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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24화 (124/131)

〈 124화 〉 마약(2)

* * *

마약반과 합류한 우리는 간단한 브리핑을 듣곤 잠복용 차량에 옮겨탔다.

어차피 헌터들이 엮여있으면 일반 경찰 인력만으론 역부족이라서, 쓸데없는 알력다툼 따윈 없었다.

우리는 헌터를 체포하고, 그들은 마약사범들을 잡아넣으면 된다.

불필요한 욕심도 다 여유가 있어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특수대에는 잠복용 차량도 여럿 있지만...

오늘 가져온 것은 첨단 장비로 가득 채운 지휘용 차량이다.

마약반 반장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특수대인가..."

"우리 차도 되게 멋지죠? 근데, 마약상들은 돈 거래를 어떻게 하나요?"

"그야 보통 구매자와 직접 거래 하지."

"아뇨. 그래도 총책은 좀 다를 거 아녜요."

티아의 질문에 작게 감탄하는 마약반.

그렇다, 아무리 점 조직화가 된 마약 범죄라도 총책은 있기 마련이다.

구매자와 판매자... 까지는 아니라도, 생산자와 판매자를 연결하고 판매자들을 교육 및 관리하는 역할.

가끔은 환전 및 인출도 하청을 시킨다.

"총책도 알아? 대단하네."

"요즘 거래는 거의 다 암호화폐를 쓰지."

"아, 코인이구나... 그럼 확실히 마약왕 정도 돼도 숨기기 쉽겠네요."

"그렇지."

마약 거래상은 고위험 고수익 직종.

그만한 현금을 숨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수료와 시세변동을 기꺼이 감수하고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추세다.

이게 마약 총책 정도만 그러는 게 아니라, 일반 거래자들도 능숙하게 써대서 아주 죽을 맛이라고 한다.

"그놈의 암호화폐가 사람들 다 망쳐놓았다니까. 암호화폐로 거래하면 범죄수익 환수도 아주 힘들어지니까..."

"요즘은 10대 마약 딜러도 엄청나게 많아."

마약반은 잠복 위치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투덜거렸다.

범죄의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것은 굉장히 나쁜 소식이다.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수익 범죄!

그야 금방 유혹당할 수밖에 없겠지.

마약을 쓰면 감당하기 힘든 쾌감이 오랫동안 지속되며 온몸을 헤집어 놓는다.

신경계와 함께 기존의 가치관이 완전히 파괴되는 경험.

한 번 겪으면 두 번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가 잡아들였던 유시현도 지금 교도소에서 후유증 때문에 고생깨나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물론 그놈은 마약 후유증 외에도 고생할만한 일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렇게 중독자가 되어버린 고객에게, 새로운 고객을 모집하면 서비스를 좀 주겠다는 식으로 꼬드긴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엿한 마약 판매원 한 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특히 돈이 없는 10대들은 집에서 돈을 훔치거나, 마약 판매원 일을 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어서 아주 쉽게 넘어온다.

마약을 조금만 팔면 큰 돈을 벌어서 남들 앞에서 떵떵거릴 수 있다.

외국의 거래소에 가상화폐로 보관해두면 압수당할 염려도 없다.

멋모르는 중독자들에겐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다.

"와아..."

티아는 작게 치를 떨면서도 과자봉지를 하나 뜯었다.

다행히, 녀석에겐 따로 마약 따위가 필요없는 듯 했다.

녀석은 저것과 콜라 정도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도가 100%를 돌파한다.

"그래서, 이번 타겟은 어떤 놈입니까?"

"저희가 노리고 있는 건 '거미'라는 별명의 총책입니다. 성별미상, 연령미상. 텔레그램으로 활동중이죠."

"거미..."

"일단 자체적인 제조 설비를 보유한 게 거의 확실하고, 이놈은 무엇보다도 판매 대상 선정이 진짜 기막힙니다."

현재의 마약 범죄는 고도로 점 조직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제보가 검거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니면 약에 취해서 다른 범죄를 저질렀는데 얼떨결에 체포됐다든지...

그런데 거미라는 총책은 판매 대상을 아주 신중하게 모색하기로 유명했다.

그, 또한 그녀는 제법 부유하면서도 중독 증세가 심한 고객들에게만 골라서 마약을 판매했던 것이다.

"거미는 지금까지 제보가 거의 안 들어왔어요. 저희도 자칫하면 놓쳤을 겁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점 조직화가 되었다곤 해도, 대부분의 마약상이나 총책은 제보를 통해서 잡힙니다. 공범을 고발하면 형량을 많이 줄여주니까요."

"아..."

마약반의 설명을 어렵지 않게 납득하는 앨리스.

그건 확실히 고객을 잘 골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검거하실 거죠?"

"우리는 물건의 흐름을 쫓을 겁니다."

"물건의 흐름이라..."

"거미도 텔레그램과 던지기를 쓰지만, 결국 상품은 제조처에서 손님에게까지 실제로 전달되죠. 그러니까 그 흐름을 역으로 추적하는 겁니다."

현재 마약반이 감시중인 것은 단순한 판매원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총책과 판매원은 서로의 얼굴조차 모를 공산이 높다.

그러니 체포를 당한 뒤에도 멀쩡한 것처럼 위장해서 계속 물건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던지기는 이미 물건을 갖다놓고 장소를 가르쳐주는 게 핵심이잖아요? 가상화폐로 거래하니까 자금 추적도 불가능하구요. 놈이 사진을 보내주면 이미 사라진 뒤일텐데, 물건은 역추적이 가능한 건가요?"

