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4화 (4/120)

잠금해제 (3)

삐이이이이이―

고개를 계속해서 세차게 흔들 때마다 더 지독하게 울려대는 이명.

말 그대로 머리가 띵해지는 감각이었다.

심심하면 차가 뻥뻥 터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아무런 데미지 없이 가볍게 일어설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이 정도라니.

생각한 것 이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끼에에에엑―!”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머리를 휙휙 돌릴 때마다 시야에 걸려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좀비들.

저 좀비들이 지금 차에서 뛰어내린 나에게 다가와 ‘괜찮니, 어디 다친 덴 없니?’라고 물어볼 확률은 아주 지극히 낮았다.

오히려 겨우 일어난 나를 다시 햄버거게임하듯이 깔아뭉개버리곤 인육 파티를 즐기겠지.

처음 좀비를 목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언제나 하나였다.

벗어나는 것.

“끼에에에엑―!”

풀썩이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내가 누워있던 장소를 깔아뭉개는 좀비 한 마리.

서둘러 질주를 시작하는 내게 아쉬움이 가득 담긴 손짓으로 허우적거린다.

쐐애애액―!

그렇다고 난데없는 차량 자폭 쇼가 불이익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살짝 곁눈질로 살펴본 정문에 여전히 차량 경보음을 토해내는 차량과 깔려있는 좀비들이 보였다.

타이어가 상체를 거의 대부분 깔아뭉갰는데도 여전히 팔팔하게 손을 내뻗고 있는 좀비들.

‘사람’이었다면 결코 살아있지 못 할 상처로 팔팔하게 살아 있는 시체들.

예상했던 대로 혹은 클리셰대로,

머리를 날려버려야 하는 좀비 새끼들을 자폭 쇼로 무려 4마리나 죽여버렸다.

그렇게 얻은 4개의 잔여 포인트는 착실히 민첩 스탯으로 이동했고,

단번에 4나 오른 민첩은 순식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끼에에에엑―!”

점차 멀어지는 좀비들의 포효.

전력으로 질주하는 나와 그런 나를 쫓는 좀비들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인문대 잔디밭에서 시작된 숨바꼭질이 정문을 넘어 숨바꼭질의 시작점인 옆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챠르르르륵―!

아스팔트를 흥건히 적신 핏자국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배경음.

살벌한 소리를 내뱉던 전정기도 그 전정기로 내 앞을 막던 미친 아저씨도 모두 사라져있었다.

남아있는 거라곤 뒤에서 나를 기습하려다 아저씨에게 머리가 쪼개진 좀비의 시체뿐.

분명 미친 아저씨는 좀비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땅바닥에 버려져 있던 전정기는 어디 갔지?

그나마 무기라고 부를만했던 도구의 실종이 안타까웠지만, 멈춰 있을 순간은 없었다.

끼에에에엑―!

점점 거리가 멀어질수록 신기하게 선명하게 들려오는 좀비들의 포효.

난 서둘러 핏자국이 흥건한 아스팔트를 넘어 작은 계단을 2~3칸씩 올라갔다.

쿵―!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어깨로 유리문을 밀어버리며 다시 인문대에 진입했다.

“……씨발.”

방금 본 아스팔트의 핏자국은 애교라는 듯 나를 반기는 인문대 복도.

과사와 과사 사이를 장식한 게시판에 흥건한 핏자국과 아직도 마르지 않았는지 천천히 복도 벽을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

피비린내가 뭔지 바로 실감할 만큼 역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끼에에에엑―!”

게다가 인문대 중앙홀에서 나를 포착하곤 달려오기 시작하는 좀비들까지.

조금의 지체도 없이 곧바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던 내 눈에 무언가가 걸린다.

[1F]

계단 바로 옆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1층에 대기 중이라는 알림을 연신 밝히고 있었다.

재난과 엘리베이터.

그 둘을 동시에 생각하기만 해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위기 탈출 넘버원의 애청자로서, 그리고 학교를 다닐 때부터 녹음기처럼 반복되던 안전 교육의 이수자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위험하다고 누누이 배웠으니까.

하지만―

끼에에에에엑―!

난 내가 달려온 옆문 계단과 인문대 중앙홀, 그리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번갈아 응시했다.

특히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저 좁은 구역에서 좀비를 마주치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지 않은 한, 위에서 아래로 돌격하는 좀비를 몇 번이나 만날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고민도 짧았고, 결정도 짧았다.

스르륵―

열림 버튼을 누르자마자 부드럽게 나를 맞이하는 엘리베이터.

좀비에게 물렸던 누군가가 이용했었는지 바닥에 핏자국이 번져있는 것을 빼면 아무런 이상이 없는 엘리베이터였다.

삑―

서둘러 4층을 누른 뒤, 닫힘 버튼을 부술 듯이 꾹 눌렀다.

“끼에―!”

[♩~ ♪~ ♬]

거리를 좁혀오던 좀비들의 포효가 뚝― 끊기며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시작되는 엘리베이터.

