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1화 (1/120)

2022년 4월 4일 오후 13시 37분.

서울특별시 반석대학교 인문대 1층 101 강의실.

“자 다들 점심은 맛있게 드셨나요?”

“네에~”

듣기 좋은 중저음의 물음에 꾀꼬리처럼 울려 퍼지는 대답들.

난 책상에 턱을 괸 채 멍하니 앞을 주시했다.

“개강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여러분들 얼굴을 마주하며 출석을 불러봤네요.”

손에 든 출석부를 살랑살랑 흔들며 교수가 말을 이었다.

“한 3주 정도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시청각 자료로 진행한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교수님 대신 학회를 다녀와야 해서요.”

제가 이래 보여도 나름 교수님들 사이에서는 파릇파릇한 막내거든요.

마이크를 타고 강의실에 퍼지는 너스레에 호응하듯 작은 웃음소리가 퍼진다.

주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난 흐릿하게 전방을 주시하던 눈에 초점을 맞췄다.

툭 튀어나온 교단에서 모두를 바라보는 중년의 남성.

훤칠한 비율에 딱 어울리는 비즈니스 캐주얼 룩.

교수를 하기엔 조금 아깝다고 생각할만한 준수한 외모.

왜 이 수업이 수강 신청하기 빡센지를 여실히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나름 성적도 후하게 주는 거로 소문이 났는데 교수가 잘생기기까지 했다라…….

이건 내가 여학생이라도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교양수업이었다.

물론 자기들의 ‘안구 복지’를 위해서라도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양이라며 에타에 지랄발광을 떠는 댓글들은 잘 이해가 안 됐지만.

뭐, 상관 없었다.

조금이라도 앞에 앉으려는 여학생들 덕분에 뒷자리가 널널했으니까.

“자, 오늘부터 우리는 역사와 미스터리에 관한……”

본격적으로 수업에 돌입하려는 낌새에 교수에게 이어지던 집중을 툭― 끊어버렸다.

천천히 넓게 퍼지는 시야 속에 강의실에 빽빽이 자리한 여학생들의 뒤통수가 들어찬다.

뻑뻑한 목을 좌우로 숙이며 스트레칭하는 하얀 목선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계속 보게 되는 포니테일까지.

시선을 잡아끄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천천히 관찰하던 나는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저 여자들은 지금 내가 자기들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모양새가 상당히 병신같았지만, 당연히 저 여자들은 알 턱이 없었다.

이게 바로 뒷자리이자 윗자리가 가지는 특권이었으니까.

‘이래서 일진이랑 인싸 새끼들이 뒷자리를 고집했던 건가.’

삼수까지 해가며 겨우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새로 생긴 몇 가지 장점이었다.

일진과 인싸가 아니더라도 뒷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

“……하.”

미처 삼키지 못하고 육성으로 튀어나온 헛웃음.

서둘러 입을 꾹 다무는 와중에 옆자리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조용히 고개를 옆자리로 돌리자 나를 쳐다보던 여학생의 눈이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톡― 톡― 톡―

책상 위에 올려진 아이패드와 바쁘게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는 스마트폰.

그리고 아직 거두지 못한 누군가를 향한 옅은 멸시의 눈빛.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당연히 아는 나는 쓰게 웃으며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아이패드와 터치펜이 놓인 옆자리와 다르게 낡은 공책과 샤프가 올려진 내 책상을 내려다보던 차에―

“……으음― 그럼, 누가 대답해볼까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교수의 목소리에 자연히 눈썹이 들썩였다.

또각― 또각―

PPT를 가로질러 다시 교탁으로 돌아간 교수가 출석부를 천천히 훑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아―.”

노골적으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무언가 재미난 걸 발견했다는 듯 반짝이는 교수의 눈빛에 더 깊게.

“한세계 학생?”

“……네.”

천천히 들어 올리는 손을 따라 강의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내게 모인다.

“……아이 씨―”

덕분에 옆자리에서 몰래 스마트폰을 하던 여학생이 고개를 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성 하나만 바꿔도 고급 백화점이 되는 좋은 이름이네요.”

“…….”

뻔지르르한 교수의 미소에 미소로 화답하자,

더 뻔지르르한 미소로 고개를 까닥거린 교수가 질문을 이었다.

“우리 한세계 학생은 평소에 믿고 있는 미스터리가 있나요? 귀신, UFO, 외계인, 음모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나를 부드럽게 재촉한다.

“괜찮습니다. 저도 귀신은 가끔 진짜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없습니다.”

