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스토킹(1)
* * *
서지유가 출동한 사이, 나는 자잘한 업무들을 미리 끝내놓기로 했다.
내가 이런저런 서류들을 결재하고 보고를 받는 사이.
등 뒤에서는 두 개의 꼬리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티아는 케르를 앉혀놓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늘의 점심 메뉴를 벌써부터 궁리하나 싶었지만, 머지않아 앨리스까지 합세한 것을 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잠깐 숨을 돌리는 김에 녀석들에게 끼어들기로 했다.
"뭐 하니?"
"아, 그냥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어요."
"... 비싼 헌터 전리품 랭킹을 찾아보는 게 공부냐?"
녀석들이 보고있는 것은 일종의 랭킹 동영상이었다.
과연 케르가 이걸 알아볼까 싶었지만...
원래 동영상 사이트는 애들도 곧잘 보니까 상관없겠지.
나는 10억대에 거래됐다고 주장하는 헌터 전리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앨리스도 옆에서 곧바로 딴지를 걸었다.
"저건 이미 물량이 많이 풀려서 10억까지 안 가는데? 좀 오래된 자료인가봐. 여전히 나오면 대박인 건 맞지만..."
"그런 경우도 있군요?"
저런 동영상에 열광하는 것도 살짝 이해는 된다.
인간들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본능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행위에 열중하곤 한다.
아니, 이건 사실 인간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근데 요즘 드래곤의 뿔이나 꼬리는 얼마나 하지?"
"아앗, 주인니임... 제 뿔은 별로인가요? 꼬리도 남들은 좋다던데..."
띠리링!
티아가 호들갑을 떨어대는 꼴을 즐기고 있자 서지유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 것을 보니 뭐라도 찾아낸 것 같다.
"어, 지유 씨."
[팀장님. 찾았어요. 이거 스토킹 맞는 것 같아요.]
"벌써? 제대로 확인한 것 맞아?"
[네. 용의자가 피해자의 길드까지 찾아와서 경비들에게 끌려나가는 걸 제가 직접 봤어요. 보니까 여기서도 소문 다 났던데요?]
"알겠어. 지유 씨는 계속 조사해줘."
[네!]
남들이 다 보는 직장까지 찾아왔다면 보통이 아니다.
앨리스도 순식간에 심각한 얼굴이 됐다.
"천리안 능력자에게 스토킹을 당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해."
"그러게."
아무리 전투계 헌터라 해도 24시간 무적인 것은 아니다.
장기전이 되면 천리안을 지닌 쪽이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언제까지고 가만히 지켜본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헌터들의 생태를 감안하면, 스토킹이란 것은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매복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헌터 일을 하다보면 사람이 약해지는 순간 따윈 얼마든지 있으니까.
문제는 스토킹의 검증 방법이다.
이번 건은 일단 잡아처넣고 조사하면 되는 종류가 아니다.
카메라 따위가 아니라 헌터 능력을 이용해서 스토킹을 했으니, 사진 등의 증거물이 남아있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남아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허탕을 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직장에 찾아온 것 정도로 스토킹이라 단정지을 수도 없다.
앨리스는 내 의견에 반대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직장에 접근하는 것 정도는 죄가 아니지.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해."
"...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방금 딱 좋은 게 떠올랐어."
나는 우선 서지유에게 요청해서 용의자를 뒤쫓도록 시켰다.
용의자가 점심 식사를 하는 사이, 나는 잽싸게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특수대입니다. 스토킹 건으로 연락주신 하지은 씨 맞습니까?"
[아, 네! 수사관님. 근데 이렇게 전화하다 들키면...]
"지금은 괜찮으니까 안심하세요. 현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계십니까?"
[네, 맞아요. 길드 하우스에는 이미 자리가 없어서요. 그냥 접근금지 조치 정도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접근금지 조치라.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연락한 건가?
문제는 이런 식으로 얻은 지식이 너무 지엽적이란 것이다.
사람은 보통 본인이 보고싶은 부분만 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혹시 협박 문자 같은 거 받은 적 있으십니까? 아니면 당장은 힘든데요."
[그, 그런... 상대는 현역 헌터잖아요. 오늘은 아예 길드까지 찾아왔는데, 어떻게든 안 되나요?]
"섣불리 움직이면 상대를 자극하게 될 염려가 있습니다. 여기선 제 말대로 해보시죠. 잘 되면 잡아넣을 수 있을 겁니다."
[저, 저는 그냥 접근금지 정도만 해주시면 되는데...]
"안심하세요. 별 일 없을 겁니다."
그녀를 안심시킨 나는 내 계획을 설명했다.
아까 통신내역을 조사해봤는데, 용의자는 딱히 피해자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한 것이 없었다.
굉장히 신중한 성격.
게다가 계좌 내역도 깨끗해서 금전 관련 범죄로 보이지도 않는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김정태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이런저런 준비를 갖췄다.
앨리스와 티아, 그리고 케르까지 쫓아내버린 뒤에 블랑쉬와 데스크톱의 연결을 해제.
블랑쉬는 살짝 당황하며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걸어왔다.
