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테러(1)
* * *
이른 아침.
나는 예리엘과 함께 오랜만에 협회의 회장실을 방문했다.
비공식 국무회의가 시작되기 전. 협회장이 내게 조용히 물었다.
"저, 티아마트의 초록색 머리는 정말 행방불명이 된 건가?"
"그렇다니까요. 적어도 일본에는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크흠. 그렇다면 뭐."
정보제공자인 그에겐 좀 미안한 감도 있지만...
애초에 본인들이 비밀공작을 실행할만한 역량이 부족한 탓에 내게 외주를 줘버린 시점에서 나를 탓할 자격 따윈 없다.
나는 역으로 협회장을 갈궜다.
"그린 더스트도 넘겨줬는데, 얼른 교도소 좀 더 지어요. 감옥에 자리가 없어서 범죄자들을 못 잡아넣는 게 말이 됩니까?"
"어차피 헌터 전용인데 교도소 하나면 충분하지 뭐... 그거 하나 짓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는가? 확장 공사로 정원을 늘려줄테니까 참게."
"아, 슬슬 시작하겠네요."
우리는 곧바로 예리엘이 주도하는 화상 회의를 시작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매일같이 던전이 발생하고, 가끔씩 몬스터도 쳐들어온다는 것을 가정하고 헌터들을 운용하고 있다.
비단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일종의 비상 전시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도 앞으로 6개월 정도면 끝난다.
비상 전시 체제는 말 그대로 비상용.
정상적으로, 장기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체제가 아니다.
실제로 지금 감옥이 부족해서 범죄자를 못 잡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헌터 전용 교도소가 좀 많이 고급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
원래 교도소는 많으면 2천 명 이상, 적어도 수백명은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이다.
하지만 헌터 전용 교도소는 기본적으로 1인 1실인데다 최첨단 시설이 갖춰져 있고, 교정공무원 인력도 부족한 탓에 정원이 꼴랑 100명 수준.
이래서야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했다.
예리엘은 이런 크고작은 문제들을 아주 능숙하게 조율하며 각부에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가끔씩 그들이 이런저런 이해관계 때문에 머뭇거리면, 내가 주먹을 작게 흔들거나 단검을 슬쩍 매만지며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줬다.
음지와 양지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된 사람들은 차원이 다른 협조 정신을 보여줬다.
대격변에 대비하여 준비를 척척 갖춰나가던 우리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야 화상 회의를 끝낼 수 있었다.
회장실에서 점심 도시락을 얻어먹던 나는 외국의 자료를 보곤 피식 웃었다.
"다들 벌써부터 난리네. 일본에서 괜히 나같은 놈까지 초대한 게 아니었구나?"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됐는데... 놀라울 정도로 대비가 안 되어있군요."
"당장 우리쪽도 아직 준비가 많이 부족하잖아."
대 헌터 시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황금기였다.
비록 인류의 존망이 위협받았을지언정, 새로운 에너지와 법칙들이 우후죽순처럼 발견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유용한 기술을 많이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지구 생태계 정점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하지만 좋은 시대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 법.
이제 단꿈에서 깨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 나는 아침부터 골 때리는 건을 맞이하게 됐다.
오늘은 피의자 조사가 있는 날이라서 다들 날이 좀 서있었는데...
사무실로 불려온 사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오라가라야!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정태야, 이분은 당장 조사가 불가능할 것 같으니까 구속실에 좀 처박아놔."
"네."
내가 기강잡기 겸 엄포를 놓자 안색을 굳히는 피의자.
다른 손님들은 그가 끌려가는 것을 보곤 많이 얌전해졌다.
"다들 일 시작해. 지유 씨는 아까 그 양반 관련 정보 탈탈 털어서 가져와."
"네, 팀장님."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죄를 지었길래 저토록 당당한가 봤더니...
헌터펫 학대라는 난생 처음 보는 혐의로 송치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저놈은 남의 헌터펫을 마구 때려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지난번의 헌터펫 살인사건 주범도 헌터펫 학대 혐의로 기소되진 않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사실 현역 헌터들 중에서도 헌터펫에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야."
앨리스가 내 눈을 슬쩍 피하며 말하자 티아와 케르가 뒤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놈의 숨겨진 죄를 찾아내서 저녁 즈음에야 취조실로 들여보냈다.
장장 6시간 이상 갇혀있었던 피의자는 아까보다 많이 얌전해졌다.
"가만히 있던 헌터펫을 왜 때려서 죽였습니까?"
"가만히 있다니! 그 놈이 나를 향해서 울었다니까! 그래서 위협을 느껴서 어쩔 수 없이..."
"애완용 슈론이 위협이 되면 얼마나 됐다고 그러셨어요?"
