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Fuck↗yo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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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아가 정시우와의 전투에서 예상 외의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 랜드필에 손님(이라 쓰고 인질이라고 읽음)으로 오게 된 누비스는 낯설고 어색한 환경 속에서 숨 막혀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화를 나눠 본 유일한 상대인 랜드필의 선생 라그나 아마게돈은 의외로 여러가지 다양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몸이었고, 랜드필과 엘드랜드 사이의 평화 조약의 증인으로서 랜드필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아직 이곳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 시간은 엘드랜드라면 눈부신 태양이 밝고 뜨거운 햇살을 흩뿌리고 있을 테지만, 지하 도시 랜드필에는 햇살이 그렇게 깊이 닿지 못 하였기에 그 대신 여기 저기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광활한 사막 대신 날카롭게 깎인 가파른 협곡 뿐이고, 주민들 또한 더위를 피하기 위한 얇은 천 옷이 아닌 추위나 습격 등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거나 혹은 걸레만도 못한 누더기를 간신히 걸치고 있었다.
랜드필의 환경은 확실히 엘드랜드에 비해 턱 없이 열악하다. 지속적인 외부에서 사람들이 유입되지만, 모두를 수용할 넓은 땅이 없기 때문에 그 부족한 곳을 차지하고자 갖지 못한 자들이 죽어나가며 인구 수는 늘어나지 않는다. 치안도, 경제적 풍요도 부족한 도시. 버려지고, 쫓겨난 이들이 모여드는 마지막 보금자리. 아마 계속 대장군으로서 머물고 있었다면, 결코 올 일이 없던 곳.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랜드필의 극악의 환경이 누비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응? 뭘 보고 있어~?"
"아... 그냥, 사람들 구경을 좀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제가 살던 곳과 큰 차이가 있다 보니..."
이 낯선 땅에서, 유일한 대화 상대는 랜드필의 선생의 반려라고 알려진 저 아름다운 몽마 뿐. 여자로서 자신을 가꾸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누비스조차 순간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남자를 매혹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봐도 무방한 미모의 서큐버스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저 구석에서 먼지 쌓인 의자 하나를 끌고 와 누비스의 맞은 편에 앉았다.
"확실히 누비스가 살던 곳과 이곳은 차이가 좀 크긴 하겠네. 그래도 어쩌겠어? 앞으로 여기서 살아야 하는 데."
"..."
빌가메스의 무모한 침공 계획은 오히려 랜드필의 선생에게 왕국을 삼킨 일곱 괴물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만들어 줌과 동시에 자국의 힘을 크게 깎아 먹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고, 국력이 약해진 엘드랜드의 제물을 탐내는 근처 소도시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빌가메스와 랜드필의 선생은 몇 가지 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의 내용은 엘드랜드 쪽에서 랜드필에 필요한 자본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대가로, 랜드필에선 강력한 힘을 가진 용병들을 엘드랜드로 보내 주변 도시의 침략을 막아주겠다는 것.
또한 랜드필의 선생은 조약의 성사되었다는 증거로서 각자 한 명씩, 자신 쪽의 인물을 상대에게 보내자고 제안했다. 빌가메스에겐 반려나 후계가 없었고, 피가 이어진 친척들은 먼 옛날에 돼도 않는 어설픈 각오로 왕좌를 탐냈던 죄로 형장의 이슬이 된 지 오래였다. 결국 그가 원한 것은 대장군 누비스의 신변이었고, 교환할 인물로서 그가 선택한 것은... '추락하는 천공의 재앙'이었다.
'추락하는 천공의 재앙'. 왕국을 삼킨 일곱 괴물 중 하나이며, 동시다발적 대규모 침공 작전을 위해 붉은 모래 군단의 병사들이 탔던 비행선들을 지상으로 떨구어 대량의 인명 피해를 냈던 무시무시한 존재. 그 괴물은 도적단과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엘드랜드를 지키는 수호자임과 동시에 엘드랜드의 동행을 주시하기 위한 감시자였지만, 누비스는 단순한 인질이었다. 언제나 당당했던 그녀가 이토록 무기력하고 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결국 엘드랜드는 멸망을 면했으나, 결국 이 열악한 도시의 속국 신세가 되어버렸기에.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네?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앞으로 한동안은 이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런데 평생 방에 가만히 박혀 있을 수 만은 없잖아?"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원치 않게 오게 된 도시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할 터인 이 도시의 식량만 마구 축내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식량의 출처가 자신의 고향인 엘드랜드인 것을 알고 있다면 더더욱.
