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26화 (126/131)

〈 126화 〉 마약(4)

* * *

총책의 스마트폰을 입수한 덕에, 나머지 범죄자들의 검거는 무척 손쉽게 진행됐다.

마약 제조를 돕던 무허가 헌터도 현장의 대원들이 무사히 체포 완료.

나는 마약반과 사이좋게 범죄자들을 나눠먹은 뒤 힘없이 연행되는 총책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본인의 환자들을 팔아넘긴 의사.

무척 자극적인 타이틀이지만, 과연 법원에서 제대로 처벌이 될지는 모르겠다.

마약 범죄자들이 기소되어 봤자, 그 중 80% 이상은 징역 3년 이하의 형을 받는다.

당연하지만 이 수치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포함한 것으로, 실제로 교도소에 갇히는 인원은 훨씬 적다.

그리고 교도소에 가둬놓는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단체생활이 디폴트인 교도소는 사실상 범죄자들의 직업학교라고 봐도 될 정도다.

놈들은 그 안에서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한 층 진보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결국 진짜 해결책은 중독 치료인데...

이쪽도 결코 쉽지는 않다.

일단 마약 중독자들이 제 발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진짜 정신병원처럼 가둬놓자니 예전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좀 거하게 터졌던 전적이 있다.

덕분에 일선의 의료인들만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마약 관련 범죄는 손을 놓는 순간 들불처럼 확 번진다.

게다가 헌터들의 등장이 꼭 악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창 치료를 도와주고 있는 예리엘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자, 이제 2주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음 주에 또 오셔야 해요."

"아아... 가, 감사합니다. 다시 제대로 느껴져요."

예리엘은 본인의 능력을 이용하여 중독자들의 감각을 조정해주고 있었다.

과다하게 분비되던 신경물질 등을 제한하는 등, 그들의 몸상태를 최대한 원래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저런 치료는 원래 굉장히 비싸다.

의료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헌터들은 말 그대로 돈을 쓸어담는 수준이다.

뒤늦게 내 시선을 눈치챈 예리엘이 변함없이 죄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의 속마음도 모르고 묘하게 흐뭇한 웃음을 보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데리고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온 티아를 보고있으니 정말 심한 말이 나올 것 같았다.

"... 중독자 치료, 힘들진 않아?"

"아, 아뇨. 전혀요."

예리엘은 내 어색한 질문에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각성제 계열 중독자들은 확실히 힘들지만, 대마초 같은 쪽은 많이 얌전하거든요."

"아..."

사실 마약이라곤 해도 엄청나게 여러가지가 있어서, 중독 증세 또한 제각각이다.

이번에 검거된 거미의 경우에는 필로폰과 비슷한 각성제 계열의 신종마약을 유통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용서가 안 된다.

환자들에게 마약을 뿌려댄 게 치료의 일환이라고 지껄이던 것을 떠올리면 머리가 아파온다.

"가끔씩 모르핀 같은 약품을 훔치려고 하는 환자들이 있지만, 그 정도만 제외하면..."

하긴. 일반인들은 예리엘에게 절대로 해를 끼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같은 헌터들 중에서도 별격으로 취급되는 그녀인데, 헌터도 아닌 놈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걱정이 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한참동안 끙끙 앓다가 마침내 그녀에게 물었다.

이렇게 선한 그녀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는 왜 그랬어?"

"죄송해요."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야. 사과는 이미 충분히 받았으니까, 설명을 원해."

"그... 그렇군요."

잠시 머뭇거리던 예리엘은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서방님은 왜 그러셨나요?"

"뭣?"

"화내지 말고 들어보셔요. 가짜 그린 더스트는 서방님께 매우 협조적인 자세였어요. 서방님께서 조금만 어르고 달래주시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인재였죠."

예리엘의 말은 지금껏 내가 애써 무시했던 부분을 가차없이 찔러왔다.

"서방님께선 이용 가치가 차고 넘치는 인재를 무턱대고 체포하려 하셨어요. 블랙 로터스를 찾아내기 위해선 그의 능력이 꼭 필요했는데 말이에요."

"..."

사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결코 떳떳한 조직은 아니다.

우리는 오라클을 완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그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만약 유용하다고 판단이 되면 존재 자체가 불법인 인조헌터들도 얼마든지 동원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야하는 일을 해낸다.

그것이 원래 나와 조직의 모토였다.

하지만 그러한 기준이 가짜 그린 더스트에게만 이상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예리엘은 진작 눈치챘던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다말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서방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는 잘 알고 있었어요. 굳이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으셨겠죠. 그 마음을 멋대로 무시해버린 건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해요."

