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39화 (39/120)

도서관의 왕 (4)

인간은 경험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효율을 좇는다.

실생활에서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는 원거리 타격 도구.

어쩔 수 없이 강제되는 근접전에서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날붙이보다는 타격에 중점을 두는 둔기가 더 손에 익을 수밖에 없다.

“끼에에에엑―!”

그렇기에 공격보다는 방어와 회피가 더 중요했다.

좀비의 유일한 약점인 머리.

그 작디작은 표적에 정확히 힘을 가하기 위해선 일종의 작은 ‘턴’이 필요했다.

어차피 좀비의 최종 목적지는 눈앞에 있는 자신.

방어와 회피로 좀비의 턴을 빼고 그 빈틈을 최대한 집중해서 타격한다.

그것이 박태하와 수색조가 몸소 좀비를 겪으며 깨달아가고 있는 사냥법이었다.

퍼어어억―!

그러니,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끄드드득―!

손전등의 옅은 불빛이 주변을 밝히는 6층의 중앙.

둥글게 컴퓨터가 놓인 탁자로 둘러싸인 휴게공간에 부나방처럼 좀비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먹잇감이 된 남자.

퍼어어억―!

공격, 공격, 공격.

오로지 공격으로 가득 찬 남자의 쇠 파이프가 쉴 새 없이 바람을 가른다.

후우우웅―!

수색조가 얌전히 서 있는 공간에까지 스며들어오는 육중한 바람 소리.

박태하는 한세계가 휘두른 쇠 파이프에 또다시 머리가 곤죽이 된 좀비를 조용히 응시했다.

“끼에에에엑―!”

그 좀비의 빈자리를 득달같이 채우며 달려드는 또 다른 좀비.

동료의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먹잇감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특유의 깨진 동공.

그 기괴한 집착에 저절로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박태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눈앞에 놓여있을 한세계의 상황을 이해했다.

연습이라는 명목으로 수 차례 좀비들과 대적했던 수색조이기에 더더욱.

자신을 먹잇감으로 보고 달려드는 포식자를 마주한 피식자에게서 나타나는 당연한 반응.

이미 멍해진 머리는 끊임없이 뒤엉키고 이상하게 계속해서 산소가 고파온다.

수 없이 되뇌인 행동이 버벅거리고 저절로 몸이 굳는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퍼어어억―!

그 어떤 망설임이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멈칫거리게 하는 감정보다 더한 쾌속만이 있을 뿐이다.

퍼어어어억―!

좀비들의 머리를 집요하게 노리는 타격들.

그들의 포식자들이 무슨 수수깡 인형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그들에 대한 공포가 희석되는 것 같은 기묘한 광경.

“……미친.”

박태하는 고개를 돌려 김우정을 바라보았다.

입을 바보 같이 벌린 채로 그저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

그리고 김우정과 비슷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수색조원들을 보고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 또한,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눈빛을 하고 이 장면을 보고 있을 거라는 걸.

인간은 왠지 모르게 자신도 될 수 있을법한 자에게는 추악한 질투를 보내지만―

결코 저렇게 될 수 없을 거라 확신한 자에겐 넘치는 존경을 표한다.

특히 유전자적으로 강함을 갈구하는 남자들에게 지금 저 압도적인 폭력보다 선명하고 뚜렷한 서열은 없었다.

좀비의 공포가 희석된 공간에 자연스레 한세계에 대한 경외가 남는다.

끄드드득―!

한세계가 자신의 사각을 노리는 좀비들에게 한 손에 든 책상을 내던졌다.

그리곤 추하게 책상에 깔리는 좀비들을 곁눈질하며 어깨를 살짝 비튼다.

“끼에에에엑―!”

그 살짝 비튼 어깨 덕에 한세계를 붙잡지 못한 좀비.

아깝게 그를 스쳐 지나가려던 좀비의 얼굴 앞에 살벌한 풍압이 치닫는다.

퍼어어억―!

얼굴에 꽂힌 주먹 덕에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는 좀비.

“끼에에에엑―!”

점점 남아있는 좀비들의 포효가 다르게 들려온다.

먹잇감을 찾은 기쁨보다는 왠지 모르게 구슬픈 울음으로.

퍼억―! 퍼억―! 퍼억―!

