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스토킹(3)
* * *
차량이 블랙마켓 근처에 도착하자, 피해자를 미행하던 서지유가 곧바로 탑승했다.
사람이 네 명에 헌터펫까지 한 마리 있다지만 앨리스와 티아가 워낙 아담한 사이즈라서 비좁은 느낌은 거의 없었다.
서지유는 쭈삣쭈삣 자리를 잡으며 내게 보고했다.
"하지은 씨는 방금 마켓에 들어갔어요. 지금 바로 덮치지 않아도 되나요?"
"어, 괜찮아. 아직 지원병력이 도착하지도 않았고, 어떤 물건인지 보고싶으니까."
나는 애써 예리엘을 쳐다보지 않으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앞에서 지원병력을 운운하고 있으면 일종의 핑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마켓 안쪽에는 이미 서번트가 잠입해있으니 굳이 따라들어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거래가 끝난 뒤에 현장을 급습하면 된다.
그 사이, 앨리스는 뒤늦게 의문을 떠올리곤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물건을 가지고 있는 하지은 씨가 신고를 때린 건 그렇다 쳐도, 가해자는 왜 이걸 말 안 했대?"
장물을 보유한 하지은 씨가 스토커 신고를 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건에는 너무 큰 돈이 걸려있어서 공범의 스토킹이 진짜 절도나 살인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스토킹으로 체포당한 공범은 무척 억울했으나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괜히 세게 나와서 내 성질을 건드렸던 것을 제외하면, 그의 대처는 아주 합리적이었다.
"가해자는 초범이었어. 스토킹으로 기소당해봤자 끽해야 집유지. 하지은 씨의 공범이란 뒷사정을 감안하면 무난하게 합의도 가능할테고... 하지만 헌터 전리품 무단 소지 및 보고 위반은 실형 확정인 중범죄야."
"아..."
이번 건처럼 헌터 전리품을 몰래 빼돌리는 행위는 협회에서 굉장히 싫어하는 짓거리에 속한다.
일단 헌터 전리품이란 것이 고위력의 무기로 개조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는 거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게다가 수십억대의 초고가 전리품이라면 탈세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세금 내기 싫어서 빼돌린 것도 있을테고."
즉. 가해자의 입장에선 무조건 스토킹을 인정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설령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한다 해도, 중범죄자로 낙인찍혀서 교도소에 처박히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의 실수라고 한다면 그 과정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것이다.
"놈은 스토킹 혐의가 적용되는 것도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 것 같아. 스토킹 사실이 인정되어버리면 협회와 길드에게 전과자라 낙인찍히고, 공략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질테니까."
"저, 팀장님. 물건을 판매한다면 혹시 경매 같은 걸 하는 건가요?"
서지유가 좀 천진하게 묻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영국 블랙마켓에서의 기억이 남아있는듯 한데...
여기선 그렇게 쓸데없이 화려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갔던 런던 블랙마켓은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지. 보통은 경매라곤 해도 대부분 인터넷 경매야."
"아..."
"그리고 판매자들의 입장에선 그냥 장물아비에게 넘기는 게 훨씬 편하지. 블랙마켓도 그걸 권장하고 있어."
블랙마켓은 중간유통업자 역할이기 때문에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거래를 해버리면 남는 게 없다.
게다가 매번 경매를 여는 것도 굉장히 번거롭다.
판매자 측이 좀 잔뼈가 굵은 헌터 범죄자라면 또 몰라, 하지은 씨도 딱히 전과는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장물아비가 값을 쳐주는대로 팔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두 사람이 빼돌린 헌터 전리품이 무엇인지 기대하며 자동차의 모니터를 살펴봤다.
그 사이 하지은은 장물아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간신히 영업을 재개한 블랙마켓은 상당히 움츠러든 분위기였지만, 장물아비는 그녀를 환영했다.
"어서오세요. 귀중한 전리품을 가지고 오셨다구요?"
"... 여기 있어요."
잔뜩 경계한 듯 몸을 굳힌 하지은이 천천히 상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안쪽에 고이 잠들어있던 헌터 전리품은 새하얀 구슬 같은 보석이었다.
내가 그것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자 장물아비가 곧바로 탄성을 내질렀다.
"알비노 와이번의 역린! 틀림없는 진품이군요."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하지은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물아비는 잠시 몸을 돌려서 키보드를 몇 번 조작하더니, 매입가를 알려줬다.
"그거라면 제가 8억에 사죠."
"... 자, 잠깐. 잠깐만요. 고작 8억이라구요?"
8억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하지은의 기대에는 한참 못미치는 것 같다.
내가 눈을 질끈 감고있자 장물아비가 모니터의 건너편에서 굉장히 억울해했다.
"수수료 다 떼고 8억이면 나쁘지 않을텐데요? 저희는 매입 즉시 전액 현금 지급입니다. 한국의 어디에 가도 이런 서비스에 이 정도로 후하게 쳐주는 곳은 없다구요."
"아니, 도대체 수수료를 얼마나 떼길래..."
"... 손님. 대충 얼마나 생각하고 오신 거죠?"