"놈은 진작 선을 넘었어. 폭주 상태였다고!"

"하지만 서방님과 제 능력을 이용하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죠. 서방님께선 가짜 그린 더스트를 이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빼내고 싶으셨던 거예요."

"..."

나는 이미 티아와 초록색 머리까지 받아들인 전적이 있다.

그런 내가 가짜 그린 더스트만 특별 취급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떳떳한 일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나 때문에 각성하게 된 피해자야."

"서방님 때문이 아녜요."

"... 정말로 이유는 그것 뿐이야?"

"네. 블랙 로터스를 잡아들이게 되면 언제든지 다시 체포할 수 있어요. 이미 제 능력도 걸어놓았구요."

"빠르군."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는 걸어놓아서 다행이다.

역시 아무 생각도 없이 놈을 풀어준 것은 아닌 셈이다.

나는 한참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본인의 입으로 설명을 들으니까 좀 낫다.

예리엘은 내게 죄를 지었다는 자각이 있어서 계속 사죄했던 것이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녀는 내 마음을 무시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리엘은 현재 내게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

그녀와는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

가슴 속의 앙금이 조금 풀린 것도 있어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마른 목으로 짧게 말하자 예리엘의 얼굴이 화악 피었다.

"집에 가자. 아, 혹시 오늘 일정 좀 남았어?"

"아, 아뇨! 이미 다 끝났어요."

"오옷..."

예리엘은 물론이고 티아도 굉장히 안도하는 기색.

우리는 많이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함께 퇴근했다.

눈에 띄게 신이 난 채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예리엘.

나는 오랜만에 돌아온 소파에 자리잡은 채 축 늘어졌다.

어느새 이 자리가 너무 익숙해졌다.

"주인님께서 돌아오셔서 너무 좋아요."

"그러냐? 아, 잠깐만."

"네에? 우왓..."

묘하게 신이 난 티아에게 마력을 주입해주자 갑자기 쑥쑥 커지는 녀석.

내 왼쪽에는 성체가 된 티아, 오른쪽에는 앨리스가 자리잡게 됐다.

아주 간편하게 밸런스를 맞춘 나는 그녀들의 몸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좀 더 붙어봐."

"으, 으응..."

"엣?"

내 의도를 대충 눈치챈 앨리스와 달리, 살짝 당황하는 티아.

앨리스는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거의 안기다시피 했다.

외출복을 벗은 상태로 내게 찰싹 달라붙은 채 서로의 체온을 즐기는 것이다.

뒤늦게 그 광경을 발견한 예리엘이 주방쪽에서 완전히 굳어있는 사이.

나는 앨리스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쪽, 쪼옥..."

평소였다면 머리의 리본을 풀어야겠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리본이 묶여있지 않았다.

가벼운 버드키스로 시작된 놀이는 조금씩 격해져갔다.

이윽고 서로의 혀를 내민 채 끈적하게 섞어대는 지경이 되자 예리엘이 참다 못해 끼어들었다.

"자... 잠깐만요. 저녁 식사도 하기 전에 무슨?"

"이 정도는 괜찮잖아. 가끔은 나도 좀 마음대로 해야지."

"아앗..."

예리엘은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눈치챘다.

나는 아직 그녀를 완전히 용서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 나름대로의 소심한 복수였다.

앨리스도 이번에 많이 서운함을 느낀 듯, 내 계획에 주저없이 협조해줬다.

옆에서 끙끙 앓던 티아도 눈을 질끈 감으며 황급히 몸을 밀착시켰다.

평소와 차원이 다른 감촉이 옆구리와 가슴을 즐겁게 간질였다.

"어, 어떠신가요 주인님?"

"너도 혀 내밀어."

"후앗..."

티아와도 분별없이 즐겨대자 예리엘의 얼굴이 더더욱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앞서 지은 죄가 있는지라 차마 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무시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절절하게 실감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예리엘은 답지않게 주춤거리며 다가와선 내 자비를 구했다.

"서, 서방님. 그럼 저도..."

"오늘은 안 돼."

"네... 네엣?"

"그치만 예리엘은 배신자잖아."

털썩.

예리엘이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사이.

앨리스는 아예 내 무릎 위에 올랐다.

티아는 자꾸만 예리엘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차마 나를 뿌리치진 못했다.

녀석의 꼬리는 오히려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벌이야. 예리엘 너는 오늘 하루동안 구경만 해."

"그, 그런..."

"싫으면 다시 나갈까?"

"아뇨! 그건 더 아니죠. 아, 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니까..."

예리엘은 스스로를 설득하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앞에서 느긋하게 사랑을 나눴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