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싸우지 말고 야스해!!(5)
* * *
스륵, 스르륵. 딸깍.
"큿....!"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수치심 어린 신음과 함께 그녀를 보호하는 의류가 또 한 벌 벗겨진다.
상대가 자신의 옷을 벗기려 드는 순간에 기절 시켜서 이 곳을 빠져나간다는 그녀의 계획은 사내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공중 분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아직 제 무기를 되찾지도 못한 상황임에도, 상대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취할 수 있는 먹잇감이 혹시나 맹독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확인하듯, 그는 그녀에게 알몸이 될 것을 요구했다. 그것도 그녀 자신의 손으로.
상대가 자신을 억지로 범하려고 드는 것이라면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이 보는 앞에서 자기 손으로 탈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성에게조차 맨 살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던 쿠린에게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이는 일은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남자가 조금 전까지 다른 여자와 폭력적인 육체 관계를 나누는 것을 눈앞에서 직관 한 직후라면 더더욱.
처음엔 양말, 다음은 겉옷, 이어서 상의 허리의 벨트, 그리고 바지까지. 이제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이라곤, 자신의 소중한 곳을 보호하는 연분홍색 속옷 두 벌이 전부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으나, 사내는 고개만 슬쩍 까딱 거렸다. 그것은 충분하다는 허가의 의미가 아닌, 남은 속옷도 전부 벗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재촉이었다. 쿠린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두 손을 등 쪽으로 뻗었다. 그리고 브레지어의 연결 고리를... 딸깍, 하고 풀었다.
"읏...!"
출렁.
압박 브레지어에 의해 답답하게 갇혀 있던 흉부가 해방되었다.
일반적인 여자 모험가들은 가슴이 그리 크지 않다. 분명 큰 흉부는 남자를 매혹 하는 수단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오지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이어가는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가슴은 커봤자 전투나 활동에 방해만 되는 거추장스러운 부위일 뿐이었다. 그 탓인지 제 자리에서 주문을 영창 하기만 하면 되는 마법사 계열이라면 몰라도,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며 격렬한 전투를 하는 전사 계열이나 은밀하고 신속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도적 계열의 모험가들 중에서 골드 등급 이상의 여자 모험가들은 흉부가 커봤자 A컵에 가까운 B컵이 대다수였다.
쿠린은 창을 사용하는 전사 계열의 모험가다. 따라서 그녀는 전투 중에 흉부가 방해가 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다소 답답하더라도 일부러 가슴을 최대한 압박하는 브레지어를 쓰고 있었다. 딱히 이성과의 연이 별로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 이 가슴은 전투에 방해만 되는 쓸 데 없는 물건. 다른 여자들이 갖고 싶어하는 큰 가슴이, 그녀에게는 그저 감추고 싶을 치부일 뿐이었다.
남들에게 결코 보이고 싶지 않는 부분을, 제 손으로 타인에게 공개한다.
게다가 쿠린을 더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내의 시선이었다.
선생. 이 지하 도시 랜드필에서 최근 가장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 본래 랜드필을 나누어 통치 하던 폭력 조직들을 단숨에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어선 결국 랜드필의 통합을 이룬 정체 불명의 이방인. 그리고... 아주 유명한 난봉꾼.
그와 한 번이라도 잠 자리를 가지지 않은 여인은 있을 수 있어도, 한 번 밖에 몸을 섞지 않은 여인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의 난봉꾼 기질은 유명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침대 위에서 라면 여자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그냥 흘겨 넘긴 것이 바로 어제 있던 일인데, 오늘의 쿠린은 그 말이 차마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뜨거우면서도 끈적한 시선. 만일 그의 시선이 형체를 가진 것이었다면, 그녀의 몸을 주무르고 희롱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성에게 성욕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은 불쾌한 일이지만, 그의 시선은 좀 달랐다. 일반적인 남자들이 가지는 정욕이 담긴 시선은 상대를 그저 자신의 성욕을 해소할 도구나 대상 정도로만 바라보는 불쾌한 것이었으나, 선생의 시선은 그들의 시선과 무언가 달랐다. 더 깊고, 무거운... 차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들었다.
