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엘드랜드의 자본력은 세계 제이이이일!!(4)
* * *
"...감히."
뿌득, 뿌드득.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가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고고하고 고귀한 왕의 가면을 벗은 빌가메스가 이를 뿌득뿌들 갈며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엘드랜드는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동시에 가진 것이라곤 돈 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그것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지킬 능력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돈이 있든 그것은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빌가메스는 엘드랜드의 국방력이 특히 더 힘을 쏟아야만 했다. 자신의 왕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털어먹을 수 있는 만만한 노다지 따위가 아니라, 감히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강대국임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붉은 모래 군단의 대장군 누비스는 사막의 신에게 선택 받아 가호와 권능을 다루며, 단련된 전투 능력과 뛰어난 지휘 능력으로 엘드랜드의 국방력을 담당하던 일등 공신이다. 빌가메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수많은 전장을 활보하며 이름을 날린 누비스는, 단순히 엘드랜드의 장군을 넘어서 엘드랜드가 단순히 부유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힘을 갖춘 나라라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였다.
그런 대장군이, 외국에서 온 자에게 쓰러진다?
그것도 오래 전부터 매우 이름을 날린 거장들도 아니고, 최근에서야 조금씩 소문이 돌기 시작한 이방인 하나에게?
그것은 엘드랜드가 감히 그 어떤 외적도 넘볼 수 없도록 안전을 보장함과 동시에 부유한 이들이 산다는 인식을 정면에서 무너트리는 행위였다.
"감히, 감히... 짐의 앞에서... 이러한 모욕을...!"
오랫동안 엘드랜드가 타국에 얕보이지 않도록 각종 노력을 기울이며 자국의 힘을 기르는 데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었던 빌가메스에게 있어서, 나는 갑자기 나타나서 그가 열심히 쌓은 모래성을 발로 걷어 차서 무너트린 미친 놈일 것이다.
그러길래 누가 갑자기 대장군을 보내라고 했나? 그냥 좋게 좋게 서로 타협을 해 가면서 적절하게 거래를 했으면 좋았을 걸, 굳이 자신이 이득을 보기 위해 우위를 차지하겠답시고 무리수를 던졌으니 그만한 역풍은 본인이 감당해야지.
"어명이다!!!"
근데 보통 저런 류의 녀석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는 놈이란 말이지. 그리고 이 상황에서, 저 녀석이 탓할 상대는 하나 뿐이지.
"대장군 누비스를 공격하여 상처 입힌 저 자를, 지금 당장 구속하라!!"
"뭐? 아니, 그게 갑자기 뭔 개소리야? 이건 어디까지나 공정한 결투의..."
"이 엘드랜드의 지배자는 짐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선, 짐의 말이 곧 법이다!랜드필의 선생, 라그나 아마게돈! 네놈을 대장군 누비스 상해 및 살인 미수, 국가 안보 위협 등에 대한 죄목으로 이 자리에서 즉시 구속을 명하겠다!"
...뭐?
"이 엘드랜드에서 짐의 말을 거스르는 것은 곧 법을 어기는 것! 그리고 라그나 아마게돈, 네놈은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제시한 석방의 조건을 받아들였지. 대표적인 세 가지 제약을 제외하더라도, 하나라도 법을 어기는 순간 석방은 취소되고 다시 네놈은 스카이론의 새장에 갇히는 것을 잊지 않았겠지!"
야, 잠깐.
"허나 이 나라에선 짐의 법이 우선이기에, 네놈은 스카이론의 새장으로 향하기 전에 짐의 왕성 지하 감옥에 투옥되어 이후에 내려질 처벌을 대기해야 한다!"
"아니 씨발 그게 뭔 개소리야!!"
아니 미친. 내가 스카이론의 새장에서 석방되는 조건 중에 '타인에게 동의 없이 상해를 끼칠 수 없음', '독자적인 세력 구축 및 타 세력 소속 불가', '최대 개인 보유 자산 제한' 이 세 가지 외에도 '법을 하나라도 어기는 순간 석방이 취소된다'는 조항이 설마 빌가메스 네가 넣은 거였냐? 만약에 나를 어찌 하려다가 수틀리면, 석방의 조건을 들먹이면서 나를 겁박하려고?
....하. 그래,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나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 찾아왔는데, 나를 갑을 관계에서 을로 만든 후에 마음대로 착취하려다가 그게 계획대로 안 되니까 이딴 더럽고 치사한 수작을 부리시겠다?
"경비대! 저 자를 감옥에 투옥하라!!"
