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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22화 (122/229)

〈 122화 〉 당연히 말이 되죠~(1)

* * *

간수에게 힘을 빌려주었으나 아직 돌려받지 못한 채, 나는 다음날 브레이크윙 교도소장과의 개인 면담을 가지게 되었다.

"교도소장인 브레이크윙 씨라고 하셨나? 보아하니 할 말이 많아 보이시네요."

".....정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로군. 그래, 내가 이 교도소, '새장'의 관리인인 브레이크윙일세."

첫 만남은 서큐버스인 모노가 나를 찾아왔을 때였고, 그 때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나에게 모노에 대한 탐문만을 끝낸 후 돌아갔지. 재판조차 거치지 않고 갇힌 탓에 대체 무슨 죄목으로 이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고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였던 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저 자신의 목적만을 달성하고 떠난, 아주 잘 나신 엘리트 교도소장 양반.

내가 존중을 하는 이들은, 나를 존중해주는 이들 뿐. 뒤늦게라도 나를 존중해주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며 되도 않는 압박을 가하는 아저씨에게마저 차려줄 예의 같은 건 키우지 않았기에 나는 소파에 불량하게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까딱이며 그를 맞이했다.

"그래서요? 이번엔 또 뭐가 궁금하길래 최상층에서 있으셔야 할 분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이 최하층까지 오셨을까?"

브레이크윙은 예의 없고 건방진 애새끼 보듯이 나를 향해 매서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조금도 지지 않고 그와 시선을 맞대었다. 야리긴, 뭘 야려?

"말이 조금 심한 것 같군."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감옥 최하층에 갇혔는데, 그 감옥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내가 호의를 보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모든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네."

"그럼 하다 못해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라도 했어야지?"

"후... 자꾸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군. 시간이 별로 없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겠나?"

이 싯팔 대머리 늙은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처음엔 교도소장이라는 직위를 밝힘으로서 권위를 내세워 찍어누르려고 했지만 애초에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나에게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나를 혈기 넘치는 어리석은 젊은이 취급하며 자신이 연장자라는 느낌을 강조하여 대화를 자기가 주도하려고 하네? 하지만 나는 이 늙은이가 원하는 대로 따라줄 의향이 1도 없었다. 지금껏 손대기 까다롭고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 방치해 놓고, 자기가 필요할 때 찾아와서 갑 행세를 하려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이봐, 아저씨. 나랑 장난해?"

그리고 나는 짜증 나는 일은 참지 않지.

"아까부터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데, 지금 정말 절박한 쪽이 누구일까? 나는 솔직히 아쉬울 게 전혀 없거든? 하지만 우리 교도소장님은 그 꼭대기에서 이 최하층까지 헐레벌떡 찾아올 정도라면 아무 급하다는 뜻일 텐데, 자꾸 나한테 반감을 사도 괜찮겠어?"

내 말에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댁은 시간이 없을 지라도, 이쪽은 차고 넘치거든? 그러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가보자고? 뭐해? 다리 아프게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앉아. 이야기가 좀 길어질 텐데, 계속 서 있을 순 없잖아?"

자신이 관리하는 교도소 안에서, 수감수가 주인 행세를 하는 모습은 이 아저씨에게 있어서는 심기가 뒤틀릴 광경일 것이다. 그러게 누가 직접 찾아 오래? 주인 행세를 하며 권위를 내세우고 싶었으면, 제 발로 아래까지 찾아올 게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 나를 위 쪽으로 초대했어야지. 물론 그랬다가 내가 도중에 뭔가 수작을 부려서 탈출할 가능성이 없지 않고 또 나와 단둘이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테지만... 세상에 자기가 원하는 걸 전부 다 얻을 수는 없잖아? 안전과 은밀을 얻었으면, 권위와 이점을 잃어야지.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분한 얼굴로 내가 가리킨,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들인 소파에 앉았다. 이 정도로 모욕을 해서 권위를 깎고 나의 입장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으면, 도발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을 테지. 물론 내 입장에서의 본론과 그의 입장에서의 본론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자, 우선 누가 우리 대화를 엿듣는 것에 대한 대비책은 되어 있겠지?"

"그래.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방음 결계를 쳐두었으니, 이 안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는 외부에서 들을 수 없다."

"댁이 믿는 신은?"

"..."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 말도록. 이 최하층의 방은 물리력으로 파괴할 수 없고 파괴된 물체가 자동 수복되며 마법적인 효과를 무효로 만드는 결계로도 모자라, 신적인 존재와의 연결마저 끊는 특별한 조치가 취해진 공간이다. 이 안에 있는 동안은 연결이 끊어져 있기에 신으로부터 빌린 힘은 한 번 사용하면 다시 회복할 수가 없고, 그쪽에서 개입할 방법도 없어."

