
여타의 일상을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평온한 말투.
툭―!
그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몸을 깔아뭉갰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보니까 지능을 주로 찍은―”
피할 수도 없는 지근거리에서 나지막이 흘러들어오는 속삭임.
“화염? 불 계열의 이능력자.”
자신에 관해 읊조리던 그가 천천히 오른손을 뒤로 당기는 것이 보였다.
짜아아악―!
그리고 단번에 휙― 돌려지는 자신의 얼굴.
이젠 거의 마비된 듯한 볼살의 감각과 그저 참을 수 없이 뜨거워지는 볼을 느끼며 그가 입을 벌렸다.
“케흑―!”
입 안이 터졌는지 붉게 물든 침이 옥상 바닥을 튀긴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허나,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무자비하게 그의 뺨을 내려치는 손바닥.
고개를 다시들 새도 없이 방대화의 반대쪽 뺨이 수 차례 바닥을 짓눌렀다.
“케흑―! 크륵―! 큭―!”
너무 지독한 고통에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떻게든 손바닥을 피하려 추하게 왔다갔다 거리는 고개와 아등바등 흔드는 다리.
우우우웅―!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튀어나오는 그의 이능.
화르르륵―!
넘어진 채 그의 손에서 분사된 화염은 그의 몸을 깔아뭉개고 있는 남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으으으―!”
그래도 반항 덕분인지 드디어 멈춘 그의 손바닥.
그의 전신을 물든 황금빛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것을 바라보던 와중 그가 물었다.
“이름.”
“크륵―! 퉤엣―! 바, 방대화.”
입 안에 넘치듯 고여가는 핏물을 토하며 겨우 내뱉은 자신의 이름.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자신의 말을 기다리던 남자가 다시 손을 휘둘렀다.
짜아아악―!
“이름.”
그리고 묻는 똑같은 질문.
“바, 방대화! 방대화라고!”
짜아아악―!
“이름.”
허나, 그의 물음은 도돌이표처럼 계속됐다.
방대화는 이제 볼에 정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심각할 만큼 계속 입에 고이는 핏물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려올 뿐이었다.
“이름.”
섬광처럼 또다시 머릿속에 번지는 하얀빛과 함께 되묻는 그의 말.
방대화는 미칠듯한 심정으로 다리를 필사적으로 흔들며 소리쳤다.
“방대화 맞다고 이 씨발 미친새끼야아아―! 이제 그만해애애―! 아파―! 존나 아프다고 이 씨바아아알―!”
쿨럭― 쿨럭― 퉤엣―!
어느덧 피를 토하기 위해 돌린 고개에 여실히 보이는 작은 피 웅덩이.
짜아악―!
그리고 또다시 휘둘러진 손바닥이 그 웅덩이에 얼굴을 박게 했다.
“이름.”
이미 반쯤 감각이 없어진 입술에 닿아오는 쌈싸름한 피의 맛과 콧구멍 안에 담겨오는 뜨끈한 액체.
“이름.”
이제는 미칠 것 같은 그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가까스로 다시 돌려세운 고개에 큼지막하게 담겨오는 흐릿한 손바닥의 모습.
또다시 자신을 후려치기 위해 당겨진 그 손아귀를 바라보며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으으으으으―!”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앓는 소리와 그의 옆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
그저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방대화가 아직도 번쩍이지 않는 섬광에 더 격하게 떨며 감각도 없는 입술을 움직였다.
“……제, 제바아알―”
“이름.”
“제발― 진짜 제발― 방대화입니다. 방대화입니다. 진짜 거짓말 아니고 방대화입니다. 이름이 특이해서 진짜 거짓말도 못 해요― 진짜 제발―”
뚝―! 뚝―!
그의 서러운 마음을 표하듯 눈에서 수없이 망울져 내리는 굵은 눈물들.
남자는 처음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며 그에게 물었다.
“이능력자면 좀비도 죽여봤겠네.”
“네― 네 죽여봤습니다―! 포인트―! 다, 당신도 같으시죠―?! 포, 포인트 말씀―”
“그럼 다른 이능력자는 죽여봤어?”
“……네?”
차분히 이어지는 질문에 필사적으로 답하던 방대화의 입이 멈췄다.
그저 멍청히 되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에 조용히 방대화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다시 손을 뒤로 뻗는다.
“나도 아직 못 죽여봤어.”
“…….”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웃음에 숨이 턱 막혀왔다.
마치 단두대처럼 위로 쭉 뻗어 올라가는 그의 손날.
그저 눈을 더 크게 뜨는 것밖에 하지 못할 방대화에게 다시금 그의 속삭임이 찾아왔다.
그런데 말야―
“너도 알지? 내가 왜 이렇게 겁을 주는지.”
그냥 맨 처음 쇠 파이프로 머리를 후렸으면 바로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야.
“너도 알고 있잖아. 이다음에 내가 물을 말이 뭔지.”
그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듣던 와중 또다시 눈물샘이 차올랐다.
방대화는 그의 물음에 그저 필사적으로 고개를 뒤흔들며 굵은 눈물을 토해냈다.
“으으― 으으으으윽―!”
다시 그를 향해 재껴 들기 위해 살짝 반동을 주는 남자의 손아귀.
방대화는 몸 전체를 뒤흔들며 잔뜩 불어 터진 입으로 앓는 비명을 토해냈다.
턱―!
그런 그의 입을 콱― 부여잡는 그의 손아귀.
“집.”
이미 헐릴 대로 헐린 이성의 끈.
너무나도 뜨거운 볼과 이미 퉁퉁 부어가는 볼살.
계속해서 혀에 감겨오는 진득한 핏물과 이미 엎어진 그의 귓구멍 안에 잔뜩 고인 눈물.
그 와중에도 그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히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된 그의 눈동자에 잔뜩 겁먹은 자신의 얼굴이 비춰온다.
“집이 어디야?”
약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