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보스를연기하는법-11화 (11/229)

〈 11화 〉 강해져서 돌아와라(5)

* * *

미아의 몸은 남자의 가학적인 성욕을 자극하는 모종의 마력이 있다. 그 탓에 발정기에 들어간 짐승처럼 밤새 그녀를 범한 나는 커튼 사이의 얇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이성을 되찾으며, 동시에 짙은 피로감이 몰려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런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내 방은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그 난잡한 정사의 흔적이 모두 청소가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 몸을 씻기고 새 옷을 입혀두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미아가 한 일이겠지. 그녀는 내 전속 메이드이자 내 방의 출입이 허용된 유일한 메이드니까.

나는 악역 보스다. 몰락한 가문의 유일한 계승자로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려 가며 망해버린 내 가문의 위신을 다시 세우고, 이제는 이 나라의 왕권조차 손쉽게 흔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의 곁에는, 그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기 마련.

실제로 내가 미아를 전속 메이드로 임명하여 옆에 두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 씩 내 담당 메이드가 바뀌었다. 물론 그 이유의 대다수는 그들이 수 차례의 검문과 뒷조사라는 과정을 거치고도 걸러지지 않은, 무척이나 우수한 정보원 및 암살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 숨어들어 영지의 중요한 정보를 훔치려다가 걸려서 잘린 메이드가 다섯, 밤 시중을 들겠다며 침대에 들어와 한참 신나게 섹스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카락 속에서 단검을 꺼내 내 목을 찌르려다 걸려 백치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강간 당한 후에 잘린 메이드가 열 넷이나 된다.

물론 여기서 잘렸다는 것은 당연히 일자리가 아니라 머리였다.

내가 전생에는 착한 사람이었어도, 현생은 명백한 악인. 어쭙잖은 자비를 베풀어 후일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날 죽이려다가 엉망진창으로 범해진 후에 죽은 메이드 중에서 나름 예쁜 놈들도 있었는데 말이지. 실력 자체는 준영웅급에도 속하지 못 하지만, 그래도 외모 하나만큼은 영웅 못 지 않은 미친 외모의 미인들이 많았다. 물론 그건 내가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나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들이 외모를 최우선 기준으로 선별된 탓이지만. 덕분에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전국의 예쁜 년들을 한 번 씩 맛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물론 그 이후에는 죽여야만 한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고, 열 네 명이나 죽고 나니까 더 이상 미인 암살자를 보내는 녀석들이 없어지기도 했고.

대신에 그냥 암살자를 보내더라고? 전부 죽인 후에 뒤를 캐서 뿌리까지 다 뽑아버렸다. 덕분에 이 왕국은 이제 내 세상이고.

그러고 보니 내게 미인 암살자를 보낸 이들 중에는 그 암살자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던 고용주도 몇 있었다. 그들은 내가 특별히 뒤를 추적해서, 그들이 마음에 들어했던 미인 암살자가 죽기 전 24시간을 녹화한 마법 수정구를 보내주었다. 안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쁜 암살자들이 가혹한 성 고문과 끊이지 않는 강간 속에서 쾌락과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이 담긴 마법 수정구를 말이다. 어차피 이미 그녀들은 죽여버렸고, 그 사람들도 시체에게 박는 취미는 없을 테니 이미 죽은 사람의 몸을 보내줄 수는 없고, 그래서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반찬으로 쓰라고 보내 준 건데 마음 약한 몇 명은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그대로 자기 목숨을 끊었더라나 뭐라나?

참 웃긴 양반들이야. 그 정도로 마음이 있었다면, 나 같은 인간에게 보내지 말았어야지. 이래서 인간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살아가야 한 다니까? 닿지 못할 위만 보며 걷다가 바로 아래에 있는 돌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지는 법이라고.

­라돈? 제 말 들리시나요? 들리시다면 대답하세요, 라돈.

하품을 하며 잠시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신님 쪽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음, 이 연락은 가능하면 받고 싶지 않은 데. 어째 요즘 여신님과 하는 이야기들은 죄다 서로의 속을 터트리는 답답한 이야기밖에 없어서, 되도록 어젯밤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지금의 붕 뜬 감각을 더 느끼고 싶었다. 물론, 여신 쪽에서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라그나 아마게돈!

"아, 네, 네. 라그나 아마게돈 여기 있습니다, 루미너스 여신 님.

