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마약(3)
* * *
마약 청정국.
대한민국은 그 명예로운 칭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마약 중독자의 치료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재발 방지를 위한 중독 치료인데 그 부분에선 턱없이 부족하다.
뒷좌석에서 엉엉 울던 티아는 내가 과자를 돌려주자마자 곧바로 생기를 회복했다.
"엑... 마약 치료, 제대로 안 해줘요?"
"못 하는 것에 가깝지. 일단 마약 치료는 제법 비싸고, 환자들의 질은 거의 최악이라고 할 수 있어."
마약 중독자는 조현병 환자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우선 마약을 복용한 시점에서 어엿한 범죄자다.
이놈들은 이미 도덕적 관념이 거의 다 무너진 상태로 시작하는 것이다.
더불어서 몸상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나 다름없다.
개중에는 '마약 치료를 받으면 치료 목적의 마약을 소량이나마 얻을 수 있다'는 풍문에 이끌려서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치료가 지랄같으면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하는데, 그럴 수도 없지. 어차피 반 정도는 국가 지원금이니까."
이런 지원금은 연체라도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마약 중독자 치료 지정 병원 중 제대로 돌아가는 곳은 거의 없다.
마약 환자는 1년에 한두명 정도 구색내기 식으로 받고, 나머지는 입원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그나마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정 병원 중 한 곳이었다.
머지않아 인천 소재의 병원에 들어선 나는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마주했다.
"..."
"아..."
예리엘 프로스트.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상대가 병원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평상복 차림의 그녀 또한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나를 노리고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예전부터 이런 곳에 자주 봉사를 나왔으니까.
내가 목이 메여있자 앨리스가 살짝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신 질문해줬다.
"여긴 무슨 일이야?"
"매, 매주 수요일은 중독 치료 봉사를 하는 날이거든. 내 능력을 사용하면 중독 증세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으니까..."
평소엔 안 만나다가 이런 때에만 마주치는 건가.
하지만 예리엘의 평소 행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이목이 너무 모여들기 전에 자리를 옮겼다.
예리엘은 자꾸만 입을 우물거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나는 차마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사실 괴로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내 배우자인데, 왜 이토록 어렵고 불편하게 대해야 한단 말인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전혀 억울하지 않다.
애초에 내가 산 집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예리엘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서 있어도 입 안이 바싹 마르고 피가 돌지 않는 기분.
차라리 집채만한 흑룡과 싸우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요즘은 어디서 지내고 계셔요?"
"왜? 이번에는 아주 밀고를 하시려고?"
"아뇨! 그런 건..."
나도 모르게 가시돋힌 말이 튀어나왔다.
예리엘은 울상을 머금은 채 애원했다.
"서방님의 마음을 무시한 건 절대..."
"그놈의 서방님 타령 좀 그만해. 내 뜻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헛소리야?"
왈칵 짜증이 튀어나오자 예리엘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반성 따윈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만약 뒤늦게 반성할 짓이었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여자다.
그녀는 오직 내 마음을 무시한 것이 죄스러울 뿐. 가짜 그린 더스트를 놓친 것 자체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그게 맞을 것이다.
그녀가 그저 장난으로 가짜 그린 더스트를 놓쳤을 리가 없다.
분명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원래대로 회복되기 굉장히 어렵다.
"다음에 내가 방해가 되면, 그 때는 나를 치울 셈이야?"
"아녜요! 하나만 믿어주세요. 저는 언제나 서방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
"그만하라고 했잖아. 너를 어떻게 믿어? 네가 스스로 모든 신뢰를 깨버렸는데."
"..."
무겁고 괴로운 침묵이 방 안에 감돌았다.
나는 고개숙인 예리엘의 앞에서 죄스럽게 덧붙였다.
그녀가 이렇게 기죽은 모습 따윈 보고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잘못한 것이지만 통쾌함 따윈 조금도 없었다.
"나도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블랑쉬가 괜히 미안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군요.]
"네 잘못은 아냐. 만약 잘못이 있었다고 쳐도 매튜의 잘못이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병동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당황한 병원 직원들의 앞에서 블랑쉬의 추론을 떠올렸다.
내용이 워낙 처참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추론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녀석은 이미 검증까지 완료해놓은 상태였다.
마약 총책, '거미'의 가장 큰 특징은 판매 대상의 선정이 기막히다는 것이다.
놈은 재산이 상당한 중독자들만 골라서 세심하게 판매를 진행했다.
보통은 신규 구매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꼬리를 잡히게 되지만, 거미는 그런 불상사가 없었다.
그녀는 100% 신뢰할 수 있는 고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마약 중독 전과자들이다.
[처음에는 경찰의 내부자를 의심했지만, 발상으로부터 0.0035초 뒤에 피해자 명단에서 특이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 너 잘났다."
