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왕 (5)
[내가 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내가 쓰는 이 일기가 차세대 ‘안네의 일기’가 될지 누가 아는가? ‘안네의 일기’만큼만 스테디셀러가 돼도 지금 겪는 이 일에 대한 보상으로 아주 충분할 것이다.]
“……이 새끼 아주 제대로 된 병신 새끼였네.”
난 첫 페이지부터 아주 제대로 머리를 때리는 어이없음에 코웃음을 치며 아래를 응시했다.
웨에에에엥―!
쉴 새 없이 시체 주변을 날아다니는 파리와 놈의 몸에서 역겹게 꾸덕거리는 구더기들.
[물론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할 게 더럽게 없어서 적는 것 또한 맞다. 재연 씨는 이런 헛짓거리할 시간에 경찰이나 부모님에게 전화나 하라 했지만, 글쎄, 경찰이나 부모님이나 둘 다 전화를 안 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마 지금쯤 식당에서 몸을 피하시느라 바쁘신 것 같다.]
……재연 씨.
난 놈의 일기장에 언급된 새로운 등장인물에 다시 한번 옥상을 휘둘러보았다.
쏴아아아아―
부드러운 바람과 뭐 같은 파리 새끼들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옥상.
지금까지 옥상에 남아있는 누군가의 흔적은 이 일기의 주인공밖에 없었다.
“……뭔 일이 있긴 있었네.”
[그래도 이럴 땐 아버지가 운동을 좋아하셨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된다. 뭔 중독에 걸린 것처럼 헬스장만 들락날락한다며 그 시간에 식당 계산대나 맡으라던 엄마의 잔소리에 백 번 동의하던 나였지만, 이럴 땐 운동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또 도움이 되니까. 아마 아버지가 엄마를 안전히 보호하고 계실 거다.]
제법 정갈한 필체로 빼곡히 채워진 글자들.
사락―!
난 조용히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2일 차. 아직도 엄마는 물론 아버지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가 ‘좀비 아포칼립스’가 왔다며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덕분인지 평소엔 음지에 박혀있던 사이비 새끼들이 뭔 신의 심판이니, 예언의 시작이니. 지옥의 도래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그 반응이 평소와 다른 게 신기했다. 원래라면 개소리라고 무시할 사람들이 대놓고 커뮤니티에 글을 싸는 사이비 새끼들에게 그래서 해결법이 뭐냐고 묻고 있으니까. 물론 사이비 새끼들은 사이비 새끼들답게 뭔 휴거니, 신의 품으로 가야 한다니 애매모호한 말만 했지만 그걸 믿으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게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진짜 종말이 온 것 같아서.]
“……오.”
난 생각보다 제법 읽을만한 일기에 작게 감탄했다.
뭐야, 안네의 일기니 뭐니 하더니 괜한 포부가 아니었어?
사락―!
[3일 차. 여전히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고 좀비들의 이상한 울음소리만 사방에서 울린다. 그리고―. 씨발, 여전히 부모님에게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이제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모님 둘 다 그 난리 통에 휴대폰을 잃어버리신 것 같아 걱정이다. 어젯밤 재연 씨가 나눠주신 껌을 함께 씹어먹으며 구조대에 관해 얘기했다.]
재연 씨.
또다시 등장한 두 번째 인물.
그러니까 3일차까지는 이 일기의 주인과 함께 있었다는 말인데…….
[아무리 상황이 심각하다고 해도 헬리콥터 하나도 우리 대학교에 구조를 오지 않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인터넷에서도 자기가 구조받았다거나 대피소에 있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온통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욕하는 댓글밖에 없다. 혹시 서울대부터 다 구출하고 난 뒤에 우리 대학교인가? 아니다, 서연고하고 조금 더 뒤니까 아직 한참 남았는데. 정말 구조하는 것도 학벌순이라니 대한민국의 학벌 사랑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내가 이 말을 재연 씨에게 했더니 재연 씨가 함께 껌을 쪽쪽 빨아먹으며 내 말을 비웃었다. 공군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대한민국 육군 전투력 순위가 세계 몇 위인지 아냐고 조금 어려운 용어를 열심히 말했는데 솔직히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냥 재연 씨의 마지막 말에 확실히 물어봤다. 그래서 구조대가 오는 게 맞냐고. 재연 씨는 무조건 온다며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정말 많은 안심이 됐다.]
