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6화 (6/120)

적자지배 (1)

“……하루 정도 됐나?”

난 하늘 중앙에 딱 걸린 태양을 바라보며 눈을 찡그렸다.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미끼로 써버린 탓에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꼬르륵―

단지 배고픔의 정도로 나름의 시간을 체크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뭘 먹은 기억은, 점심에 먹은 치킨마요가 끝이었으니까―

거의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또 색다른 고문인데…….”

[포인트 상점 Lv.1]

[수상하고 딱딱한 초콜릿바 (주의 : 상당히 질깁니다!) : 5p]

……

[온기가 적당히 남은 양념치킨 : 20p]

……

[살은 별로 없는 랍스터 : 40p]

적게는 5포인트에서 20포인트, 40포인트……

상점창에 호객 행위를 하듯 수식어가 잔뜩 붙은 익숙한 음식들.

“……쯧!”

표기된 글자를 읽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것을 삼키며 짧게 혀를 찼다.

뭐, 상태창이 있으니 상점창도 있는 건 당연히 이해했다.

하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가격이.

제일 첫 상단에 올라와 있는 ‘수상한 초콜릿바’인지 뭔지의 가격이 5포인트.

그러니, 좀비 대가리를 5개 부셔야 저 ‘수상한 초콜릿바’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 애매모호한 양념치킨은 무려 좀비 대가리 20개.

바꿔 말하자면, 스탯 20개를 올릴 수 있는 포인트를 한 끼 식사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진짜 날강도가 따로 없네.”

가장 압권인 것은 상점창의 최하단에 위치한 ‘아이템’이었다.

그래, 아이템(Item).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물건은 음식이나 잡동사니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물품이었다.

[감염 치료제]

말 그대로, 이 좀비 아포칼립스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

거의 여분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이 아이템의 가격은 무려…

[감염 치료제 :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세요.]

‘선제시’였다.

여기가 무슨 헤네시스 자유시장도 아니고.

사는 사람이 가격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니.

저 자기방어적이면서도 내 뒤통수를 반드시 후려갈겨 호갱을 만들겠다는 의지 가득한 문장을 보고서 바로 깨달았다.

이 ‘상태창’은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스탯이라는 미지의 힘으로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맞지만, 내가 무적이 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상점(Lv.1)을 업그레이드하여 더 많은 물품을 갱신하시겠습니까? (100p 지불)]

물론 상점창의 마지막 알림말을 보니 저게 끝은 아닌 것 같지만―

1포인트도 없어 허덕이는 내게 100포인트는 너무 머나먼 이야기였다.

“결론은 밥 하나 먹자고 귀한 포인트를 소모하는 건 병신이라는 거.”

지금의 내겐 허기를 때울 음식보단 나를 조금 더 강하게 해줄 스탯 1포인트, 1포인트가 아쉬웠다.

허기는 옥상 바로 밑에 있는 매점에 있는 음식들로 해결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좀 밖으로 꺼져라, 좀비 새끼들아!

꽤나 힘을 준 포물선을 따라 인문대에 방치된 차량들 쪽으로 날아가는 항아리 조각.

흡연자들이 담배꽁초를 버리던 흙 쌓인 항아리를 깨부숴서 만든 조각이었다.

텅―!

반원을 그리며 날아간 항아리 조각이 버려진 차량의 앞 유리에 적중했다.

빠앙―! 빠앙―! 빠앙―!

그리고 내가 원하던 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끼에에에에엑―!”

새로운 소리에 자극받은 좀비들이 인문대를 빠져나와 차량 경보음으로 돌진한다.

이미 인문대 잔디밭을 가득 채운 검은 점들.

“……진짜 바퀴벌레 같네.”

밖으로 빼내고 또 빼내도 여전히 바글바글 튀어나오는 게 정말 바퀴벌레와 다를 바가 없다.

난 아직도 인문대에서 기어 나오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담배꽁초를 모으던 항아리를 일별했다.

해가 떴을 때부터 징하게 던진 탓인지, 이제 항아리 조각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끼에에에엑―!

슬슬 인문대에서 기어 나오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문대 안에 있던 좀비가 다 빠져나왔다는 건 아니었다.

오전부터 계속된 시도 덕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청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지, 청각이 1순위라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직 인문대 안에도 여전히 좀비들이 가득한 좀비 천국일 확률이 높았다.

“……슬슬 성공해야 하는데.”

꽤나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다곤 하지만, 슬슬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난 허공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며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턱―!

