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1)
그러니까―
“너희 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거지?”
다시금 사실을 확인하는 내 말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는 두 쩌리.
손전등 불빛에 의지에 배를 채우던 박우진이 서둘러 설명을 보충했다.
“선배님이 아니, 박태하가 밑에서 좀비를 어떻게 죽였는지 물어본 게 끝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
“……이런 건 거짓말하면 바로 티 날 것 같아서, 웬만하면 조장님이 다 해결하신다고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부회장, 그러니까 박태하가 밑에서 좀비를 어떻게 죽이는지 물어봤다라…….
난 대답을 마치고 계속해서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박우진에게 작게 웃어주었다.
“잘했어.”
“헤헤―”
꼴에 자기들 선배 비슷한 위치인 고장훈을 따라 하듯 간사하게 웃어대는 박우진.
난 입가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히고 웃는 박우진에게 생수병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이젠 꽤 씩씩하고 자연스럽게 생수를 받아마시는 박우진.
그리고 그 옆에 열심히 주린 배를 채우는 중인 김민준을 번갈아 응시했다.
띠링―!
[‘박우진’, ‘김민준’이 ‘약하게’ 당신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공통 요인 : 조장에 대한 신뢰, 폭력에 대한 ‘강한’ 두려움.]
드디어 ‘굴복’에서 ‘복종’으로 넘어간 두 쩌리.
그 덕분인지 상태창 메시지도 상당히 많이 바뀌어있었다.
먼저, 드디어 상태창에 갱신된 두 쩌리의 ‘긍정적 요인’.
조장에 대한 신뢰, 즉 나에 대한 신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쌓여가고 있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게다가 ‘아주 약하게’나 ‘아주 강하게’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지 않은 긍정적 요인.
딱 봐도 약한 것도 아니고 강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중간 상태는 수식어를 떼서 표기하는 방식인 듯했다.
“헤헤―”
계속되는 내 시선을 느낀 김민준이 고개를 들어 호구같이 웃었다.
계속 먹으라는 내 손짓에 굽신거리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 김민준.
또한 저들의 부정적 요인.
폭력에 대한 ‘아주 강한’ 두려움이 그냥 ‘강한’ 두려움으로 바뀌어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었다.
그리 친절하지 않은 상태창은 당연히 정확한 이유를 내게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대충 예상하기론 저들이 이 ‘굴복’과 ‘복종’ 관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확률이 높았다.
쉽게 말해서 폭력이 발생하는― 즉, 넘어선 안 되는 선을 자발적으로 학습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제법 옅어진 폭력에 대한 두려움 대신 나에 대한 신뢰가 자리 잡았다는 거겠지.
아주 바람직한 변화였다.
간단하게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폭력을 자제할 생각은 그리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폭력으로 다스릴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게다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간단한 무기였다.
머리는 몰라도, 몸은 아주 선명히 공포를 기억할 테니.
게다가 저 두 쩌리의 상태창 변화로 가장 기분 좋은 것은―
[왕권 : 6]
뭐니 뭐니 해도 왕권이 올랐다는 거겠지.
새로운 스킬 해금이 어느 구간에서 되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왕권 ‘10’을 목표로 잡을 생각이었다.
“저어― 조장님.”
차분히 다음 계획을 정리하던 내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박우진.
“혹시 걱정되시면, 제가 박태하 몰래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까요?”
내 침묵을 다른 이유로 오해한 박우진이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대놓고 물어보는 건 아니구요. 조금 돌려서 말하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뭐야, 이젠 제법 기특한 말도 다 하네.
난 꽤나 적극적으로 변한 쩌리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웃어주었다.
이젠 자기들이 어디 소속이라 생각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이었다.
“상관없어.”
“……예?”
“위에 있는 식충이 새끼들이 어떤 생각을 하던 별로 상관없다고.”
난 박우진과 김민준 앞에 놓인 식량 가방을 응시했다.
내 눈빛을 따라 함께 식량 가방을 응시하는 두 쩌리.
“우리가 없어지면 식량을 구하러 다녀야 할 사람들이 바로 자기들이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린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은 캠프의 중추였다.
대체가 불가능한.
“물론 우리를 배제하고 지하 1층에 내려온다고 해도 이젠 너무 늦었잖아?”
“……헤헤―”
내 미소에 긍정하듯 간사하게 웃는 두 쩌리.
난 어느새 텅 비어있는 지하 매점을 손전등으로 휘둘러보았다.
“이미 식량은 우리만 아는 곳에 보관해뒀으니까.”
지하 1층의 넓디넓은 사물함 구역.
그곳에 넘치던 개인 사물함들을 전부 다 치우고 지하 매점에 있던 식량들을 모조리 숨겨놓았다.
게다가 입구에 건장한 성인 남자 몇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옮길 만큼 무거운 사물함들을 배치해뒀으니―
도서관 캠프가 우리의 도움 없이 식량을 손에 넣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자기들이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게 아닌 이상.
“그러니까 괜히 티 내지 말고. 군것질은 여기서만 하고.”
“헤헤― 물론입니다, 조장님!”
내 경고에 로봇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두 쩌리.
“안 그래도 다른 얘들 다 속 안 좋다고 징징댈 때 저희만 멀쩡해서 조금 눈치 보였습니다.”
이젠 제법 배가 찼는지 내 말에 호응하는 것도 모자라, 김민준이 입을 먼저 열었다.
“아, 맞습니다! 냉동식품을 날로 먹어서 그런가 배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얘들이 좀 많았습니다.”
김민준의 말에 서둘러 동의하며 내게 고개를 숙이는 박우진.
고장훈을 그대로 따라 하듯 중요한 말을 전하는 투로 내게 속삭였다.