"즉, 이 안에서 나눈 이야기는 우리 둘의 머릿속에만 남는다는 뜻이군. 아주 철저한 걸. 좋아, 그럼... 우선은 왜 나를 이 최하층에 가두었는지 설명해 보시지."

"그 점에 대해선 나도 그다지 아는 것은 없다. 나도 그저 내가 따르는 신,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 님으로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이곳에 가둬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네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그럼, 물론 원한이 없어야지. 애초에 이 세상에 도착하자 마자 난데 없이 체포 당해서, 이 아찔한 높이의 감옥에 수감되어서 아무것도 못 했는데. 이 쪽은 엄연히 피해자란 말이지."

"끄응...."

"뭐, 그래서 결국 당신의 목적은... 어제 그 사건이지?"

어제의 사건.

내가 남녀 간수들에게 무언가 수작을 부린 탓에 두 성실한 간수들은 근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욕정을 참지 못하고 내 앞에서 끈적한 정사를 나누었으며, 그 소식을 보고 받은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나를 더욱 경계하여 감시를 서는 이들의 근무 표를 다시 수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층에 있는 수감수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졌고, 그 탓에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살인귀 제인이 탈출하여 난동을 부렸다.

그로 인한 피해는 건물이 일부 손상된 것을 제외하면 부상자 셋에 사망자 없음. 이 세상에 넘어오자마자 한 시간만에 도시 하나의 인구를 반으로 줄여버린 그 미친 폭탄마가 탈옥한 것치고는 굉장히 경미한 피해이며, 그 이유는 혜성처럼 나타난 '흑기사' 에드 덕분이었다.

그리고 일개 간수에 불과한 에드가 갑자기 무자비한 살인마를 상대로 새장 내의 최고 무력인 제압 팀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에게 힘을 빌려주었던 덕분이고.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이 나를 찾아온 것도, 내가 그에게 빌려준 힘이 원인이다.

"이 최하층은 각종 봉인으로 인해 신에게서 빌린 힘은 약해지며 회복되지 않고 마법은 효력을 잃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는 내 간수 하나에게 그 잔혹하고 다루기 어려운 폭탄마를 상대로 맞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지. 그러니 나로선 궁금할 수 밖에 없지. 도대체 자네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 평범한 간수 하나를 순식간에 강력하고 든든한 기사로 바꿀 수 있었는지."

"정 궁금하다면, 알려줄 수도 있지."

나는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의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내 손바닥 위에서, 검은 기류 같은 것이 마치 식물의 덩쿨처럼 서로 엉키며 휘감겨 올라 왔다.

"내가 가진 힘은 나로서도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지만, 최대한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지. 하나, 타인이 가진 감정... 그 중에서도 욕망에 관련된 분야를 느낄 수 있고 그것을 강하게 만들거나 오히려 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남녀에게 사용했던 정신 간섭형 능력이군."

"그리고 둘. 타인이 가진 욕망을 매개체로, 그 사람이 가진 힘을 이끌어 낸다."

"힘을 이끌어낸다...?"

나는 의아해 하는 소장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움켜쥐었다가 다시 폈고, 그 사이 덩쿨의 형태에 불과했던 기류는 탁한 빛을 띄는 한 송이의 꽃으로 변했다.

"나는 아예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야. 그저 아주 자그만한 씨를 뿌릴 뿐이지. 그 씨앗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욕망을 먹으며 성장하고, 마침내 꽃이 피는 순간 그 사람의 의지는 단순이 정신의 영역을 넘어 현실에마저 영향을 끼치게 되지. 알겠어? 내 힘은... 인간의 욕망을 통해, 인간이 가진 정신을 물리력으로 변환하는 거야."

"....."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도, 후천적으로 몸을 쓸 수 없게 된 사람도,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아니, 오히려 그렇게 절박한 이들일 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굉장히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내가 한 말을 사실일 경우 벌어질 일을 예상할 수 없었거나. 아마 둘 중 하나이리라.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아무리 신체적으로 약한 이라도 강해질 수 있다고?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있을 리가..."

"물론 이 힘도 만능은 아니지. 부작용이 아예 없지는 않아. 어디까지나 '인간의 정신력'에 실체를 넣다 보니, 그 사람의 정신이 불안정하면 힘 또한 자연스레 불안정해지기 마련이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의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절박한 욕망, 그리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절제력.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갖춰지지 않으면, 여러 모로 힘들어. 그런 의미에서 첫 실험체... '흑기사' 에드는 굉장히 성공한 편이야. 능력 자체는 그렇게 강력한 편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가 밸런스가 적절해서 무척이나 안정적이거든."

