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7)
……허.
상태창 메시지를 정독한 뒤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짧은 숨결.
난 눈을 가늘게 좁히며 이마를 살짝 긁적였다.
‘연역적 지배’의 전문화를 선택할 때와 똑같았다.
명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단점이 너무나도 명확한 두 갈림길이 내게 선택을 종용할 뿐이었다.
띠링―!
[지능 : 1]
난 내가 처음 상태창을 인지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유일한 항목을 조용히 응시했다.
여전히 ‘1’에 머물러있는 스탯을 보면서도 난 그때의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한다.
좀비라는 미친 시체가 대학교를 뒤덮은 지옥의 시작.
식인 본능에 휩싸인 괴물들 한가운데 놓였던 내게 필요한 것은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내달려오는 좀비에게서 도망치는 것.
괴기스럽게 덤벼오는 좀비를 죽여버리는 것.
생각이 아닌 행동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첫 시작.
끄드득―!
하지만 맨주먹으로 좀비를 패 죽여버릴 수 있게 된 지금, 고민이 안 되는 것이 이상했다.
슬슬 높아져 가는 육체계 스탯 포인트 요구량 덕분에 여유 아닌 여유가 생겨버렸으니까.
그런 고민의 순간들에도 지능 스탯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는―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굳이 지능을 찍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정해놓은 성장 계획을 그대로 이행해도 도서관 캠프를 장악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범대를 너머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갈 생각을 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아직 내가 조우하지 못한 ‘미지(未知)’가 너무 많은 걸 알기에, 지금 내가 풀 수 있는 미지는 확실히 풀고 넘어가야 한다.
상상력이 부족해 하마터면 차설희를 잃을 뻔한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아주 신중해야 하는 갈림길 선택은 꼭 돌다리를 두드려 본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띠링―!
[지능 : 2]
남아있는 포인트 일부를 소모하여 처음으로 올린 지능.
난 조용히 눈을 감고 지능 상승의 여파를 기다렸다.
“…….”
가장 처음 올린 스탯인 민첩을 찍고 난 후에 느꼈던 속도라는 것의 이해.
그다음 올린 힘 스탯에서 자연스럽게 체감했던 육체 자체의 파괴력 상승.
그리고 지능을 찍은 뒤에 느낀 것은―
우우웅―!
난 내 손을 다시 휘감은 찬연한 황금빛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마치 세 번째 손처럼 자연스레 움직이는 ‘왕권’의 주인이기에 알 수 있는 미세한 감각.
난 확실히 조금 전보다 더 밝게 빛나는 왕권을 보며 지능 스탯이 주는 이점을 확실히 이해했다.
‘……이능의 효율 상승.’
두뇌 자체를 똑똑하게 해주는 건 아닌 듯싶었지만,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방치하기엔 꽤 중요한 요소였다.
“……씨발― 대가리를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거면 진작 찍었어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지능’ 스탯의 용도 확인이 너무 늦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전문화가 내게 이런 선택을 종용하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늦게 지능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했겠지.
툭―!
짜증스레 쇠 파이프를 다시 집어 들고 허벅지를 툭― 두드렸다.
지금까지 필요가 없었다고, 앞으로도 필요가 없는 건 절대 아니다.
분명 나와 같은 존재와의 전투에서 스킬의 효율이나 출력이 중대한 요소로 작용하는 순간이 아주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해도 주 스탯과 보조 스탯의 분리는 아주 명확해야 한다.
이미 옛적에 결정했고, 또 그렇게 숙련되어가는 전투 및 성장 방향을 지금 갑자기 바꾸는 게 더 병신같은 결정이었다.
띠링―!
[지능 : 2 -> 10]
[잔여 포인트 : 9 -> 1]
[폭군 전용 스킬 ‘천박한 품위’의 전문화로 ‘닥치고 술이나 따라라’를 선택하셨습니다.]
[천박한 품위 Lv.5]
[왕이라기엔 당신은 너무 천박합니다.]
[육체계 스탯에 (왕권 × 0.2)의 보너스 스탯 합산 적용]
[당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예측할 수 없는 공포와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적용 중인 전문화 : 닥치고 술이나 따라라 (항상 숨기기)]
전문화를 선택하고 난 뒤에 폭발적으로 용솟음치는 몸의 잠력.
한순간에 더 활발히 몸을 휘저어오는 활력에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띠링―!
[힘 : 51(30+21)] [민첩 : 51(30+21)] [지능 : 10] [왕권 : 105]
단번에 도합 ‘100’을 넘긴 육체계 스탯.
난 처음 민첩 스탯을 찍으며 인문대를 빠져나왔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내 상태창에 다시 한번 진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순간에도 조금 불만이 있다면 100포인트라는 거금을 들여 단번에 레벨 5까지 올렸는데 전문화 선택까지 포함해서 배율이 겨우 0.1이 올랐다는 것.