텅 빈 허공을 움켜잡자 마법처럼 내 손에 안착하는 적당한 길이의 쇠 파이프.

옥상 휴게 공간을 보수하기 위해 올려뒀던 자재들로 보이는 뭉치들 속에서 찾은 둔기였다.

너무 길거나 짧은 쇠 파이프들을 거르고 걸러 겨우 얻은 적당한 길이.

“……그나저나 다시 봐도 신기하네.”

난 마법처럼 허공에서 뿅―하고 나타난 쇠 파이프를 이리저리 돌리며 작게 웃었다.

인벤토리.

스킬도 주지 않는 야박한 상태창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초월적인 현상.

인벤토리에 담긴 물건이 내 의지를 따라 마음대로 차원을 달리했다.

[인벤토리 Lv.1]

1. (비었습니다.)

2. (비었습니다.)

3. (비었습니다.)

[경고 : 인벤토리는 전투 중에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인벤토리(Lv.1)을 업그레이드하여 더 무겁고 많은 물품을 보관하시겠습니까? (50p 지불)]

스테이터스, 상점, 인벤토리.

정말 말 그대로 스킬 빼고는 모든 걸 다 갖춘 상태창이었다.

“진짜 스킬은 어떻게 얻는 거지…….”

이 정도로 본격적인 상태창이면, 스킬이 없을 수가 없는데.

어젯밤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던 의문을 잠시 옆으로 치우고 옥상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옥상문 아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과장스러울정도로 다리를 크게 올려 문턱을 넘었다.

뻥 뚫린 옥상에서 인문대로 진입하는 순간 혀를 적시는 텁텁한 공기.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선 것을 실감하며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내디뎠다.

옥상과 4층을 연결하는 계단의 작은 복도에 멈춰서 귀를 쫑긋 세웠다.

…….

숨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는 쥐 죽은 듯한 공간.

난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살짝 곁눈질로 매점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선 가볍게 엄지손가락을 튕겼다.

팅―!

세차게 회전을 반복하며 매점 앞 복도로 날아가는 동전.

팅― 팅티리링―!

던진 동전이 완전히 땅바닥에 붙기 전에 작은 소음을 반복하며 위아래로 들썩였다.

“끼에에에엑―!”

그리고 그 소음에 반응한 좀비의 포효.

난 동전 앞까지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좀비를 고개만 살짝 내밀어 확인했다.

“끼에에에엑―!”

……한 마리.

매점 앞 복도에서 고개를 획획 돌리는 좀비를 바라보는 내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한 마리만 내가 낸 소리에 반응했다.

“……후우―!”

긴장을 털어내듯 가볍게 숨을 몰아쉬곤, 고개만 내밀었던 몸을 완전히 복도에 노출했다.

팅―! 팅―!

그리곤 일부러 쇠 파이프를 바닥에 부딪히며 놈의 시선을 끌었다.

“끼에에에에엑―!”

계단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곤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돌진해오는 좀비 한 마리.

난 놈이 나를 포착했다는 걸 느끼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우악스럽게 계단을 돌파하며 나를 추격하는 거친 발걸음.

난 열어놨던 옥상 문을 폴짝― 뜀박질로 뛰어넘고 문과의 거리를 벌렸다.

“……후우― 후우― 후우―!”

계속해서 시뮬레이션 돌렸던 계획이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난 계속해서 쇠 파이프 든 손을 가볍게 털며 까딱― 까닥― 흔들었다.

“끼에에에에엑―!”

정말 계속 들어도 전혀 나아지질 않는 소름 끼치는 괴성.

놈이 올라오는 계단을 따라 내게 고정된 핏발 선 눈을 시작으로 몸통과 다리가 드러난다.

옥상 문을 너머 자신을 기다리는 나를 보곤 애타게 손을 뻗으며 질주를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맛있는 먹잇감이 손에 닿을 듯 선명했을 테니까.

“끼에에케엑―!”

계속 달릴 수만 있었다면.

철퍼덕―!

망설일 시간도,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난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땅에 엎어진 좀비를 향해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옥상 문 아래, 할 수 있는 최대로 억세게 묶은 함정에 걸린 좀비 새끼.

놈의 오른 발목에 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과잠이 덜렁거리며 걸려있었다.

“끼에에에―!”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엎어지자마자 일어서려 허우적대는 괴상한 몸짓.

허나, 준비하고 또 준비했던 대로 적정한 거리에 닿은 내 쇠 파이프가 아래를 내려찍고 있었다.