“으음―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정확한 증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교수가 나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세계 군과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럼,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

교수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여학생들의 손.

그제서야 나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에서 벗어난 나는 교수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그럼 제일 앞쪽에 앉은 학생이 말해볼까요?”

“아, 네! 저는 유아교육학과 2학년 김아름입니다. 전 귀신은 몰라도 외계인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요?”

“이렇게 엄청나게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 인간만 존재하고 있다는 게 조금 믿기지 않아서요. 엄청난 공간 낭비잖아요.”

“아― 칼 세이건. 정말 좋은 명언이죠.”

미스터리, 증거, 허무맹랑.

교수에게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머리가 웅웅거린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교수와 여학생은 문답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아까 이어졌던 대화의 단어들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 뿐이었다.

미스터리, 증거, 허무맹랑.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미스터리에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뚜렷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띠링―!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이질적인 알림음.

[성명 : 한세계]

[성별, 나이 : 남, 23세]

[속칭 : 폭군] (비활성화)

[힘 : 1] [민첩 : 1] [지능 : 1]

[잔여 포인트 : 0]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은 실존하는 증거.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

속칭 ‘상태창’이 너무나도 선명히 내 동공에 비치고 있었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잔여 포인트 : 0]

포인트 0.

내가 삼수 끝에 겨우 대학에 입학할 동안.

내게 상태창이 있다는 것을 자각한 후부터 지금까지 평생.

그 어떤 방법으로도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이제 안 해본 짓거리는 ‘살인’뿐이었지만―

그건 정말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이젠 나도 이 ‘상태창’이 정말 사실인지 잘 모르겠거든.

어쩌면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아 새끼가 생각해낸 도피처일지도 모른다.

대저 특별한 이야기는 나같은 고아들이 주인공이니까.

그런 위안거리를 품어야만 근근이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니 이젠 정신병인지 뭔지도 모를 이 ‘상태창’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대학,

그중에서도 기독교 후원 대학으로 나 같은 ‘불우학생’에 대한 지원이 빵빵한 대학에 삼수 끝에 입성한 나로서는 더더욱.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 나에게는 그것보다 무모한 도박은 없겠지.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기본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아진 지금, 미스터리는 스낵컬처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입니다. 특히나 팩트를 그 무엇보다 엄중하게 따지는 ‘역사’라는 학문과는 거리가 상당히―”

쿵―!

듣기 좋은 중저음이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둔탁하게 울리는 충격음.

잠시 말을 끊은 교수와 학생들이 일시에 천장을 바라보았다.

“…멀겠죠. 하지만 반대로,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기본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아진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있는 역사들이 있습니다. 대양을 탐험하기 전, 지구가 평평…”

쿵―! 쿵―! 쿵―! 쿵―!

처음 울린 충격음 이후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는 둔탁한 충격음.

단순히 2층 강의실에서 철없는 학생들이 뛰어논다고 생길 수 있는 소음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강의실에 있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품을 무렵―

[띠이이이이― 띠이이이이이―]

강의실에 존재하는 모든 스마트폰이 동시에 액정을 밝혔다.

저절로 뒷목에 소름이 돋을 만큼 기묘한 기계음의 합창.

“……재난 문자?”

마이크를 통해 강의실에 퍼지는 교수의 속삭임을 뒤로한 채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냈다.

[긴급 재난 문자]

[서울시재난안전대책본부]

[서울 전 지역 대규모 폭동 및 폭력 사태 발발. 갑작스러운 공격성 표출 및 수상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즉시 격리 조치 요망. 현 시각 이후로 외출 및 외부 활동을 자제―]

콰앙―!

미처 재난 문자를 다 읽기도 전에 들이닥친 굉음.

위에서 울리던 충격음보다 훨씬 살벌한 소리를 뚫고 무언가가 강의실로 침범했다.

문을 강제로 부순 반작용 때문인지 강의실 바닥에서 덜덜 경련하는 몸체.

비정상적으로 크게 꺾인 양쪽 팔과 목 부분에서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핏물.

“끼에에― 끼에에에―”

그리고 칠판을 손톱으로 긁듯이 괴상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강의실 바닥에서 허우적댔다.

어떻게든 일어나기 위해 노력하듯이.

그리고 지금 이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마치 세포에 각인된 생존본능이 숨통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끼에에에― 끼에에―”

허나, 놈과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들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우 당연하게 뒷문과 가까운 뒷자리.

일어나기 위해 기괴한 몸짓을 반복하는 놈을 바라보는 오른쪽 눈썹이 경련하듯 파르르 떨렸다.