서로의 핀트가 미묘하게 어긋나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장물아비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말했다.
"이거 100억짜리 헌터 전리품이라면서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도대체 누가 그럽니까?"
"여, 여기. '세계에서 가장 비싼 헌터 전리품 랭킹'에서..."
"아이고."
하지은이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자 대뜸 곡소리부터 내는 장물아비.
사실 그가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현직 헌터가 그런 엉터리 영상 좀 덥썩덥썩 믿지 마세요."
"어, 엉터리?"
"비전문가가 제대로 조사도 안 해보고 흥미 위주로 만든 영상이 엉터리가 아니면 뭡니까? 확실히, 알비노 와이번의 역린이 100억에 거래됐던 때가 있긴 했죠."
"여... 역시...!"
"잠깐. 한국말은 끝까지 좀 들어봐요. 근데 그게 자그마치 3년 전입니다."
장물아비는 이례적으로 구매 및 판매 내역까지 공개하며 차근차근 알려줬다.
"하지만 100억대 거래는 딱 한 번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물량이 좀 풀리기도 했고, 관련 기술 연구도 이미 끝나서 가격이 폭락했다구요. 새롭게 발견된 헌터 전리품은 기업에서 기술 연구 목적으로 사들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 그럼 지금은..."
"최근 거래가는 약 11억. 이런저런 위험부담이랑 서비스료를 제하면 8억 이상 지불할 수는 없어요."
논리정연한 설명에 한참동안 멍하니 굳어있던 그녀는 즉시 스마트폰을 두드려서 사실을 확인해봤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린 구석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오신 겁니까?"
"그야 특정 인터넷 검색 내역은 실시간으로 감시당한다는 소리도 있고..."
"거 참, 아무거나 덥썩덥썩 믿으시는 모양이네. 그냥 좋게 생각하세요."
하지은에겐 다행히도, 이곳의 장물아비는 고객의 멘탈 케어까지 해주는 진정한 중간유통업자였다.
"8억짜리 전리품도 어디 흔합니까? 제가 이 일 하면서 1억짜리 구경도 할까말까인데."
"그... 그런가요? 이 거래는 정말로 안전한 거죠?"
"제가 손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뒤탈이 생깁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두 사람의 거래를 구경하던 티아가 작게 감탄했다.
"우와. 저 사람 장사 잘 하네요."
"그러게. 앞으로 밀거래할 때엔 여기서 해야겠어."
"..."
나는 슬슬 체포를 준비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예리엘이 내 안색을 눈치채곤 조심스레 물었다.
"서방님, 왜 그러셔요?"
"아니. 사실... 저 알비노 와이번의 역린 말야, 저거 100억에 샀던 게 바로 우리 회사거든."
"뭣?"
뒷좌석의 앨리스가 화들짝 놀라자 블랑쉬가 모니터 속에서 설명해줬다.
[알비노 와이번의 역린은 제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부품 중 하나입니다. 역린은 지금도 제 본체 안에 있죠.]
"엄밀히 따지자면 거래 가격은 70억 정도고, 이런저런 뇌물이랑 비용까지 다 합쳐서 100억이었어. 역린을 보유하고 있던 길드가 그걸 해외로 반출하려고 하지 않았거든."
즉. 처음부터 저 역린에 100억의 가치는 없었다.
아마 호사가들과 판매측이 홍보를 겸해서 100억이란 소문을 퍼뜨린 것이겠지.
두 공범은 환상을 뒤쫓고 있던 셈이다.
앨리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결국 너희들이 부추긴 거네."
"하하."
원래 하지은은 공범에게 돈을 넘겨주지 않고, 이대로 한국을 떠나버릴 계획이었던 것 같지만...
액수가 예상보다 너무 적어서 그럴 수도 없게 됐다.
나는 그녀가 블랙마켓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갑을 채웠다.
"하지은 씨. 1급 위험물 무단 소지 및 허위 보고, 탈세, 헌터 물품 무허가 매각 등의 혐으로 긴급 체포합니다."
"마, 말도 안 돼..."
망연자실한 그녀는 협회 본사의 구속실에 들어가자마자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는 특별히 그녀를 공범의 바로 맞은편에 넣어준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오해를 풀며 사이좋게 짖어댔다.
"이런 멍청한 년아! 스토킹으로 신고까지 해놓고 그거 하나 똑바로 처리못해?"
"웃기지 마! 네가 다 불어버린 거겠지!"
"빙신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겸사겸사 티아에게 말했다.
"티아는 당분간 동영상 채널 금지야."
"아앗, 어째서요!"
"너도 저 놈들이랑 똑같은 동영상 보고 있었잖아. 아무래도 수준이 비슷한 것 같아."
"주인니임..."
"근데 아까 업자들은 안 잡아도 되는 거야?"
"아, 그게 감옥에 자리가 없대. 우리 구속실도 거의 다 찼고. 당분간은 좀 골라서 잡아야 해."
"에엑."
그래도 지난번에 협회장에게 그린 더스트를 줬으니까 금방 해결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기대하며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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