[마스터, 일부 기기에서의 연결 해제를 감지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 지금부터 데스크톱으로 무기를 만들어야 하거든. 잘못하면 너도 피폭될지 몰라."
[무기요?]
"그래. 아주 무시무시한 핵무기지."
딸깍, 딸깍...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빠르게 무기를 완성한 나는 그것을 봉투에 엄중히 봉인하곤 김정태에게 건네줬다.
오늘은 이쯤에서 종료.
다음 날 아침, 용의자를 스토킹범죄 혐의로 긴급 체포한 나는 취조실에서 그를 마주했다.
무척 당황한 기색의 그는 본인의 범죄 행위를 극구 부정하며 변호사를 불러달라 외쳤다.
천리안 능력을 이용한 완전 범죄.
그와 같은 법의 문외한이 봐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건이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취조실에 입장한 나는 주저없이 서류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발뺌해봤자 소용없어. 이게 네 스토킹 행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물이니까."
"뭐, 뭐요?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지껄이면서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봉투를 개봉하는 용의자.
안쪽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곤 그것을 꺼내던 그는 그것이 다 나오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봉투를 던져버렸다.
"우, 우왁!"
팔랑팔랑 바람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진.
그는 내게 아주 격하게 항의했다.
"왜 저런 끔찍한 사진을 보여주는 겁니까!"
"역시 본 적 있지? 어젯밤 네 능력으로 엿봤던 하지은 씨의 집에서 말야."
"아, 아니. 그건..."
무척 당황하며 뒤늦게 부정하는 용의자.
나는 어제 김정태를 시켜서 영 보기 좋지 않은 사진... 속칭 혐짤이라 부르는 사진을 그녀의 자택에 갖다놓도록 시켰다.
사진을 아주 보기 좋게 배치해놓았으니, 용의자가 정말로 관음을 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으리라.
"아닙니다. 본 적 없어요!"
"그래? 그럼 왜 이 사진을 보고 기겁했지?"
"잠깐! 그거 치우라니까요!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고... 어엇?!"
그는 내가 다시금 들이민 사진을 보곤 뒤늦게 눈치챘다.
그렇다.
이번의 사진은 혐짤 중의 혐짤. 혐짤계의 핵무기라 불리는 그 사진... 이 아니었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사실은 원본과 의도적으로 비슷하게 만든 사본인 것이다.
사진의 색감이나 구도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사진.
만약 그가 어젯밤 피해자의 자택에 침입하여 원본을 본 적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왜 그리 무서우셨을까?"
"아앗..."
용의자는 내게 완전히 속아넘어갔다는 생각에 한참동안 어버버거렸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는 변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게 왜 피해자를 관음한 겁니까? 스토킹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이나 해보셨어요?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죄... 죄송합니다 수사관님. 던전 공략 이후로 하지은 씨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서..."
뒤늦게 내게 사과하는 용의자.
나는 냉큼 밖으로 나와서 자택 수색 명령을 내렸다.
"스토커가 확실하네. 저놈 집 샅샅이 뒤져봐."
"네, 팀장님."
덕분에 확신은 생겼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내가 사용한 방법은 법정에서 증거물로 인정받기엔 한참 부족하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물증을 얻어내야 한다.
"그래도 스토킹을 했던 건 100%니까, 집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주인님. 그런데 저 사람에게 무슨 사진을 보여주셨던 거에요?"
"티아야. 세상엔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좋은 일이 많아."
나는 대답을 회피하곤 팀원들의 보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대로 해결인 줄 알았던 사건은 내 예상과는 다른 전개로 흘러갔다.
수사 대상의 자택을 뒤져본 팀원들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윽고 변호사와 면담까지 마친 피의자는 금세 기세등등해져서 내보내달라고 외쳤다.
놈은 물증을 남기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저 스토킹 한 적 없다니까요! 길드에는 그냥 밥 한 번 사고싶어서 찾아간 것뿐이라구요! 그 여자에겐 문자 한 번 보낸 적 없고, 아까 그 사진은 인터넷에서..."
"너 왜 갑자기 말을 바꿔?"
내가 인상을 팍 찌푸리자 피의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야, 너 시발 지금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냐? 그렇게 자신있어?"
"저... 수사관님. 그게 아니라..."
"너 지금 내가 직접 수사 지시해서 잡혀온 거야.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봐?"
"아, 그게... 제가 여러모로 반성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정말로요. 제 본의는 아니었지만 하지은 씨가 그렇게 느끼셨다니까 정말 유감이에요."
반성하는 체를 하면서도 끝까지 발뺌하는 범인.
나는 그를 놔두곤 방을 나섰다.
아무래도 스토킹의 처벌이 굉장히 약하다보니 저렇게 나오는 것 같다.
"스토킹이 끽해야 집유긴 한데, 좀 세게 나오는군.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블랑쉬, 저 인간 싹 다 뒤져봐."
[네, 마스터.]
"그런데 혐짤 테러로 범인을 잡을 줄이야..."
"다른 방법이 없었는 걸."
나는 묘하게 감탄하는 앨리스와 함께 슬금슬금 퇴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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