그 어떤 고어 영화보다 더 사실적인 현장.

의식하기도 전에 목에서부터 올라온 신물이 다시 삼켜지며 톡― 톡― 식도를 쏘아갔다.

턱―!

허우적대던 양 팔이 아닌 팔꿈치가 바닥에 걸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문지르던 놈의 얼굴이 정면을 향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무언가에 파먹힌 볼살을 덜렁거리는 얼굴에 더는 비명을 참지 못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내 바로 옆에서 울린 비명에 화답하듯 기괴하게 일어서며 포효하는 무언가.

놈이 날 듯이 도약하며 내게 띠거운 눈빛을 보내던 여학생을 덮쳤다.

까드드득― 까드드드득―

책상에 엎어지는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목을 씹어먹기 시작하는 무언가.

생살 씹히는 소리와 함께 여학생이 갓 잡힌 생선처럼 퍼덕거렸다.

급하게 퍼덕거리는 손짓에 계속해서 그녀와 멀어지는 아이패드와 스마트폰.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제서야 잠금이 해제된 듯이 고주파의 비명들이 강의실을 메아리쳤다.

“……씨발.”

절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입과 동시에 움직이는 몸.

책상에 널브러진 공책과 필통을 챙길 새도 없이 서둘러 가방을 손으로 낚았다.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진 강의실을 뒤도 볼 것도 없이 빠져나가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으아아아악―! 물지 마―! 물지 말라고오오오―!”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확연히 다가오는 피비린내.

이미 중앙홀을 가득 적신 검붉은 피와 그 위에서 아등바등거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학생들을 게걸스럽게 파먹고 있는 무언가.

아니,

좀비겠지.

씨발 저게 좀비가 아니면 뭐가 좀비야.

“끼에에에에엑―!”

분명 죽은 듯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학생이 좀비와 똑같은 소리를 내며 일어서는 모습에 아까 떨렸던 눈가가 다시금 파르르 떨렸다.

꺄아아아악―!

저리 가―! 씨발 저리 가라고오오오―!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학생들과 그들을 먹어 치우려는 좀비들로 가득 찬 중앙 홀.

저 지옥도를 뚫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난 중앙 홀로 향하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중앙이 아닌 옆문으로 일단 이 좆같은 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아직 좀비가 날뛰지 않았는지 비교적 조용한 복도를 내지르며 눈과 귀를 쫑긋 세웠다.

탁―! 탁―! 탁―!

신발 밑창이 세차게 대리석을 밀어내는 소리와 흔들리는 시야 속에 인문대를 빠져나갈 수 있는 옆문이 보였다.

그리고 유리문 너머로 시뻘건 얼굴로 무언가 소리치는 아저씨까지.

“……마! 오지 말라고―!”

유리문을 완전히 열고 나서야 제대로 들려오는 아저씨의 고함.

챠르르르르―!

맹렬한 기계음을 동반한 전기톱을 들고 있는 아저씨가 위협하듯 전기톱을 내 쪽으로 향했다.

주변 바닥에 수북이 쌓인 초록색 풀들과 예쁘게 조경된 주위의 수목.

“하,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봐! 씨발― 내, 내가 못 할 것 같아?!”

챠르르르르―!

세차게 떨리는 동공과 심하게 버벅대는 말투.

딱 봐도 제정신이 아닌 듯한 아저씨가 전기톱을 들고 내가 빠져나가야 할 길을 막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이어진 직선의 계단이 옆을 막고 있었기에, 옆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물론 무리한다면 계단 아래로 뛰어내리면 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저 아저씨를 자극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아마 저 전기톱, 아 저걸 전기톱이 아니라 전정기라고 하던가.

“꺼져 씨발놈아―! 꺼지라고 이 씨이바아알―! 이거 정당방위야―! 정당방위니까 씨발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 봐, 씨발 진짜 너 죽고 나 죽는 거야아아아―!”

어쨌든 저 전정기를 든 아저씨를 설득해보는 것이 먼저였다.

“진정하세요 아저, 아니 사장님.”

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양손을 내보이며 두 팔을 벌렸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을 해치기 위해 달려온 게 아닙니다. 재난 문자 보셨죠?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했는데, 저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갓난아기를 타이르듯이 부드럽게 말을 이으며 양팔을 벌린 그대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오지 마아아아아―! 씨이이발 오지 말라고 했잖아아아아―!”

그 한 발자국에 경기를 일으키며 한 발자국 다가오는 아저씨.

끼에에에에엑―!

이미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좀비들의 포효와 그 소리에 불안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아저씨.