­나 참, 도대체 왜 대답을 안 하는 건가요?

"여신 님은 제 머리에 직접 말을 거는 거지만, 제가 여신님한테 대답하려면 육성으로 말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이거 남들이 보면 그냥 허공에 대고 말 하는 미친 놈이라고요. 그냥 전화로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이 세계에는 전화가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아무 때나 말을 거는 것도 아니잖아요. 주변에 보는 눈이 없을 때에만 말을 걸고 있다고요. 저도 이 위에서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영 불편합니다. 너무 일방통행이라서 언제 연락을 받을 지도 모르고, 갑자기 아무런 신호도 없이 목소리가 들려오면 흠칫하게 된다고요. 연락용 통신구라도 쓰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여신 님은 다소 어이없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저는 지금 그 세계에 있지도 않으니.

"아, 그러고 보니 그랬죠."

물이 위에서 아래로는 흘러도, 아래에서 위로 흐를 수는 없는 것처럼, 수 많은 차원이 존재하는 이 우주에서 자기보다 상위 차원인 존재에 거스르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신 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내 머릿속에 자신의 의견을 때려 박아 넣을 수 있지만, 내가 여신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선 여신이 직접 내가 있는 하위 차원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그녀와 나 사이의 대화에서 나만 육성으로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 셈이고. 애초에 마법 수정구라는 물건이, 세계의 법칙을 뛰어넘으며 연락이 될 정도의 물건도 아니고.

"그럼 나중에 연락용으로 천사 한 명만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천사는 여신 님과 연결된 존재니까, 천사를 통해서 말을 전달하는 쪽이 이런 불편한 방법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그건 안 돼요.

"네? 왜죠?"

그리고 여신 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미묘한 침묵의 시간이, 내게는 마치 예의 바른 사람이 어떻게 해야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고 거절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인력난이에요! 최근 일어난 문제들 때문에 무대를 뒤에서 조정할 인원을 늘렸거든요. 그리고 중간 중간마다 대본과의 크고 작은 차이를 보고해야 할 인원도 많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당신과의 개인적인 연락을 위해 천사를 배정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악역의 옆에 천사가 있으면 관객들 입장에서 몰입감이 많이 떨어지지 않겠어요?

"..."

여신 님이 대체 무엇 때문에 내게 천사를 배정하기를 꺼려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여신 님이 힘들게 쥐어 짜 낸 핑계 중에서 마지막 하나 만큼은 그럴 듯하다고 느껴졌기에, 나는 이번 한 번만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히 내가 여신한테 협력을 해 주고 있는 상황인 데, 여신 쪽에서 날 그렇게 보니 굉장히 불쾌하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다 끝나고 따로 만나서 풀면 되고. 지금은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겠지.

"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이신가요?"

­ 지금 루크와 그의 동료들은 당신을 쓰러트리는 것을 무리라고 판단하고 폭군 바이올렌스를 먼저 쓰러트리기 위해 여정을 바꾸었습니다. 하아, 정말이지...

"이번에는 제 문제라고 하지 마시죠. 솔직히 저는 어지간한 부하들 다 내 보내서 최대한 저를 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줬습니다. 밥상을 다 차려줬다고요. 근데 굶어 죽기 직전인 데도 그 밥에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며 혼자 쉐도우 복싱하는 놈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애초에 레이의 경우에도, 저택에 체류하게 두면 용사 일행이 저와 싸우기 전에 체력을 많이 빼앗길 것이라 판단해서 일부로 가장 멀고 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보내둔 것이란 말입니다. 근데 용사 그 자식은 하필 왜 거길 지 발로 가서는... 에휴."

여신과 나는 서로에게 책임 전가 하는 것도 멈추고, 머리를 쥐어 싸매고서 한숨을 쉬었다. 이건 뭐,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일이 하나 같이 다 꼬이는 건지.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지금 루크의 실력으로 바이올렌스를 쓰러트리는 것은 무리에요. 그의 힘이 제가 상정한 것보다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그녀를 쓰러트리기엔 역부족이라고요. 당신, 혹시 뭔가 좋은 생각 없나요?

"예?"

­뭐라도 좋으니까, 떠 오르는 생각 없나요?

이 여신 님도 참...

