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12화 (112/131)

〈 112화 〉 테러(2)

* * *

앞서 긴급 경보를 때린 것이 무색하도록.

나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대부분의 인원들을 쫓아냈다.

"됐어, 다들 수고했고 내일 보자."

"네? 팀장님. 정말 이런 날에 칼퇴해도 되는 건가요?"

이서우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으나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이런 날이니까 칼퇴하는 거야. 만약 내가 대규모 테러를 계획중이라면, 특수대 사무실 정도는 무조건 감시할테니까."

"아..."

이건 내가 그린 더스트 활동을 할 때마다 예리엘 프로스트의 동향을 체크하던 것과 비슷하다.

나는 아주 높은 확률로 자택도 감시를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김정태에게 지시했다.

"정태는 우리집 주변 좀 살펴줘."

"알겠습니다."

"좋아, 얼른 나가자."

우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체 태연히 퇴근했다.

예리엘은 테러 소식을 듣곤 굉장한 의욕을 보였으나, 내가 뜯어말려서 겨우 진정했다.

아무리 비밀 집회라곤 해도 테러라는 단어를 대놓고 사용했던 것을 보면 계획이 어느정도 진행된 것이 분명하다.

"먼저 테러의 목표와 종류부터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싶네. 우리가 잘못 짚은 거면 가장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명령대로 조사를 진행하던 블랑쉬가 집회 현장의 위성사진을 보내줬다.

분명 폭삭 망해서 파산 신고까지 해놓은 회사의 부지인데, 척 봐도 경비가 심상찮았다.

CCTV가 사각지대 없이 빼곡하게 배치된 것은 물론이고 마력 감지기까지 설치되어 있다.

"헌터 관련 업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저런 고가의 장비를..."

[그리고 보안팀장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사무실과 마스터의 자택을 감시중인 인원들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이런 식으로 감시까지 붙이는 것을 보니 인력이 제법 풍부한 모양이다.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서 예리엘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집회 참가자들 신상명세와 동선은 파악됐어?"

[네. 대부분 헌터 범죄로 피해를 입은 인원들입니다. 메신저 내역과 동선 조사 결과 현재 추가 멤버를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다행이네."

추가 멤버를 모집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실행까진 단계가 좀 남아있다는 뜻이다.

만약 테러를 저지르기 직전이라면 신규 인원을 영입하긴 커녕, 기존 멤버들의 입단속이나 열심히 시키고 있을테니까.

"그럼 비집고 들어갈 곳은 있는 셈인가?"

"이번에도 위험천만한 잠입수사인가요?"

"아니, 사실 이게 어쩔 수가 없어."

만약 잠입수사가 필요하지 않은 수준의 놈들이라면 스마트폰 사용내역을 뒤져본 시점에서 대충 답이 나오니까.

저런 폐쇄적인 집단을 조사하기 위해선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서지유를 혼자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가 직접 뛰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이번 건은 여러모로 감이 아주 좋지 않았다.

"이것 봐. 집회 장소의 보안체계만 봐도 보통 놈들이 아냐. 적어도 8명 이상이 집회에 참여했는데 보안이 유지되고 있단 말이지."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해당 기업 소속이었던 사람이 훨씬 적었다.

이게 무슨 종교단체 같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수상하다.

"뭔가 프로의 냄새가 나는데..."

"다들 사연이 장난 아니긴 하네."

"리더는 누구지? 역시 장소제공자인 사장인가?"

[죄송합니다. 아직 그것까진...]

"뭐, 됐어. 일단 잠입용 프로필부터 만들어보자."

현재까지 확인된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헌터 범죄의 희생자들이다.

우리도 그에 맞춰서 위장용 프로필을 구축해봤다.

그들이 먼저 접근하도록, 어느 정도의 사회적 영향력과 재력, 그리고 헌터들에 대한 원한까지 갖춘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냈다.

"이건 어때? 북두칠성 길드 사건 당시에 하나뿐인 아들이 사망한 거지."

"그건 좀 뻔하지 않나? 아, 나쁘다는 건 아니고."

"어차피 신분증은 물론이고 사건 기록까지 만들 수 있잖아. 그만큼 확실한 동기를 가지고 있어야 저쪽에서 안심하고 접근하지."

"북두칠성 길드 사건이라는 설정은 꽤 좋네요. 그 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결국 우리는 앨리스의 의견을 채용해서 조금 다듬기로 했다.

배우는 당연히 나와 서지유.

김정태는 나 대신 본인이 가겠다고 했지만, 지난번의 영속교 사건처럼 정신조작 능력을 써댔던 케이스도 있으니 내가 직접 나서는 게 가장 확실했다.

게다가... 나는 변장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럼 체형은 어떻게 할까요? 옷 속에 보형물을 집어넣는 게 가장 편한데..."

"아니, 그러다 몸수색이라도 하면 들키잖아. 나는 이대로 해도 돼."

"안 돼요 팀장님. 이제 팀장님도 많이 유명하시니까요."

"괜찮다니까? 그... 나 요즘 살 좀 쪘어. 한 5kg 정도. 근육량도 살짝 줄었고."

"네에?"

