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금해제 (4)
꺄아아아악―!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라지던 비명 소리가 다시 잦아졌다.
난 철문을 막기 위해 주저앉은 그대로 하늘을 응시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달이 뜬 밤하늘.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뿌연 서울 하늘에 끊임없이 울리는 비명 소리를 듣고 있었다.
―형, 정말 괜찮을까요?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함께.
―괜찮다니까, 영진아. 오히려 아침보다 밤이 우리한테 더 안전할 수도 있어.
―그렇다기엔 사람들 비명이 너무 많이 들리는데요. 아…… 아무래도 이건 좀―
―그건 바보같이 밖으로 도망가려 하니까 그렇겠지. 우린 밖으로 나가려는 게 아니잖아.
아래층 과방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목소리들.
과방 창문을 너머 걱정 가득한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다독이는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과방에서 문 열고 엎어지면 매점이다, 영진아. 가서 빠르게 물이랑 과자 몇 개만 챙겨오면 되는 거야.
―……아.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형. 그냥 아침까지만 조용히 버텨봐요. 경찰이든 군대든 아침까진 도착하겠죠.
―뭐 새로 나온 소식 있어?
―……아니요. 비상계엄령 선포한다고 한 뒤로 아무 소식도 없어요.
영진인가 뭔가 하는 놈을 다독거리던 목소리에 답하는 가녀린 목소리.
아, 갑자기 말을 안 한다 싶더니만 여자는 새로운 소식이라도 찾고 있었나.
―지혜가 말하는 거 들었지? 딱 봐도 하루아침에 끝날 사이즈가 아니라니까?
―그, 그럼. 일단 오늘은 조용히 숨어있다가 내일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떠세요? 내일 구조대가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다 구조대가 안 오면 너무 늦어져.
―뭐, 뭐가 늦는다는 거예요, 형. 매점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하아…… 잘 생각해봐, 영진아.
짜증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에게 말을 이었다.
―우리 인문대에 매점이 몇 개 있어?
―……두 개요.
―아니지. 지금 남아있는 건 하나잖아. 1층에 있는 건 안 그래도 인문대 건물 낡았는데 다른 단과대 다 가지고 있는 편의점도 없다고 항의해서 매점에서 편의점으로 공사 중이었잖아.
―……아.
―인문대에 남아있는 매점은 우리 과방 바로 옆에 있는 저 매점 하나뿐이야. 만약 아침에 구조대가 안 오면 이 건물에서 조용히 숨어있던 사람들이 뭘 걱정할까?
―……물이나 식량요.
―그래, 이 바보야! 그때 숨어있던 사람들이 번호표 뽑고 매점으로 출발할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되겠어?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놈의 목소리를 따라 저절로 상황이 연상된다.
좀비라는 거대한 방해물을 건너도 또다시 만나게 될 미지의 사람이라는 방해물.
―생난리가 나서 좀비가 존나 몰릴 수도 있는 거고, 제일 처음 갔던 새끼가 매점을 아예 다 털고 도망칠 수도 있는 거야.
―그래도…… 하아…… 지혜야. 너도 휴대폰 좀 그만 보고 선배님한테 뭐라고 말 좀 해봐.
―……나도 모르겠어. 영진이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선배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나 우리 엄마랑 연락이 안 돼.
―아…… 미, 미안.
―……아니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똑같은 상황인데 뭘…….
암울한 상황을 실감했는지, 단번에 축 처지는 목소리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전환하듯이 누군가의 어깨를 툭― 툭― 치는 소리가 잇따른다.
―그러니까 지금 남아있는 우리라도 힘을 내야지. 일단 내가 조심해서 갔다와 볼 테니까, 영진이 네가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문 두드리면 잽싸게 열어주는 거야. 알겠지?
―……네.
그 말을 끝으로 들려오는 몇 번의 부스럭거림.
나름의 준비를 마쳤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를 끝으로 과방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멈췄다.
몇 분이나 지났는지 모를 긴장된 시간.
―왜 이렇게 안 오지. ……영진아.
―쉬이잇!
과방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옥상에서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듣던 나 또한.
아주 조용히 다음 상황을 기다렸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선명히 들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끼에에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괴성을.
―으아아아아아! 문! 문 열어, 서영진!
쿵―! 쿵―! 쿵―!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와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거센 주먹질.
―혀, 형! 무슨 일이에요! 조, 좀비 소리가 왜?!
―일단 문부터 열어, 이 새끼야아―!
―여, 영진아. 뭐 하고 있어 빨리…
―호, 혹시 물리시진 않으셨죠?
