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3화 (3/120)

잠금해제 (2)

전동킥보드보단 오토바이가, 오토바이보단 자동차가 더 안전하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특히나 자동차는 언제 작은 돌멩이나 장애물에 걸려 나를 사출해버릴지 모를 전동킥보드보다는 생존확률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겠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나만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가운데 작은 화단과 차선 규제봉으로 나누어진 4차선의 도로.

다시 대학으로 쫓기듯이 도망치는 무리를 가르며 나아가는 두 개의 검은 점.

도로에 버려진 차까지의 거리는 놈이 더 가깝지만, 속력은 내가 더 우월했다.

위이이이잉―

순식간에 도로를 나누는 화단에 도착한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빛이 사납게 찌그러졌다.

난 그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서둘러 화단의 작은 턱 앞까지 도달한 전동킥보드를 내팽개쳤다.

잠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인도에서 도로로 달려가 차를 타야 하는 아주 짧은 거리.

10초를 채 넘기지 못할 거리엔 전동킥보드와 전력 질주의 차이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문이 활짝 열려있는 운전석으로 달리는 거리는 내가 훨씬 가깝다는 것.

그 순간―

빵― 빵빠아아앙―

신기한 느낌이었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버려진 차를 향해 달려가는 내게 선명하게 들려오는 클락션 소리.

조수석 문을 향해 손을 뻗는 반대편 남자를 바라보던 시선이 왼쪽으로 이동한다.

빠아아앙―!

그곳엔 길게 이어진 줄을 역주행하며 다가오는 하얀색 차량이 있었다.

타이어 휠과 화단의 작은 턱이 연신 부딪히며 주황색 스파크를 내뿜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듯 이미 부서진 사이드미러와 잔뜩 구겨진 앞 범퍼.

말 그대로 화단과 도로 사이의 작은 틈을 비집으며 달려오는 차량이 마치 죽기 싫으면 비키라는 듯 난폭하게 클락션을 울려댔다.

내가 버려진 차량까지 달려가야 할 거리를 절묘하게 가로지를 요량으로.

이번엔 욕지거리를 내뱉을 시간도 없었다.

쿵―!

잠시의 고민도 없이 서둘러 발걸음을 멈춘 내 앞을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하얀색 차량.

버려진 차량의 운전석 문을 터프하게 치고 지나가는 차량 덕에 콧볼이 시큰했다.

바람에 헝클어진 앞머리가 다시 이마에 닿을 즈음, 차량이 지나가고 열린 시야로 놈이 보였다.

조수석 문을 열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예상치도 못했던 장애물 덕에 화단에 그대로 멈춰있는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빛에 승리감이 보였다.

……확실히.

지금부터 다시 전력으로 달린다해도 이미 조수석 문을 열고 있는 저 남자를 이길 순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여서 같이 타고 가자고 소리쳐볼까?

……하.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이런 위험천만한 돌발상황에서 굳이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거의 없다.

거친 풍랑 속에서 타륜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양보하는 선장이 없듯이.

내가 저 남자와 함께 도망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과 똑같이,

저 남자도 굳이 나와 함께 도망칠 이유가 없겠지.

끼에에에에엑―!

그래도 조금은 거리가 있던 좀비들의 물결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버려진 차량을 노획하는 것에 실패했다면, 다시 전동킥보드라도―

쿠우웅―!

서둘러 전동킥보드를 일으켜 세우려 할 찰나에 다시금 크게 울리는 충돌음.

충돌음을 쫓아 이동한 시선의 끝에 나보다 먼저 조수석에 도착한 남자가 사라져있었다.

……아니,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인도와 도로를 걸쳐 사선으로 내달리는 차량과 그 차량이 부수고 간 조수석 문.

그리고 팽이처럼 공중에서 맹렬하게 돌고 있는 그 남자.

퍼억―!

마치 썩은 달걀이 아스팔트에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짧디짧은 공중 부양을 마친 남자가 아스팔트에 그대로 추락하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차에 치인 고라니처럼.

끼기긱―!

난 빠르게 아까 지나간 차량 덕분에 약간 찌그러진 운전석 문을 열었다.

