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9화 (9/120)

적자지배 (4)

콰직―!

“끼에에에엑―!”

고장훈이 쥐 죽은 듯이 숨어있던 철학과 과방 바로 옆 과방.

“……안녕?”

중어중문학과에 내가 찾던 보물이 두 마리나 있었다.

반가운 인사에 나만큼이나 기쁜지 버선발로 달려오는 좀비 두 마리.

우당탕― 의자와 테이블이 망가지는 소리를 들으며 방금 전과 똑같이 몸을 틀었다.

쿠웅―!

데자뷰같이 중문학과 전공 강의실에 돌진하는 좀비 한 마리와 빠르게 그 좀비를 뒤따르는 좀비 한 마리.

퍼어억―!

난 뒤따라 달려오는 좀비에게 전력으로 발길질을 내질렀다.

매번 하던 것처럼 자세를 무너트린다기보다는, 원초적으로 적을 밀어내는 발길질.

“끼에엑―!”

짧은 괴성과 함께 내 발길질에 밀려 볼썽사납게 복도를 청소하는 좀비.

난 두 번째 좀비를 바라보던 시선을 서둘러 첫 번째 좀비에게로 옮겼다.

“끼에에에에엑―!”

마치 동료가 당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더 소름 끼치는 괴성으로 내게 달려드는 좀비.

부우웅―!

전공 강의실까지 의미 없는 도약을 시도했던 좀비의 대가리에 살벌한 풍압이 잇따른다.

퍼어억―!

마치 기다리고 기다렸던 구질에 반응하는 4번 타자처럼 단번에 둥근 공을 쳐올리는 쇠 파이프.

첫 번째 좀비가 완전히 함몰된 옆통수와 함께 실 끊긴 인형처럼 땅바닥에 쓰러진다.

[민첩 : 7 -> 8]

난 처치 포인트가 들어오는 동시에 민첩에 투자하며 다시 앞을 주시했다.

“끼에에에엑―!”

기나긴 복도 청소를 끝내고 가까스로 일어선 좀비.

놈이 어깨를 괴상하게 흔들며 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인제 와서 좀비 한 마리라니.

더군다나 대응할 시간도, 거리도 너무나도 충분한 좀비 한 마리였지만, 나는 빠르게 등을 돌렸다.

계속해서 좀비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매점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끼에에에엑―!”

전력으로 달리는 법만 알고, 속력을 조절하는 법은 모르는 듯 코너를 돌 때마다 자기 스스로 바닥에 엎어지고 벽에 몸을 박는 멍청한 좀비.

하지만 먹잇감에 대한 집념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뻘건 눈에 오직 나만을 담고서 끝까지 추격해오는 좀비 새끼.

난 놈을 응원하듯 계속해서 뒤를 힐끔거리며 서둘러 옥상 문을 뜀박질로 뛰어넘었다.

“끼에에에에엑―!”

그대로 옥상 문 옆에 몸을 바짝 기대곤 앞을 응시했다.

“세, 세계 씨…… 이, 이거 정말 안전한 거 맞죠?”

그곳엔 몽키 스패너를 들고 달달달― 떨고 있는 고장훈이 있었다.

“고자 씨가 허튼짓만 안 한다면야.”

다시 한번 경고하듯 차분히 눈을 맞추니 바이브레이터마냥 온몸을 진동하던 고장훈이 그 와중에도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 아니―! 장훈 씨도 아니고 하다못해 고장훈도 아니고 왜 아까부터 계속 고자라고―”

“끼에에에엑―!”

“히이이이익―!”

불만을 표시하던 고장훈의 눈이 더없이 동그래진다.

그 동그란 눈에 비치는 미끼를 발견하고 더없이 흉폭해진 좀비 한 마리.

놈이 애처롭게 몸만 덜덜 떨고 있는 미끼를 향해 두 팔을 쫙― 벌린다.

그리고―

“끼에에에케엑―!”

지금껏 옥상에 올라온 모든 좀비들과 똑같이 옷 함정에 걸려 바닥에 엎어졌다.

난 개구리처럼 바닥에 엎어진 좀비를 빠르게 깔아뭉갰다.

체중을 이용해 놈을 고정시키고 무릎 꿇은 두 다리로 성가신 두 팔을 꽉 내리눌렀다.

끄드드득―!

마구 몸을 비틀어대는 좀비에게서 튀어나오는 살벌한 소리.

무언가 마구 뒤틀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놈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끼에에에에엑―!”

갑작스런 기습과 함께 몸을 결박당한 좀비가 어떻게든 일어서려 지랄발광을 떠는 것이 엉덩이에 그대로 전해져온다.