내 수줍은 고백에 화들짝 놀라는 서지유.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최근엔 좀 괜찮아졌지만, 특수대 일 시작하고 나선 이틀에 한 번 꼴로 야근이었잖아. 게다가 티아가 옆에서 군것질 하던 거 한 입씩 뺏어먹다보니까..."

"엑... 그, 그렇군요... 괜찮아요 팀장님! 저는 지금 정도가 딱 보기 좋은 것 같아요."

"마음에도 없는 위로 정말 고마워."

그녀의 동정에 괴로워하면서도 냉큼 프로필을 외웠다.

"이번에도 부부 설정인가... 그냥 남매로 할까?"

"아뇨. 그럼 억울하게 죽어버린 외동아들 설정을 못쓰게 되잖아요. 저는 부부사이가 좋아요."

"그래. 지유 씨가 좋다면야..."

"그나저나 저희는 부부사이 설정 한 적 없잖아요? 지금까진 팀장님의 호위 대상이라든가, 아예 애첩이었지... 저 취급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 미안. 앨리스랑 헷갈렸네."

"..."

잠시 눈을 질끈 감은 서지유는 그대로 한참을 삐져있었다.

내가 그녀를 열심히 달래주는 사이에도 잠입 작전은 물 흐르듯 진행됐다.

블랑쉬는 먼저 명의를 대충 숨긴 채 헌터 반대 시위대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했다.

당연하지만, 그곳은 테러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관리하는 단체였다.

기껏 익명으로 기부했건만. 그는 용케도 우리의 가짜 프로필을 찾아냈다.

[타겟이 계좌 추적을 통해서 위장용 프로필에 도달했습니다.]

"벌써? 역시 금융업계 직원은 무섭네."

"정말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올까요?"

"괜찮아. 이번에는 정말 공을 들여서 준비했으니까."

나는 불안해하는 서지유에게 미리 준비해놓은 인터넷 기사까지 몇 개 보여주며 말했다.

사건 기록과 주민등록번호도 모두 진퉁.

이건 정말로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이내 내 전화번호를 확보하여 연락했다.

[여보세요? 아, 강영찬 씨 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기부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잘못 보내신 게 아닌가하고 확인차...]

"잘못 보낸 게 아닙니다. 부디 좋은 일에 사용해주세요. 그럼..."

뚝.

내가 전화를 끊자 저쪽은 몸이 달아올랐다.

테러를 저지르는 것도 돈이 한두푼 드는 게 아닌데...

이렇게 거금을 척척 내놓는 물주를 만나게 됐으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일찌감치 위장용 숙소로 이동하길 잘했다.

"얘들 움직이는 거 보니까 이미 우리 조사까지 끝낸 것 같은데? 설마 정부기관 소속 멤버도 있는 건가?"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어요."

한동안 재택근무로 업무를 처리하던 우리는 우연을 가장해서 접근해오는 멤버들을 보곤 실소를 참아야했다.

어째 사이비들과 비슷한 수법.

은근슬쩍 우리를 꼬드기던 그들은 자세한 사연에 눈물까지 흘렸다.

다른 건 몰라도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저 눈물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몇 번이고 스스로를 설득했어요. 헌터들은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세상에는 나쁜 헌터들이 많지만, 분명 좋은 헌터들도 있을 거라구요."

"하지만 이제 게이트도 던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니까..."

"두 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곧 헌터들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올거에요. 헌터들은 지금껏 무고한 시민들을 인질로 삼아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착취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정부와 협회에서도 헌터 범죄를 문제삼고 있잖아요. 사실은 모두들 우리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나는 열심히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표정관리를 했다.

옆자리의 서지유는 무척 능숙하게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저희 윤이는 도대체 왜 그리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는지... 정작 그 사건을 일으킨 헌터들은 잘 살고 있다 생각하니, 분해서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저희도 비슷한 일을 겪어서 그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합니다.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꼭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리가 있어요. 우리같은 피해자들을 위한 모임이죠."

"그런가요? 지난번의 헌터 반대 시위같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더 지원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윤이처럼 억울하게 희생되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그야말로 혼신의 연기를 펼치던 나는 살짝 서글픈 심정이 됐다.

사실은 나도 이들과 비슷한 계획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다.

전 세계의 헌터들을 몰살시킨다는 테러 계획은 우리쪽이 원조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던 우리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나서야 헤어졌다.

서지유는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눈물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일단 잘 됐네요.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당연히 테러를 막아야지. 하지만 방법은 평소랑 많이 다르게 갈거야."

"네에?"

"우리가 이번 테러를 막아봤자, 다른 놈들이 비슷한 짓을 계획하면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이번 건은 운이 좋아서 우리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런 류의 테러가 성공할 수 없다는 선례를 아주 확실하게 만들어서 보여줄 계획이었다.

그 방법을 짐작도 하지 못한 서지유가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당연하지. 요즘은 이런 대규모 테러가 성공하는 게 훨씬 드문 시대니까 말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있게 말했다.

"놈들에게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보여주지."

"에엣..."

작전명 조별과제.

그것이 내가 선택한 이번 잠입 작전의 이름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