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2화 (2/120)

잠금해제 (1)

“끼에에에엑―!”

잠시간 멍했던 정신에 찬물을 들이붓는 기괴한 음성.

난 사지를 뒤틀며 발광하기 시작하는 미친놈을 바라보며 서둘러 짧은 계단을 2~3칸씩 내려갔다.

아직 완전히 변이한 것은 아닌지 먹잇감이 자신을 스쳐 가는데도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예비 좀비.

그 예비 좀비 옆에 버려진 전정기를 바라보던 나는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위험하다.

거의 감염이 완료된 듯 보이는 저 미친놈에게 다시 다가가는 것도 위험했고, 저 미친 장판파 장비에게 낭비한 시간도 너무 길었다.

쐐애액―

잘 정돈된 가로수길을 달려가는 내 얼굴이 세차게 바람을 가른다.

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바람을 따라 흘러들어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옆문을 너머 이제 시야에 들어서는 인문대 정문 앞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항상 중국집 세트가 올려져 있던 테이블에 올려진 학생들.

그리고 탕수육을 먹듯이 그들을 씹어먹는 좀비 새끼들.

인문대를 빠져나가려는 학생들, 밖에 넘쳐나는 좀비들을 보고 다시 들어가려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좀비들.

“으아아아아아―!”

다시금 바람에 실려 오는 남학생의 울부짖음에 이를 악물었다.

빠져나가야 한다.

일초라도 빨리.

저 좀비 새끼들에게 여분의 먹잇감이 남아있는 지금.

띠링―!

[민첩 : 1 -> 2]

[잔여 포인트 : 1 -> 0]

정말 긴 시간에 걸쳐 얻어낸 포인트가 민첩으로 이동한다.

민첩 스탯의 표기가 1에서 2로 바뀌는 순간, 몸에서 확연히 느껴지는 이질감.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어떠한 배움과 이해 없이 몸에 각인된 듯한 감각이 다리를 이끌었다.

쐐애애애액―!

바람이 더 맹렬하게 귀를 스치며 찢어진다.

훨씬 더 빨라진 뜀박질과 규칙적으로 변해가는 호흡.

하지만, 이거론 부족하다.

빵빵―! 빠아아아앙―!

인문대를 나와 반석대 정문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아우성치는 차량들의 클락션 소리.

스키드 마크를 연신 도로에 찍으며 좌우로 급하게 움직이는 차량.

도로, 인도 할 것 없이 혼란 상태에 빠진 학생들을 치고 달려가는 차량.

쿠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가로수를 들이박은 차량과 에어백이 터진 앞좌석을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좀비들을 보며 상태창 아래쪽을 곁눈질했다.

분명 알림말로 ‘휴면 상태’가 해제된다고 말했었다.

그럼, 항상 상태창을 바라보며 의문이었던 점도 해결돼있을 확률이 높았다.

상태창이 있다면, 당연히 존재해야 할 이능.

상태창의 알파이자 오메가.

나에겐 지금 이 좆같은 상황을 타개할 ‘스킬’이 필요했다.

[힘 : 1] [민첩 : 2] [지능 : 1]

[잔여 포인트 : 0]

“……씨발!”

민첩 스탯이 1 상승한 것을 빼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창.

난 스킬이 존재치 않는 상태창을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상태창을 드디어 쓸 수 있게 된 기쁨은 기쁨이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내게 주어진 것은 잔여 포인트 1.

그리고 그 포인트는 이미 민첩에 투자되어 있었다.

앞길이 막막했지만, 이제와서 달리기를 멈출 수는 없다.

제일 처음 강의실에서 여학생을 덮치는 좀비를 목도했을 때,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곳으로 숨어들던가, 위협이 도사리는 곳을 빠져나가던가.

그리고 난 빠져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끼에에에엑―!”

이곳은 방공호도 군사시설도 아니다.

무언가를 막아내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어떻게든 학생들이 더 편하게 수업을 듣기 위해 도와주는 편의시설로 가득한 대학교.

그것도 수업을 듣기 위해서든 밥을 먹기 위해서든, 하다못해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가든.

계속해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유동 인구로 가득한 대학교였다.

좀비 사태에서 그것도 사태 초반엔 절대 있어선 안 될 최악의 장소 중 하나겠지.

먼저, 어떻게든 대학을 빠져나간다.

하다못해 대학로에 넘쳐나는 주상 복합시설에 몸을 숨기는 것이 생존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위이이잉―!

생각을 정리하며 정신없이 달려가는 나를 추월하는 기계음.

전동킥보드 하나가 이를 악물고 뛰어가는 나를 가볍게 지나쳤다.

‘……아.’

누군가 내 뒷머리를 갑자기 망치로 가격한 듯이 탄식이 흘렀다.

스탯 포인트가 1 상승한다고 인간이 기계를 이길 순 없었다.

하다못해, 자전거도 아직 나보다 훨씬 빠를 텐데―

씨발, 상상하지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야가 너무나도 좁았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스스로에 대한 미련함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 와중에, 착실히 나와 거리를 벌리던 전동킥보드가 휘청였다.

갑작스런 급정거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자가 무언가를 허우적댔다.

철푸덕―!

그의 팔짓에 아무런 저항 없이 내팽겨쳐지는 한 여자.

뭐야, 두 명이 타고 있었나?

“미, 미안해! 미안해 세희야! 진짜, 진짜 미안해―!”

땅바닥에서 사지를 뒤트는 여학생을 바라보는 남자의 두려움 가득한 얼굴.

“그, 그치만 너도 변할 거잖아! 씨이발― 너도 선배님들처럼 씨발 좀비로 변할 거잖아아아―!”