한세계가 쉴 새 없이 내던진 장애물에 깔려 있던 좀비들을 정리하는 둔기 질이 잇따른다.

책상에 깔려 아등바등 손을 휘젓는 좀비들을 향해 살짝 굽혀진 등허리.

그 등허리를 목표로 천장의 유독 어두운 점이 낙하했다.

지상의 시원한 학살극에 정신이 팔린 수색조가 반응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내리꽂히는 기습.

하지만 날다람쥐처럼 양팔을 쫙― 펴고 내리꽂히던 변종의 낙하가 시간이 멈춘 듯 중간에서 정지했다.

턱―!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돌려 변종의 목을 틀어쥐는 한세계.

“끼에에에엑―!”

그제야 자신이 잡혔다는 걸 알아차린 변종이 사정없이 몸을 뒤흔들며 저항했다.

세상 애타게 한세계를 향해 두 손을 뻗어대는 변종.

“…….”

한세계는 몸 뒤편에 기괴할 정도로 수북한 털을 가진 변종을 아무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끼에에엑―!”

끄드드득―!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이 손아귀를 비트는 소리와 함께 멈춘다.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축 늘어진 변종.

툭―!

한세계는 그제서야 변종을 손에서 놓아주며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어느새 왼손으로 옮겼던 쇠 파이프를 다시 오른손으로 옮기며 까딱― 까닥― 흔드는 손짓.

“…….”

꿀꺽―.

아무런 말 없이 수색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노골적인 꼴깍임이 들려왔다.

수십 마리의 좀비와 단 한 명의 인간의 전투.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서 있는 존재는 단 한 명의 인간이었다.

까딱― 까딱―

습관처럼 쇠 파이프를 가볍게 흔들며 어느새 적막에 물든 6층 중앙을 다시금 관찰하던 그가 수색조에게 턱짓했다.

계속 움직이겠다는 무언의 지시에 엉거주춤 얼었던 발을 떼는 수색조와 박태하.

그들은 기묘할 만큼 아무런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세계를 조용히 뒤따랐다.

텅―! 텅―! 텅―!

아무렇지 않게 계속해서 좀비를 부르는 한세계의 쇠 파이프.

대충 휘적이며 휘두르는 쇠 파이프에 부딪힌 물건들이 비명을 지르며 좀비들을 자극했다.

“…….”

허나, 처음부터 수색조를 환영한 대량의 좀비 무리 이후엔 아무런 반응이 없는 6층.

텅―! 텅―! 텅―!

휴게 공간에서 세미나룸으로 그리고 제1열람실로 이어지는 탐색에도 한 마리도 마중을 나오지 않는 좀비.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좀비에 오히려 긴장의 끈이 더 꽉 조여진다.

수색조는 일부러 테이블 방패와 무기를 한 번 더 꽉 쥐어 잡으며 조심히 한세계를 따랐다.

그렇게 널찍한 제1열람실을 통과해 남녀수면실을 지나 조용히 열린 제2열람실.

제1열람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전경에 다시 한번 쇠 파이프가 휘적거렸다.

텅―! 텅―! 텅―!

숨어있는 좀비를 부르는 매력적인 미끼.

“……누구세요?”

그 매력적인 미끼에 다소 생소한 생선이 물려들었다.

“……누, 누구세요?”

달달달― 떨며 애처롭게 제2열람실을 울리는 미성에 수색조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췄다.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자연스레 웅성대는 수색조.

“사, 사사사사람인 것 같은데요?”

오히려 자기가 더 놀란 듯 어버버 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는 김우정.

박태하는 김우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색조의 동요에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흐윽―! 누구세요?!”

전혀 생소하지 않은, 그냥 여자의 목소리였지만, 그 장소가 문제였다.

여긴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2층이 아니라,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6층이었으니까.

“……여, 여자인 것 같습니다.”

박태하는 그냥 목소리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을 떠벌리는 수색조를 노려보며 다시 앞을 응시했다.

어차피 박태하는 무언갈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한세계의 지시만 따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한세계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앞을 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가를 좁혔다.

“흑― 흑― 흑― 누, 누구세요.”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를 향해 한세계가 이미 내달리고 있었다.