"잘...모르겠네요. 여태껏, 제 스스로 할 일을 생각할 적은... 없었으니까요."
누비스는 엘드랜드의 대장군이었다. 붉은 모래 군단을 이끄는 최강의 전사였다. 황금의 왕국 엘드랜드의 부를 탐내는 근처 소도시의 병사들과 도적들은 차고 넘쳤고, 그 작은 도시와 소규모 도적단의 힘 정도로는 엘드랜드의 대규모 군세를 상대로 승기가 전혀 없었지만, 이따금 그 약탈자들이 의견 일치로 서로 연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누비스는 주기적으로 도적단을 토벌하였다. 언제나 일은 차고 넘쳤고,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눈 뜰 새도 없이 바빴으니까.
그러나 이곳은 엘드랜드가 아니고, 휴식 없이 들이 닥치던 의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건가. 누비스는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전투와 전쟁 이외에, 무언가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으흠... 내가 보기엔, 두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있어."
"어떤 선택지입니까?"
"우선 첫 번째. 대장군이라는 직책이 있으면, 분명 전투나 전쟁에 익숙하겠지? 그럼 그 경험을 살려서, 랜드필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들을 훈련이라도 시켜주는 게 어때? 전투 교관 같은 느낌으로."
전투 교관... 나쁘지 않은 길이다. 누비스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저 싸우는 것 뿐이었으니. 허나, 누비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제게 그럴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자격?"
"일단 엘드랜드에서 온 손님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상은 패전국의 포로인 제게 이곳 주민들에게 전투 훈련을 시킬 권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으흠.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네."
몽마가 성큼, 한 걸음 다가온다. 그 몸에서 풍기는 묘하게 탁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향기에, 누비스는 순간 머리가 멍 해졌다. 그녀는 언제나 단단한 판금 갑옷 아래에 감춰져 있던, 크기나 형태로 따지면 결코 부족하지 않을 누비스의 왼쪽 젖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며 입가에 음탕한 미소를 띄웠다.
"그 매력적인 몸을 사용해서, 우리 자기를 만족시켜주는 거지."
"읏...! 그,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에이, 뭘 남자 몸 한 번 본 적 없는 숫처녀 같이 모르는 척이야? 그 나이면 알건 다 아는 나이잖아?"
도대체 알긴 뭘 안다는 건지. 누비스는 당혹감을 금치 못 했다.
엘드랜드가 더운 날씨 때문에 옷차림이 꽤 가벼운 편이고, 그로 인한 살결의 노출이 많기 때문에 한창 피가 끓어오르는 젊은 이들이 간혹 저들끼리 눈이 맞아 어디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서로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누비스에겐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군인인 아버지의 밑에서, 남자보다 더 남자처럼 자라온 데다가 성인이 되자 마자 전쟁터에 참여한 후 빌가메스가 그 공을 높이 삼과 동시에 백성들에게 선보일 영웅으로서 선택한 그녀를 전폭 지지하여 대장군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누비스는 이성 과의 관계에 아주 담을 쌓고 지내었다.
그랬던 누비스였기에 랜드필로 오게 된 날 밤 중에 보았던, 가히 짐승의 교미를 연상케 하는 랜드필의 선생과 몽마 사이의 그 격렬하고 낯뜨거운 교접에 압도 당했다. 랜드필의 선생이 성적으로 매우 방탕하다는 소문도 듣고 있었고, 그의 곁에 붙어 있는 몽마가 보통 미모가 아니니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으리라 추측하긴 어렵지 않았지만... 막상 정말로 두 사람이 몸을 섞어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자신의 팔뚝보다 굵고 흉악한 것이, 그 비좁은 곳을 마구 파헤치며 찔러대는 데도 불구하고 아파하기는 커녕 기분 좋아하며 매달리는 여인, 그리고 그 모습에 흥분하여 마치 발정기에 접어선 짐승마냥 그녀를 잡아 먹을 듯이 거세게 허리를 흔들던 사내. 남녀의 관계를 서적을 통한 지식으로만 접했으며 그마저도 관심이 거의 없어서 문외한이었던 누비스에겐 엄청난 쇼크였다.
그리고, 이 여자는 지금 누비스에게 경악스러운 행위를 권유한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자신과 몸을 섞었던 랜드필의 선생을 대상으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나, 남자와 여자의 육체 관계란, 후계를 잇기 위한 숭고한 행위입니다! 단순히, 그, 쾌락만을 쫓아선..."
