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14화 (14/120)

양 떼 속, 한 마리의 (1)

치이이익―! 치이이익―!

테이프로 책에서 찢어낸 종이를 팔목에 고정시키는 소리가 요란했다.

“너니까 그나마 우리가 믿고 밑으로 보내는 거다. 잘 알고 있지?”

“새끼가― 걱정하지 말고 물이나 충분히 받아놓으세요. 좀비 새끼들 피로 범벅이 돼서 올 텐데 샤워는 하고 자야지.”

“새애끼―!”

툭―!

서로의 어깨를 가볍게 치대며 청춘 드라마 지랄을 찍고 있는 두 남자.

부회장과 저 큼지막한 덩치를 똑 닮은 또 다른 남자를 쳐다보며 에너지바를 또독― 씹어먹었다.

“제일 앞에 있는 저 사람이 심유한. 그 뒤에 있는 두 사람이 차례대로 박우진이랑 김민준이에요.”

같이 내려갈 사람들인데 이름은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견과류 특유의 고소한 내음을 즐기고 있던 찰나에 또다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어디선가 가방 두 개를 챙겨온 구예리가 우리에게 가방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음식들 담을 가방도 챙기시고요.”

구예리가 내민 가방을 멀뚱히 쳐다보는 나와 서둘러 가방 두 개를 모두 챙기는 고장훈.

그리고 그 모습을 이제는 익숙하게 바라본 구예리가 지금 한창 무장을 이어가는 세 명과 우리를 번갈아 응시했다.

“어어어― 그니까아― 괜찮으신 거죠?”

치이이익―! 치이이익―!

계속해서 테이프를 감으며 팔목 보호대를 두텁게 만들고 있는 저쪽과 간편한 트레이닝복으로 에너지바를 씹고 있는 우리.

난 구예리의 미심쩍은 눈빛을 무시하며 다시 부회장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뒤도 보지 말고 다시 위로 올라와. 이번 일 실패한다고 아무도 너한테 뭐라―”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새끼야. 내가 잘 인솔해서 가방 빵빵하게 챙겨올 테니까. 그나저나 오늘 하루종일 감을 거냐? 그만 좀 해라, 새끼들아.”

툭―! 툭―!

부회장의 걱정을 호탕하게 넘겨낸 심유한이 큼지막한 손으로 박우진과 김민준의 머리를 툭― 툭― 밀어내며 작게 웃어댔다.

그제서야 테이프에서 손을 뗀 두 명이 서둘러 몽키 스패너와 작은 망치를 집어 들었다.

계속해서 마른침을 삼키는 목젖과 파르르 떨리는 두 손.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중 꽤나 반가운 얼굴이 내 시선에 들어섰다.

“……세준이었던가?”

내 발길질에 밀려 순식간에 기절했던 남자.

도서관에 진입한 후에 처음 만났던 생존자가 부회장 무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 다행히도 별일 없었나 보네요! 세준아, 안세준!”

내 중얼거림에 안세준을 발견한 구예리가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구예리의 호명에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안세준.

구예리에게 웃으며 다가오는 와중에 한 번씩 나를 몰래 훑어보는 눈빛이 아주 복잡했다.

“예리야, 별일 없었지?”

“참나 별일은 네가 있었지, 이 멍청아. 세리가 엄청 걱정 많이 했었는데, 당연히 세리 먼저 보고 오는 거지?”

“당연하지. 안 그래도 세리가 오늘 새로 온 사람들이랑 매점―”

툭―!

그들의 해후를 끊으며 안세준의 어깨를 치자마자 떨떠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안세준.

난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면서 에너지바 하나를 건넸다.

“……어― 저요?”

갑작스레 건넨 에너지바에 스스로를 가리키며 다시 묻는 안세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은 서로 오해가 있었던 뭐랄까― 사고였잖아요?”

“……그, 그렇죠.”

“그러니 앞으로 마주칠 때마다 괜히 껄끄러워지지 말고 이걸로 퉁치자고요.”

어때요?

그의 눈앞에서 강조하듯 다시 한번 에너지바를 가볍게 흔들었다.

당황스런 얼굴로 그런 에너지바와 나를 번갈아보던 안세준이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아침엔 너무 놀라서 실수를 좀 크게 했네요.”

“저도 뭐 딱히 잘한 건 하나도 없죠.”

바스락―

내게서 안세준의 손으로 부드럽게 자리를 옮기는 에너지바.

“……세준아!”

떨떠름하게 에너지바를 멍하니 보던 안세준이 부회장 무리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내게 눈인사를 건네고 빠르게 그들에게로 뛰어갔다.

“……뭐예요? 저랑은 이상하게 말 한마디도 안 섞으려 하시더니 왜 세준이랑은 말이 통하는 거죠? 대화가 되네요?”

