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32화 (32/120)

왕의 기원 (2)

끽―! 끽―!

바닥을 가볍게 쓰는 신발 밑창에 들려오는 뽀드득한 소리.

“이야― 새 바닥처럼 깨끗하게 닦아 놨네, 우리 재희가.”

“…….”

내 칭찬에 더없이 하얗게 질려서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

내가 수색조에게 여자를 배분할 때 미친 거 아니냐고 소리 지르던 얼굴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렇게 바닥에 토악질을 하며 질질 짜던 얼굴보다는 조금 괜찮아졌지만.

“그럼, 드디어 재희도 검사를 통과하는 건가?”

조용히 읊조리는 내 중얼거림에 성재희가 무언갈 다짐하듯 입술을 쥐어뜯듯이 깨물었다.

이미 그렁그렁한 눈매는 눈물을 쏟아내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그녀는 정말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이 ‘본보기’는 내일로 연장될 것이니까.

스윽―! 스윽―!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악스럽게 자신의 옷을 벗어던졌다.

10명이 넘는 캠프 인원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나체가 되는 성재희.

성재희가 다 벗은 몸으로 서둘러 바닥에 몸을 바짝 붙였다.

마치 오체투지를 하는 것마냥 온몸으로 표현하는 복종.

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를 조용히 관찰했다.

“…….”

아니,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모두에게 성재희의 모습을 전시했다.

난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파르르― 떨고 있는 합류자들을 천천히 휘둘러보며 다리를 들었다.

툭―!

내 발길질에 그대로 몸을 뒤집는 성재희.

마치 개가 인간에게 복종을 표하듯 배를 내민 자세가 된다.

꾸욱―!

“배는 조금 나았어?”

그녀의 배를 신발을 신은 채로 꾹― 누르며 묻는 질문에 이를 더 꽉 깨무는 성재희.

“……네, 네― 괘, 괜찮습니다.”

목이 메이는 듯 갈라지는 목소리로 답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처량했다.

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그녀의 배를 지나 봉긋 솟은 가슴과 목을 부드럽게 즈려밟았다.

내가 어떤 짓을 하든, 그저 이를 악물고 감내하는 성재희.

이제―

꾸우욱―!

내 발이 그녀의 얼굴을 잘근잘근 밟아댔다.

발이 움직이는 대로 사정없이 망가지는 퉁퉁 부은 그녀의 얼굴.

그녀는 이런 순간에도 어떻게든 내 신발 밑창을 핥으려 추하게 혀를 내밀었다.

이리저리 그녀의 혀를 피하며 얼굴을 망가트리는 발과 그 발을 쫓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얼굴.

“……흐윽―! 아―! 아아아―!”

결국 한계치에 이른 자괴감이 그녀의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는 성재희.

“또 울었네.”

“아, 아니에요―! 정말, 정말 아니에요, 조장님! 그, 그냥―! 그냥―!”

음이 높낮이가 전혀 없는 차가운 선고에 성재희의 얼굴이 파닥파닥― 좌우로 흔들린다.

“너무― 너무 죄송해서― 다른 뜻은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제발―”

제에바아알…….

물기가 잔뜩 젖은 목소리로 내게 애원하는 성재희.

허나 난 무심히 발을 거두고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캠프원 중 한 명을 집었다.

“정세리.”

“예! 예, 조장님!”

내 호명에 벼락에 맞은 듯 서둘러 한 발자국 나오는 정세리.

이 모든 광경을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보고 있던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이 예비 캠프원이 뭐 때문에 이런 까다로운 검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제발― 제발 조장님. 제발― 제발 한 번만―”

질질 짜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하는 성재희를 가리키자 정세리의 눈이 파르르― 흔들린다.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내 모습에 정세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저, 저 여자는 조장님이 선처를 베푸시는데 건방지게 행동했습니다!”

“…….”

무언가를 확 지르듯 고함을 친 정세리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점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난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딸꾹―!”

그 모습에 딸꾹질을 하며 발을 질질 끌어 다가오는 정세리.

난 내 앞에 다가온 하얀 얼굴에 환하게 웃으며 뺨을 토닥여줬다.

툭―! 툭―!

“그래, 우리 세리는 이렇게나 잘 아는 걸 다른 사람들은 왜 모를까?”

환한 미소를 지우며 다시금 캠프원들을 휘둘러보았다.

내 시선에 불에 데인 듯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합류자들.

난 그 모습에 작게 웃으며 정세리를 돌려보냈다.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는 안세준을 힐끗 바라보곤 지금도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는 성재희를 일으켰다.

“내가 너희를 먹여 살려주고 있는데 왜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거야?”

마치 뱀을 앞에 둔 개구리마냥 양어깨를 짚은 내 앞에서 꽁꽁― 얼어있는 그녀.

난 더 고개를 가까이 가며 으르렁거렸다.

“일부러 반항하는 거지?”

“아니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조장님―! 제발―!”

그제서야 방언이 터지듯 한꺼번에 터지는 성재희의 입을 눈짓으로 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 재희가 반성하는 것 같으니까 한 번만 더 봐줄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장님!”

“내일 검사하는데 또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하면―”

이제 진짜 안 봐줘.

그녀의 두 눈에 대고 한 속삭임에 그녀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툭―!