난 힘을 더 꽉 주고 놈을 내리깔며 정신을 집중했다.

내 의지를 따라 점점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오른손에 모여드는 생소한 기운.

아마 시스템이 ‘마력’이라 칭했던 그 기운이―

아, 나에게는 ‘왕권’인가?

어쨌든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 필요한 ‘마나’가 내 의지에 응답했다.

스킬.

‘왕권’ 스탯을 얻자마자 잠금 해제된, 그렇게나 바라던 나의 스킬.

처음 부분무능(部分無能)이니 당신은 무능의 군주니, 뭐니 하는 생소한 문장을 읽었을 땐 조금 당황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스킬 사용법은 누가 머리에 때려 박은 것마냥 선명했으니까.

우우웅―!

좀비를 붙잡은 오른손에서 좀비 대가리로 스멀스멀 이동하는 아주 옅은 황금빛 기운.

그 모습을 보며 기대감으로 잔뜩 부푼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분무능(部分無能).

아니, 무능(無能).

말 그대로 능력이 없다는 뜻이겠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용법은 조금 다르다.

무능의 군주니, 뭐니 갑작스레 상태창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지만―

이건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무능의 주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인 것이다.

쉽게 말해 일종의 ‘무효화 능력’이 내 손에 떨어졌다.

어딜 가든 부동의 1 티어로 꾸준히 밥값을 하는 바로 그 ‘무효화’ 스킬이―.

‘……무언가를 무효로 하는 스킬이라면―’

그리고 스킬 사용처를 고민하던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감염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좀비를 깔아뭉개고 시작된 작은 실험까지 이어졌다.

“……어때? 뭐 달라진 거 있어, 고자 씨?”

“으으― 그으으―”

몸서리치며 내가 꽉 붙잡고 있는 좀비 대가리를 쳐다보는 고장훈.

기대감이 잔뜩 끼인 내 눈빛과 좀비 얼굴을 번갈아보던 고장훈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으― 그냥 좀비인데요, 세계 씨…….”

“다시 한번 똑바로 봐봐. 뭐 달라진 거 없어?”

“……그냥 좀비예요, 세계 씨.”

“끼에에에에엑―!”

조심스런 고장훈의 답변에 힘을 보태듯 여전한 괴성을 내지르는 좀비.

1 티어를 넘어, 어쩌면 0 티어에 육박할 스킬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차갑게 식어간다.

퍽―!

짜증 나는 알람 시계처럼 울어대던 좀비 대가리가 단번에 울음을 멈췄다.

[민첩 : 8 -> 9]

퍼억―! 퍼억―! 퍼억―!

화풀이 대용으로 수 차례 바닥을 찍어대는 좀비 대가리.

검은 핏물이 아스팔트를 튈 때마다 고장훈의 몸도 잇따라 움찔댄다.

지지지직―!

마지막으로 아스팔트에 좀비 면상을 갈아버리고 나서야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워요.”

“……옙!”

누군가 떡을 줬다 뺏은 것 마냥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좀비에게 무효화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스킬이 없던 때와 똑같다는 말 아닌가?

하다못해 감염 무효화라도 통했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포인트를 모아갈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내게 부분무능은 있으나 마나 한 스킬이다.

왕권.

잔뜩 찡그린 미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 뇌리에 스치는 단어.

분명 상태창은 일정 수치에 도달한 왕권에 의해 스킬 잠금을 해체했다.

그럼, 유용한 스킬을 얻기 위해선 더 많은 왕권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즉―

“우웨에에엑―!”

난 아직도 시체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연신 헉 구역질 중인 고장훈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었다.

고장훈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했다.

“고자 씨.”

“우에에엑― 예, 예, 세계 씨.”

“그거 일단 나중에 하시고 따라오세요.”

“……예? 어딜요?”

시체 옷을 벗기던 그대로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는 고장훈.

난 턱짓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눈짓했다.

“밑에 과방.”

조금 속도를 높여야겠다.

***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고장훈을 데리고 내려온 이유는 하나였다.

상태창에서 내게 복종하는 요인이라고 했던 ‘폭력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조금 많이 증폭시켜줄 생각이었다.

혹시나 허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게.

하지만 고장훈과의 과방 수색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역시―! 제가 중문학과에 아는 후배가 있는데 그 새끼가 남자 새끼답지 않게 결벽증이 심했거든요―”

조금 전에 달달달― 떨던 그 고장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창하게 나불거리는 입.