서둘러 운전석에 앉아 문을 닫고 핸들을 왼쪽으로 끝까지 틀었다.

부우웅―!

액셀을 밟자마자 옅은 진동과 함께 좌회전을 시작하는 차량.

애초에 버려진 차를 보자마자 달려갔던 것에서 당연했지만, 운전엔 자신 있었다.

대개 불우한 가정환경과 대리운전 알바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영혼의 듀오니까.

“끼에에에엑―!”

방금 전, 나를 치고 갈 뻔했던 차량과 똑같이 역주행을 시작한 내게 들려오는 좀비들의 육성.

다시 문을 닫지도 못할 만큼 망가진 조수석 문이 덜렁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좀비들의 포효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부우우웅―!

더 세게 액셀을 밟으며 백미러를 곁눈질했다.

벌써 고라니처럼 경련하던 남자를 둘러싼 좀비들.

놈들이 헤집는 손짓에 주사기처럼 찍― 찍― 거리며 붉은 핏물이 좀비들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두 번째다.

벌써 두 번이나 사람이 죽었다.

이 뭐 같은 좀비 사태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감성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로수에 머리를 들이박는 것, 뺑소니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

원래의 사회였다면, 웬만하면 병원에서 치료를 통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사고였다.

하지만 오늘 일어난 두 가지 사고의 끝은 죽음이다.

첫 번째 사고는 거의 반쯤 내가 유도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좀비가 없었더라면 죽을 확률은 매우 낮았겠지.

죄책감, 동정심, 후회 같은 좆같은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험하다.’

평소였다면 작은 사고로 끝날 위험이 인생의 끝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지금도 앞 유리를 통해 여실히 비치는 좀비와 인간의 추격전에 입이 저절로 바짝 말라온다.

언제 사람이나 좀비를 치게 될지 모른다.

언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이 내 자동차 앞길을 막을지 모른다.

언제 좀비나 인간의 시체가 타이어에 낄지도 모른다.

속도를 잃은 자동차는 좀비들에게 조금 큰 도시락통에 불과하겠지, 더군다나 운전석과 조수석, 두 개의 문이 충돌로 덜렁덜렁거리는 이 자동차는 더더욱.

부우우웅―!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핸들을 이리저리 틀었다.

도로와 인도 할 것 없이 이미 산재한 좀비와 인간들을 어떻게든 피해 가며 다시 대학에 진입했다.

1초라도 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

도서관, 학생회관, 인문대…….

빠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장소들.

‘……도서관은 절대 안 돼. 오늘 하이퀸즈가 리얼리티 찍으러 왔다고 했잖아.’

점심시간.

유튜브로만 보던 탑 아이돌들 실물이나 한 번 볼 생각으로 들렸던 도서관이 자연스레 다시 떠올랐다.

나랑 똑같은 생각으로 도서관에 찾아온 학생들과 하이퀸즈를 찍으러 저격총같은 대포 카메라로 무장하고 달려들던 찍덕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을 통제한다고 도서관에 어울리지 않는 큰 소리로 주변을 통제하던 학생회와 방송국 사람들.

도떼기시장보다 더 바글바글한 인구밀도에 질려서 자리를 뜬 게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생생한 과거였다.

‘……학생회관도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닌데.’

학식을 먹으러 온 학생들과 동아리방에 들리는 학생들.

아마 도서관 다음으로 인구 밀도가 짙었던 곳이 학생회관일 것이다.

‘……씨발.’

자연히 소거법으로 내게 익숙한 곳은 한 곳밖에 남지 않는다.

인문대.

부리나케 도망친 곳으로 다시 기어들어 가야 한다니…….

아직도 바로 옆에서 씹어 먹히던 띠거운 눈빛의 여학생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바둥바둥거리는 손짓과 그 손짓에 바닥에 떨어지던 아이패드와 스마트폰.

그 모습을 보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던 나까지.

하지만 다른 곳을 가려 해도 대학 내에서 더는 내게 익숙한 공간이 없었다.

도망치기 안전한 장소를 생각하려 해도 구조를 모르니 자연히 생각나는 도피처가 전무했다.

