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취업사기(1)
* * *
초대받지 않은 헌터가 우리 특수대를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경찰서를 통해서 사건을 송치받은 뒤, 피의자나 참고인으로 헌터들을 소환하곤 한다.
비록 특수대의 사무실이 협회 본사에 있긴 하지만...
일선 헌터들과의 심리적인 거리가 결코 좁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특수대의 사무실에 아침부터 당당히 뛰어든 헌터가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대원들에게 쫓겨나기 전에 내 앞으로 데려왔다.
"여긴 마음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제가 직장에서 사기를 당했는데요..."
"사기요?"
살짝 마른 체형을 지닌 청년의 이름은 김재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길드의 현직 C랭크 헌터였다.
앨리스는 살짝 떨떠름한 얼굴로 애써 말을 아꼈다.
그에 반해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가 무슨 천둥 벌거숭이처럼 다짜고짜 사무실로 쳐들어왔을 때부터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원래 아는 게 없으면 용감한 법이지.'
하지만 등급이 높든 낮든 어차피 큰 상관은 없다.
나는 그를 앞에 앉혀두곤 이야기라도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명색이 헌터니까, 특수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다.
"취업 사기라뇨? 차분히,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세요. 지유 씨, 커피라도 한 잔 드려."
"앗, 감사합니다."
이런 대접을 받을 줄 몰랐다는 듯 눈을 떨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헌터.
그는 입사한 지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는 신입이었다.
"처음에는 다 잘 풀리는 줄 알았어요."
요즘은 게이트와 던전이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라서 헌터들도 취업난이다.
게다가 그가 입사한 길드는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던전 공략은 물론이고 다른 사업도 벌리고 있는 중형급 길드.
이런 시국에 신입 사원을 뽑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완전 듣보잡 수준은 아니다.
덕분에 김재하 씨는 아주 상쾌하게 헌터 생활을 시작했다.
"선배들과 던전을 갈 때마다 희귀한 전리품이 마구 나오더라구요. 그 때는 금방 부자가 될 줄 알았죠."
"운이 좋았군요."
"저도 바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운이 좋다구요."
아니. 실제로는 그보다 좀 더 멍청했다.
김재하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입이 들어오자 아낌없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본인이 돈을 다 내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뽑고 헌터 장비까지 마구 질러댔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약 1개월 전부터 던전에서 희귀 전리품 수입이 뚝 끊긴 것이다.
물론 공략을 다녀왔으니 전리품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 합리적인 가격대... 다시 말해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종류였다.
김재하의 선배들은 앞서 운을 다 써버렸다고 그를 위로했으나...
정작 그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앞서 얻었던 희귀 전리품들은 제가 직접 발견한 적이 없었어요. 길드의 선배들이 해당 전리품을 미리 준비해놓았다가, 운 좋게 발견한 체 하면서 저를 속였던 거예요!"
"... 뭣 때문에?"
앨리스가 살짝 퉁명스레 되묻자 몸을 부르르 떨며 열심히 설명하는 김재하.
좀 유별스럽다고 느낄법도 하지만, 앨리스는 S랭크니까 C랭크와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그야 저를 속여서 길드에 말뚝박게 하려는 거죠! 제가 아직 랭크는 낮지만, 헌터 능력은 꽤 희귀하고 쓸만한 종류거든요."
그의 자료를 읽어본 나는 차마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장래성이 기대되고, 활용도 또한 높은 헌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이쯤에서 한 가지 짚어두는 것이 좋겠다.
"그럼 선배 헌터들을 사기죄 혐의로 기소하고 싶으신 거죠?"
"다, 다짜고짜 기소한다기보다는 일단 조사를 먼저 하고..."
갑자기 방어적으로 나오는 김재하의 태도에 앨리스가 무척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으나...
어찌보면 저게 당연했다.
만약 무턱대고 기소했다가 제대로 안 되면 그의 헌터 인생은 끝장날 수도 있다.
다짜고짜 상부를 기소하는 헌터를 고용해줄만한 길드는 거의 없을테니까.
"특수대는 협회의 전속 수사 기관입니다. 조사만 하고 싶었다면 탐정을 찾아가셨어야죠."
"죄, 죄송합니다 수사관님."
"그래도 기껏 여기까지 오셨으니 조금 정도는 알아봐드리죠. 진술서 한 장 드릴테니까, 기억나는 걸 모조리 다 써주세요. 특히 언제 어디서 어떤 전리품을 얻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네! 수사관님."
그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진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건도 무고 아니야?"
"글쎄.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아."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말하기 좀 미안하지만...
보통 무고 사건은 딱 보자마자 감이 온다.
그런 사건들은 고발인의 진술이 뒤죽박죽이라서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주눅든 분위기를 풍긴다.
원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그 상대가 매일같이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번 고발은 고발인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죠."