―이 씨발! 문부터 빨리 열라니까아!
―아, 안 돼요. 물리지 않으셨다는 증거를 보여주셔야…
끼에에에엑―!
―으아아아아! 문 열라고! 문 열어 이 씨발 새끼야아아―! 뒤지기 전에 열라고오오오―!
―그러니까! 씨이발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자고 했잖아아아아―! 씨발 내가 가지 말자고 했잖아아아아, 이 개새끼야아아―!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과방이 여실히 들려온다.
콰직― 콰직― 거리며 문을 열려는 소리와 낑낑거리며 어떻게든 버티려는 소리.
―어떡해?! 어, 어떡해, 영진아―!
―이이익―! 물렸어, 부, 분명히 저 새끼 물렸다니까―!
―으아아아아―! 이 씨발새끼야아아아아―!
그 순간―
우직끈― 거리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끼에에에엑―!
그리고 아무런 가림막 없이 그대로 새어 들어오는 좀비의 포효.
―으, 으아아아―!
―꺄아아아악―!
과방 문이 어떻게 됐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당탕탕거리며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잇따른다.
비명을 내지르며 남녀가 도망치는 소리 끝에―
―으아아아악―!
남자의 고통 섞인 울부짖음이 시작됐다.
―도망쳐! 아아악―! 도망쳐, 지혜야―!
―어, 어디로! 어디로 가야돼―! 어, 어디로오―!
―옥상! 옥상으로 도망가! 가서 구조―으아아아아악―!
남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고통에 젖은 고함과 좀비의 포효만이 창문을 타고 내게 들려왔다.
옥상.
분명 내가 숨어있는 인문대 옥상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고민할 시간도 없이 도망친 여자의 운명을 직감했다.
끼에에에엑―!
기대고 있는 철문 틈 사이로 울려 퍼지는 좀비들의 포효.
지금 이 아수라장을 좀비들이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꺄아아아악―!
인문대를 넘어 대학으로 퍼지는 고주파의 비명.
밤사이 계속해서 듣던 누군가의 비명이 인문대에서도 삐져나왔다.
―으흑…! 살, 살려주세요오―! 아무나, 아무나 제에바아알―!
물기가 가득 젖은 절박한 애원.
―으아아아악―! 아파아―! 아프다고오오―! 엄마아아아아―!
그 처절한 SOS를 들으며 고개를 위로 꺾었다.
……오늘 제일 많이 들었던 비명이다.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
살려줘도, 구해줘도 아닌
엄마.
죽기 직전엔 누구나 가장 의지했던 사람을 울부짖게 되는 걸까.
……그럼.
내가 죽는 순간엔 누구를 울부짖으며 죽어야 할까.
―아아아아악―! 깨물지 마아아―! 제바알― 깨물지 마아아―!
저들을 몹시도 많이 부러워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지 못했던 걸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가지고 있는 아이들.
내가 국가의 지원에 감사하다며―
지자체, 봉사 단체, 학교의 지원에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간단한 투정으로 얻어내는 아이들.
꼭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성공해서 저와 같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며 뒷말을 이을 필요가 없는 아이들.
동물원 원숭이처럼 악수하고, 사진을 찍히며 선행의 트로피가 되는 일 없이도―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누리던 내 또래의 모든 아이들을 부러워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나누어진 계급.
태어날 때부터 나보다 더 나은 인생.
그들이 아이패드와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으로 대학을 오갈 때, 나는 낡은 공책과 대리운전 알바로 자신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살았다.
처음으로 남의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던 움직이지 않는 ‘상태창’을 꽉 끌어안으며.
그들이 가진 특권을 인정하고, 또 질투하며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루.”
단 하루 만에 그들이 가진 모든 특권이 사라졌다.
무한한 애정을 표현해주는 보호자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종말을 이겨내야 한다.
대학생, 성인.
사회가 나이를 기준으로 술과 담배를 허락해주는 애매한 기준선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다.
―꺼어억―! 꺼어어억―!
까드득거리며 좀비들이 생살을 씹어먹는 소리 사이에 나지막이 새어 나오는 마지막 숨결.
죽기 직전까지도 숨을 갈구하는 심장 때문인지 거칠기만 한 그 숨결을 들으며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헬기, 전투기, 혹은 작은 여객기라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재난 사태에 아무런 비행체 없이 그저 뿌옇기만 한 서울 하늘.
곧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줄어든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제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절망적인 순간에도―
이상하게 두렵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냥―
이제 더는 저들이 부럽지 않았다.
잠금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