그렇기에 쿠린은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몸 곳곳에 닿을 때마다 불쾌함이나 혐오감 대신, 정체 모를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익어갔다. 차라리 얼굴도 모르는 사람 수 십의 앞에서 맨 살을 드러내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사내의 시선은 무시무시했다.
"읏.....!"
쿠린이 자신의 몸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팬티까지 벗음으로서 그녀는 오늘 초면인 이성의 앞에서 천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흐음... 괜찮은 몸이군. 자, 그럼... 일단 거기 벽면에 손을 짚고, 이 쪽으로 등을 보이고 서도록."
이렇게 까지 했음에도 아직도 의심을 풀지 않은 것인지, 사내는 마치 위험 인물을 상대하는 치안 유지관이라도 된 듯이 그녀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그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쿠린은 그가 시키는 대로 옆에 있는 벽에 양 손을 짚고서 그에게 등을 보인 채로 섰고.
"이제 엉덩이를 뒤로 빼도록."
"....."
처음 보는 남자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자신의 치부를 전부 드러내는, 창부들이나 할 법한 음탕한 모습이 된 자신의 모습에 엄청난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은 광경이군."
나쁜 놈. 소리 없는 목소리로 이 매정하면서도 쓸 데 없이 여색을 밝히는 사내를 욕하며, 쿠린은 애써 수치심을 억눌렀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으니, 몸을 한 번 허용하는 것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자, 그럼... 네 몸으로 한 번 사정을 한 후에 널 풀어주도록 하지."
"미리 말해두지만... 안에는 절대 안 돼."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쿠린의 그런 단호한 태도에, 사내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피임 수단이 있어서 상관 없지만... 뭐, 좋아. 그 장단에 어울려주지. 자, 그럼..."
푸욱.
"히읏...!"
갑작스레 느껴지는, 안 쪽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불쾌한 이물감. 그것이 사내의 손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쇼크 마법을 쓰기에 충분히 가까운 거리이다. 이대로 가능한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려 쇼크 마법을 갈긴다면, 마침내 방심하여 거리를 허용한 이 남자를 아주 잠깐만이라도 의식을 잃게 할 수 있다. 이 남자와 몸을 섞던 여인은 여전히 그 쾌감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으니, 이대로 벽에 짚은 이 손을 그의 신체에 갖다 대고서 마법을 쓰기만 하면...
"으, 으읏...?!"
그러나 이윽고, 쿠린은 예상 외의 상황에 당혹을 금치 못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짚고 있는 벽에서 손을 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딱히 구속구에 묶인 것도 아니고, 벽에 무언가 접착성이 있는 끈적한 것이 있지도 않는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벽에 짚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벽과 하나라도 된 듯이, 쿠린은 주인의 의지를 거스르고 벽에 딱 달라붙은 손을 배신감에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한채 사내의 희롱에 가만히 당해줄 수 밖에 없었다.
"크, 으읏....!"
발로 그를 걷어차 볼까 생각했지만, 그는 정확히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옆에 붙어 있었다. 벽에 손을 짚고 선 이 자세에서, 아무리 다리를 쎄게 휘둘러도 저 위치에 있는 사내에게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남자가 바보도 아니고, 그녀의 다리가 움직이면 다시 거리를 벌릴 테지. 그렇게 되면 괜히 경계심만 더 늘어나고, 탈출 기회가 멀어진다.
벽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필시 이 사내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일 테지. 어쩐지 갑자기 거리를 허용했다 싶었더니, 설마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이야. 정확히 뭘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쿠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대로 사내의 손길에 무방비하게 희롱당하며 신음이나 흘리다가, 사내가 완전히 방심하기를 기다릴 뿐. 자신의 숨겨진 이빨이 그 무방비한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흐읏, 하으윽...!"
찔걱, 찔걱 그녀의 안을 마구 휘젓는 이 손길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였지만.