"아, 그거 말인데."
몽마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젖가슴과 음부 이외의 다른 살은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파렴치한 복장이었기에, 누비스는 그녀의 아랫배에 나타난 묘한 분위기의 분홍빛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그건..."
"사람은 밥을 먹고 뱀파이어는 피를 마심으로서 영양을 공급하듯, 우리 몽마들에겐 정기가 곧 영양분이야. 그리고 정기를 섭취하기 위한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성관계지. 즉, 서큐버스에게 있어서 섹스는 식사나 다름이 없단 말이지. 그런데 보통 생명체들에게 있어서 성 행위는 대를 잇기 위한 행위란 말이야. 그럼, 우리 서큐버스들은 어떻게 번식하는 걸까? 설마, 식사 몇 번 하다가 재수 없게 아홉 달이나 배가 부른 상태가 될 수는 없잖아?"
"어? 그, 그건..."
누비스는 마땅한 답을 내뱉지 못 했다. 그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서큐버스들은 어떻게 번식을 하는 거지?
"인간의 목은 기도와 식도로 나뉘어지지. 음식과 물을 섭취할 때는 식도가 열리지만, 호흡을 할 때는 기도가 열려. 서큐버스의 이쪽도 비슷한 원리야. 식사를 할 경우에는, 내부에 들어온 정기가 신체 곳곳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저장소가 열리지. 하지만 식사의 때가 아니라면... 그 대신 평범하게 자궁 쪽이 열리는 거야. 마음에 든 수컷의 씨앗을 받아 들이고, 그것을 잉태할 수 있도록."
"...꿀꺽."
노골적인 표현을 동반한 자극적인 이야기였으나, 누비스는 그녀의 입을 틀어 막지 않았다. 여자로서 자신을 전혀 가꾸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남녀의 관계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그래서요?"
"나는 서큐버스치고 그렇게 오래 살지 않은 편이지만, 다른 몽마들 못지 않게 많은 정기의 맛을 봤어. 그리고 그 중에서... 단연코, 우리 자기가 가장 굉장해."
"그... 듣기론, 몽마들은 경험 없는... 사람의 정기를 좋아.. 하지 않나요?"
누비스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모노의 눈이 이내 호선을 그렸다.
"아항, 우리 대장군님은 안 그런 척 하면서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꽤 많았구나?"
"그,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군대라는 환경 특성 상, 병사들이 욕구가 워낙 해소되지 않다 보니 여기 저기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그,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더더욱... 말이죠."
"흠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만 맞고 반은 틀려."
몽마는 그 부드럽고 가느다란 손으로, 누비스의 아랫배를 야릇하게 쓸어 내렸다.
"동정의 정기는, 일종의 숙성된 와인 같은 거야. 가끔가다 한 번 정도 먹어볼 만한 맛이지. 하지만 와인이라는 것도 무조건 오랫동안 숙성 시킨다고 좋은 게 아니라 숙성 기간과 보존 방법에 따라서 그 맛이 천차 만별이란 말이지? 같은 동정이라고 해도 평소에 몸을 건강히 유지하는 쪽은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의 고급 와인이라면, 몸이 뚱뚱한데 피부도 엉망이고 성격도 거지 같은 애들은 곰팡이 향이 풀풀 풍기는 썩은 물인 거야. 그리고... 사람이 매일 고급스러운 만찬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그런 면에서... 우리 자기는 최고지."
몽마는 또 다시 허기가 몰려온 것인지, 배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셨다.
"동정이 숙성된 와인이라면, 우리 자기는 블렌딩이 잘 된 커피나 샴페인인 셈이야.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아서 쉽게 질리지 않는데, 거기에 나오는 양도 보통 사람의 수십 배나 되지.게다가여러 여자들의 속살을 맛본 덕인지 서로 다른 각종 음기들이 조화롭게 혼합된, 그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다채롭고 복잡한 맛이란...! 흐흥. 이제 내가 왜 너에게, 우리 자기와 몸을 섞으라고 제안을 하는지 알겠지?"
몽마에게 있어서 성 행위는 식사이다.
그리고 이 서큐버스에게 있어서 랜드필의 선생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놓쳐선 안 될 최고의 식사이며, 동시에 날이 갈수록 그 맛이 한 단계 높아져 가는 진미. 그리고 식사의 질을 높이는 방식은, 그가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것.