[마스터의 목소리에서 아니꼬움이 느껴집니다. 회사의 최고 역작이자 존재이유, 인류의 미래 그 자체인 제 성능에 대해서 불만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니, 전혀. 충성충성."
솔직히 걱정은 좀 되지만 너무 편하고 좋다.
이윽고 치료가 한창인 구역에 들어선 나는 블랑쉬를 대신하여 설명을 이어나갔다.
티아와 앨리스 덕에, 병원 직원들은 물론이고 환자들도 거의 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와중에도 땅이나 벽만 보고있는, 증상이 심한 중독자들도 없진 않았다.
"누, 누구세요? 여긴 출입 제한 구역인데..."
"거미 피해자들 중 마약반이 특정한 사람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이 병원에서 마약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내부의 진료 기록을 지우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지만, 그래봤자 돈은 정직하죠."
내 뜬금없는 설명에 놀란 토끼 눈을 하는 직원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수갑을 꺼내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차피 당사자는 잘 알아들을 것이다.
"병원 원무과에선 비트코인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무조건 계좌 거래 기록이 남게 되죠. 정말 애통한 일 아닙니까? 거미 여사님."
"네, 네에?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거미라뇨?"
졸지에 수갑을 차게 된 여성 의사가 무척 당황한 목소리로 지껄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길쭉한 흉터가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본인의 환자들에게 마약을 팔다니... 직업윤리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닙니까? 앞서 환자들에게 정말 심하게 당하신 것 같지만요."
"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가..."
"어이쿠. 마침 비밀번호가 풀려있네요."
"아앗!"
내가 스마트폰의 잠금이 풀린 것을 보여주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것을 도로 빼앗으려 하는 의사.
당연하지만 이건 블랑쉬의 솜씨다.
증거물을 조작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잠금을 풀어주는 정도.
지금까지 했던 짓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앨리스가 그녀를 제압하는 사이, 나는 메신저 앱 안에서 그녀의 대화 기록을 찾아냈다.
"이야. 텔레그램 앱에 비밀번호도 안 걸어놓으셨네?"
"그, 그럴리가... 아앗, 그만두세요!"
철컥!
그 사이 티아는 방에서 환자들과 다른 직원들을 내보내곤 문을 닫았다.
아까 예리엘과 마주친 것도 있어서, 나는 평소보다 훨씬 우울한 기분이 됐다.
"왜 그러셨어요? 모두들 도움을 바라고 온 환자들 아닙니까? 그런 환자들을 다시 절벽으로 밀어버리다뇨?"
정기적으로 삭제했던 대화내역까지 복구해서 보여주자, 백의를 걸친 의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잠시 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
"이런 병원까지 올 정도의 마약 중독자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요? 그놈들은 통원치료도 못해요. 분명 본인이 희망해서 입원했는데, 틈만나면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탈출한다고요."
그녀는 볼에 자리잡은 길쭉한 흉터를 내게 보여줬다.
의사치곤 비교적 젊은 그녀의 상처는 하다못해 깔끔한 것도 아니라서 무척 보기 거북했다.
"치료 잘만 받던 환자에게 갑자기 당한 거예요. 마약 중독 치료 지정 병원에선 치료용 마약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거죠."
마약은 중범죄라는 인식과 달리, 나라에선 제대로 처벌도 안 한다.
매번 집유 뜨는 거 보면 이게 경범죄인지 중범죄인지 구분도 안 된다.
"그게 본심이 아니라는 거,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요. 뇌와 신경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을 상대로 무슨..."
"웃기지 마!"
그녀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도대체 뭘 안다고 지껄여? 그거야말로 놈들의 본심이야! 뇌와 신경이 망가져서 더 이상 거짓말을 못하게 된 결과라고!"
"..."
"순간의 쾌락에 취하고 싶어서 애미애비 다 버리고! 자기 자식도 팔아넘기는 버러지 새끼들이 바로 마약 중독자들이야! 왜 내가 그런 쓰레기들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건데!"
그녀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범죄까지 정당화해주진 않았다.
"이 상처 때문에 약혼자도 도망쳤어! 내가 이 일을 계속 하다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고... 근데 나도 변명 한 마디 못 했어!"
그런 쓰레기들에게 복수하는 게 뭐가 나쁜가.
나는 대충 그런 마무리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종종, 현실은 나쁜 쪽으로 상상을 뛰어넘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본인을 위해서 처절하게 변명했다.
"마약 중독자는 죄다 쓰레기야. 머리가 이미 폐품이 되어버린 놈들이라고. 그래... 나는 잠깐 놈들을 실험한 것 뿐이야. 어차피 마약상이 접촉한 정도로 다시 유혹에 넘어가면 치료 가능성이 없어. 이것도 사실은 치료의 일환이라고!"
"... 의사 선생님도 약하셨어요?"
티아가 진심을 가득 담아서 묻자 마침내 마약반 팀원들이 연락을 받곤 달려왔다.
나는 무거운 심정으로 그들에게 그녀를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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