나는 네놈들이 정한 불리한 조건에 맞추어 게임을 해주려고 했는데, 네녀석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패배할 경우를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그런 꼼수까지 생각해 두고 있었다고?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황갈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내게 창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온다.
마음 같아선 이 경비대를 전부 날려버리고, 빌가메스 저 망할 금태양 새끼의 목을 따버린 후에 랜드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래선 뒷감당을 할 수 없다. 내가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하나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한 일의 정당성의 유무와 관계 없이 나라는 존재가 가진 위험성 때문이라도 다른 도시의 대표자들은 나를 배제하려고 들 테니까.그것도 정의의 여신이 이 세상에 재앙을 가져올 존재라고 한 예언의 당사자라면 더더욱.
시발, 그 유스티아인가 뭔가 하는 얼굴 본 적도 없는 여신 년. 내 인생에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넌 시발 이제부터 내 안에서 루크, 그 폐급 새끼랑 동급이다.
어쨌든 저들이 아무리 비겁한 수단을 쓰더라도, 나는 끝까지 정당한 방법으로만 싸워야만 한다. 지극히 불리하고 불합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내게 충분한 힘이 없으니까.
누비스 대장군의 경우 상호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결투였으니 문제 삼을 것 없지만, 내가 여기서 빌가메스의 의견에 저항하며 그의 병사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순간, 나는 누명을 쓴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범죄자가 된다.
솔직히 나를 이유 없이 좇같아 하는 놈에겐 나를 좇같이 느낄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원래 내 행동 패턴이긴 한데, 그것도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의 힘과 권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누가 잘못했든, 일단 저 쪽은 가장 부유한 나라의 정통한 지배자이지만 나는 버려진 도시의 타칭 지도자에 불과하니까.
"장 센. 나중에 다시 보자."
"선생님? 무엇을..."
장 센이 뭐라 하기도 전에, 나는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었다. 그 모습에 나를 둘러 싸고 있던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병사들 중 가장 앞에 있던 한 명이 대표로 나에게 말했다.
"피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순순히 투항하시죠."
병사는 나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지만, 쥐고 있는 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나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본인도 이게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의 힘으로는 나를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모양이다. 그래, 너네가 뭔 죄가 있냐. 윗대가리가 까라면 까야지.
"창 내려. 내 발로 갈 테니까."
"투항하지 않으... 네?"
"내 말 못 들었어? 내가 직접 내 발로 걸어간다고. 그러니까 무기 내리고, 길이나 안내해."
병사들은 대장군도 손쉽게 쓰러트리는 상대가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투항해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곧 윗사람이 내린 지킬 수 없는 명령을 따르지 못한다는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투구 아래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차피 빌가메스 저 자가 아무리 제 마음대로 날뛴다고 해도, 다른 도시의 대표자들이 있는 데 멋대로 내 능력을 착취해서 이상한 짓을 꾸미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지금은 일단 이들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이다.
그러나.
"뭘 멋대로 무기를 내리는 거냐? 저 자는 죄인이다. 그것도 짐의 말을 거스른 죄인이란 말이다. 당장 죄인을 감옥으로 '끌고' 가라."
그 상황을 탐탁치 않게 본 빌가메스의 추가 명령에, 병사들의 얼굴이 다시 사색이 되었다. 기껏 죄인이 협조적으로 나와주는 데, 왕이라는 작자가 일부러 상대를 자극하는 말을 하니 그 죄인을 상대해야 하는 말단 입장에선 속이 탈 수 밖에 없겠지.
대장군을 쓰러트린 외부인이, 엘드랜드의 믿음직한 경비들에 의해 제압되어 감옥으로 끌려간다. 그 장면을 연출함으로서 시민들에게서 엘드랜드의 국방력에 대한 신뢰를 다시 얻고 싶은 모양인데... 진짜 귀찮은 성격이네.
"저, 저..."
"...그래, 당신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 다 저 꽉 막힌 놈이 대가리니까 별 수 없지. 자, 끌고 가."
나는 손에서 장갑을 없앤 후,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듯 두 손을 뒤로 돌려 등에 붙였다. 그러자 병사들이 마지못해 다가와, 양옆에서 내 팔을 잡았다.
저 위에서 내 모습을 꼴사납다는 듯 비웃으며 내려다보는 빌가메스의 얼굴을 두 눈에 똑똑히 새겨두며, 나는 병사들에게 끌려 감옥으로 향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건데, 그렇게 온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시겠다 이거지?
빌가메스, 넌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내가 이 아티피아에서 가장 먼저 혼란에 빠트릴 나라가, 네가 그토록 아끼는 엘드랜드인 걸로 지금 막 결정이 났거든.