안세준이 떠나자마자 황망한 말투로 쏘아붙이는 구예리.

“허 참, 갑자기 어이가 없네. 막― 대변인도 안 세우시고― 막 어울리지도 않게 방긋― 방긋― 웃으시면서, 참나.”

“…….”

난 여전히 구예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달려가는 안세준이 서둘러 주머니에 에너지바를 숨기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하아― 뭐 됐습니다. 다양성의 시대잖아요. 개인의 취향이니 당연히 이해합니다.”

짝―

상당히 짜증 나는 오해를 한 구예리가 박수를 치더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아직 전기가 끊기기 전인 지금, 저희 쪽 인원 3명과 그쪽 두 분이 같이 지하 1층으로 내려가시게 될 겁니다.”

도서관 캠프 3명과 우리.

도합 5명의 수색 인원.

“내려가시기 전에 저희가 반대쪽 엘리베이터에서 스마트폰 하나를 지하 1층으로 내려보낼 겁니다.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을 거라 지하 1층에 있는 좀비들이 대부분 반응하겠죠?”

우리가 지하 1층으로 진입할 내부 계단 문.

그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정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엘리베이터.

그곳에서 도서관 캠프에 넘치도록 많은 스마트폰 중 하나를 미끼 삼아 내려보내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지하 매점은 여러분들이 내려갈 내부 계단 문에서 50걸음도 안 되는 곳에 있고, 매점이랑 상당히 거리가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음악이 아주 쨍쨍하게 울려 퍼지면―”

“자연스럽게 여기서 매점까지의 길이 아주 편하게 열리겠지.”

“빙고! 감사합니다. 거의 처음으로 제 말에 대답해주셨네요. 이거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요?”

비꼬는 투가 다분한 감사 인사.

“또 대답을 안 해주시네. 저기요, 장훈 씨. 대변인 씨라도 제 말에―”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이야.”

구예리의 말을 끊으며 나지막이 흐르는 조용한 물음.

난 입을 닫고 내 말을 경청하는 구예리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이것도 나름 도서관 캠프에서 꾸린 수색조겠지?”

“어어― 뭔가 있어 보이는 명칭들이 아주 많이 왔다 갔다 한 것 같은데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럼 그 수색조의 리더는 누군데?”

경험자로 수색조에 속한 나?

아니면, 저기 큼지막한 덩치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심유한?

“…….”

구예리는 내 물음에 눈썹을 들썩이더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아주 부드럽게 꾸려진 수색조.

아니― 이젠 정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캠프 인원들을 지하 1층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을 때 우리가 온 것이겠지.

여태껏 도서관 2층에서 동고동락한 캠프 인원이 아닌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새로운 패.

싸우거나, 내쫓기보다는 넘치는 공간을 적선하듯이 주며 정당한 거래인 양, 쉽게 아래로 보낼 수 있는 낯선 사람들.

그리고 그 2명을 통제할 수 있을 만한 믿음직한 사람들 3명.

다분히 의도가 깔린 인선이었다.

난 조용히 나를 응시하는 구예리를 마주하며 웃었다.

어리지만 영악하다.

무작정 위협을 제거하려 했던 부회장보단 영악하지만―

3명으로 2명을 통제하려 하는 얕은수는 너무 어리다.

“……저희가 더 많은 인원을 투입했으니 리더는 당연히 유한 선배겠죠. 그리고 이미 저희는 운명공동체니 그런 걸 나누는 건 조금 의미가 없는―”

“뭘 그렇게 속닥속닥 씨부리냐? 그러다가 해 떨어지겠다, 예리야.”

급하게 말을 이어붙이는 구예리의 말을 끊는 심유한.

커다란 덩치로 내부 계단 문 앞에선 그가 준비하고 있던 우리를 보며 눈짓했다.

“뭐하냐? 벌써부터 긴장했냐?”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나와 눈을 맞추는 심유한.

무언가를 벼르고 있는 듯 이미 나를 보는 눈빛엔 호의적인 감정이 단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바로 미끼 스마트폰 지하 1층으로 내려보내겠습니다. 내부 계단 문 앞에 얘들 배치해둘 테니까, 위험해지면 무리하시지 말고 그냥 바로 위로―”

“알았다니까. 너도 진짜 태하랑 똑같은 잔소리네, 아주 똑같은 잔소리야. 걱정하지 마. 그러니까 내가 투표 같은 거 하지 말고 진작에 내려가자고 했잖아.”

“……무리하지 마세요, 유한 선배.”

“알았다니까― 우진아, 민준아. 진짜 뭐하냐, 새끼들아. 너희 둘까지 이러면 형이 아주 피곤해진다, 이 새끼들아.”