그 대신 뭔 공포나 위압감을 준다는 새로운 스킬 설명이 붙었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뭐, 대충 예상해보면 배율이 0.1씩 늘 때마다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스탯을 감안한 조정인 것 같은데―
아주 많이 마음이 불편하고 꼬았지만 바꿔 달라고 지랄한다고 바꿔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0.1이 늘어 0.2가 된 배율만으로도 이미 도합 40의 보너스 스탯을 얻었다.
반석대의 도서관과 서른 명 남짓한 캠프원을 데리고도.
난 아직 반석대 내에 남아있을 수많은 생존자들과 아직 내가 얻은 못한 대학교라는 영토를 찬찬히 상기했다.
왕권의 상승은 지금부터 시작이었고, 그 보너스를 받을 스탯 펌핑도 이제 시작이었다.
이미 꼭대기를 찍듯이 위로 고개를 꺾어올 린 성장 그래프가 더 급격한 상승을 이룰 일만 남은 것이다.
“……좋네.”
난 아주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이며 대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텅―! 텅―! 텅―!
계속해서 좀비를 부르짖는 내 쇠 파이프의 맑은 공명.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한 육체 스탯 덕에 이제 도구의 도움은 필요 없었지만, 그렇다고 손에 익은 둔기를 그냥 땅에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을 비롯한 신관 2층과 3층.
신관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느낀 감상은 사범대 신관은 ‘우리 사범대가 이렇게나 좋은 곳입니다.’라는 홍보를 위해 지은 건물 같다는 것이다.
난 층 자체가 거대한 라운지로 되어있는 4층을 가볍게 휘둘러보며 마지막으로 남은 미확인 구역을 올려다보았다.
“……오.”
내겐 꽤나 정겹게 느껴지는 옥상의 두꺼운 회색 철문.
지금까지 내가 확인한 옥상 문들과는 확연히 다른 감상으로 신관 옥상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여타의 철문과 다르게 활짝 열려있는 신관 옥상 문과 그 아래에 길게 이어진 혈흔들.
끼익―
난 열려있는 철문을 한 번 더 세게 집으며 옥상의 전경을 파악했다.
신축 건물답게 일종의 고급 미가 느껴지는 테라스 구조의 옥상.
난 테라스 곳곳에 넘쳐나는 사람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검게 눌어붙은 무언가에 바글바글 움직이는 파리 떼들.
“……씨이발―.”
절로 진한 욕설이 나오게 하는 더러운 광경에 고개를 돌리던 와중―
“끼에에에엑―!”
그런 내 욕설이 그리 반갑지 않은지 옥상의 좀비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난 놈들이 ‘끼에에에―’거리며 방황하던 자리 주변에 난잡하게 버려진 도구들과 핏물을 살피며 눈을 옅게 좁혔다.
활짝 열린 옥상 문과 그 주변의 거친 혈흔.
그리고 구석에 내몰려 방황하고 있는 좀비들.
퍼어억―!
지금 내 쇠 파이프에 절명하는 좀비들은 배고픔이나 기다림을 참지 못한 생존자들이었던 좀비들이다.
싸움을 택했고, 그로 인해 감염된 무모한 결말의 보유자들.
“……허!”
퍼어억―!
난 마지막 좀비의 대가리를 후리며 참지 못한 헛웃음을 날려 보냈다.
띠링―!
[위협 수치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감소한 영토를 확보하셨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영토 : 반석대학교 사범대 신관]
[왕권 : 105 -> 130]
상승한 왕권과 시스템의 영토 공인.
허나, 난 그저 조용히 시체가 널브러진 옥상을 휘둘러볼 뿐이었다.
지금껏 내가 보았던 세 개의 옥상.
그리고 각기 다른 그들의 결말.
휘이이잉―!
천천히 바람을 가르며 걸어가 좀비들이 몰려있던 난간의 반대편 난간을 내려다보았다.
규칙적으로 줄을 이어 편의점 물품들을 도서관 운반하는 캠프원들의 정수리가 한눈에 보인다.
끝까지 문을 열지 않았던 도서관 옥상과 끝끝내 문을 연 신관 옥상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인문대 옥상이 떠올랐다.
내 첫 은신처이자 모든 것의 시작.
그곳에서 과잠을 장애물로 이용해 엎어진 좀비들을 잡던 것과 고장훈과의 만남.
게다가 제법 푸짐히 쌓아놓았던 매점의 식량들까지.
“……아.”
난 거기까지 회상이 이어지고 나서야 얕게 탄성을 내질렀다.
휘이이이잉―!