아직 남성기를 삽입하지도 않고 그저 손가락 두 개가 안을 휘저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멍 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적에게 일방적으로 농락 당하며 쾌감을 느낀다니,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는 여자를 다루는 데 매우 능숙해 보였고, 이미 성적 약점을 전부 파악 당한 그녀로서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주인의 허락도 없이 목 너머에서 자꾸 튀어나오려는 애틋한 신음을 억지로 다시 삼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손가락이 안 쪽을 쿡쿡 찌르거나 구부려서 질 벽을 긁어낼 때마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듯한 아찔한 쾌감. 진작에 다리는 힘이 풀려 바닥에 무릎을 꿇기 직전이었으나, 벽에 딱 달라 붙은 손 때문에 그녀는 쓰러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그저 지독한 악몽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정신의 방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사내는 본격적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푸욱...!
"카...학...!"
조금 전에 안 쪽을 휘젓던 손가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굵고 흉악한 것이 비좁은 틈을 강제로 벌리며 안 쪽으로 파고든다. 낯선 이물의 침입에 잔뜩 긴장하며 내부가 수축하는 것도 잠시, 손가락에 의해 풀어질 대로 풀어져 버린 질 근육은 사내의 남성기가 들어오는 것을 오래 막지 못하고 결국 침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두꺼운 고기 몽둥이가 단숨에 끝까지 침투해오고, 아랫배가 밀려 올라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물 밀려 오듯 쇄도하는 아찔한 쾌락에, 이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쿠린은 필사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어딜."
콰악.
사나운 손길이 등을 꾸욱 짓누르며 그의 허리가 뒤로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힘차게 다시 부딪혀 온다. 쿠웅, 쿠웅. 아래에서부터 범람하는 쾌감은 이미 폭력에 가까웠고, 그가 허리를 한 번 흔들 때마다 쿠린은 정신을 잃었다 되찾는 일을 반복했다.
고통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 무서웠다.
아주 미세한 고통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나마 어느 정도의 현실감이 느껴졌을 터인데, 이렇게 거칠게 다뤄지면서도 고통은 전혀 없고 오직 아득한 쾌감만이 쉴 새 없이 닥쳐오기에, 쿠린은 혹시 자신의 몸이 마침내 망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분명 쾌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것이 아닌, 그녀의 정신을 무너트리는 아주 위험한 쾌감이었다.
"흐으으...! 하으으...!"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십 분? 한 시간? 아니면 반나절? 정신을 잃고 되찾기를 계속 반복하다보니 시간 감각은 맛이 가버린 지 오래였고, 묵직한 쾌감이 쿵쿵 부딪혀 올 때마다 눈앞이 번쩍거려서 눈을 뜨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여전히 벽에 달라 붙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팔과 다리의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자신의 다리 사이로 파고 들어 몸 안을 마구 헤집는 고깃덩어리의 감촉 뿐.
"아....."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마침내 쿠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옆에는, 그녀가 되찾지 못 했던 무기인 장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혹시... 전부 꿈이었나? 선생의 추종자인 그 남자에게 습격 당한 것도, 선생이라는 자에게 범해진 것도, 전부 나쁜 꿈이었을 뿐...?
"...으읏, 아니야...!"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쿠린의 기억 속의 그 광경은, 전부 그녀가 직접 체험한 현실이었다. 벌어진 다리 사이, 붉게 퉁퉁 붓은 채로 쩌억 벌려진 비부에서 울컥 울컥 쏟아져 나오는 이 흰 색에 끈적끈적하고 밤꽃 냄새가 진하게 나는 액체 같은 것이 그 증거였다.
"...으, 읏...!"
마침내 해방되었다는 안도감, 그 선생이라는 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아쉬움?