*
빌가메스에겐 특별한 힘이 있다.
엘드랜드의 왕가에 내려져 오는 힘, 그것은 왕위에 앉은 이는 자신의 영토 내에 있는 자국민에게 그 어떤 명령이든 내릴 수 있으며, 명령을 들은 백성은 반드시 그 것에 따라야만 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일종의 주술적인 과정이 곁들어진 힘으로, 왕가의 권력을 실질적인 힘으로 구현한 이 특별한 주술 덕에 그 누구도 빌가메스에게 반기를 들 수 없었다. 반란을 통해 왕위를 노리는 자는 결국 그 왕국에 소속된 사람일 수 밖에 없는데, 왕이 '그만'이라고 한 마디만 하는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으니까.
"네놈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다."
나를 이 차갑고 좁은 지하 감옥에 가두었던 빌가메스는, 이 더럽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 자기 발로 직접 행차하여선 나에게 말했다.
"짐의 심기를 거스르고, 이 왕국의 무력을 상징하는 대장군을 해함으로서 왕국의 안정을 어지럽힌 죄인이여. 그대에게 내려진 판결은, 30시간 봉사행이다."
"..."
"네놈은 30시간 동안 엘드랜드의 성실한 시민으로서, 충성을 다해 왕국에 봉사함으로서 자신의 죗값을 치루는 것이다."
봉사는 개뿔.
그냥 자기가 명령을 내려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멋대로 나를 엘드랜드의 시민으로 만들겠다는 셈이잖아. 그리고 30 시간동안 하고 싶은 걸 다 한 뒤에, 나한테서 다시 엘드랜드 시민권을 박탈한 후 그 봉사 시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은 전부 나한테 떠넘기겠다는 거지.
마치 굉장한 자비를 베푼다는 듯이 말하지만, 실상은 '넌 이제 내 노예다'라고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퍼억!
"컥..."
느닷없이 창살 사이로 들어온 발길질에 복부를 가격당하자,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갑자기 왜 쳐 때리는 겁니까, 이 미친 놈 씨?
"뭐하는 거지? 짐의 자비로운 결정에 감사를 표하지 못할 망정, 감히 그런 불온한 생각을 품은 눈으로 짐을 노려보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겐가?"
자신의 향한 시민들의 눈이 없어지자, 이 빌어먹을 금태양 새끼가 이제서야 본색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왕이라는 높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하고 비열한 성격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착한 척, 자비로운 척 온갖 유세를 다 떨다가 뒤에서 이런 식으로 제 뒤틀린 성정을 이토록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니. 잘도 여태까지 자비롭고 인도적인 명군을 연기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잊지 말도록. 네놈은 지금부터 30 시간동안 엘드랜드의 시민으로 취급되며, 그에 따라 네놈의 처우에 대한 결정권은 짐의 손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짐이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네놈에게 스스로 목숨을 끓으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웃어? 우서어어어어??
하하... 그래, 이 상황이 웃겨? 아주 웃기지? 그래, 지금 실컷 웃어둬.
네가 그토록 아끼는 이 나라가 뜨겁게 타오르는 불바다가 되는 동안에도, 그렇게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지 그 때 가서 한 번 보자.
*
"후....."
빌가메스는 기쁘면서도 짜증이 난, 서로 정 반대되는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지하 감옥을 나왔다.
랜드필의 선생이 가진 능력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제 까짓게 아무리 뛰어나 봤자 기껏 해야 신의 권능과 가호의 하위 호환 정도겠지, 라는 그의 생각을 비웃는 듯한 그 엄청난 광경.
장 센이라는 후줄근한 사내가 부리는 능력 정도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누비스가 언월도나 다른 권능을 쓰지 않고, 그저 모래로 변하는 권능과 주먹질 만으로 제압할 수준이었으니까. 그 정도의 전력은 다른 도시에서도 널리고 널렸으니, 크게 신경 쓸 정도가 아니었다.
"누비스 대장군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패배한 것은 정말 짜증나지만, 그로 인해 엘드랜드의 국방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흔들리는 점은 정말 뼈아프지만, 그래도 그 정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수확이로군. 랜드필의 선생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전투에서 선생이 나서는 순간, 상황이 역변했다.
분명히 누비스에게 단 두 방에 쓰러진 한심한 사내와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데, 정작 그 능력의 주인보다 압도적으로 월등한 활용성을 보여주었다. 몸놀림을 보면 특별히 싸움을 잘 하거나 익숙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신기한 능력을 까다롭게 구사하며 자신의 최강의 패인 대장군을 가볍게 압살하는 모습은 그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내었지만, 동시에 그가 여태까지 숨기고 있던 질척한 하나의 욕망에 불을 붙였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 중 최강자, 길드 마스터 정 시우.