최대한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쇠 파이프가 조준점을 직격한다.

퍼어억―!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와 분명 때린 건 난데 쥐가 날 듯 심각하게 저려오는 양손.

허나, 지금 무기를 놓치는 병신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어떻게든 쇠 파이프를 다시 꽉 쥐었다.

퍼억―! 퍼억―!

놈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아래를 내려찍는 쇠 파이프.

얼굴에 무언가 묻고 있다는 느낌만 들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엔 쇠 파이프를 내려찍어야 한다는 한 공정만이 가득했다.

“뒤져―! 뒤져―! 뒤져―! 뒤져―!”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확실한 확인 사살이 나를 깨울 때까지.

“…….”

[힘 : 1 -> 2]

[잔여 포인트 : 1 -> 0]

그제서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팔뚝으로 얼굴을 닦았다.

검은 티셔츠에 유난히 더 검게 묻어나오는 끈적끈적한 액체.

퍼억―!

한 번 더 놈의 으깨진 머리를 가격한 뒤 조용히 놈을 내려다보았다.

“…….”

그렇게 3분 정도 아무런 미동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발길질로 놈의 몸을 뒤집었다.

움푹 패여 망가진 뒷머리와 다르게 분노로 가득 찡그린 얼굴.

아니, 분노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배고픔일 수도 있고, 고통에 찡그린 얼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여학생의 얼굴이었다.

이제야 내 또래의 여대생인 것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뚝―! 뚝―!

아까부터 쇠 파이프의 끝단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핏물.

아니 붉은 빛이 거의 다 사라진 검은 핏물이 쇠 파이프에서 옥상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턱―!

언제부터인지 파르르― 떨리고 있는 오른손을 진정시키듯 왼손으로 꽉 붙잡았다.

분명 살인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이런 짓을 얼마나 더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난 쇠 파이프를 다시 인벤토리로 옮긴 뒤, 조용히 좀비 시체에 몸을 숙였다.

투두두두둑―!

거세게 옷을 찢는 손짓에 연보라색 가디건 단추가 허공을 비산했다.

가디건을 찢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봉긋 솟은 가슴과 파란색 브래지어.

생각보다 큰 가슴과 예쁜 곡선으로 이어지는 하체를 감싼 청바지.

좀비가 아니었다면 상위 1%는 가뿐히 넘을 매력적인 몸매였다.

아마 속해있던 과에서 남자들 꽤나 울렸을 것이 분명한 체형.

나 또한 평소였다면 안아보기는커녕 말도 못 걸었을 여왕벌이었지만, 지금 그건 별로 상관없었다.

“우웨에엑―!”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시체의 청바지를 벗길 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툭 튀어나오는 헛구역질.

식도를 넘어 갑작스레 튀어나온 위액을 퉷―! 바닥에 뱉어낸 뒤 다시 청바지를 벗겼다.

“……있다.”

개고생 끝에 겨우 발견한 스마트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이폰으로 보이는 스마트폰을 터치하자마자 나를 반기는 잠금 화면.

이게 그 아이폰의 페이스ID인가.

“……씨발.”

정말 당연하게도 잠겨있는 아이폰을 보며 혀를 찼다.

분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체로 지문인식 잠금을 해제할 수 없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럼, 저 페이스ID인가 뭔가 하는 것도 시체한테는 통하지 않겠지.

“꽝이네.”

쯧―!

가볍게 혀를 다시 차며 반쯤 헐벗은 좀비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저 찢겨진 옷들은 잘 매듭지어서 새로운 문 함정이나 밧줄로 엮어야 했다.

“영리한 토끼 새끼는 굴을 세 개 판다고 했으니까…….”

옥상 문을 통해 예상치 못한 좀비 웨이브가 덮쳤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루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일단 옷을 다 벗기고 난 뒤에, 저 시체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보면 볼수록 아까운 몸매였다.

분명 좀비가 아닌 인간인 채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합당한 대가를 받고 반드시 도와줬을 만큼이나.

하지만 그건 저년이 좀비가 아닐 때의 이야기겠지.

아무리 성욕에 굶주렸다고 해도 시체에 박아대는 이상성욕은 없었다.

“……시작하자.”

잡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세차게 흔든 뒤 속삭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계속해서 좀비들을 함정으로 유인해서 포인트를 획득해야 했다.

좀비를 죽인 뒤, 놈들의 시체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노획해야 한다.

“일단 최우선 목표는……”

바로 밑에 있는 매점의 온전한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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