옆에서 그를 살펴보던 이서우가 작게 말했다.
그는 경찰 출신답게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나있었다.
"말에 두서도 있고, 태도도 많이 차분합니다."
"차분해? 저게?"
"저 정도면 양반이죠."
이서우의 설명에 혀를 내두르는 앨리스.
나는 김재하가 진술서를 쭉쭉 써내려가는 것을 보며 이서우의 의견에 동의했다.
"미리 기록을 해놓은 건가? 준비를 잘 해왔군. 김재하 씨에겐 나름대로 동료들의 사기 행위를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었을 거야. 일단 조사 정도는 해보자고."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근데 길드 측에서 왜 굳이 그런 짓을 해? 희귀한 전리품을 신입 사원에게 몰아주다니..."
"신입 사원들에게 차 사라고 부추기는 거랑 비슷한 짓 아니겠어? 게다가 따지고 보면 돈도 별로 들지 않았을 거야."
"그런가?"
그렇다.
만약 김재하의 선배 헌터들이 공범이라고 가정할 경우, 사기 공작에 들어가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예전의 스토킹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 원래 헌터 전리품으로 인한 수익은 공략팀의 멤버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다.
10억짜리를 헌터 전리품을 얻어봤자 판매 수수료를 떼고 n빵한 다음 세금과 특별 연금보험료까지 떼면 정작 손에 떨어지는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김재하는 장래성이 있다곤 해도 아직 C랭크 헌터다.
C랭크 헌터가 출입할 수 있는 던전의 희귀 전리품이라고 해봤자 뻔한 것이다.
"공범들에게 전리품 수익 대신 수고비를 좀 챙겨준다 쳐도 얼마 들지도 않았겠네."
"아, 확실히..."
문제는 길드원들이 흔쾌히 협조를 하냐는 것인데...
아마 그들은 그게 사기 행위라는 자각조차 없었을 확률이 높다.
신입 후배의 기를 좀 살려준다고 생각하며 협조했을 수도 있겠지.
나는 이내 그의 진술서를 받아보곤 생각을 굳혔다.
앞뒤가 딱딱 잘 맞는, 상당히 괜찮은 진술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쪽에서 좀 기다리시죠."
"아, 금방 끝나나요?"
"그리 오래 걸릴만한 건은 아니니까요. 어디 급한 일 있으시면 다녀오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냥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김재하 씨를 치워놓곤 즉시 협회의 데이터베이스를 훑어봤다.
길드 측에서 협회에 제출한 공략 보고서에 해당 전리품은 올라와있지 않았다.
하지만, 김재하 씨의 통장에는 실제로 전리품 판매 대금 명목으로 상당한 액수를 입금받은 기록이 남아있었다.
"역시... 협회를 속인 건가?"
"아니. 그 반대지."
"응?"
"해당 길드는 김재하 씨에게 희귀 전리품을 얻었다며 속였어. 하지만 협회에 거짓 보고를 하진 않았던 거야."
협회에 거짓으로 보고를 올리면, 그 때부터는 빼도박도 못하는 중범죄가 된다.
나는 그들의 수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주기로 했다.
"김재하 씨의 팀이 발견했다는 전리품은 해당 던전에서 얻은 게 아니야. 예전에 얻었던 전리품을 잠시 불출해서 김재하 씨에게 보여주고, 도로 창고에 넣어놓은 거지. 길드의 창고 불출 기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어."
"아... 공을 엄청 들였네."
"그래."
사실 이 사건이 진짜라고 해도... 길드를 사기죄로 기소할만한 건은 아니다.
사기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을 속여서 재산상의 이득을 얻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길드는 김재하 씨에게서 돈을 받아내긴 커녕 그에게 있지도 않은 판매대금을 지불했다.
비록 그 의도가 사악했다 쳐도,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김재하 씨가 실제로 그로 인해서 피해를 봤다고 하기도 좀 뭣하다.
길드의 공작이 그의 소비 습관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라 쳐도,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게다가 결정적인 게 하나 있어."
"뭔데?"
"김재하 씨는 단순히 돈을 펑펑 써서 재산을 소비했던 게 아니야. 저 사람은 투자 실패를 겪었어."
"투, 투자라면..."
벌써부터 불길하다는 듯 얼굴을 굳히는 앨리스.
이서우는 아예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나는 주저없이 두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가상화폐야."
"나올 게 나왔네..."
김재하 씨의 길드가 해당 공작으로 금전적인 이익을 얻었는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김재하 씨가 그로 인해서 손해를 봤는가? 아니다. 본인이 코인하다 날려먹었다.
내가 보기에 이번 사건은 기소각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김재하 씨를 다시 불러내서 단호하게 말했다.
"불기소입니다."
"아, 아니 그런..."
김재하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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