순간 기가 차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폭행치사한 헌터펫은 다름아닌 슈론...
현재 헌터펫 카페에서도 양육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헌터펫인 것이다.
나는 그의 헛소리를 더 들어주기 싫어서 잽싸게 덧붙였다.
"이틀 전에 헌터펫 학대죄와 슈론의 위험성에 대한 검색 내역이 있군요. 실수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봐도 되겠죠?"
"아니 무슨 몬스터 한 마리 가지고 그런 거창한... 것보다 그런 거 찾아봐도 되는 거요?"
"저흰 됩니다. 아, 그리고 탈세랑 불법 무기 소지죄도 있으니까 얼른 변호사 부르세요."
"헉..."
그는 이것까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조사하면 다 나온다는 농담은 사실상 농담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와 엮였던 범죄자들이 지나치게 유능해서 그렇지, 보통은 진짜로 다 나온다.
결국 그는 국선을 부르기로 하며 취조를 마쳤다.
워낙 가진 게 없었는지라 이제와서 딱히 잃을 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사람이다.
그냥 인생의 막장에서 만만한 헌터펫을 향해 화풀이를 해댄 것이다.
"가끔은 나도 가짜 그린더스트처럼 하고싶다니까."
"저, 팀장님. 잠시 괜찮으실까요?"
나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던 서지유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그거... 혹시 괜찮으신가 싶어서요."
"아, 외출? 안 될 것 없지. 어디 좋은 식당이라도 찾아볼까?"
"그건 괜찮아요. 제가 이미 찾아놓았으니..."
삐빅, 삐비빅!
서지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울음을 토해내는 스마트폰.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곤 개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 말해."
[마스터. 최우선 보고사항입니다.]
"최우선?"
최우선 보고사항이라면 내가 미리 지정해놓은 몇 가지 중대사안 중 하나라는 뜻이다.
회사 관련 업무나 엄청난 중범죄 등등.
나는 전자를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이번 것은 후자였다.
[서울 시외에서 테러 관련 정보 검색이 약 1800% 증가. 직후, 테러라는 단어가 48회 이상 사용된 집회가 감지됐습니다.]
"테, 테러라니..."
망연자실하면서도 황급히 입을 꾹 다무는 서지유.
당연하지만 이쪽은 평소에도 조사를 하도록 지시를 내려뒀다.
"헌터가 엮인 건 확실해?"
[해당 집회가 열린 곳이 바로 헌터 관련 업체입니다. 예전에 황금방패 길드의 불법 공매도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업체죠.]
"뭐야?"
황금방패의 불법 공매도라면...
현역 헌터가 길드 차원에서 공매도를 걸어놓곤 화학 공장에 불을 지르려 했던 그 사건이다.
당시의 범인과 길드의 간부진들은 모두 체포됐지만, 이미 발생해버린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건 확실히 테러 정도는 저지르고도 남을만한 원한이다.
나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이야기에 곧바로 조사를 결단했다.
"집회 참가자 리스트 전부 뽑아. 녹취록은 확보했나?"
[현재 보정 중이지만 음질이 썩 좋지 않습니다. 가끔씩 큰 소리로 질렀던 단어만 몇 개 들리는 정도네요.]
"알겠어. 다들 주목. 현재 진행중인 사건 올스톱하고 지금 당장 조사에 착수한다. 테러 사건이다!"
방을 나선 나는 곧바로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서지유는 압수수색을 주장했으나, 나는 신중하게 나가기로 했다.
"테러 사건이라면 지금 당장 덮치는 게 낫지 않나요?"
"그렇지도 않아. 테러라곤 해도 엄청나게 여러가지니까. 지금 현장에 있는 놈들이 전부라는 보장도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생화학 테러 따위를 준비해놓아서, 우리가 압수수색을 들어가자마자 일을 저질러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류의 테러는 아무나 저지를 수 없을만큼 허들이 높긴 하지만...
하필이면 테러 집회가 열린 곳이 헌터 관련 업체다.
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무기는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겠지.
"우선 철저하게 조사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울은 전 세계에서 테러에 대한 대비가 가장 잘 되어있는 도시다.
테러가 별 건가?
몬스터들이 던전 속에서 뛰쳐나오면 그게 바로 테러다.
인류는 지난 20년간 수도없이 그것에 대비해왔다.
"서울에서 일을 벌일 거라면 보통 계획으론 안 될거야. 대규모 물자 이동이나 병력의 이동은 필수지. 이미 감시를 시작한 이상, 티가 안 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그렇군요."
"그럼 지유 씨, 얼른 출동 준비해."
"엑..."
서지유는 배신당한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이를 악물었다.
앨리스가 그런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