“냉동식품 자체가 이미 조리가 완료된 걸 다시 냉동한 건데 배 아프다고 툴툴거리는 게 심술이 잔뜩 났다니까요.”
“맞습니다, 조장님. 여자애들은 뭐 매일매일 생리하는 것 같이 굴고, 또 자기들이 싸지른 똥오줌을 남자애들한테 치우라 해서 남자애들이랑 한바탕하려 한 걸 구예리가 막았다니까요.”
두 쩌리가 쌍둥이 간신처럼 내게 속닥거리는 캠프의 정보들.
난 그들에게서 나오는 꽤나 흥미로운 정보에 더 해보라는 눈짓을 그들에게 보냈다.
“물론 저희야 지하 1층에서 조금씩만 정리하면 되는데 2층은 사람 수가 조금 많잖습니까?”
정확히 남자 17명과 여자 15명의 생존자 캠프.
그중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저 둘을 빼면 정확히 30명의 생존자가 2층에 숨어있는 꼴이었다.
“휴지도 다 떨어져서 책을 찢어서 휴지로 쓰고 있다니깐요. 게다가 냄새는 씨발― 아, 죄송합니다. 냄새가 아주 정마알―”
끝내 말을 마무리하지 않고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는 박우진.
왠지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코끝에 구린내가 맡아지는 것 같아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진짜 2층에 올라가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초반에 어떻게든 설희랑 친해지려고 아양 떨던 년들도 요즘 똥 씹은 것처럼 조용하다니까요.”
양 손가락을 세워 머리 위에 두며 불만이 끝에 달했음을 설명하는 박우진.
난 그 옆에서 아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민준에게 물었다.
“박태하는 뭐 하는데?”
이런 와중에 캠프 리더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은 말에 김민준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모르겠습니다, 조장님. 그 새끼 심유한 뒤진 이후로 말도 잘 안 하고 나대지도 않습니다.”
어떨 때 보면 구예리가 부회장인 것 같다니까요.
난 김민준의 첨언을 들으며 부회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첫 번째 대면과는 사뭇 달라진 놈의 행동.
분노로 이글거리는 건 똑같지만, 왠지 모르게 무언갈 주저하던 그 멈칫거림들.
가까운 친구가 그렇게 뒤져버리니까 꽤나 많은 것들을 실감하게 돼버린 걸까.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놈은 지금처럼 아주 훌륭하게 무능한 리더로 있어 주기만 하면 됐다.
그래야, 그 반면교사로 내가 돋보일 테니까.
놈은 내가 캠프를 지배하게 되는데 당위성을 확보할 아주 작은 턱에 불과했다.
문제는 부회장보다 구예리인데.
뭐, 구예리쪽도 별로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무슨 돌발적인 행동을 할지 모를 부회장보다는 나름 머리를 굴리려는 쪽이 예측하긴 더 쉬우니까.
“그럼, 슬슬 일어날까.”
“옙! 장훈 선배도 깨우겠습니다!”
내가 일어서자마자 빠르게 같이 일어난 두 쩌리가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던 고장훈을 깨우기 시작했다.
나름 지하 1층에서 해야 할 일은 전부 다 끝냈다.
식량도 전부 챙겼고, 혹시나 숨어있을 좀비들도 깨끗하게 청소를 완료했다.
게다가 놈들이 들어올 만한 곳들도 사물함 구역에서 빼낸 사물함들도 빼곡이 막아놓기까지 했다.
아마 도서관 안에서 대학 축제를 하는 만큼의 난리가 나지 않는다면 웬만하면 지하 1층이 뚫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헤헤― 조장님. 배려해주신 덕분에 아주 꿀잠을 잤습니다, 헤헤.”
원조의 품격을 알려주듯 일어나자마자 굽신거리며 내게 가까이 붙는 고장훈.
“그럼 지하 통로로 가시겠습니까?”
매번 올라가기 전에 썩은 피를 묻히던 장소를 묻는 고장훈에게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젠 지하 1층에서 장소를 옮길 타이밍이었다.
다시 좀비들을 죽여 잔여 포인트도 모아야 했고, 어차피 도서관 전체를 정리해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그렇게 위에서 폼 잡아놓고 너무 지체되면 또 우리가 너무 무능해 보이잖아?”
내 물음에 반쯤 찬 식량 가방을 들곤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두 쩌리.
슬슬 더 가혹하게 몰아칠 차례였다.
난 놈들이 든 식량 가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위에 올라가서 그게 끝이라고 전해.”
지하 1층에 남아있던 식량은.
***
끼이이익―!
평소와 똑같이 경칩 소리와 함께 활짝 열리는 2층 내부 계단 문.
허나, 그 앞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리던 학생회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턱―!
난 그대로 자리에 멈춰서서 오른손을 들었다 내렸다.
내 수신호에 맞춰 내게 바짝 붙어오는 꼬리들.
난 살며시 발소리를 죽이며 오른손에 든 쇠 파이프를 까닥― 까닥― 흔들었다.
꽤나 오랜만에 맡게 되는 강렬한 냄새.
촉감이 느껴질 만큼 뜨거운 피비린내가 2층을 진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언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움이 가득해 보이는 발소리들.
그 잡음들을 추적하며 2층 캠프를 향해 다가갔다.
퍼억―! 퍼억―!
“……흐흑―! 흑흑―!”
점점 캠프에 다가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잡음들.
무언가를 계속해서 내려치는 소리와 여러 명의 울음이 동시에 2층을 울린다.
“하악―! 하악―! 하악―!”
도서관 캠프 구역에 도착한 내 시선에 제일 먼저 들어서는 커다란 등.
좀비 시체로 보이는 것을 내려다보는 큼지막한 등이 격하게 위아래로 들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