빌가메스가 끝내고자 했던, 서로 다른 두 파벌의 신들이 배후에 있던 이방인과 고대인 사이의 전쟁. 마치 이 세상에 남는 것이 없을 때까지 이어질 듯한 기세의 그 전쟁을 종식시킨 것은 고대인들 중에서 가장 이름 높은 영웅이었던 빌가메스도, 수많은 신들을 등에 업고 온갖 권능을 흩뿌리며 고대인들의 재앙과도 같았던 그 망할 이방인들도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참전한 정 시우, 그였으니까.
분명히 이 아티피아는 수많은 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탓에 어느 한 신의 힘만으로 움직일 수 없을 텐데, 마치 이 세상 전체가 그를 위해서 움직이듯 정 시우가 나서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빌가메스가 바라던 방향이 아니었다.
그 전쟁은 이 세상을 버린 신들과 이 세상을 다시 새롭게 만든 신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이 세상의 정당한 주인인지 그것을 따지기 위한 싸움이었고, 빌가메스는 자신들을 버린 신이 아닌 자신들에게 새롭게 기회를 준 신들에게 이 세상을 주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의 결실 끝에 있던 것은, 어딘지도 모를 세계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제 3자가 긴 전쟁을 순식간에 끝내고, 이 세상의 소유권을 양쪽에게 반 씩 나누어 준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고 허무한 결말이었다.
이 세상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신 그분들의 것인데, 우리들을 한 번 버린 자들에게 이 세상의 절반을 넘겨 준다고? 이 전쟁과 아무런 상관도 없던 부외자가 무슨 자격으로?
불만을 품은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바란 것은 절반 뿐인 세상이 아니라, 자신들이 버렸음에도 다시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이 세상을 다시 독차지하는 것이었으니.
그런 두 세력의 싸움은, 정 시우라는 한 이방인이 가진, 도저히 일개 개인이 가질 법하지 않은 무력에 의해 억지로 중단되었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니, 양쪽이 공평하게 세상을 나눠 가졌다느니, 그건 그 망할 애새끼가 자기 마음대로 내린 결과에 불과하다. 단지 그에 불만을 제기할 힘이 없기에, 모두가 마지못해 수긍하는 척을 하고 있을 뿐. 길드 마스터 정 시우가 사라지면, 전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빌가메스의 눈에, 선생의 능력은 그 전쟁을 다시 시작하며 동시에 승리로 끝낼 열쇠였다.
신의 권능과 가호를 가진, 이 사막 왕국에서는 감히 대적할 자 없는 무적의 대장군을 가볍게 압살하는 능력이라니.
만일, 나의 모든 병사들을 그런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다면?
이 영광스러운 엘드랜드 왕국의 자랑스러운 십 만 명의 병사들이 각자 하나 씩의 그러한 능력을 품고 전장에 나선다면?
빌가메스의 눈에는 이미 한 명, 한 명이 0.1 정시우 급인 병사들 십 만 여 명이 그들의 적을 향해 매섭게 돌격하는, 그보다 장관이 아닐 수 없는 광경이 아련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애새끼가 감히 나를 버림패로 썼던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원치도 않는 자리에 앉아 고생하면서 계속 기다리던 것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제 다른 건 다 상관 없다 이거지? 어차피 이 세상은 네놈이 살던 세계도 아니니,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다는 시덥잖은 생각을 바탕에 두고 계산을 했을 테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이야."
그래. 설령 일인 군단이나 마찬 가지인 그 정 시우라도, 그런 재앙과도 같은 대군은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왜 랜드필의 선생에게 그토록 관심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랜드필의 선생이 가진 힘은, 정 시우라는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한 이방인에 의해 강제로 유지되는 이 불안한 힘의 균형을 단숨에 붕괴시킬 밸런스 브레이커다. 마음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불리한 상황을 단숨에 역전할 수 있는 엄청난 치트키다.
다소 강압적인 수단이라지만 그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정 시우 그 애새끼도 전혀 두렵지 않다. 선생의 그 능력을 활용하여 병사들을 무장시킨다면, 이 무의미하게 늘어지는 답답한 휴전을 끝내고 이 세상을 진정한 주인에게 다시 바칠 수 있다.
그렇게 망할 이방인들을 전부 이 세상에서 내쫓고서, 나와 나의 왕국은 영원토록 태평성대를 이루리라.
"크크크, 크흐흐흐흐, 흐하하하하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