“자기 과방에 세척도 안 된 식칼이 있는데 그걸로 과일도 깎고, 피자도 자르고― 뭐, 한 번은 어떤 새끼가 택배 테이프를 식칼로 자르고 있었다고 뒷담이란 뒷담은 오지게 해서―”

치이익― 치이익―!

초록 테이프와 과방 구석에 놓인 마대 자루.

그리고 굳이 결벽증이 있지 않더라도 한눈에 봐도 그리 청결해 보이지 않는 식칼.

“……어때요? 영화에서 자주 봤던 거라, 있는 걸로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헤헤―”

단번에 간이 식칼 창을 만들어 낸 고장훈이 간사하게 웃으며 식칼 창을 내게 진상하듯이 내밀었다.

……정말.

어디서 객사할 새끼는 절대 아니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젓자, 조심스럽게 식칼 창을 꼭 쥐는 고장훈.

그 이후로도 내가 좀비를 처리한 과방에 솔선수범하듯 먼저 들어가 우리에게 필요할 듯한 물건을 귀신같이 골라냈다.

언제부터였는지 등에 메져있는 검은 가방과 두 손으로 꽉 쥔 식칼 창.

말 그대로 짐꾼의 정석을 보는 것 같아, 기가 차면서도 신기했다.

4층 중앙을 딱 가르는 화장실과 그 앞의 휴게실.

그 중앙을 기점으로 왼쪽이라 부를 수 있는 과방 복도는 거의 수색을 마쳤다.

[민첩 : 10]

그동안 과방 안에서 간간이 튀어나오던 좀비들을 처리하며 어느덧 민첩 스탯 또한 힘 스탯과 똑같이 두 자리에 도달했고―

이제 왼쪽 과방에 수색하지 못한 과방은 단 하나.

[심리학과 학부생실]

심리학과 과방뿐이었다.

“솔직히 어이없지 않습니까? 꼴에 심리학과라고 비밀번호를 대놓고 1111로 해놓다니. 심리학과에 아는 사람만 한 명 있어도 절대 안 통할 블러핑을―”

이제는 입이 완전히 풀렸는지 쉬지도 않고 나불대는 고장훈.

그렇다고 주의를 주기엔 충분히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고 있으니, 나도 별로 상관은 없었다.

삑―! 삑―! 삑―! 삑―!

고장훈의 손길을 따라 전자음을 내며 반짝이는 도어락.

“뭐, 딱히 심리학과만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있는 과방들 비밀번호는 뭐, 그 과에 아는 사람 한 명만 있어―”

한창 자신만만하게 도어락을 누르던 고장훈의 입이 순간적으로 닫힌다.

단번에 합죽이가 된 입과 좌우로 급하게 움직이는 눈깔.

고장훈의 눈이 빠르게 나와 내가 부순 과방 문들을 훑고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으― 한 5분 정도 닥치고 있을까요?”

조심스런 물음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열리다 만 과방 문을 눈짓했다.

“이거나 빨리 열어요.”

“……옙.”

삐리리릭―!

경쾌한 전자음을 끝으로 활짝 열리는 심리학과 과방.

“…….”

좀비든, 인간이든―

아무런 인적 없는 과방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닌데―

“끼에에에엑―!”

그 순간, 도어락 소리에 반응했는지 중앙 화장실에서 울려 퍼지는 괴음.

쿵쿵― 거리며 화장실을 튀어나온 좀비 하나가 우리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창.”

“옙!”

따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찰떡같이 곧바로 내 손에 올려지는 식칼 창.

난 천천히 쇠 파이프와 식칼 창을 든 손을 바꿨다.

난생처음 해보는 투창에 어색하게 식칼창을 쥐고 다리를 벌린다.

어디서 본 듯한 투창 자세를 모방하며 두 눈에 발광하며 달려오는 좀비 새끼를 담았다.

“끼에에에엑―!”

민첩 스탯의 영향인지, 시선을 집중할수록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좀비의 다음 행동.

두 자릿 수에 도달한 민첩이 좀비보다 더 ‘빠른’ 행동을 유도한다.

“흡!”

한 번에 날숨을 토하며 내지른 오른손.

어색한 자세에 맞지 않는 살벌한 파공음이 내 손을 떠났다.

쐐애애애액―!

다른 허튼 수 없이 오직 직선으로 달려오는 좀비.

그리고 그 직선을 가르듯 빛살처럼 곧게 뻗어가는 식칼 창.

분명히 어딘가에 적중한다는 확신은 들었지만―

퍼어억―!

그게 좀비 대가리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와.”

대가리에 식칼 창이 꽂히자마자 뒤로 넘어지는 좀비와 내 뒤에서 나지막이 흐르는 감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럭키 샷이지만, 굳이 고장훈에게 이걸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좀비 시체를 바라보던 고장훈을 툭― 건드렸다.