자기변명이든, 자기변호든―

이미 감염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여자에게 침을 튀기며 소리치는 남자.

후두둑―

식은땀을 사방으로 흔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가 다시 전동킥보드의 속도를 높혔다.

공포를 가득 담은 얼굴을 뒤돌아 계속해서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조금 더 뒤를 가리켰다.

“무, 물려면 다른 사람을 물어! 나보다 더 잡아먹기 쉬울 거니까, 그, 그래, 맞아―! 저기 달리고 있는 저 새끼를 물던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를 버리고 도망친 남자는 점점 멀어지고, 난 그 여자와 점점 가까워진다.

‘……저 개새끼가.’

까드득―

어이없는 분노로 어금니가 세게 맞물린다.

“끼에에에엑―!”

서둘러 매고 있던 가방을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리고 급하게 일어서려는 좀비의 얼굴에 내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간 다시 엎어지는 여학생 좀비.

“세희야―! 살아있었구나아아아아―!”

목이 찢어져라 내지른 고함에 전동킥보드를 타고 떠나가던 남자의 고개가 뒤쪽으로 향한다.

맹렬하게 질주하는 나에게서 땅바닥에 엎어진 여학생에게로 옮겨지는 시선.

고개를 뒤돈 채, 멍하니 여학생을 바라보던 남학생의 귓가에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진다.

턱―!

“……어?”

찢어지는 굉음들로 가득한 도로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들리는 한 음절.

이런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벙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인도와 도로를 구분하는 작은 턱에 걸린 전동킥보드.

그리고 앵그리버드처럼 전동킥보드에서 가로수로 날아가는 남자.

쿠웅―!

머리와 가로수가 낸 충돌음이라기엔 상당히 컸다.

가로수에 날아든 이후로 미동도 없이 엎어져 있는 남자.

난 이제 주인이 사라진 전동킥보드를 다시 세우며 액셀을 돌렸다.

위이이잉―!

다시 속력을 높여 앞을 향하는 전동킥보드와 엎어진 남자에게 도달한 여학생 좀비.

“끼에에에엑―!”

때아닌 횡재에 기뻐하듯이 울부짖는 여학생 좀비를 바라본 후 마지막으로 기절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병신.

“전방 주시 미흡 및 헬멧 미착용 병신아.”

이래서 안전 수칙이 중요한 건데 말이야.

뭐, 헬멧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난 저 새끼처럼 뒤만 멍하니 보는 병신이 아니었다.

위이이이잉―!

더 액셀을 깊게 돌리며 전방에 신경을 집중했다.

빵빵―! 빠아아아아앙―!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차량들이 보인다.

어디서부터 정체된 지 모를 지독한 교통 체증.

그리고 이 뭐 같은 상황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릴 운전자는 없었다.

빵빵―! 빠아아아앙―!

귓가에 요란하게 울리는 클락션 소리와 어떻게든 정문의 빈틈으로 빠져나가려 줄을 이탈하는 차량들.

그리고 그 차량들 덕분에 더 지독하게 정체되는 도로.

더군다나 인문대, 그리고 내가 지나온 길과는 차원이 다른 인구 밀도였다.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듯 멀리서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뭉쳐있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쿵―! 쿵―! 쿠우웅―!

왠지 모를 꺼림칙함에 브레이크를 살짝 누르던 귓가에 굉음이 울린다.

조금 멀리서부터 통학버스가 차량들을 밀어버리며 정문을 비집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끼이이이이익―! 쿠우우웅―!

누군가 핸들을 급하게 돌리듯 좌우로 요동치던 통학버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진다.

“끼에에에에에엑―!”

그리고 쓰러진 버스의 앞 유리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좀비들.

그 좀비들이 정문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아아아아―!

다시금 사방을 울리는 비명 소리와 정체된 차량에서 서둘러 빠져나오는 사람들.

끼이익―!

틀렸다.

나 또한 급하게 브레이크를 꽉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학을 빠져나가긴 글렀다.

……다시 들어가야 한다.

“끼에에에엑―!”

정문에 넘치는 사람들을 잡아먹고 일렁거리는 좀비들이 보인다.

마치 파도처럼 정문을 적시며 거리를 좁히는 좀비들의 물결.

저 지옥을 피하기 위해, 다시 지옥으로 들어가야 한다.

“…….”

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전동킥보드를 타고.

그것도 방금 전에 지 주인을 가로수로 사출한 새끼를 타고.

“……씨발.”

오늘따라 욕지거리가 입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으아아아아―!”

그 순간, 정체된 도로의 끝.

가장 나중에 도착한 차량이 좌우로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마지막 교미를 나누는 건 아닐 테니, 이유는 웬만하면 하나였다.

“아으― 아으― 아으으―”

팔뚝을 꽉 움켜쥐고 서둘러 운전석 문을 열고 빠져나오는 남자.

“끼에에에엑―!”

그리고 서둘러 차량을 빠져나가는 남자의 뒷허리에 달라붙는 여자.

“끄아아아아아악―!”

매미처럼 꽉 달라붙은 여자를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의 고통 섞인 비명.

하지만, 내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은 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지금 막 주인을 잃은 자동차였다.

웅웅거리는 배기음으로 시동이 걸려있음을 보여주는 제일 꼬리 쪽의 자동차.

그 순간―

기묘한 느낌이 내 얼굴을 툭툭 찔렀다.

누군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꺄아아아아아―!

점차 빠르게 다가오는 좀비 웨이브 속에서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반대편 인도의 한 남자.

그 남자와 묘한 시선을 교환했다.

서로를 탐색하듯 짧게 이어진 시선이 동시에 이동하는 종착지.

“……씨발.”

위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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