제2열람실을 가득 메우는 울음의 진원지로 달려든 한세계가 왼손을 휘저었다.

끄드드득―!

그의 손길에 찢어지듯 뜯겨 날아가는 열람실 책상.

그리고 그 안에 겁에 잔뜩 질려 웅크린 검은 생머리의 여자가 보인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윤곽.

사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혹하는 커다란 옆가슴을 내보이며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에게―

퍼어어어억―!

섬전처럼 쇠 파이프가 치닫고 있었다.

***

털썩―.

난 그대로 열람실 바닥에 쓰러지는 여자를 보며 쇠 파이프를 까딱― 흔들었다.

“그래― 왜 안 나오나 했다.”

띠링―!

[변종 ‘세이렌’을 처치하셨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상태창 메시지.

난 비정상적으로 긴 생머리와 한국에선 쉽게 보기 힘들 사이즈의 젖가슴을 조용히 훑으며 놈의 얼굴을 응시했다.

잔뜩 웅크린 자세 덕분에 볼 수 없었던 놈의 얼굴.

갑작스런 기습에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은 변종.

놈의 눈동자에 좀비 특유의 깨진 동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을 보자마자 확 느껴지는 선명한 이질감.

좀비의 얼굴을 한 매력적인 뒤태의 변종.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제법 성가진 유형의 함정.

“그래― 딱 나올만한 새끼인데 왜 안 나오나 했어.”

“…….”

난 아직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나와 변종 시체를 번갈아 보는 수색조에게 손짓했다.

엉거주춤 다가오는 수색조에게 발을 굴려 변종의 시체 앞면을 보여줬다.

“히익―!”

놈들도 좀비의 면상임을 느꼈는지 곧바로 새된 소리를 내뱉는 수색조.

난 놈들의 멍청한 얼굴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내리누르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생각을 좀 해라, 이 병신 새끼들아.”

툭―!

난 다시 한번 변종 시체를 툭― 걷어차며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여자라면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어떻게 할 것 같냐?”

툭―!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입을 틀어막을까 아니면 뭔 동네방네 소문내듯이 살려달라고 질질 짜기 시작할까?”

“…….”

“이미 질질 짜는 년들은 다 좀비들한테 잡아먹혔어, 새끼들아.”

하아―.

난 끝내 튀어나오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이마를 긁적였다.

조금 전에 좀비들 잡아 족치는 걸로 겁을 줘놔서 그런지 더 크게 움찔거리는 놈들의 어깨.

난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박태하와 수색조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조용히 읊조렸다.

“항상 의심하고 행동해. 이 세상은 더는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니까.”

툭―!

마지막으로 조금 세 개 찬 발길질에 데굴데굴 수색조에게로 구르는 변종 시체.

난 천천히 천장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쇠 파이프를 휘적거렸다.

텅―! 텅―! 텅―!

“…….”

내 쇠 파이프 질에 더는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 제2열람실.

난 제법 석연찮은 낌새에 조용히 미간을 좁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비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6층은 도서관에 존재하는 층 중에서도 숨을 공간이 제법 많은 축에 속하는 층이었다.

따박따박 공간을 나눠 존재하는 여러 개의 세미나룸과 남녀수면실의 존재가 그 예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좀비의 수가 너무나도 적다.

그렇다고 생존자들이 남아 있는 걸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

재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인간이 선택하는 도주 방향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자리에 쥐 죽은 듯이 박히거나, 빠져나가기 위해 쭉 밑으로 달리거나, 아니면―

“……위.”

제일 위로 도망치거나.

난 6층의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옥상.

아직 확인하지 못한 유력한 도피처가 남아있었다.

“따라와.”

난 수색조에게 눈짓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생존자든, 좀비 놈들이든 그들이 옥상에 몰려있다면 6층에 생각보다 좀비가 적은 게 이해가 된다.

뭐, 그날이 하이퀸즈의 촬영 날이었고 때문에 쉴 새 없이 북적거리는 도서관에 굳이 공부를 하러 올 생각을 한 학생이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떠올랐지만―

일단 옥상이 유력한 도피처인 것은 분명하니 확인을 마쳐야 했다.

끼이이익―!

내부 계단 문을 열고 마지막으로 남은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끝에 작은 복도와 함께 손전등 불빛을 반겨오는 단단한 회색의 철문.