조금의 부유감과 함께 4층으로의 상승을 시작한 엘리베이터에서 서둘러 호흡을 정리했다.

“후우― 후우― 후우―”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4층에서 마지막으로 한 층만 더 계단을 타고 오르면 계획했던 목적지인 인문대 옥상이었다.

차에서 뛰어내릴 때 조금이라도 덜 다칠 요량으로 껴입었던 과잠을 툭툭 털고, 어느새 이마에 흥건한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해 서둘러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을 해제했다.

차에서 뛰어내릴 때 잔디밭에 숨어있던 작은 돌멩이에 부딪혔는지 크게 금이 간 스마트폰에서 유튜브 앱을 터치했다.

톡― 톡― 톡―

큰 소리를 연상했을 때 바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사이렌’을 검색하자 곧바로 동영상을 띄우는 유튜브.

“씨발! 노래 말고 진짜 사이렌 나오라고!”

분명 힙합 말고 진짜 사이렌을 원했는데,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도 힙합에 관련된 동영상뿐이었다.

“아이 씨이발!”

그렇다고 다른 단어를 검색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초조한 눈빛으로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3에서 4로 바뀌는 전광판 숫자.

띵―!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경쾌한 단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노래를 터치했다.

오르골을 연상시키는 전주를 들으며 볼륨을 끝까지 키운다.

스르륵―

지금 이 문밖의 상황이 어떤지는 전혀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로 열리는 기계 문.

까드득― 까드득―

그리고 열리는 문틈 사이로 ‘식사’를 이어가는 좀비들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알림음 덕분인지, 열리는 문틈 사이로 들리는 음악 덕분인지.

식사를 멈추고 엘리베이터를 쳐다보고 있는 좀비들.

그들의 찢겨지고 뭉개진 얼굴을 보자 파노라마처럼 짧은 장면들이 스친다.

제일 처음 좀비를 목도했을 때도, 놈은 내가 아닌 비명을 지르는 여학생에게 달려들었다.

클락션 소리에 맹렬하게 반응하고, 갑자기 들린 소음에 ‘식사’를 멈춘다.

시각에 더 영향을 받는지, 청각에 더 영향을 받는지―

단편적인 몇 가지 상황으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내게 중요한 건 무엇에 더 영향을 받는지가 아니었다.

놈들에게 ‘청각’이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 ♪~ ♬]

엘리베이터를 지나 하키 퍽처럼 4층 복도를 가로지르는 내 스마트폰.

그 스마트폰에서 흘러드는 음악에 식사를 이어가던 좀비들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틀어진다.

‘……지금!’

내가 유도하고 바라던 상황이었다.

쐐애애애액―!

그 어느 때보다 이를 악문 달리기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좀비들의 포효가 뒤따른다.

“끼에에에에엑―!”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를 지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주파하는 두 다리.

미처 뒤를 곁눈질할 틈새도 없이 살짝 열려있는 옥상 문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끼이익― 쿵―!

철문을 여는 동시에 다시 닫으며 두 다리를 뻗고 철문을 등졌다.

끼에에에에엑―!

쿠웅―! 쿠우웅―! 쿠우웅―!

분노를 가득 담은 포효와 머리와 어깨가 세차게 철문을 두드리는 진동이 등허리를 적신다.

치직― 치지직―

힘을 줄수록 아스팔트를 긁으며 전진하는 신발을 다시 원위치로 당기며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클락션으로 미리 확인은 했지만, 혹시나 모를 위협이 옥상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쿠웅―! 쿠우웅―! 쿵―!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작은 정원으로 이루어진 인문대 옥상.

어울리지 않게 녹음으로 만발한 정원과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시설이 시야에 들어선다.

그리고 확인했던 대로 좀비든, 사람이든 아무도 옥상에 있지 않다는 것까지도.

으아아아아악―!

그 순간, 인문대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익숙한 소음.

끼에에에에엑―!

기쁨의 함성과 함께 순식간에 철문을 두드리던 진동이 멎었다.

“…….”

그 후로, 5분 정도 더 철문을 꽉 등지고 버틴 후에야 천천히 다리에 힘을 풀었다.

“하악― 하악―”

그제서야 입으로 토해내는 거친 숨결과 힘이 다 빠진 다리.

“하악― 하악― 하악―”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며 철문에 주르륵 주저앉았다.

……살았다.

난 주저앉은 채로 눈을 감으며 헛웃음을 연신 내뱉었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깨가 들썩일 만큼의 잔웃음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성공했다.

인문대 강의실에서부터 말 그대로 좀비 웨이브가 덮쳤던 정문 앞.

그리고 정문 앞에서 다시 인문대 옥상으로.

수많은 위기를 뚫고 결국 난 살아남았다.

“……아니.”

이겼다.

난 계속해서 메마른 웃음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

저 빌어먹을 좀비 새끼들과 숨바꼭질에서―

“……내가 이겼다, 이 개새끼들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