"그 갑옷과 방패가, 강한 편이 아니었다고...?"

"물론."

그리고 나는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을 마주보며 확인했다. 그의 두 눈에 피어오른, 힘을 향한 갈망을. 그것은 어제 내가 에드라는 간수를 흑기사로 만드는 것을 보고서 자신 또한 힘을 원하게 된 다른 간수와는 다른 종류의 빛이었다. 그 간수의 눈에 담긴 열망이 이제 막 피어오른 불씨라면, 이쪽은 한 번 꺼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금 피어오른 잔불. 한 번 실패하여 포기한 목표이나, 그것을 이뤄낼 방법을 찾아내어 그 목표에 다시금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 실패한 과거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모습...

권위를 내세워 나를 찍어 누르려는 모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열정이 식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피어오른 그 뜨거운 열망은 나름 괜찮은 편이군.

스킬 : [감정 증폭 : 주체할 수 없는 욕망]

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쐐기를 박는다.

"...무엇을 원하지?"

"힘이 많이 급한가 봐?"

"부정하지는 않겠다. 나는 힘이 필요하다."

브레이크윙 교도소장은 아픈 과거를 회상하듯,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힘을, 권력을, 명예를 얻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내버렸다. 높이 오르기 위해,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의 발을 핥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범죄자들부터 버려진 실패작들까지, 온갖 쓰레기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이 위치에 도달한 것이 한계였고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었다. 날개가 꺾인 나에게 그 이상의 높은 하늘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너의 힘은, 네가 간수 에드를 통해 보여준 그 힘은 내 앞에 나타난 새로운 길이다."

그의 욕망은 권력을 향한 열망... 그 외에도 인정 받고자 하는 욕망도 조금 있고... 욕망 자체는 어울리지 않게 순수한 편이군.

"그러니 너도... 아니, 당신도 내 말에 답해다오. 내가 무엇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지? 무엇을 바쳐야, 나에게도 그 힘을 주는 거지?"

"글쎄... 아직 내 힘이 제대로 통한 상대는 '흑기사' 하나가 전부라서 말이지."

나는 내 손바닥 위 꽃의 형상을 한 검은 기류를 브레이크윙의 손 위에 올려주려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나 검은 기류는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점차 옅어졌고, 그의 손 위에 쌓이는 것은 없었다. 텅 빈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교도소장의 시선이 너무 간절하여, 나는 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일단은 내게 협조해 줘야겠어. 그리고 당장 필요한 건... 나에게 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내 지루함을 달래줄, 친화력 높고 말 많은 간수 몇 명. 그리고 내 힘을 시험해 볼, 간절한 욕망을 품은 간수 몇 명 정도?"

이로써 갑과 을의 관계는 확실히 굳혀져, 뒤집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면, 나를 도와줘야겠어. 내가 이 힘에 더 능숙해지면, 당신도 언젠가 만족할 만한 힘을 얻을 테니."

"....좋소, 얼마든지."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브레이크윙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내가 가진 세 번째 힘. 이건...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이후, 내 교도소 생활은 많이 변했다. 교도소장이 직접 선별한 '실험 자원자'들이 수시로 내가 갇힌 최하층을 찾아왔고, 나는 그들을 살피며 적합자들을 골라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에드로부터 빌려 주었던 힘을 회수했다. 정확히는, 그에게 '씨앗'을 심은 후 내 힘으로 그것을 증폭시켜 빠르게 개화 시켰던 것이고,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그것을 다시 거두었을 뿐이지만.

그는 내심 그 엄청난 힘을 다시 잃는 것이 아쉬운 듯 했으나, 그래도 소중한 연인을 지킨 것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 일 이후 그를 향한 카렌의 애정이 한층 강해졌다고. 그래서 나는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그에게도 '씨앗'을 다시 심어 주었다. 비록 내가 증폭시키지 않은 탓에 곧바로 '흑기사'의 힘을 다시 쓸 수는 없겠지만, 연인을 향한 사랑을 영양 삼아 키우다 보면 다시 한 번 꽃이 개화하여 그녀만을 위한 '흑기사'가 될 수 있으리라.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선생, 나는 어때? 내 힘은 어떤 종류야?"

"야, 선생을 곤란하게 하지마! 귀한 분께 무슨 실례야!"

"그건 네가 할 소리겠지!"

...사흘 전까지만 해도 최하층의 수감수인 나에게 두려움 섞인 시선을 보내던 이들이, 이제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기대의 시선을 보내며 나를 높이 띄우고 있다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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