하지만, 인문대는 생각하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도피처가 있었다.

‘……옥상.’

새벽의 저주, 28 시리즈, 워킹 데드 등등―

질리도록 봤던 좀비 영화에서 클리셰처럼 항상 등장하는 도피처.

‘……인문대 옥상.’

그곳으로 가야 했다.

그곳이 현재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도피처였다.

‘일단 옥상에 올라가서 문부터 막고 다음을 생각하자.’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를 확정하자, 자연히 행동 방향이 결정됐다.

끼이이이익―!

급하게 꺾는 우회전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스키드 마크.

어차피 대학 모든 곳이 좀비 천국인 것은 당연했다.

그럼, 행동에 버벅거림이 없도록 내게 가장 익숙한 곳으로 이동한다.

게다가 인문대가 지금 현 상황에서 제일 가까우니, 1초라도 빨리 안전한 곳에 숨고 싶은 내 상황과도 부합했다.

“끼에에에에엑―!”

내가 빠져나가기 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좀비들로 가득 찬 인문대.

빵―! 빠아아아아아앙―!

난 액셀을 밟으며 클락션을 끝까지 눌렀다.

난데없이 그들의 귀때기에 박히는 굉음에 발광하며 달려오는 좀비들.

난 인문대 중앙 잔디밭으로 핸들을 틀며 계속해서 클락션을 울렸다.

“끼에에에에에엑―!”

인문대 정문에서부터 달려오는 좀비들과 잔디밭을 뺑뺑 돌기 시작하는 반파된 차량.

난 어떻게든 계속 좀비들을 유인하며 옥상을 곁눈질했다.

이렇게나 지랄발광하며 클락션을 울린다면 분명 반응이 있을 것이다.

옥상에 좀비가 있다면 어떻게든 이 클락션을 따라 움직일 거고, 인간이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내밀겠지.

빵빵― 빠아아아앙―

정확히 잔디밭을 3바퀴 정도 돈 후에,

이제 더는 원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진로를 방해하는 수많은 좀비들을 체크하며 마지막으로 옥상을 확인했다.

“…….”

고개를 내밀며 이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옥상.

“후우우우―”

난 길게 심호흡하며 정문을 향해 마지막으로 액셀을 즈려밟았다.

부우우우우우웅―!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배기음으로 질주를 시작하는 자동차.

그리고 그 자동차를 향해 반기듯이 두 팔을 벌리며 좀비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후우― 후우우― 후우우―”

계속해서 호흡을 정리하려 해도 그게 쉽지 않았다.

크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셔도 전혀 진정하지 않고 심장이 가슴을 찢어발기듯 쿵쾅댔다.

“후우우― 후우우우―”

인문대에 다시 들어가려 결정했을 때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던 계획.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위험하다는 것은 알기에 끊임없이 호흡을 정리하며 조수석에 널브러진 과잠을 챙겼다.

부우우우웅―!

마지막으로 액셀을 더 세게 밟으며 핸들을 손에 놓고 서둘러 주인 없는 과잠을 챙겨입었다.

“끼에에에에에엑―!”

“이것도 너프해봐라 이 개새끼들아아아―!”

점점 더 가깝게 유리창을 비추는 수많은 좀비들.

난 그들을 향해 두려움을 던지듯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몸을 던졌다.

쿠우우웅―!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순식간에 동공을 가득 채운 메시지와 삐이이이―거리며 이명이 울리는 머리.

잔디밭에 몇 바퀴를 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흔들리는 시야 속에 정문에 박혀버린 자동차가 아른거렸다.

빠앙― 빠앙― 빠앙― 빠앙―

그렇게나 찌그러졌는데도 차랑 경보음을 요란하게 뱉어내는 차량과 그 밑에 깔려있는 좀비들.

팔을 허우적대며 어떻게든 일어서려는 그로테스크한 모습과 깔린 놈들보다 훨씬 많은 좀비가 여전히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민첩 : 2 -> 6]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난 필사적으로 흔들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직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설의 제목을 조금 더 직관적인 제목으로 변경했습니다!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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