그리고 그의 작업복 바지가 점점 선명하게 물기에 젖어가는 모습에 입술이 달싹였다.

이 미친 새끼, 지금 전혀 제정신이 아니다.

이제는 미친놈처럼 혼잣말로 버벅대는 모습에 점점 입술이 말라간다.

결국 저 미친 전기톱 병신새끼를 뚫고 인문대를 빠져나가야 한다.

“씨이이발, 저, 저, 정당방위야! 씨, 발. 어쩔 수 없는 거야, 내, 내가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 신경을 나한테 집중한 듯, 눈도 깜빡이지 않는 미친놈.

그리고 저놈의 손엔 흉악한 소리를 내는 전정기가 있지만, 난 급하게 챙긴 가방밖에 없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내디디면 달려들 것처럼 움찔거리는 저 새끼 덕분에 뒤에서 좀비가 달려드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좆같은 상황.

탁―! 탁―! 탁―!

그 순간, 점차 나에게 다가오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대리석 바닥을 전력으로 밀어내며 달려오는 소리.

“끼에에에에에엑―!”

그리고 다시금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괴음에 저절로 강의실에서의 첫 대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띠거운 눈빛을 보내던 여자에게 날 듯이 덮치던 그 괴기스러운 광경.

회상과 행동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마치 전쟁터에서 총알을 피하듯 납작 엎드린 내 몸통 위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무언가.

“끼에에에에엑―!”

먹잇감을 놓친 분노를 표하듯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뒤따랐지만, 별로 상관 없었다.

도약의 끝엔 새로운 먹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철퍼덕―!

살짝 고개를 든 내 시야에 갑작스레 날아든 좀비에 깔려 바둥거리는 미친놈이 들어섰다.

띠거웠던 여학생처럼 팔딱팔딱거리며 다리를 아등바등 흔드는 미친놈.

상황은 여학생과 똑같았지만, 저항이 달랐다.

“끄아아아아― 정당방위라고―! 씨이이발 정당방위라고 했잖아아아아아아―!”

카가가가가가각―!

좀비가 생살을 씹어먹는 소리보다 훨씬 큰 데시벨의 소음.

미친놈의 손에 들려있던 전정기가 수목이 아닌 좀비를 조경하기 시작했다.

뭉툭한 전정기의 날이 자기 주인을 씹어먹는 적을 헤집었다.

카가가가가각―!

그런 순간에도 끝까지 미친놈을 씹어먹던 좀비가 전정기 날이 놈의 머릿속에 반쯤 파고들고 나서야 턱짓을 멈췄다.

“끄으으으― 끄아아아아악―!”

먹잇감을 덮친 그대로 미동도 없이 죽어버린 좀비와 그 아래 깔린 미친놈.

“크흐흐흐흐흑― 크흐흐흐흑―”

이젠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음과 함께 놈이 전정기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크흐흐흑― 엄마― 엄마아아―”

뒤늦게 엄마를 찾기 시작하는 놈에게서 서서히 붉은 핏물이 번져가고 있었다.

하긴, 놈의 몸에 딱 붙어서 식사를 이어가던 좀비를 죽이려면 저 미친놈도 나름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겠지.

좀비에게 씹어 먹힌거로는 나올 수 없는 출혈량이었다.

“엄마아아아― 크흐흑― 엄마아아―”

핏물이 아스팔트에 범람할수록 점점 사그라드는 놈의 울음소리.

기회가 있다면 지금뿐이었다.

아주 조금만 시간이 흐른다면, 저 미친놈도 자신을 문 좀비와 똑같이 바닥에서 일어서겠지.

그리고 가장 가까운 먹잇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

계속해서 짜증 나게 앞을 가로막던 병신과 뒤에서 나를 기습하려 했던 좀비가 동시에 사라진 지금.

지금 이 순간, 서둘러 일어서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좀비 처치에 관여하셨습니다.]

[휴면 상태 해제.]

[속칭 ‘폭군’ 활성화.]

처음으로 보게 된 새로운 메시지였다.

그 어떤 개지랄로도 넘길 수 없던 다음 페이지.

그다음 페이지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엄마아아아아― 끄흐윽― 엄마아아―”

죽은 자가 일어나 산 자를 씹어먹는 지금에서야.

수목을 조경해야 할 전정기로 좀비의 생살을 헤집고―

40대는 훨씬 넘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엄마를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내가 살아가던 세상이 끝난 후에야.

“엄― 끄륵― 끄르르르륵―!”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후에야.

“끼에에에에에에엑―!”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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