턱―!

문고리를 가볍게 돌리자 예상했던 대로 문이 무언가에 막히며 더는 열리지 않았다.

난 문고리를 놓으며 뒤쪽의 수색조를 곁눈질했다.

“뒤로 물러나.”

이 문 뒤에 있는 게 좀비인지,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주의해야 했다.

조금씩 뒤로 거리는 벌리는 수색조를 확인하고 나도 오른발을 조금 뒤로 가볍게 쓸었다.

그리곤 숨을 멈추곤 그대로 회색 철문에 발을 들이밀었다.

콰아아앙―!

문을 여는 소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커다란 굉음.

난 잔뜩 찌그러져 옥상에 나뒹구는 철문과 그 철문을 막고 있던 걸로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들을 조용히 훑어보았다.

휘이이잉―!

제법 거센 옥상의 바람과 함께 탁 트이는 시야.

노후된 시설로 구색만 갖춰놓았던 인문대와 다르게 제법 제대로 된 옥상 정원이 쨍쨍한 햇빛과 함께 우릴 반겼다.

“…….”

그리고 예상과 달리 6층과 똑같은 적막에 둘러싸인 옥상.

툭―!

난 옥상 문턱을 넘으며 차분히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을 환기시키기엔 충분한 녹음들.

규칙적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초록빛의 조경들과 탁 트인 전망.

게다가 그 전망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게 하는 많은 휴식 공간.

난 찌그러진 철문과 문을 막고 있던 걸로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을 넘으며 그 중 유일하게 눈에 걸리는 구역을 응시했다.

옥상의 중앙에 조용히 몸을 누인 사람 한 명.

아니,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난잡하게 배열된 찢긴 옷들과 잡동사니들.

별다른 위협이 없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내 뒤를 따라나서던 수색조에서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S.O.S…….”

난잡하게 흩뿌려진 잡동사니들의 규칙성.

하늘을 향해 큼지막하게 놓인 처절한 구조 신호.

난 지금도 조금씩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에게 멀어지는 옷가지와 잡동사니들을 천천히 내려다보며 박태하에게 손짓했다.

빠르게 내 뒤에 시립해 인기척을 내는 박태하.

난 구더기가 꾸덕꾸덕거리며 기어 다니는 시체에 표정을 찡그리며 서둘러 박태하에게 지시했다.

“고자한테 옥상까지 확보가 끝났으니 이제 위층부터 정리 시작하라고 전해. 그리고 애들 데리고 내려가서 장갑 같은 거 끼고 와서 이 시체 밖으로 내다 버리고 빗물 받을 만한 양동이 같은 건 전부 다 끌고 와.”

“예.”

내 지시에 빠르게 수색조를 인솔해 밑으로 내려가는 박태하.

난 수색조가 옥상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쏴아아아―

제법 오랜만에 느끼는 건강한 햇살과 여전히 푸르른 하늘.

기분 좋게 앞머리를 휘감는 적당한 바람과―

웨애애애애앵―

뒷목에 소름을 돋게 하는 파리들의 날갯짓.

“……씨발.”

절로 욕이 나오는 역겨움에 시체에게서 천천히 떨어졌다.

수색조 놈들이 올라오길 기다리며 산책하듯 뒷짐을 지곤 다시 한번 옥상을 휘둘러보았다.

생존자는커녕 좀비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옥상.

아니, 시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광경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제 더는 도서관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는 구역은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옥상에도 제법 오래 부패된 시체 하나와 괴상한 구조 신호뿐.

툭―!

난 옷가지를 찢은 것으로 보이는 구조 신호의 파편을 가볍게 차며 커다란 구조 신호를 내려다보았다.

의자와 테이블, 옷가지, 잡동사니, 책가방, 필기구 등― 그야말로 사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사용해 만들어놓은 구조 신호.

쏴아아아아―

난 그 중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공책을 집어 올렸다.

[생물의 이해, 생존 일기]

전공 과목으로 보이는 이름에 쭉― 그어진 취소선과 그 뒤에 새로 붙여진 공책의 이름.

“……꼴값은.”

난 이미 구더기에 파먹히고 있는 시체에게 헛웃음을 치곤 다시 공책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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