난 그런 그녀의 퉁퉁 부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금 속삭였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 벌은 받아야지.”

“……흐끅―!”

내 속삭임에 괴상한 소리와 함께 다시 홍수처럼 그녀의 눈가에 가득 차는 물기.

난 꽁꽁 얼어붙은 그녀에게서 아주 살짝 거리를 벌리고 곧바로 손을 놀렸다.

짜아아악―!

그녀의 얼굴을 후려치는 손바닥에 곧바로 땅을 나뒹구는 성재희.

그 모습을 보는 모두가 자신이 맞은 것마냥 어깨를 들썩였다.

“고개 들어.”

짧은 명령에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숙이던 모두의 고개가 앞으로 향한다.

“끄으, 흐윽―! 죄, 죄송합니다, 흐흑―!”

나체로 바닥을 뒹굴던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 내 앞에 서는 그녀.

짜아아악―!

“쿨럭―! 쿨럭―! 가, 감사합니다―!”

짜아아악―!

“흐윽― 흐윽―! 죄송, 죄송합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그녀에게 반복적으로 밀치는 손바닥.

허나, 이것만으로도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제는 뺨이 아니라, 다른 부위였으니까.

난 성재희가 바닥을 나뒹굴 때마다 더 짙게 떨기 시작하는 여자들 한 명 한 명과 조용히 눈을 맞췄다.

성재희가 내게 반항하며 목소리를 높였을 때, 나름 그걸 기다리며 바라고 있던 방관자들.

성재희가 ‘본보기’가 된 덕분에 성히 서 있을 수 있는 운 좋은 년들.

짜아아악―!

무리를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공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냐이다.

공포만큼 빠르고 깊게 전염되는 감정은 없으니까.

난 내 눈을 피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울음을 꾹― 참고 있는 합류자들을 하나하나 오랫동안 지켜본 후에야 성재희의 벌을 멈췄다.

아까보다 더 퉁퉁 부은 얼굴로 바닥에 엎어져 비틀거리는 성재희.

내 고갯짓에 반응한 두 쩌리가 서둘러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성재희를 끌고 들어간다.

그제서야 조회가 끝났음을 깨달은 캠프원들이 우루루―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주로 두 쩌리들의 통제를 받으며 내부 계단 문으로 향하는 캠프원들.

내가 완전히 확보한 3층과 4층의 뒤처리 및 탐색을 담당할 잉여 자원들이었다.

“헤헤― 조장님. 아침 조회도 수고하셨습니다, 헤헤.”

그런 내 옆에 서둘러 달라붙는 고장훈.

난 그에게 보고를 시작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박태하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장님.”

“확실해?”

“에이~ 저만 믿으십시오, 조장님, 저만! 안 그래도 제가 어제 청신이 몰래 만나서 간식도 찔러주며 확인한 사실입니다.”

아, 강청신.

그래, 저쪽 캠프에 대비한 우리의 마지막 최후의 보루가 있었지.

“그런데 춘식이가 우릴 배신 때리면 조금 피곤해지는 거 아닌가?”

“……예? 춘식이요?”

“강청신.”

“……아―! 청신, 춘식 아―! 헤헤― 그건 정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청신이, 아, 춘식이도 제가 아는 후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그 자식도 제법 똘똘한 새끼입니다.”

헤헤―

마치 간신처럼 웃으며 호흡을 정리한 고장훈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어제 언제 우리 쪽에 합류할 수 있냐며 저쪽 캠프에 대한 욕을 어찌나 하던지. 뭔 반 시체랑 병신들밖에 없다고 뒷담이란 뒷담은 아주 있는 대로―”

난 또 이상한 데로 빠지려는 그의 수다를 서둘러 끊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헤헤헤― 정말로― 정말로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청신, 아― 춘식이 한번 믿어보시죠, 조장님.”

아주 호언장담을 하는 고장훈에게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다음 주제를 꺼내왔다.

“그리고 이건 좀 죄송한 말씀인데 그으―”

살짝 말을 끌며 내 눈치를 보던 고장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으― 캠프 인원이 늘어나서 그런지 식량이 조오금 여유가 없어졌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슬슬 그럴 때가 되긴 했지.”

아무리 지하 1층 매점이 컸어도 도합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의 식량을 계속해서 책임져줄 수는 없다.

매점에도 엄연한 한계가 당연히 있을 테니까.

“그으래서― 일단― 새로 들어온―”

“아니.”

난 해결법을 제시하려는 고장훈의 말을 끊으며 그에게 옅게 미소 지었다.

“애초에 여유가 없어지는 것도 저쪽 캠프에 식량을 지원해줘서잖아. 오늘부터 그쪽 캠프 지원을 완전히 끊는다.”

“그럼 저쪽에서 아주 지랄발광―”

아―.

자기가 말하다말고 고개를 번쩍 들었던 고장훈이 특유의 간신 미소로 내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바로 우진이를 보내겠습니다, 조장님.”

애초에 차설희를 확보하는 것으로 도서관에서 해야 할 일의 9할은 달성했다.

더군다나 슬슬 서로 보유하고 있는 캠프 인원 또한 ‘골든 크로스’에 가까워지니, 이제 조금 더 속도를 낼 시간이다.

계속해서 가벼운 잽으로 기절도 못 하게 묶어뒀으니―

“슬슬 코너에 몰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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