혹시나 화장실에서 좀비가 더 튀어나온다면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

내 눈빛을 알아들었는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

난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다음 반응을 기다렸지만―

…….

화장실에서 튀어나온 좀비 뒤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쯧!”

난 두 번째 목표였던 중앙화장실과 수색을 끝낸 과방들을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찼다.

정확히 4층의 반을 수색했지만, 생존자는 나와 고장훈뿐이었다.

***

처음으로 옥상 철문 앞에서 보내지 않는 밤이었다.

난 적당한 의자에 몸을 눕히곤 고개를 틀어 철문을 응시했다.

그곳에 넘치는 보조 배터리를 줄 세어놓은 채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고장훈이 있었다.

난 스마트폰의 옅은 불빛이 비치는 고장훈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어요, 고자 씨?”

“……아뇨, 뭐 똑같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뭐 대도시란 대도시는 다 통제에 실패했다느니―

별 이름도 못 들어본 사이비 종교들이 종말이 왔다고 기세등등하게 지랄이고―

그렇다고 다른 종교들도 별반 다른 건 아니고―

유튜브니, 커뮤니티니, 뉴스 댓글이니―

그냥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온 세상이 다 개지랄 중입니다.

조용한 옥상에 나지막이 흐르는 고장훈의 중얼거림.

난 내가 고장훈의 스마트폰으로 확인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소식에 질문을 달리했다.

“우리나라만 이런데요?”

“……아니요. 그냥 지구가 좆된 것 같은데요?”

“미국도요?”

“네. 미국도 자기 나라 양키 좀비들 죽인다고 정신없는 것 같습니다.”

“뉴스에서 그래요?”

“아니요, 유튜브요.”

허, 이런 세상에도 유튜브 동영상은 올라오는구나.

“어떤 미친놈이 이 와중에 유튜브 동영상을 올려요?”

“많아요. 뭐, 실인동 제목들 읽어드릴까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유용하게 사용할만한 무기 TOP 100 (쉽게 찾을 수 있는 도구 위주로).

아포칼립스 전문가가 알려드리는 좀비 쉽게 죽이는 법.

해외 외신들이 모두 경악! 좀비 아포칼립스를 예견했던 한국 영화 ‘부산행’의 비밀!

이야기꾼처럼 악센트를 넣어가며 인기 동영상 제목을 불러대는 고장훈의 목소리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 조회수 잘 빨만한 제목들이네.”

“……미친놈들이죠.”

당장 구글에서 돈이나 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는 고장훈의 허탈한 얼굴.

그래―

미국도 좆되고, 3일째 구조대는커녕 군대도 보이지 않는 이 와중에―

“이 정도면 인문대에서 우리만 살아남은 게 그렇게 이상하진 않네요?”

“……그렇죠. 인문대에는 웬만하면 우리밖에 없을걸요?”

안 그래도 인문대가 좀 낡았어요?

“다른 단과대들보다 시설은 개쓰레기에 문도 몇십 년 전에 쓰던 것 같은 나무 문이고 또 보안은 얼마나 허술한지, 얼마 전에 저희 과에 도둑이 들었거든요?”

또 자기 혼자 신나서 나불거리기 시작하는 고장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이 정도 난리가 났는데 이제 갓 성인이 된 대학생들이 생존율이 높을 수가 없지.

“도둑이 들었다고 건의했는데 도어락 비번을 바꾸라는 뭐 같은 소리만 하고― 도대체 인문대는 언제 다른 단과대처럼 삐까번쩍한 최신식으로 보수해 줄 건지―”

……잠깐만.

고장훈의 말을 곱씹던 눈이 순식간에 띄였다.

“방금 뭐라고 했지, 고자 씨?”

“……예? 도대체 인문대는 언제 다른 단과―”

“아니, 아니! 제일 처음.”

또 장황하게 이어지려는 고장훈의 말을 끊으니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고장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살아남은 사람이 인문대에는 웬만하면 우리밖에 없다는 거요?”

……그래.

“인문대‘에는’?”

강조하듯 스타카토로 끊어서 내던지는 질문에 고장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인문대에는 없겠죠.”

“뭔가 말하는 게 인문대 아니면 생존자가 있다는 식으로 들리는데?”

“……당연하죠. 방금 전까지 카톡도 했는데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자기 스마트폰을 까딱― 까닥― 흔들어 보이는 고장훈.

난 누웠던 몸을 곧바로 일으켜 고장훈에게 다가갔다.