루미너스 여신. 그녀는 내가 품고 있던 신에 대한 환상을 전부 깨트린 장본인이다. 물론 처음에 만날 때는 뒤에 눈 부신 후광을 매단 채 나타나서 존경을 표하긴 했는데, 어째 보면 볼 수록 여신치고는 굉장히 어리숙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는 한다. 물론 신들 사이에도 급이 있고 그녀가 하급 신이라고 그런 것이긴 하지만, 권능의 힘을 떠나서 그녀라는 인물 자체가 좀...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일처리 면에서 허술한 점이 자주 보인다.

이 세상은 그녀가 관객들에게 보여줄 연극을 위해 만든 무대. 그리고 그녀는 운명의 실을 짜서, 용사가 악당들을 쓰러트리며 성장하여 세상의 존망을 위협하는 거대한 악을 쓰러트린다는, 다소 클래식한 대본을 만들어 냈다. 왕도적 전개, 좋지. 클리셰 비틀기가 클리셰가 되서 신박하다는 표현보다는 '이건 또 뭔 병신같은 설정인데?'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 이세계 판타지물보다는 차라리 옛날 식 용사물이 관객들 입장에서는 더 봐줄 만할 테니까. 실제로 그녀가 짠 대본 자체의 내용은 괜찮았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용사가 세상의 악과 맞서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었으니까.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배우를 섭외하고 대본을 쓰는 게 아니라 대본을 다 쓴 후에 배우를 선별했다는 점이지.

둘이 뭔 차이냐고? 이 둘의 차이점을 모르는 시점에서, 그 사람도 저 허당 여신과 다를 게 없다.

일단 지금 용사의 성장세. 원래 여신의 계획에는, 나도 용사도 지금 보다 한참 약한 상태여야 한다. 근데 용사의 힘은 여신의 예상을 넘어버렸고, 시련이었어야 할 두 명의 악역 보스가 그냥 거쳐가는 중간 보스 취급을 받으며 순식간에 쓰러진 탓에 용사는 나에게 훨씬 빠르게 도착하게 되었다.

적과의 싸움에서 얻어야 할 깨달음 없이 파편을 다 모으면 배드 엔딩이 된다는 설정이 있기에 나는 그에게 허접하게 쓰러지지 않기 위해 다급히 여신과 함께 밸런스 패치를 하게 되었다. 나는 왕가에서 불러낸 파티에 참석하여 일부로 왕족을 모욕하고 도발함으로서 경쟁자들이 나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려 들게 만들었고, 그런 그들의 시도를 모두 꺾으며 그들을 제거함으로서 이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왕국 내에서 나를 방해할 놈들을 모두 제거하고, 쓸 만 한 마법 무구나 마수들을 미친 듯이 긁어모아, 용사에게 고된 전투를 겪게 하고 깨달음을 주며 쓰러졌어야 하지만 되려 용사를 이겨버린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 알겠나? 한 마디로, '선 설정 후 제작'이 아니라 '선 제작 후 설정'으로 인해 설정 구멍 정도가 아니라 시나리오 자체에 커다란 구멍이 치즈 마냥 송송 뚫려버렸다고.

요점은, 그녀의 대본은 그녀를 닮아서 허술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틀을 짜 놨지만, 정작 배우들의 성격과 행동을 잘 파악해두지 못 한 탓에 용사가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하고, 나한테 한 번 진 이후로는 아무리 기회를 줘도 덤비지 않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무대를 지휘하는 입장으로서도 다소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애초에 지금 내가 이 라그나 아마게돈이라는 인물이 된 것도 그 탓이지. 진짜 라그나 아마게돈의 영혼이 갑자기 사라진 탓에, 때 마침 죽은 내가 이 자리에 땜빵으로 들어오게 된 거니까.

그리고 이 부족한 여신 님은, 이제 신도 아닌 고작 인간에 불과한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고 있었다. 뭔가 역할이 정 반대가 된 것 같은 데... 아마 전에 내가 용사를 어처구니 없이 가볍게 쓰러트린 후, 그들을 추격하여 죽이지 않으며 용사들이 나를 죽이기 쉽게 부하들을 내 보낸 핑계가 관객들에게 잘 먹힌 모양이다. 그러니까 또 나한테 의견을 구하는 거지.

즉, 이건 기회다.

여러모로 허술한 점이 많아, 정말로 내 소원을 제대로 이루어 줄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슬슬 신뢰성이 의심이 가기 시작하는 이 여신이 아닌, 초반부터 시작해서 쉴 새 없이 삐걱거리는 이 연극을 용케 계속 지켜 봐주고 있는 관객들에게 나를 어필할 기회.