짜악. 쿠린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려, 정신을 다잡았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그 선생이라는 사내는 약속대로 자신을 놓아 주었다. 게다가 그녀가 있던 이 옥상은 지난 번에 사내의 추종자를 상대했던 그 숙소의 옥상. 즉, 그 선생은 정말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녀가 의식을 잃은 상태이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정말로 그녀의 몸을 취한 것을 대가로서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 사실이, 쿠린에게는 무척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그 선생은 아무리봐도 선인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무작정 악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 고민이 쓸 데 없다고 결론을 내린 쿠린은, 데스페라도에서 함께 온 후배 모험가들과 합류하기 위해 계단을 따라 옥상에서 내려갔다.
*
"그녀를 정말 보내도 괜찮습니까?"
바인은 쿠린이 절뚝거리며 옥상에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되물었다. 그는 내 호위이며, 동시에 격렬한 추종자. 아마 저 여자 모험가를 놔준 것이, 나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겠지.
"괜찮다. 어차피 그녀를 계속 붙잡고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거든. 오히려 그녀를 놓아주는 것으로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아."
"어떤 이득 말입니까?"
나는 손바닥 위, 검은 씨앗을 하나 만들어 보였다. 내 손에 나타난 씨앗을, 바인은 마치 성녀의 축복이 내려진 성수를 바라보듯 보았다. 뭐, 그럴 법도 하지. 바인이 다시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전부 이 씨앗 덕분이니.
이 씨앗은 내가 가진 능력이 시각화 된 것. 이걸 삼킨 사람의 마음에 내 힘으로 만들어진 씨앗이 심어지고, 욕망을 매게로 싹이 틔고 꽃이 피는 순간 그 사람의 내면의 의지와 현실을 이어주는 통로가 생긴다.
"내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 유용하고, 또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기회지."
"선생님, 설마...!"
"그래, 맞아. 그녀에게도 씨앗을 심었다."
일곱 도시의 대표자들이 내건 조건부 석방의 제약 탓에 나는 타인의 허가 없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 수 없다. 즉, 누군가를 기습하는 것은 커녕 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반격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내 능력이 어떠한 방향으로든 해를 가하게 된다면, 그 또한 제약을 어긴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상대의 동의가 없으면,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조차 없다. 잘만 하면 적을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폭주하는 괴물로 만들 수도 있는 이 능력을, 단순히 아군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밖에 쓸 수 없다는 뜻이다.
"모험가들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길드의 방침은 길드원들을 지켜주되 억압할 수는 없게 되어 있더군. 그렇다면 만일 한 길드 소속 모험가가 어디선가 엄청 강한 능력을 구해와서 갑자기 실적이 엄청나게 늘게 되면, 다른 모험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까?"
"그 능력의 출처를 캐내고... 자기들도 원하게 될 테죠."
모험가들이란, 위험한 모험에 뛰어 들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 그들에게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단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다.
재능이 없으면 배울 수 없는 마법, 운이 없어 선택 받지 못하면 얻을 수 없는 권능과 가호, 누구나 구할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병기.
이 세계에서 이 셋 중 하나라도 갖지 못하는 자들은 높이 올라갈 수 없고, 각각이 가진 장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그런데 여기서 재능도 운도 돈도 필요 없이, 단순히 자신이 마음 먹기만 하면 그만큼 강해지는 능력이라는 네 번째 선택지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법에 대한 재능도 없고, 신에게 선택 받지 못해 가호와 권능도 없으며, 강한 병기를 구매하기는 커녕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 정도로 돈이 없는 이들에게, 그저 강한 의지만 있으면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준다면?
"물론 처음엔 의심하겠지.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그러니 단점 또한 알려주는 거야. 이 능력도 만능은 아니고, 대가가 있다고."
"...'침식'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그걸 말해주면 오히려 아무도 선생님의 힘을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바인. 너는 인간을 너무 몰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딱딱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많고 많은 모험가들 중에서, 자칫 잘못하면 괴물이 될 지 모른다는 디메리트가 있다고 해도 그 힘을 원하는 인간은 최소 한 명 이상은 있을 것이다. 돈도 없고, 재능도 없고, 신에게 선택 받는 운도 없는, 그러나 성공하고 싶은 절박한 이들.
그들이 바로 내 목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