"게다가 우리 자기가 눈 하나는 또 높아서 말이야. 아무 여자나 안지 않고, 굉장히 질이 좋은 여자들만 골라서 안거든? 그리고 너는... 우리 자기의 취향에 든단 말이지."
"....그런 점에서 보면, 저보다 나은 여자가 있지 않습니까?"
"응?"
"그, 최근에 랜드필에 도착했다는 모험가 파티 말입니다. 그 파티의 리더인 여자, 굉장히 보기 드문 미인이더군요. 미모로 따지면, 그 여자가 저보단 더 낫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비행선을 타고 랜드필에 도달한 모험가들을 떠올린 누비스가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말한 여자는 데스페라도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모험가 파티 '로즈퀸 나이츠'의 리더인 장미 꽃의 검사 '로즈네스'였다. 뛰어난 전투 능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꽤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미녀 모험가. 그렇지 않아도 화려한데, 이 랜드필에선 특히 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서큐버스는 그런 사람이 있었나 싶은 얼굴로 잠시 고민하다, 마침내 그녀가 말한 인물이 누군지 떠올린 듯 "아! 그 여자?"하고 외치더니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여자는 안 돼."
"네? 어째서죠?"
"음식이란 건, 겉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거든. 눈으로 보기엔 굉장히 탐스럽고 맛있어 보이지만, 막상 베어 물면 단 맛 대신 쓰고 떫은 맛이 나는 경우가 있잖아? 그 모험가 여자는 그런 경우야."
우웩. 모노 릴리스는 맛 없는 음식을 뱉는 듯한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 여자는, 질 나쁜 기름에 아주 푹 담근 튀김이야. 너무 느끼한 나머지, 한 입 깨무는 순간 삼키기는 커녕 입 안이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식욕을 확 떨구는 그런 음식. 우리 자기가 그런 여자를 안을 이유가 없을 뿐더러, 만일 그 여자랑 몸이라도 섞으면 그 순간 정기의 맛이 확 떨어져 버릴 거야. 어떻게 최고의 재료만을 엄선해서 완성된 고급스러운 스튜에, 저주 받을 초코 민트를 떨구는 짓이지. 음식 맛을 망치는 짓이라고."
그녀의 설명을 들은 누비스는, 차마 자신이 그 초코 민트라는 음식을 호불호가 심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
"당신이, 랜드필의 선생이신가요?"
어라, 이거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도계의 도성운, 홍등회의 양마담과 함께 조직 내부 인사 정리 및 시설 점검과 루크 녀석이 벌여 놓은 일의 뒷수습을 위해 이곳 저곳을 바쁘게 쏘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자신감과 오만으로 점칠 된 높은 목소리. 도대체 이번엔 누가 나를 불렀나 싶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 칙칙한 도시에서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한 여자와 그 추종자로 보이는 무리들이 내게 걸어왔다.
모험가...인가? 추종자 네 명이 입고 있는 동일한 디자인의 투박하면서도 꽤 실용적인 형태의 갑옷을 보면 모험가가 맞는 것 같은데, 막상 그들의 중심에 있는 여자는 무슨 로맨스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금색 롤빵 머리에, 왕자님이 개최하는 무도회에서 입을 법한 붉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디 다른 도시의 귀하신 분의 딸이 모험가 넷을 호위로 고용해서 온 건가 싶으면서도, 여인의 옷 안 쪽 여기 저기에 숨겨 놓은 암기들을 생각하면 저 여자도 그냥 세상 모르는 귀한 집의 아가씨는 아닌 것 같은데...
"이 도시에서 선생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맞는데, 댁은 누구셔?"
"제가 누군지 모르신다고요? 아하하. 농담도 잘 하셔라."
아니, 시발 네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전에 본 적 있는 사이도 아닌데, 내가 알 턱이 없잖아? 그러자 저 여자는 여전히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어디선가 꺼낸 다소 촌스러운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요란스럽게 '오호호호'하고 웃어 보였다. 와, 진짜... 이런 말 하긴 싫었는데, 되게 공주병 말기 환자 같다.
얼굴은 꽤 이쁜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 얼굴 점수를 죄다 깎아 먹는 느낌. 진짜 얼굴이 아까운 여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근 데스페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츠나세 쿠린, 그 여자랑 당신이에요."
"나?"
"네. 당신이 츠나세 쿠린에게 그 막강한 힘을 준 후로, 그녀가 여기 저기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거든요. 얼마 전이라면 감히 꿈도 못 꿀, 그 유명한 에밀과 에닐 쌍둥이가 있다는 에드릭 파티에 들어갈 정도이니 말 다 했죠."