그들의 눈에 나의 존재를 강하게 새겨두는 거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끝난 후, "쨔잔! 사실 라그나 아마게돈은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닌 스카웃 된 배우였습니다!"라고 밝혀졌을 때 나를 마음에 들어하여 개인적으로 도와줄 존재를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마치 사람들이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멋진 악역에게도 매료되듯!

"흠... 하나 떠오른 것이 있는 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뭔데요? 어서 말 하세요!

흠, 진짜 급한 상황인가 보네. 도대체 관객들한테 얼마나 갈궈지고 있길래...

"용사와 맞서기 위해 저는 급하게 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고, 저를 견제하는 적들을 전부 쓸어버린 지금 상황에서 저는 이미 이 왕국의 실질적인 지배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름 뿐인 왕가, 저에게 찬성하지는 못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할 용기는 없는 겁쟁이 귀족 몇 명이 전부죠. 그러니 저, 라그나 아마게돈은 더 이상 뽑아 먹을 게 없는 왕국을 벗어나, 자신의 힘을 더욱더 길러줄 것을 찾기 위해 용사들이 지금 향하고 있는 곳, 폭군 바이올렌스가 통치하는 엘헤임 왕국으로 향하는 겁니다."

­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용사 일행과 여정이 겹치지 않나요? 만일 용사 일행의 뒤를 쫓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는 거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용사 일행이 저보다 바이올렌스를 먼저 공격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저도 여신 님께 듣고 안 것입니다. 즉, 라그나 아마게돈은 용사 일행이 엘헤임 왕국으로 향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곳으로 향한 겁니다. 그리고 도중에 용사 일행을 발견한 아마게돈은,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용사 일행에게 몬스터들을 보내 그들의 움직임을 늦춥니다. 그 사이 한 발 먼저 엘헤임 왕국에 도착하는 거죠."

­ 용사 일행을 더 성장시키기 위해, 그리고 혹시라도 용사 일행의 여정에 방해 가 될 뜻 밖의 방해물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 괜찮네요. 그다음은?

"바이올렌스, 그 아가씨의 능력은 그 꼬일 대로 꼬인 성격만큼 골치가 아픈 것이죠. 상대를 문답무용으로 지배하고 복종하는 힘. 본래는 여신 님의 가호,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인 같은 혼돈의 파편으로 그 힘에 저항함으로서 그녀의 지배 능력을 견뎌내어 그녀를 쓰러트린다. 이게 원래 시나리오잖아요? 하지만 가진 파편이 두 개 밖에 없고, 거기에 깨달음도 이제 겨우 하나 얻은 용사의 힘으로 그녀의 지배를 이겨낼 리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원래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2위가 1위가 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나는 실력을 키워 1위보다 뛰어나지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1위를 없애서 본인이 1위가 되는 것."

나는 이제 슬슬 익숙해진 악역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그나 아마게돈은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엘헤임 왕국으로 향합니다. 엘헤임 왕국의 지배자이자 폭군, 바이올렌스가 가진 파편의 힘을 탐내는 거죠. 그리고 서로의 파편을 두고 저와 바이올렌스가 싸웁니다."

­...그건 무리에요.

루미너스 여신이 내게 전하는 것은 목소리뿐이지만, 나는 그녀가 고개를 젓고 있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와 당신이 가진 힘의 근원이 같으니 그녀가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지배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파편의 힘을 제외하고서도 그녀 개인의 전투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고, 엘헤임 왕국에는 이미 그녀의 지배 능력에 종속된 무수히 많은 강자들이 있어요. 그곳을 혼자서 헤쳐나갈 수는 없고, 부하를 데려 가면 그 부하는 그녀의 능력에 당해서 되려 적이 되어버리겠죠. 당신은 바이올렌스를 이길 수 없어요. 상성이 너무 안 좋다고요.

...내가 말 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허술한 부분이 많다고.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생각이 있거든요."

­대체 그 생각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걱정 마세요. 이번에는 진짜로 잘 풀릴 테니까요. 절 한 번 믿어보세요."

루미너스 여신은 한동안 고민하는 가 싶더니, 이내 내 제안을 승낙했다. 아마 그보다 나은 계획이 떠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나는 미소를 지었다.

자, 용사 메이커가 될 시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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