“…….”
난 페이지의 끝말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와 같이 여전히 공백으로 가득한 푸른 하늘.
사락―
[4일 차. 배가 너무 고프다. 목이 마른 건 참을 수 있는데 배가 고픈 건 쉽게 참아지지 않는다. 어제부터 계속 재연 씨가 나눠주신 껌을 빨아먹었다. 이젠 단맛은커녕 고무를 씹는 맛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껌을 씹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배고픔을 버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재연 씨가 더는 못 참겠다며 주위에 널린 나뭇잎 중 하나를 씹어먹다가 바로 뱉고는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에 서로 바보같이 한참을 웃었다. 재연 씨가 그대로 바닥에 몸을 누우며 일기 쓰는 것도 에너지 소모라고 이제 그만하라 했지만, 글쎄. 이제 일기 쓰는 것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사락―!
[5일 차. 결국 바보같이 껌을 다 먹어버렸다. 아끼고 아껴서 도저히 못 참을 때마다 조금씩 떼어먹었는데 어느새 입 안에 굴려지는 껌이 단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잘 때도 혹시 몰라 손에 꼭 쥐고 잤는데, 도대체 언제 다 먹었지? 재연 씨는 어제부터 바닥에 누워서 아무 말도 없다. 부르면 대답은 하지만 계속해서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너무 불안한 마음이 치솟았다. 다시 한번 구조대가 오는 게 맞냐고 묻는 말에 재연 씨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한민국 육군 개 병신 새끼들.]
처음의 정갈하고 뚜렷했던 필체가 점점 희미한 날림 체로 변해가고 있었다.
첫 페이지와 동일인이 썼다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달라진 페이지의 분위기.
사락―!
일종의 규격을 따르던 일기도 제멋대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6일 차’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다음 페이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들이 가득했다.
[배가 너무 고프다. 진짜 미칠 것 같다.]
[따끈따끈한 알밥이 먹고 싶다.]
중간중간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오로지 배고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락―! 사락―! 사락―!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줌이라도 어디에 받아놓을 걸 그랬어요. 배고파요. 정말 배가 너무 고파서 미칠 것 같아요. 엄마가 구워주는 삼겹살에 된장찌개가 진짜 너무 먹고 싶어요. 지금이라면 저 혼자 엄마 식당을 거덜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정말 미치겠어요. 뉴스나 이런 거 좀 자세히 안 볼걸. 지금 계속해서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들어요. 엄마 진짜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요.]
“…….”
왠지 모르게 다음 내용이 예상이 갔다.
[저 나무에 있는 모든 거, 바닥, 아스팔트, 저 의자 쪼가리에 테이블까지 다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계속 그보다 더 눈이 가는 곳이 있어요. 엄마. 저 재연 씨에게 계속해서 눈이 가요. 진짜― 진짜 씨발.]
일기에서의 처절한 고뇌와 두 명이 아닌 단 한 명의 시체.
“……병신이 아니라 미친 새끼였네.”
난 구더기에 파먹히는 시체를 보며 혐오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락―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문을 강제로 막지 말 걸. 엄청 많은 사람들이 문 열라고 고함치고 난리를 쳤었는데. 그럼 재연 씨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았을 테고. 그럼 아무 걱정 없이―]
[저 방금 너무 소름 끼치는 생각이 났어요. 듣고 있어요, 엄마? 전 제가 감염이 안 된 줄 알았는데 아마 저도 감염이 되었던 게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계속 이런 좆같은 생각이 날 리가 없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사람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저 방금 재연 씨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왔어요. 재연 씨가 뭐하냐고 물었는데도 그냥 조용히 재연 씨를 바라만 봤어요. 보기만 해도 왠지 모르게 배가 조금 덜 아픈 느낌이라 너무 좋았어요.]