에드릭 파티? 아, 그 머리 나쁘고 싸가지 없는 쌍둥이들을 파티원으로 데리고 있던 백발 마법사? 근데 그 파티가 유명한 놈들이라고? 그 허접한 루크도 뚫었던 내 방어를 조금도 돌파 못 했던 그 머리 나쁜 쌍둥이가 있는 파티가?
"그 여자만 없었다면, 지금 데스페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파티는 제 파티가 되었을 텐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엄청난 힘을 깨우쳐선 위험도 높은 던전을 단 번에 공략해 버렸으니, 데스페라도의 모두가 그 여자의 이야기 뿐이라고요! 그 여자가 벌이 일 때문에, 제가 달성한 업적도 죄다 묻혀버리고...! 정말, 그런 예절도 부족한 여자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럼 남들이 있는 앞에서 여기 없는 사람의 뒷담화를 신나게 까는 넌 얼마나 예절이 잘났다는 걸까? 이래서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중요한 거야.
"어쨌거나,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랍니다. 저도, 그 여자와 같은 힘을... 아니, 그 여자보다 더 강한 힘을 얻고 싶거든요."
이름도 모를 모험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모습에 도성운이 칼집 위로 손을 얹었지만, 그녀의 파티원 네 명도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렸다. 나는 손을 내저어 도성운을 진정시켰다. 어차피 저쪽에서 지금 당장 내게 적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괜히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해봤자 이쪽만 손해다. 물론 그걸 빌미로 길드 마스터에게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괜히 그의 성질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이죠... 당신, 제게도 그 힘을 주지 않겠나요?"
그리고 그녀는, 나를 유혹하듯 가슴골을 슬쩍 들추며 물었다.
허, 아까부터 혼자서 고귀한 아가씨인 척은 다 하더니 마지막엔 창부마냥 제 몸을 노출하며 대놓고 유혹을 하시겠다? 그녀의 가슴은 확실히 예쁜 형태였지만, 그 행위에 담긴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던 탓에 조금도 끌리지 않았다. 거기에 왠지 모르겠지만 내 뒤에 있던 양마담이 온몸에서 굉장히 불쾌하다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고.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일단 확인은 해봤는데... 하, 정말 형편 없는 수준이다. 내가 손을 써주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심의를 깨우칠 가능성이 한 없이 0에 수렴하고, 설령 심의를 각성시켜 준다고 해도 그렇게 괜찮은 힘이 나오지도 않아 보인다. 이런 여자한테 심의를 쥐어 줘 봤자, 괜히 통제하기 힘든 골칫거리 하나 만들면서 힘을 낭비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확고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거절한다. 그 힘은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거든. 내 기준에서 적합한 사람에게만 허용한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이토록 딱 잘라서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며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물었다.
"하아... 그럼 저는 그 적합한 사람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요?"
"그래."
"정말로요?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가 간절히 부탁을 하는 데도?"
우웩. 더는 못 참겠다. 세상에, 자기 입으로 자기가 미녀라고? 그러니까 얼굴이 이쁘면 뭐 해, 속 알맹이가 형편 없는데.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는 기준에, 얼굴은 포함되어 있지 않거든."
"흐응, 그러지 말고... 어때요? 당신이 바란다면, 이 쪽도 허용할 수는 있는데..."
"거절한다.넌 내 취향이 전혀 아니라서."
아무래도 츠나세 쿠린에게 힘을 준 사람이 나라는 것, 에밀과 에닐 쌍둥이가 덤볐다가 개처럼 깨진 것, 그리고 내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몸으로 유혹해서 힘을 받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모양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그 계획이 성공할 일은 없다. 입이 재앙이라고, 쓸 데 없는 말로 제 매력을 깎아 먹는 여자를 굳이 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꼴리지 않는다.
알몸 조각상 예술품을 보고서 발기를 하는 놈이 없는 것처럼, 이 여자에게는 '꼴림'이 없다!
애초에 집에 돌아가면 자기 고향을 지키기 위해 포로의 신분으로 찾아온 건강미 넘치는 여전사라는, 엄청나게 꼴리는 여자가 있다고. 그런데 이런 겉만 번지르르한 불량 식품 년한테 눈길이 가겠냐? 난 돌아가서, 그 존나 꼴리는 초콜릿 복근을 선명하게 핥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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