“예, 예!”

달달 떨며 심유한 뒤에 바짝 따라붙는 쩌리 두 명과 그들 뒤에 서 있는 고장훈과 나.

그리고 그런 우리를 배웅하듯 길게 반원을 이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도서관 캠프 사람들.

“스마트폰 내려보냈다―!”

반대편 엘리베이터에서 상황을 통제하는 듯한 부회장의 우렁찬 외침.

그 외침을 기점으로 고개를 끄덕인 심유한이 책장을 잠시 치워낸 내부 계단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경칩 소리와 함께 조심히 열리는 내부 계단 문.

가장 마지막으로 내부 계단에 진입한 내가 천천히 문을 닫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네요.”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빼고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내부 계단.

쩌리 중 한 명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으이구 우진아, 우진아― 좀비 새끼가 여기 내부 계단에 먹을 게 어딨다고 존버를 까고 있겠냐? 너라면 그러겠냐?”

툭―!

불안한 소리를 내뱉은 박우진의 머리를 툭― 밀어낸 심유한이 내려가던 길을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오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심유한.

“어이 그쪽. 혹시 병신같이 2층 문 제대로 안 닫은 거 아니야?”

씨발, 이런 거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 게 좆같네.

쿵―!

계단을 올라오며 아주 고의성이 짙은 어깨빵을 내지르는 심유한.

옅은 충격음과 함께 살짝 뒤로 밀려난 심유한이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으르렁거렸다.

“비켜.”

천천히 길을 터주는 나를 보며 당연히 닫혔을 2층 문을 확인하고는 다시 내부 계단을 내려가는 심유한.

“……형님, 정말 이래도 괜찮아요?”

“새끼야, 저런 새끼들은 밑에서 지랄하기 전에 초장에 잡아놔야하는 거야.”

심유한과 그 옆에 바짝 붙은 쩌리 두 명의 대화가 선명하게 귓가에 울린다.

“씨발, 지가 분노조절장애야 뭐야? 아니 분노조절장애면 또 어쩔 건대? 호구 같은 태하는 몰라도, 나한테는 어림도 없지.”

“그래도……. 저 새끼는 진짜 눈깔이 약간 이상하던데―”

“새끼야. 저런 분조장 새끼들한테는 매가 약이야. 세상 지 좆대로 깝치다가 한 번 아구창을 쳐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당사자에게 들리는지, 아니면 일부러 들으라는 건지 모를 앞담화를 생생하게 관람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난 고개를 돌려 어느새 가방 두 개를 걸쳐 매고 내 뒤에 위치한 고장훈과 닫힌 2층 문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거침없이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저 도서관 캠프 멤버들까지도.

중앙도서관 2층에서 1층.

그리고 1층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지하 1층까지.

심유한은 제법 많은 계단을 겁도 없이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

내가 보기엔 아주 운이 좋은 상황이었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심유한은 천천히 따라오는 우리를 보며 혀를 차더니 지하 1층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이제부터 숨소리도 내지 마라. 특히 좀비 새끼 봤다고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그대로 버리고 간다.”

딱 봐도 고장훈과 나에게 한 경고였지만, 도리어 심유한 옆에 있는 쩌리들이 더 겁을 먹었는지 급하게 숨을 들이킨다.

그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리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끝까지 나를 노려보던 심유한이 작게 으르렁거렸다.

“그래. 우는 병신보다는 차라리 웃는 병신이 낫지.”

끼이이익―!

다 들리는 심유한의 속삭임을 끝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열리는 지하 1층 문.

[♩~ ♪~ ♬]

살짝 열리는 문틈 사이로 출저가 분명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끼에에에엑―!”

그리고 그 노랫소리에 발광하는 좀비들의 포효까지도.

“히이익―!”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을 유발하는 좀비 특유의 괴성에 벌써부터 다리를 떨기 시작하는 쩌리 둘.

퍼억―!

서둘러 그 둘의 머리를 쥐어박은 심유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앞쪽을 턱짓했다.

“끼에에에에엑―!”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좀비들의 포효와 열린 내부 계단 문으로 보이는 한산한 복도.

심유한을 시작으로 내부 계단 문에서 나와 벽에 기댄 수색조의 시야로 지하 1층이 들어섰다.

둥근 테이블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정보 검색 및 복사용 컴퓨터들과 휴식을 위해 배치된 큼지막한 소파들.

항상 영어 뉴스를 틀어주던 벽걸이형 TV 주위로 길게 이어진 복사기들과 복사실.

그리고 복사실의 맞은편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목적지 매점.

옆에 작은 카페테리아를 달고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매점이었다.

“좋아. 한 마리도 안 보이네.”