[좀비 새끼들이 너무 부러워요. 그 새끼들은 배라도 안 고플 텐데. 저는 왜 이런 개지랄을 하고 있는 걸까요? 좀비가 되기 싫어서 옥상에 숨었는데 저는 어느새 좀비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있어요.]
사락―!
그 뒤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순백의 페이지가 이어졌다.
사락―! 사락―! 사락―!
난 기계처럼 마지막 장을 향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사락―!
그렇게 도달한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
잔뜩 흐트러지고 미약한 글씨체가 나를 반긴다.
[미안해요, 엄마. 그래도 나 좀비가 되긴 싫어요.]
[정말 미안해요.]
쉽게 구별하지 못할 만큼 잔뜩 일그러진 한글.
난 그 문장을 온전히 해석하고 나서야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머릿속에 조용히 스치는 한순간의 섬광.
뚜벅― 뚜벅―
난 구더기에 파먹히는 시체와 S.O.S 구조신호를 지나쳐 옥상의 난간에 이르렀다.
쏴아아아아―
제법 사납게 느껴지는 바람을 얼굴에 그대로 맞이하며 조용히 고개를 지상으로 숙였다.
“…….”
그곳에 한 시체가 있었다.
기괴하게 뒤틀린 육체와 그 주위에 마치 토마토 주스가 터진 것처럼 퍼져있는 혈흔.
“끼에에에에―”
조용히 주변을 방황하는 좀비들 사이에 바라던 대로 인간으로 죽은 일기의 주인.
웨애애애앵―
난 구더기에 파먹히고 있는 재연이라 불리던 시체를 곁눈질하고는 다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배고픔과 두려움에게서 가장 쉬운 도피를 선택한 일기의 주인.
“……아깝네.”
딱 봐도 과자 한 부스러기만 줬어도 복종도 맥스를 찍었을 새끼인데.
쯧―
난 짧게 혀를 차며 놈의 일기를 가볍게 휘적거렸다.
안네의 일기가 되고 싶다는 커다란 꿈에 젖어있던 놈의 기록.
팟―!
일기가 주인을 따라 뒤늦은 추락을 시작한다.
바람에 흩날리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생존 일기.
팔랑팔랑 제 속을 다 보이며 추락하던 생존 일기가―
툭.
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
일기가 시체에 떨어지며 발생한 작은 소음.
그 소음에 도서관 정문 앞을 방황하던 모든 좀비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곤 조용히 일기가 떨어져 내린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
때아닌 좀비들의 기묘한 침묵, 기괴한 장례식.
“……헤헤― 조장님.”
난 뒤에서 조심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허락에 빠르게 옆으로 다가온 고장훈.
“도서관 장악이 거의 다 끝나가니까 이제 위생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야. 저 시체부터 쭉 밑으로 내려가면서 대청소 비슷하게 더러운 건 전부 다 치워.”
“옙.”
“그렇게 쭉 내려가면서 일단 6층 세미나룸부터 제대로 정리해. 주거 공간으로 딱 좋잖아?”
“옙.”
“아― 또 이제 2층 말고 5층을 캠프원들 주거 공간으로 쓸 생각이니까 너희가 알아서 준비해놔.”
“옙, 알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걱정하지 말라는 듯 호기롭게 답하는 고장훈.
고장훈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습관처럼 내 시선을 좇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책을 다 빼도 확실히 무거워 보이는 책장들 위주로 옥상에 들고 와.”
“옙, 알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하지 못한 공간은 도서관 1층뿐.
좀비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을 최후의 격전지만 확보하면 도서관 전부가 내 손에 떨어진다.
그러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내일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조장님. 계속 아래를 바라보시는데 혹시 뭘 찾으시는 건지…….”
내 시선을 좇다가 조심스레 물어보는 고장훈.
“그냥―”
난 멀뚱멀뚱히 아래를 쓸어내리는 놈의 눈길을 바라보며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