살짝 고개를 내민 내 앞머리를 세차게 부대끼는 옥상의 맑은 바람과 제법 높이가 되어 보이는 지상과의 거리.
허나― 더는 도구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난 가볍게 뜀박질로 옥상의 난간을 뛰어넘었다.
그런 내 발을 받쳐주지 않는 허공과 잠시간 뒷목을 오싹하게 점거하는 부유감.
쐐애애액―!
그러나 난 아무런 걱정 없이 아래를 응시하며 추락을 계속했다.
점점 빠르게 바닥이 시야에 가까워지더니 이내―
쿠우우웅―!
진한 흙먼지와 함께 옅은 거미줄처럼 바닥이 갈라졌다.
“으에에에엑―!”
4층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다리를 내려다보던 중 들려오는 괴상한 고함.
신관 정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고장훈이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내던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과, 과, 과, 관장님―?!”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어버버 거리는 고장훈.
난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져 있는 고장훈과 소동을 알아차리고 편의점에서 튀어나오는 캠프원들을 바라보았다.
서둘러 한자리에 모이는 캠프원들을 휙― 휙― 바라보던 고장훈이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10, 10점… 10점입니다.”
“…….”
맥락을 파악하지 못할 놈의 농담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내 표정에 누구보다 빠르게 합죽이가 되는 고장훈.
난 신관 너머 인문대 방향을 턱짓하며 고장훈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인문대에 놔두고 왔던 식량들을 들고 올게.”
“……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맑은 눈빛으로 탄성을 내뱉는 놈의 얼굴.
편의점 발주 차량 파밍과 지금의 신관 편의점 파밍.
아마 식량 목록을 대대적으로 갱신하는 작업이 이어질 텐데, 그럼 차라리 지금 인문대에 남겨두었던 식량을 들고 오는 게 효율상 맞는 선택일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최대한 옥상의 그늘에 보관시켰다 해도 이제 슬슬 보관 방법이 불안해질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깊이 생각하지 못해 주변에 그대로 방치하고 떠나온 시체 언덕도 마음에 걸리고.
“헤헤―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제가 이곳은 야무지게 마무리해놓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굽신거리는 고장훈의 호언장담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몸을 돌렸다.
뭐― 그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고, 고장훈이라면 알아서 일을 잘 마무리할 것이다.
툭―!
가볍게 바닥을 미는 발걸음에 반해 아주 세차게 얼굴을 문대오는 공기 저항이 여실히 느껴진다.
난 잡음을 최대한 눌러 밟으며 조용히 전진했던 숲길을 반대로 돌파하기 시작했다.
웨에에엥―!
그런 내 시야에 걸려 오는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좀비 시체.
나무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좀비를 기습했던 기억이 선명히 머릿속을 되뇐다.
쐐애애액―!
난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민첩으로 아주 작정하고 숲길을 주파하고 있었다.
자연히 채 1분도 되지 않아 끝을 고하는 인문대와 사범대 사이의 숲길.
난 고장훈에게 손을 뻗어 놈을 끌어올렸던 주차장 벽에서 아주 오랜만에 인문대의 외관을 훑었다.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외관이지만 나도 모르게 꿈틀거리게 되는 눈썹.
킁킁―!
한껏 예민해진 오감, 그중 후각에 미묘한 냄새들이 맡아져 온다.
매캐한 탄내와 묘하게 코끝에 맴도는 고소한 냄새.
게다가 가늘게 좁혀진 눈이 틀린 그림 찾기처럼 인문대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조각을 찾아냈다.
나와 고장훈을 지상까지 안전하게 운반했던 옷 밧줄이 사라져있었다.
“…….”
자연히 여유로웠던 몸을 바짝 긴장하며 인문대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길게 지상까지 이어졌던 옷 밧줄이 도중에 끊겨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밧줄의 끊긴 마지막 부분에 선명한 검은 자국.
난 작게 숨을 고르곤 조금 깊게 무릎을 굽혔다.
팟―!
잔상처럼 튀어 나가는 몸과 가장 먼저 인문대 외벽을 디디는 발.
툭―! 툭―! 툭―! 툭―!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외벽을 올랐다.
네 번의 디딤발 끝에 온전히 옥상 난간에 착지한 두 발.
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옥상을 빠르게 훑었다.
옥상에 올라온 뒤에 더 진하게 맡아지는 매캐한 탄내.
작은 시체 언덕이 있던 곳엔 잿가루처럼 검게 남아있는 무언가들과 하얀 인골이 나뒹굴고 있었다.
무엇보다 식량이 있었던 의자와 테이블들.
그곳에 아주 터무니없을 만큼 적은 양의 식량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옥상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과자 봉지들.
난 그 모든 광경을 조용히 휘둘러보았다.
“…….”
아주 조용히,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