좀비가 보이지 않는 걸 꼼꼼히 확인한 심유한의 속삭임.

“후딱 매점에 들어가서 음식들 챙겨 나오자.”

“예, 형님.”

“잠깐.”

서둘러 활짝 열려있는 매점으로 들어가려던 심유한이 내 제지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이대로 매점에 들어가겠다고?”

“그럼 씨발, 뭐 출석 체크라도 하고 들어갈까?”

“언제 노래가 끊길지도, 어디 어그로가 안 끌린 좀비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니 빨리 들어가서 음식 챙기고 내빼야지, 이 씨발년아. 좀 닥치고 따라와라.”

“그런 식이면 저기 있는 식량들도 다 못 빼 올 텐데?”

“아이 씨발―!”

계속되는 내 딴지에 인내심이 동했는지 제법 큰 소리로 욕을 내뱉는 심유한.

자신도 방금 뱉은 욕이 꽤 컸다는 걸 인지했는지 다시 목소리를 낮춘 심유한이 뱀처럼 속삭였다.

“그래서 뭐 어떡하자고. 식량 구하러 와서 좀비들이랑 배틀로얄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미치려면 혼자 곱게 미쳐, 이 병신 새끼야.”

“이런 식이면 오늘 저기 매점에 있는 식량을 다 못 빼낼 테고, 오늘이 지나면 전기가 끊겨서 시야가 더 차단될 텐데.”

난 고개를 들어 올려 밝게 빛을 발하는 형광등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매점에 식량을 구하러 오는 게 더 힘들어질걸?”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내 멱살을 잡아채는 심유한.

한계까지 화를 참고 있는 듯 이를 악문 소리가 웅웅거리며 새어 나왔다.

“그건 오늘 빼낸 식량이 다 떨어진 뒤에 생각해도 되잖아. 그때 동안 구조대가 올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그런 고민은 우리가 알아서 하니까 그냥 쳐 닥치고 좀 따라와라.”

“……싫은데?”

“이 씨발 새끼가, 또 발작을 했나.”

툭―!

난 가볍게 놈의 멱살잡이를 풀어내고 바로 뒤쪽에 위치한 화장실을 턱짓했다.

“얘기가 좀 필요한 것 같은데.”

“허―! 얘기? 좋지이―.”

가벼운 헛웃음과 함께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

남자 화장실로 걸어가는 내 뒤로 뒤늦게 심유한을 말리는 두 쩌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

남자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나를 환영하는 익숙한 클래식 음악.

이곳은 좀비 아포칼립스의 여파가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이 아무런 이상 없이 나를 반겼다.

오히려 피칠갑이 되지 않은 벽지에 어색함을 느끼며 혹시나 숨어있을지 모를 좀비를 수색했다.

쿵―! 쿵―!

대변기가 놓인 칸을 하나씩 확인하던 와중에 따라 들어온 인기척.

결국 심유한을 말리지 못하고 끌려온 두 쩌리와 마지막으로 들어와 찰떡같이 화장실 문 앞에 버티고 선 고장훈.

진짜― 어디서 객사할 새끼는 절대 아니네.

“새끼가― 또 쪼개네.”

심유한이 피식 웃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뚜드득― 뚜드득―

“그래서 뭔 얘기? 존나 어이가 없으려니―”

짜아악―!

과시하듯 목을 좌우로 풀며 실실 웃던 심유한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난 그 앞에서 어느새 왼손으로 옮긴 쇠 파이프를 까닥― 흔들며 내지른 오른손을 회수했다.

“이, 이 씨발 새끼가아―!”

짜아악―!

당황스러움과 분노를 반반씩 담고 있던 얼굴이 한 번 더 옆으로 비틀거렸다.

짜아악―!

심유한의 뺨을 후릴 때마다 비틀거리는 놈의 몸뚱아리가 천천히 화장실 벽 쪽으로 이동했다.

짜아악―!

이런 와중에도 무너지지 않고 가까스로 균형을 잡아내던 놈의 몸이 화장실 벽에서 살짝 힘을 실은 스윙에 결국 무너졌다.

우당탕―거리며 바닥에 엎어지는 심유한.

이번엔 손이 아닌 다리를 이용했다.

퍼억―!

엎어진 심유한의 배에 정통으로 틀어박히는 발길질.

“꺽―! 꺼억―!”

심유한이 배에 발길질이 꽂히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린 심유한의 배를 집요하게 가격하는 오른발.

퍼어억―!

“꺽―! 꺼어억―!”

무언가를 두드린다기보다는 마치 북을 찢는 듯한 기괴한 소음.

계속해서 숨넘어가는 소리를 겨우 내뱉던 심유한의 몸이 달달 떨리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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