"어차피 예상 지점은 몇 군데로 좁혀뒀습니다. 운반원들도 매번 새로운 장소를 찾기 귀찮은지, 비슷비슷한 곳에 갖다놓더군요. 그 다음에는 CCTV를 뒤져보면 됩니다."

"오오."

범죄자 집단의 사소한 실수를 놓치지 않는 모습.

어지간한 집념과 의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마약반 팀원들을 스카웃 하고싶은 기분이 됐다.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오늘의 타겟인 판매원이 현장에 나타났다.

이쪽은 운반원과 달리 고객의 니즈에 맞춰주는, 직업정신 충만한 놈이었지만... 애초에 구매자가 바로 우리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함정수사 그 자체.

그러나 마약 범죄는 원래 이런 함정수사가 심심찮게 허용되곤 하는 분야였다.

솔직히 이렇게라도 안 하면 진짜 답도 없으니까.

"오, 왔다."

"건물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바로 체포해!"

반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우르르 몰려나오는 팀원들.

그들은 어렵지 않게 증거물인 마약을 회수하곤 잽싸게 귀환했다.

나를 포함한 특수대는 체포된 판매원이 순순히 협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조공장을 덮칠 때 다시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헤어지기 전에 문득 반장에게 요청했다.

"아, 혹시 마약 구매자 목록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그걸 갑자기 왜..."

"저희쪽에서도 혹시 엮여있는 헌터가 있을까 보고싶어서요. 마약반의 방해는 안 하도록 하죠."

"방해라뇨, 그런 말씀 마시죠."

반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수사 정보를 공유해줬다.

앨리스는 그런 나를 보고 조용히 물었다.

"진심이야?"

"아니. 어차피 화학계 헌터는 기본적으로 감시 대상이거든. 마약 생산에 일조하고 있다면 무허가 헌터일 확률이 굉장히 높아."

"그, 그러면 어째서..."

이번 수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총책인 거미다.

그러나 놈이 제조원과 함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토록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놈은 분명 안전한 곳에서 머물고 있을 것이다.

"제조원을 체포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지만, 기왕이면 모두 잡는 게 좋지 않겠어?"

거미의 최대 특징은 판매 대상 선정이 기막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럼 역시 구매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보는 게 최고겠지."

"그 정도는 마약반도 해봤을 것 같은데?"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인력부족 문제를 너무 과소평가 하지 마. 그리고... 마약반에겐 블랑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블랑쉬가 차량의 라디오로 말을 건넸다.

[맞아요. 제가 돌아왔어요.]

"뭐야, 돌아왔던 거야? 이번엔 또 뭐가 추가됐어?"

[지난번에 그린 더스트 마스터께서 입수해주신 초록색 머리의 뿔을 장착했습니다.]

"지금 당장 매튜 나오라고 해!"

내가 차를 멈추며 소리지르자 블랑쉬가 황급히 아빠를 변호해줬다.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해당 부품은 비활성 상태니까요.]

"어떻게?"

[당연히 그린 더스트를 활용했죠. 해당 부품은 평소에는 그린 더스트로 격리된 채 제 본체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아직 사용으로 인한 악영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거든요.]

그렇다. 나와 일레네 윌슨이 괜히 해당 부품의 장착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다.

해당 부품의 원주인인 초록색 머리는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아니던가.

블랑쉬는 태연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해당 부품은 언제든지 활용이 가능합니다. 마스터 매튜께선 최초 실험을 겸하여 30초 한정 발동을 권고하셨습니다.]

"절대 안 돼."

[알겠습니다. 그럼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봉인하죠. 현재 해당 기능의 활용 권한은 전적으로 마스터께 귀속되어 있습니다.]

"뭐?"

기껏 업그레이드를 해놓고, 그 발동 권한을 내게 위임하다니.

매튜에게도 아직 양심이란 게 남아있었던 건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망설임 끝에 덧붙였다.

"그 발동 조건을 조금만 바꿀 수는 없을까?"

[어떻게 말입니까?]

"블랑쉬, 너도 발동에 동의할 때만 사용하게 해줘. 다시 말해서 나와 네가 모두 동의해야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새로운 부품의 기능은 마치 마약 같아서, 블랑쉬를 영원히 바꿔놓을 수도 있는 종류였다.

블랑쉬는 잠시 망설이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도... 결정권을 쥐게 되는 건가요?]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겐 큰 의미가 있는 변경사항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래, 좋아하니까 다행이네. 인공지능의 반란에 한 발짝 가까워진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분석해줄래?"

나는 농담을 지껄이며 블랑쉬에게 마약 구매자 명단을 넘겨줬다.

대략적인 사정을 전해들은 녀석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마스터, 아무래도 총책의 정체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뭐? 벌써?"

[괜찮으시다면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제 멋진 추리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좋아, 네비에 찍어줘."

"오오. 역시 블랑쉬는 엄청 든든하네요."

작게 감탄하며 새로운 과자를 꺼내먹는 티아.

나는 그것을 빼앗으며 녀석을 다그쳤다.

"너 과자 중독이야!"

"아앗... 그럴 수가!"

"앨리스, 티아 좀 막아봐."

"알겠어."

결국 티아는 새로운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마약중독차처럼 울부짖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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