“생존자가 있다고?!”

“……예.”

다급히 달려와 묻는 내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란 티가 여실히 드러나는 고장훈의 얼굴.

난 고장훈의 어깨를 부여잡고 다시금 물었다.

“어디?!”

“뭐, 뭐, 아직 연락되는 사람들은 많죠. 경영대, 기숙사, 공대, 도서관, 학생회관―”

“……도서관도?”

분명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첫날 붐비다 못해 서로 몸을 부대끼는 도서관을 확인했었는데.

그 생지옥 속에서도 생존자가 남아 있다고?

“……네. 아, 도서관에는 연예인도 갇혀있대요. 그 아이돌 ‘설희’ 아시죠? 하이퀸즈 설희. 와― 동아리 후배가 진짜 실물이 방송보다 천 배 만 배 낫다고 여신이라고 주접이란 주접은 다 떨면서―”

“……왜 나한테 말 안 했지?”

또다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려던 음색이 뚝― 끊긴다.

차가운 분위기를 직감하듯 아주 조심히 내 눈치를 살피던 고장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으― 안전을 중요시하시니까 낯선 사람이나, 낯선 장소를 조금 많이 경계하실 것 같기도 했고― 굳이 이걸 말해도 저희가 그곳으로 갈 수도 없고, 필요도 없기도 하고―”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말을 이어가는 고장훈.

“물론 안전을 매우 중요시하시는 걸 제가 무엇보다 잘 아니까 저희가 인문대 옥상에 있다는 거랑 식량도 비축해뒀다는 거 그런 거는 절~대로 말 안 했습니다. 진짜 목숨을 걸고 맹세할게요.”

흔히 말하는 ‘엠창’이라도 찍으려는 듯 올라가는 손을 막고 다시 물었다.

“네가 말한 것 중에 인문대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게 도서관이지?”

“……예.”

“거기 지금 생존자가 몇 명이래?”

“……어 한 30~40명?”

“오― 많이 살아있네. 그럼―”

그 정도 인원이면 식량이 아주 많이 부족하겠네?

은근한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

“……예에― 물은 뭐 화장실 물 억지로 먹는다는데 확실히 도서관이라 그런지 먹을 건 없다고 배고프다고 카톡으로 얼마나 징징―”

난 또다시 자기 이야기에 빠지는 고장훈을 무시하곤 지금까지의 대화를 정리했다.

폭군과 왕권.

고장훈을 통해 알아낸 내 속칭인지 뭔지의 전용 스탯과 성장 방향.

권력과 권위가 상승할수록 왕권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잠겨있는 스킬이 해제된다.

즉, 내게 복종하는 인간이 많을수록 내가 강해지는 구조라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대는 내가 성장하기 최악의 장소였다.

생존자는 나를 제외하면 저 간사하고 눈치 빠른 고장훈뿐.

단 하나의 생존자로 내가 얻어낸 왕권은 고작 1.

비전이라곤 쥐뿔도 없고, 정말 만에 하나 운 좋게 생존자를 건져낸다고 해도 열 명을 넘길 확률은 매우 적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이라―

“저어― 세계 씨.”

상념을 깨우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

조용히 고개를 들자 꿀꺽― 마른침을 삼킨 고장훈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말씀만 해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혹시 카톡 했던 게 불편하셨다면―”

“아니.”

고장훈의 말을 단답으로 끊어내곤 그의 눈을 조용히 응시했다.

내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저 눈빛.

불안과 초조를 감추지 못하고 그저 내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주길 바라는 저 간절한 얼굴.

왠지 모르게 가슴 깊숙한 곳을 콕― 콕― 찔러대는 얼굴이었다.

한때―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왜 내 상태창에는 속칭이라는 칸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안에는 왜 ‘폭군’이라는 단어가 있는 걸까?

허나, 그 폭군이라는 단어가 온통 알 수 없는 것투성이던 상태창에서 그나마 내게 명료한 단어였다.

그저 내가 스탯을 찍을 수 있게 되면―

힘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곧바로 답이 튀어나오는 질문이었으니까.

“잘했어.”

“……예?”

활짝 웃는 내 얼굴을 바라보곤 당황스럽게 말을 흘리는 고장훈.

“잘했다고.”

활짝 웃는 내 얼굴을 따라, 아주 조심스레 웃으려 노력하는 고장훈을 보며 더 활짝 미소 짓는다.

매점 확보, 화장실 확보, 남아있는 생존자를 찾기 위한 과방 수색―

그렇게 다음이 확실치 않은 어중간한 계획들을 조용히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젠 별로 필요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계획이 생겼으니.

적자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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